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의하면 ‘허브란 잎이나 줄기가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거나 향과 향미로 이용되는 식물’이라고 한다. 즉, 허브 도감에서 흔히 보는 라벤더와 로즈메리, 세이지뿐 아니라 우리가 늘 먹는 마늘과 파, 깻잎, 부추, 고추 등도 허브라고 할 수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온전히 보여주는 허브는 차나 요리로 쓰이거나, 지친 몸과 마음에 평화를 전하는 등 쓰임새가 다양하다. 야생에서 자라는 허브는 번식력이 우수하여 특별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가드닝에 재능 없는 이들도 쉽게 키울 수 있다. 집에 텃밭이 없더라도 간단한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실내에서도 허브를 키울 수 있다.
우선 물을 주는 시기와 양이 중요하다. “물 주는 모습만 봐도 식물 고수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요. 물 내공 3년이라는 말도 있지요. 잎사귀만 봐도 물을 주는 시기, 흙의 상태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양분을 1년에 한 번밖에 주지 않더라도 물만 잘 주면 식물이 잘 자란답니다.” 가드닝 전문가 김미경 씨의 설명이다. “해 뜨기 전 새벽 5시가 사실은 가장 물 주기 좋은 시간이에요. 늦게 잠자리에 드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버거운 취미생활이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이라면 크게 무리가 없어요”라고 덧붙였다. 바쁜 아침 시간이 얼추 지난 8~10시 사이에 허브에 물을 주는 것을 습관 들이면 어떨까. 보통 허브는 3일에 한 번씩 물을 주는데 이때도 흙이 습할 때는 물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 “모든 화분은 물을 많이 주는 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흙이 바짝 말랐을 때 물을 주는 것이 가장 좋아요. 결국 관심 있게 지켜보라는 의미겠지요.”
(왼쪽) 이탈리아 파슬리(노끈으로 묶은 허브)는 성장 속도가 빨라 식물 키우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마늘 바게트를 구울 때나 달걀 요리, 리소토에 잘 어울린다. 흐드러진 짙은 녹색 잎의 샐러드 버넷(가장 앞쪽의 허브)은 온도가 낮은 곳에서도 잘 자란다. 오이처럼 상쾌한 향기가 나는 이 허브는 올리브오일을 곁들여 샐러드로 즐기기에 좋다.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의 부엌은 허브 요리 연구가 박현신 씨의 주방이다.
허브마다 물을 주는 시기가 정해져 있냐는 질문에 대한 허브 요리 연구가 박현신 씨의 대답에서도 결국에는 애정 어린 관심만이 허브를 키우는 8할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는 사람이 더위를 타는 것처럼 허브도 덥다. 이때는 흙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하루 한 번 물을 주도록 한다. 당연히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올 때는 물 주기를 자제해야 한다. 자칫 물 주는 것을 잊어버려 흙이 바짝 말라 있을 때는 물 조리개를 사용해 화분 아래로 물이 스며나올 때까지 흠뻑 ‘샤워’ 시킨다. 이때 꽃에 물이 닿지 않도록 해야 꽃잎이 시들지 않는다. 받침에 고인 물은 버려주어야 뿌리가 썩는 것을 막고 허브가 숨 쉴 수 있다. 물 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일조량과 통풍. “허브는 바람을 좋아하는 식물이에요. 꽉 막힌 공간에 허브를 두면 곰팡이가 생기고 뿌리가 썩을 수 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나 다용도실에 허브를 두면 흙이 보송보송하게 잘 말라 뿌리가 썩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허브화원을 운영하는 허브다섯매의 이충일 실장의 설명이다.
실내에서 허브를 키울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그 외의 것으로는 화분과 흙이 있다. 화분은 흙을 구운 토분이 가장 좋은데 초보자도 토분의 표면을 통해 흙의 상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흙은 화원에서 판매하는 배양토를 쓰도록 한다. 산이나 들판에 있는 흙, 특히 도심에서 캔 흙은 기생충이 있거나 중금속 등에 오염되어 있을 위험이 많다. 허브 역시 사람처럼 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비료 중에서는 오스모코트(비료 브랜드) 제품이 가장 좋더라고요. 동물 뼈를 갈아서 코팅을 한 제품인데 생김새는 꼭 자갈 같아요. 흙이 스스로 삼투압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 필요한 양분은 취하고, 과도한 성분은 버릴 수 있도록 한답니다. 보통 4ℓ짜리 화분에 티스푼으로 두 숟가락 정도만 주면 됩니다. 냄새가 전혀 안 나서 가정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하죠.” 허브 키우기가 취미인 김미경 씨가 비료를 추천했다. 오스모코트는 양재동 꽃시장이나 코스트코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스레인지나 양념통 앞에 허브를 두면 요리할 때 훨씬 편리하다. 버릇처럼 한 줄기 뜯어 넣은 로즈메리 덕분에 스테이크의 맛과 향기가 더욱 근사해지고, 샐러드나 나물을 무치다가 곁들인 나스터튬 한 송이가 입맛을 돋운다.
