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종선 씨는 이 작업실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번 들어오면 여간해서는 나가지 않고 모든 것을 이 안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2년 전쯤부터 취미로 즐기는 드럼 연주. 소리와 빛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이 둘을 이용해 가구를 만든다. 그의 오른쪽 옆에 있는 나무 상자는 현재 작업 중인 스피커.
2 <소리 나는 목가구> 전시회에 소개했던 진공관 오디오.
3 구멍을 손잡이처럼 들고 다니며 사용하는 나무 방석.
매주 금요일이면 이곳은 사람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나무 두드리는 소리로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띤다. 바로 박종선 씨의 공방에서 수업이 열리기 때문이다. “저에게 배우러 오는 분들은 저처럼 공방을 갖고 작품 활동도 하고 가구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이지요. 그냥 취미로 하는 분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목재를 구입하는 경로와 절차부터 시작해 공방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을 공유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곳 원주까지 매주 차를 몰고 와 수업을 듣다 원주의 매력에 빠져들어 터를 잡고 작업하는 분들도 있어요. 저는 워낙 오랜 시간을 원주에서 보내 그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와보신 분들은 좋아하시네요.”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빛과 소리를 더해 작품을 만드는 박종선 씨. 새와 강아지가 한데 어울려 놀고 있는 평온한 대지 위에 가로로 길게 자리 잡은 작업실에서 그는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한다. 집은 원주 시내에 있지만 손님맞이며 여가 활동이며 모든 것을 이 안에서 해결한다. 한적한 공간에서 나무와 교감하고 음악과 교감하며 고독을 즐긴다. 작지만 짜임새 있는 부엌에서는 혼자 먹기에는 최고의 요리라는 라면을 만들기도 한다. 그의 아내도 이런 작업실에서의 일상을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단순한 회색 상자 같은 공간에는 박종선 씨의 하루가, 생활이, 그가 꿈꾸는 세계가 담겨 있다. 가로로 긴 공간의 평면을 살펴보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엔 작품을 구상하고 보관하는 작은 방이, 왼편으론 두 개의 긴 공간이 있다. 첫 번째 공간은 집으로 치자면 응접실 같은 곳. 이곳에서는 정교한 작업을 하기도 하고 여가 활동을 즐기기도 한다. 여기를 지나면 먼지 날리며 판재를 자르고 가공하는 대형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장이다. 다시 그곳을 가로질러 뒷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독립채 건물 두 개가 나타난다. 하나는 손님방이고 그보다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화장실이다. 손님방은 매해 겨울이면 서울서 나무 조각가 신명덕 씨가 내려와 작업하며 숙소로 사용한다. 둘은 오래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어 이따금 함께 작업하며 전시회도 연다.
손님방의 핵심은 일단 박종선, 신명덕 두 작가가 손수 지었다는 것. 이 방 자체도 하나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애연가 신명덕 씨 덕에 가장 공들였던 부분은 흡연용 창이다. 가로, 세로, 높이 각각 2m가량 되는 방 안에 손바닥만 한 환기구를 내어 환풍기까지 달아놓고 겨울엔 행여나 바람 들 새라 나무 덧문까지 달아놓았다. 그리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천창을 내고, 침상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시선 높이에 벽을 따라 긴 창을 둘렀다. 마치 오래된 보물창고에 들어선 것처럼 구석구석 남다른 무언가를 찾아내는 묘미가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숨겨진 묘미를 찾게 하는 것, 의외의 무언가를 발견하도록 하는 것은 박종선 씨의 가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 예로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책상이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형태의 책상이지만 그 앞면에는 서랍이 숨겨져 있다. 서랍을 열면 그 안에 또 하나의 서랍이 있다든가, 잠금 방식을 간단하면서도 독특하게 해 아는 사람만 열 수 있게 한 작품도 있다.
1, 5 나무로 작업하는 이들의 필수품 망치와 대패. 수십여 가지의 망치와 대패가 작업실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2 손수 지은 화장실. 별로 특별하지 않아 보이지만 특별한 것이 이 화장실의 매력이다.
3 정교한 작업에 사용하는 조각도. 이렇게 세심하게 나무를 다루다 보면 나무를 닮고 싶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4 입구 오른쪽에 있는 방. 미군 부대에서 구한 야전 책상이 그의 작업 책상이며, 벽면에는 오래전 작업해놓았으나 아직 발표하지 못한 포터블 책상이 걸려 있다.
6 작업실 입구는 소박하면서도 왠지 쓸쓸하다. 그러나 그가 디자인한 빨간 고깔 조명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마중 나와 있다.
7 직접 만든 부엌의 서랍장.
