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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성석제가 그리는 고향의 맛 추억의 골곰짠지
상주의 음식은 흔하고 좋은 재료를, 최대한 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리하고 거기에 발효 과정을 거친 깊은 맛을 더해 조화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본질과 실질 간의 거리가 짧은 고장. 안달복달 애써 눈에 띄게 자극적으로 꾸며내지 않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한 맛이다.

상주에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골곰짠지라는 게 있다. 얼핏 보면 무말랭이무침처럼 보이지만 김장 김치처럼 발효가 된 음식이다. 따라서 골곰짠지는 국물이 겉에만 밴 무말랭이무침보다 훨씬 촉촉하고 깊은 맛이 난다. 한겨울 새벽 눈 내린 마당을 건너가 김치 광(김치 움)에서 골곰짠지를 한 보시기 꺼내 오면 그것만으로 밥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었다. 골곰짠지를 씹을 때는 눈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와 비슷한 ‘꼬드득(오도독)’ 하는 소리가 난다.

밭에서 뽑은 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소금에 절였다가 씻어서 말린 뒤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친 까닭에 마른 무의 질깃한 부분에 이가 박히며 ‘꼬’ 혹은 ‘오’ 소리를 내고 상대적으로 수분이 많은 생짜 무의 실질 實質이 ‘드득(도독)’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실질의 소리는 가까이 있는 우리의 뇌리 腦裏에 도달해서 또 다른 소리를 불러일으킨다. 골곰짠지와 우리 각자의 어린 시절이 한 손씩 내밀어 추억과 본연의 맛이라는 박수 소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상주는 곶감의 본산이다. 예부터 쌀과 명주와 함께 상주를 삼백 三白의 고장으로 일컫게 한 곶감이 희게 되는 것은 가을에 감을 깎고 나서 줄에 매달아 말리는 과정을 거치고 난 뒤 분이 나기 때문이다. 요즘은 먹기도 쉽고 보기도 좋게 반쯤 말린 반건시도 나오지만 내가 어린 시절 본 곶감은 대부분 처마 밑에 매달려 있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를 맞아 새색시 화장한 듯 분이 보얗게 난 것들이었다. 물론 그 어여쁜 곶감을 마음대로 먹을 수는 없었다. 어른들의 눈길을 피해 분이 나기 전 말랑말랑한 곶감이 매달린 줄에 어물전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서 하나씩 빼 먹곤 했었다. 단것이 귀하던 시절, 그 달디단 맛에다 들킬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이 골곰짠지처럼 곁들여져 평생 잊을 수 없는 황홀한 맛이 되었다.

(위) 상주는 낙동강의 시원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발원한 생명수가 흐르는 들판 역시 상주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삼한시대부터 고령가야라는 국가가 있었던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수많은 골과 마을, 길과 사람을 품은 채 존재해온 곳이 바로 상주이다.


1 상주는 못과 저수지의 고장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저수지로 꼽히는 공갈못의 후신인 오태저수지 호변은 상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상주에는 조선시대에 지은 서원과 고택, 정자가 많다. 상주에는 선비 또한 전국 어느 고을 못지않게 많았다. 선비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잘은 모르지만 스스로를 ‘글로 넓히고 예의로 검약하게 하는(博文約禮)’ 가치를 숭상하고 권력자와 지배층을 육식자 肉食者라 칭하던 그들이 고기를 즐겨 먹었을 것 같지도 않다. 밥과 나물, 김치처럼 매일 되풀이해서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음식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장이다. 좋은 간장,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 없이도 밥을 먹을 수 있다. 좋은 장은 좋은 메주에서 나오고 좋은 콩에서 좋은 메주가 나온다. 장이든 콩이든 숙성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금방 심고 걷어들여 뚝딱 만들어 먹는 게 아니다. 묵을수록 맛이 나는 게 장맛이 아닌가.

상주에는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계신 집을 방문할 때 식육식당(정육점과 식당을 겸한 곳으로 즉석에서 주인이 조리한 고기를 먹어보고 솜씨에 따라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원재료와 결과물인 음식 사이의 거리와 가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데서 기인한 형태인 듯)에 들러서 쇠고기를 한두 근 ‘끊어 가는’ 습속이 있다. 10여 년 전, 우리 역사상 최고 最古의 저수지로 꼽히는 공갈못(恭儉池)의 후신인 오태저수지 호변에 사는 어르신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고 나니 ‘밥을 먹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2 벼농사, 콩농사 규모 역시 만만치 않다. 추수 때면 막 수확한 콩을 털기 전에 이렇게널어 말리는 정겨운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3 상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경천대 오르는 길. 호젓한 산책로로 그만인데 근처에는 전국에서 유일한 자전거 박물관도 있다. 청룡사 오르는 길, 사벌 들판의 아름다운 풍경도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한다.