양념처럼 항상 쓰게 되는 허브 세팅법
국자 모양의 화분에 담아 조리도구와 함께 걸기(사진 왼쪽) 부엌에 들어서면 항상 서게 되는 곳이 가스레인지나 싱크대 앞이다. 여기에 걸이에 걸 수 있는 국자 모양의 화분에 허브를 담아 키우면 언제든 요리에 손쉽게 쓸 수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국자 모양 화분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 상가에서 판매. 상쾌한 솔 향이 나서 우리네 정서와 가장 잘 맞는 로즈메리를 키우면 어떨까. 올리브오일에 로즈메리와 쇠고기나 닭고기, 생선 등을 재우면 재료의 좋지 않은 냄새를 줄일 수 있어 쓸모도 많다. 로즈메리는 뿌리가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해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예쁘게 위로 잘 자라던 로즈메리가 도중에 ‘용트림’하듯 비틀어지는 순간이 오는데 바로 이 시기가 화분을 갈아주어야 할 때다. 뿌리가 약하기 때문에 화분을 옮기다 상처가 약간만 나도 죽을 수 있으니 아예 화분 자체를 아낌없이 부술 각오를 해야 한다. 화분이 영 아깝다면 로즈메리를 통째로 뽑아야 하는데 이때도 화분 밑동을 잡고 뒤집은 상태로 로즈메리를 옮겨야 한다.
흙의 무게로 자칫 뿌리가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두 손으로 받쳐서 살살 이동한다. 잡아서 쑥 뽑으면 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뿌리가 끊어질 수 있다. 주둥이가 좁은 화분보다는 역삼각형의 화분에 키워야 분갈이가 쉽다는 점을 기억하자. 로즈메리는 한 번에 물을 흠뻑 주도록 한다. 닫혀 있는 공간인 화분 안에는 염분이 농축될 위험이 많은데 물을 많이 주면 염분이 씻겨져 내려가기 때문에 뿌리에도 유익하다.
양념만 모아둔 상자에 허브를 함께 넣어두기(사진 오른쪽) 간장이나 참기름, 식초 등의 양념을 한데 모아둔 곳에 자그마한 허브 화분을 함께 넣어두면 어떨까. 톡 쏘는 매운맛이 나는 꽃을 주로 사용하는 나스터튬이라면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보기에도 아름다운 나스터튬은 비빔밥이나 샐러드 등에 넣으면 한두 송이만으로도 근사한 스타일링이 완성되고 입맛을 돋우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 나스터튬은 잎과 줄기를 뜯어 흙에 그냥 심어두면 저절로 줄기가 날 정도로 번식력이 뛰어난 허브다. 그러나 무더위에는 약하므로 한여름에는 그늘로 내려놓는 것이 좋다. 또 나스터튬처럼 꽃을 주로 사용하는 허브는 비료를 지나치게 많이 주면 꽃이 피지 않고 잎만 무성할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한다.
부엌에서 잘 자라는 허브
1 차이브 파와 비슷한 맛과 향기가 나는 허브. 양파 육수를 베이스로 하는 수프에 차이브를 곁들이면 맛이 잘 어울린다. 철분, 칼슘이 풍부해서 빈혈이 있는 이들이 꾸준히 먹으면 좋다. 싱싱할 때 딴 차이브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완전히 없앤 뒤 잘게 다져 냉동실에 보관해 두면 늘 신선한 상태의 차이브를 맛볼 수 있다. 차이브는 내한성이 좋아서 추운 곳에서도 잘 자라지만 반면에 강렬한 햇볕은 피할 것.