조용하고 느긋한 사람이 만든 차분한 가구
그의 작업실 첫인상은 시골 학교 교무실 같기도 하고 동네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문화 사랑방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핸드 그라인더로 직접 원두를 갈아 핸드 드립 커피를 만들어주며 그가 하는 말. “영화 <카모메 식당> 보셨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그 영화에서처럼 커피를 만들어드릴게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카모메 식당>(한 일본 여인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주먹밥 식당을 운영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여유로우면서도 집요하게 묘사한 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식당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준다). 이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대체로 소소한 것, 더 나아가 밍밍함의 매력에 끌리는 사람일 것이다. 특히 영화 속 장면을 놓치지 않고 기억한다면 단순하면서도 평온하게 와 닿는 디자인의 사물을 탐닉하는 사람일 것이다. 박종선 씨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던 것.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좋아하고 여행을 다닐 때에도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셰이커 양식을 좋아한다. 셰이커 양식이란 셰이커 교도(18~19세기에 미국 동부에 설립된 그리스도의 재림을 신봉하는 교단)들의 신앙과 금욕주의에 바탕을 둔 생활에서 빚어진, 극도로 절제된 공동체 생활 속에서 간결함, 기능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가구와 생활 양식이다. 이것의 절제된 형태와 기능의 매력에 빠져 자신의 가구도 그처럼 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그는 빛과 소리에도 관심이 많다. 옛날 LP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이 이제는 재산이 되었다며 틈틈이 그 음악들을 꺼내어 듣기도 한다. 게다가 미군 부대에서 구입한 미니 LP(지금으로 치면 데모 CD와도 같은)들을 틀어놓고 작업하기도 한다. 또 빈티지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입수해 옛날 모노 오디오와 진공관 오디오를 사 모으고 작품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디지털화된 똑 떨어지는 기계적인 음색보다는 나무처럼 텁텁하면서도 시간이 느껴지고 울림이 있어서 사람을 흡입하는 매력이 있다.
8, 9, 11 <소리 나는 목가구>전에 소개했던 좌식 테이블, 의자 그리고 모노 오디오. 그는 진공관과 모노 오디오에 관심이 많아 직접 컬렉션도 하며 작품에 사용하고 있다.
10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디자인의 책상과 의자.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라며 도록을 펼쳐보여주었다.
12 방 한쪽에는 <빛과 소리의 숲> 전시회에 소개한 작품이 있다. 나무 상자 안에는 오디오가 내장되어 있고, 그 위로는 빛의 기둥이 삽입되어 있는데, 모형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3 그의 베스트셀러인 나무 스툴.
지금까지 세 차례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중 두 번이 소리와 빛을 주제로 한 것. 첫 번째 전시회에서는 책상, 의자 같은 가구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며 ‘나무에게 말을 걸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두 번째 전시회는 ‘소리 나는 목가구’, 세 번째 전시회는 지난가을 인사동 크라프트 아원에서 열린 ‘빛과 소리의 숲’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그는 나무 상자 속에 자신의 관심사(빛·소리·컨테이너의 잠금 방식 등)를 담아보았다.
그의 작업실 한쪽에는 요즘 새롭게 작업하고 있는 소리 상자, 나무 스피커가 있고 그 옆으로 드럼이 놓여 있다. 드럼을 배우냐 물었더니 ‘요즘 그냥 혼자 연습하는 것’이라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밴드 활동도 하며 음악을 취미 삼아 살아온 그였다. 그러다 가구 작업을 하면서 음악을 한동안 못했었는데 2년 전부터 드럼을 시작했다고. 드럼이란 타악기를 연주하며 그는 ‘감정을 비트로 옮기는 작업’으로 또 다른 창조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다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영화를 보고, 미군 부대에서 사 온 야전 책상에 앉아 다음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며 소소한 일상을 가구로 기록해나가고 있다. 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지루함이나 따분함을 느낄 법도 한데 그는 “좋아하니까 일부러 이렇게 한적한 곳으로 온 것인데요.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여유도, 또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도 모두 이 안에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 회색 상자 안에서 나무 냄새와 커피 향이 묘하게 어우러지고, 나무 가공하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핸드 그라인더로 커피 가는 소리가 이따금 번갈아 들리며, 진공관 오디오를 거쳐 울려 나오는 고전적 선율, 어느 순간 격정적으로 타오르는 드럼 소리까지,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박종선 씨의 하루를 이룬다. 회색 벽에 뚫린 창 너머로 시간을 가늠하는 여유와 감성이 녹아들고 있다. 문의 033-762-1067
- 작가 박종선 씨의 작업실 풍경 달그락 라면 냄비, 드럼 소리 어우러진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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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자연 속의 공방. 겨우내 얼어붙었던 논과 야트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작업실이다. 이곳 주인 박종선 씨는 여기서 가구를 만든다. 낮고 길게 자리 잡은 산속 창고 같은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만지작거리고 싶은 것들이 늘어서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