좀 있다 그때까지도 새색시 때의 고운 태가 남아 있는 어르신의 부인이 내가 끊어 간 고기로 끓인 쇠고기장국과 막 지은 밥, 고추지, 김치 등이 얹힌 상을 들고 들어왔다. 푹 익은 무와 대파가 듬뿍 든 그 장국에 뜨끈한 밥을 말아 먹으니 땀과 함께 정신이 번쩍 났다. 옛날에 먹어보았으나 한동안 잊어버렸던 맛의 본질에 맞닥뜨렸다는 느낌이었다. 함께 간 일행들도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게 하는 맛은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 맛은 은자처럼 조용히 스스로의 인생을 귀하게 발효시키며 살아온 분에게서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그 장국을 다른 곳, 다른 사람의 장국과 다르게 한 요소는 간장이 아닐까. 노을이 물든 저수지를 배경으로 동그마니 앉아 있는 여남은 개의 장독을 보며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주에는 언제 어디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칼국수가 있다. 밀가루 반죽에 콩가루를 뿌리면서 홍두깨로 밀어 넓게 펴고 칼로 툭툭 썰어 삶는 게 상주식 칼국수다. 멸치니 사골이니 해물이니 하여 따로 육수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샘에서 길어 온 물에 밀의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맛이 우러나는 국수를 넣고 그때그때 흔한 채소인 배추 등 속을 함께 넣어서 끓여낸다. 파와 마늘을 잘게 썰어 넣은 양념간장으로 간을 해서 먹는데 음식점에서 파는 칼국수와 집에서 먹는 칼국수에 큰 차이가 없다.


4 상주 시내는 아직도 정겨운 옛 정서를 간직한 풍경이 많다.

이와 비슷하게 꾸밈이 없는 상주 해장국의 기본 재료는 된장과 시래기, 제철 채소이며 이를 오래도록 끓인 뒤에 뚝배기에 밥 한두 주걱을 넣어 내놓는다. 식탁에 놓인 간장이나 소금으로 스스로 간을 맞춰 먹게 되어 있는 게 실용적이다. 기름이나 고기, 피와 뼈의 자극적인 맛과는 거리가 멀다. 해장국집이나 해장국맛이 손님에게 영합하거나 잡아끌거나 시끄럽게 부르지 않으면서 그대로 있는데 저절로 사람들이 찾아든다. 이십대의 어느 추운 날 새벽, 낮은 처마에 달린 고드름에 이마를 부딪히며 읍내 길을 따라 걸어가 열던 해장국집 유리문, 우시장과 저자에 드나드는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그들이 두런두런 전해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와 함께 해장국을 먹던 일이 생각난다. 그 뜨거움과 기꺼움, 특히 값이 쌌던 것이.

상주 사람들이 실질을 숭상하는 것을 보여주는 예 가운데 하나가 배추전이 아닐까. 배추라는 싸고 흔한 채소를, 최소한의 밀가루 옷을 입혀 솥뚜껑이나 프라이팬에 가볍게 기름을 두른 뒤 전으로 부쳐낸 것이 배추전, 상주 말로는 ‘배차적’이다. 배추전은 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지만 초장에 찍어 먹는 게 제격이었다. 날배추 그대로 된장과 고추장에 찍어 막걸리 안주로 먹는 상주 사람들은 무도 고구마도 호박도 고추도 정구지(부추)도 전으로 부치는데 부치는 방법은 배추전과 비슷하다. 흔한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막걸리라는 술 또한 그렇다. 허식이 없고 달지 않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보다는 흥과 기운을 북돋는 게 상주의 막걸리다. 모내기나 추수철에 함지 가득 겉절이와 밥을 넣어 썩썩 비벼서 둘러앉아 배부르게 먹고는 막걸리를 한 사발 쭉 들이켜는 순간은 그 자체가 법열 法悅이었다. 


5, 6 젊은 시절부터 즐겨 찾던 해장국집. 탁자도 변변히 없는 그곳에서 한그릇에 2천 원하는 시래기 국밥을 먹는다. 멸치국물에 된장을 풀어 시원하게 만든 해장국이다. 메뉴는 시래기국밥과 막걸리가 전부. 달걀 한 알 풀어 넣은 국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주고받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다.

상주의 음식은 대부분 때에 따라 흔하고 좋은 재료를, 최대한 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리하고 거기에 발효 과정을 거친 깊은 맛을 더해 조화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본질과 실질 간의 거리가 짧으니 생활 生活(나고 살아가는 것)에서 멀어진 번드르르하고 쓸데없이 복잡한 과정은 상주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음식의 가짓수가 적은 것은 아니다. 다만 실생활과 먼 특별, 특수한 일품요리가 따로 있지 않은데 안달복달 애써 눈에 띄게 자극적으로 꾸며내는 것은 상주 사람들의 기질이 아니다.

상주의 면적은 전국 230여 개 시군구에서 대여섯 번째에 꼽힐 만큼 넓다. 1000m가 넘는 고봉을 비롯 숱한 산과 구릉이 있고 산골짜기마다 낙동강을 비롯한 수십 개의 하천과 강의 시원이 있으며 하천과 강이 생명수를 공급하는 들판이 있다. 삼한시대부터 고령가야라는 국가가 있었던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수많은 골과 마을, 길과 사람을 품은 채 존재해왔다. 한마디로 상주의 판도는 아득히 넓고도 깊다. 그 안의 삶과 역사는 기록되었건 기록되지 않았건 상주의 뿌리와 저변이 되었다.돌이켜보면 내가 상주에서 태어나 살고 머물렀던 시간은 15년도 되지 않지만 내가 쓴 소설의 절반 이상은 상주를 무대로 상정한 것들이다. 자연, 마을, 사람, 사물, 관계마다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내 관심사의 가장 앞쪽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거기에는 삼라만상 중에 사람이 귀하고 높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상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7, 8 중덕저수지 근처 매협묵집에서 먹는 묵밥과 두부의 담백한 맛도 꾸미지 않은 상주의 맛 그대로다. 이곳에서 맛보는 메밀묵, 도토리묵의 청량함과 고소하고 진득한 두부맛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1986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내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상주를 무대로 상정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태어나고 자라고 머물렀던 시간은 15년도 되지 않지만 내 작품의 뿌리는 상주’라고 말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