2 바질 피자나 파스타 등 토마토가 소스의 주재료가 되는 요리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는 허브다. 바질은 추운 곳만 피해주면 된다. 반면 온도가 높은 곳에 두면 생육이 매우 왕성해져 키만 크고 향기가 적은 바질로 자란다.
3 월계수 서양 요리에 빠지지 않는 월계수는 잎만 사용하는 허브. 생잎의 경우에는 쓴맛이 강한 편인데 잎을 말리면 달고 강한 향기가 난다. 월계수 잎을 잘 말려 밀폐용기에 보관해두면 피클, 소스 등을 만들 때 유용하다. 특히 입맛 없을 때 말린 오레가노와 말린 월계수 잎을 넣고 만든 피클 하나면 입맛 돋우는 데 그만이다. 월계수는 내한성이 약한 허브로 추위만 신경 쓰면 된다. 줄기의 모양이 아름다운 월계수는 관상용으로도 키우기 좋은 식물이다.
4 레몬밤 ‘학자의 허브’라는 별명이 붙은 레몬밤은 머리를 맑게 하고 기억력을 높여주어 차로 우리거나 잘게 다져 아이스크림에 넣으면 상큼한 맛을 더한다. 말려도 특유의 레몬 향이 줄어들지 않아 건조시켜 목욕할 때 넣거나 방 한쪽에 걸어두면 은은한 향기가 난다. 꽃이 피기 직전에 가장 향이 강한 편이니 이때 잎을 따서 말리면 된다. 레몬밤은 로즈메리처럼 뿌리가 약한 편이므로 물을 지나치게 많이 주면 썩을 위험이 있다.
5 민트 애플민트와 페퍼민트 등 다양한 종류의 민트는 일조량이 적어도 잘 자라는, 집에서 가장 쉽게 키울 수 있는 허브다. 서로 다른 민트를 한 화분에 키워도 되는데 이때 자기 키의 한 배 정도 되는 거리를 두고 심는 것이 좋다. 민트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며 번식력이 강한 편이지만 온도가 높거나 건조한 환경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박하로 익숙한 민트는 멘솔 성분이 풍부하여 찬물에 우리면 초여름의 갈증을 쉽게 잠재울 수 있다.
실내에서 허브 키우는 요령
(왼쪽) 죽은 식물도 살려내는 쌀뜨물 배양액
쌀뜨물 배양액은 ‘죽은 식물도 살려내는 힘’을 지닌 홈메이드 비료. 1.5ℓ 페트병으로 하나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쌀뜨물 1.5ℓ에 설탕 1/2컵을 더한다. 여기에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해동시킬 때 나오는 붉은 색소를 한두 방울 넣으면 된다. 붉은 색소는 철분 및 영양성분이 풍부하다. 우유나 요구르트 1작은술을 대신해도 된다. 페트병에 넣고 잘 흔들어 일주일에 한두 번 뚜껑을 열어 가스를 내보낸 뒤 사용하며 다용도실에 보관하면 된다. 10~20배로 희석하여 일주일에 한 번 식물에 주면 좋으나 번거롭다면 한달에 한 번이라도 주자. 이 쌀뜨물 배양액을 주면 뿌리가 건강해지고 흙이 살아나 일년생 허브도 여러 해를 날 수 있다. 반드시 희석시켜 써야 하며 원액 자체를 주면 식물이 죽을 수 있다.
(오른쪽)식물 재배용 램프로 햇볕 만들어주기
야외에서 키우는 허브는 햇볕을 듬뿍 받고 자라지만 실내에서 키우는 허브는 1~2주도 못 가서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거나 식물 재배용 램프(pg램프라고도 한다) 아래 두면 된다. 특히 햇볕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물 재배용 램프를 쓰면 지하에서도 허브를 키우는 것이 가능하다. 필룩스 제품과 오슬람 제품이 있으며 대형 마트나 램프 전문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 부엌에서 키워 더욱 쓸모 있다 살아 있는 향신료, 허브 키우기
-
부엌 창가에서 자라는 초록빛 허브는 보기에 근사하고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음식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향긋하고 독특한 냄새로 식욕을 돋우는 요리사며 기분을 좋게 해주는 해결사인 허브를 늘 가까이 한다면 행복 지수가 높아질 것 같다. 작은 단지 하나만 있으면 부엌에서도 쉽게 허브를 키울 수 있는 방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