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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전 검사의 리더십 제언 공부 잘하는 아이일수록 팀으로 하는 운동을 시켜라
요즘 들어 리더십에 관한 책의 출간이 부쩍 늘었다. 리더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어서일 것이다. 지난 8월 5일까지 여성가족부 장관법률자문관으로 일했던 정미경 전 검사가 쓴 <여자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도 리더십에 관한 책. 지은이가 국내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공직에서 근무하며 자각한 경험들을 미래의 주인공인 ‘알파걸’들을 위해 풀어놓는 복음이다.
야망을 큰 소리로 말하라 정미경 전 검사의 가족사는 남다르다. 그가 두 살이던 때 동생을 낳던 어머니가 출혈과다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동기들은 어머니의 일로 방황하던 아버지를 강제로 월남전에 보냈고, 어린 남매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의 젊고 예쁜 여동생에게 맡겨졌다. 그 여인은 평생 그를 돌봐주었고, 지금은 고운 할머니가 되어 그의 두 아들까지도 맡아 길러주고 있다. 길러주신 어머니 덕분에 검사 생활에 열중할 수 있었다는 그에게 어머니는 든든한 ‘우렁 각시’. 그래서 그는 “나에게는 아내가 있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닐 때의 일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아버지는 고열로 심하게 앓는 그를 안방으로 옮겨 밤새 간호를 했다. 그날 그는 잠결에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내 딸은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겠지.” 어린 소녀는 법대가 뭔지, 판검사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판검사의 꿈을 꾸게 되었고, 1996년 사법고시(38회)를 통과했다.

그가 여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3년 세 번째 부임지인 군산에서 여성과 아동 관련 사건을 전담하면서부터였다. 그가 부임하기 1년 전 개복동 유흥주점에서 일어난 큰 화재사건으로 그곳에서 일하던 성매매 여성들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업주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선불금 사기로 고소한 사건을 배당 받아 일을 진행하면서 여성단체와 (남성이 대부분인) 검사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검사와 여성단체 사이의 소통을 돕는 ‘통역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수원지검에서 일하던 2005년 여성가족부 파견을 자원했고, 파견검사로 일하면서 여성 관련 단체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 나가 검사 일을 통해 알게 된 자신의 경험을 많은 여성들과 나누었다. 지난해에는 여성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의 책 <여자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랜덤하우스)는 남성 위주의 조직에서 일하고 고민하면서 한 사람의 검사로 자립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과 열정의 산물이다.

<여자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를 펴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여성가족부에서 파견검사로 일하면서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남자 리더들을 보고 관찰하던 이전과는 달리 여성들을 많이 접하고 보게 되었지요. 더불어 여성 리더들을 보면서 리더가 갖추어야 할 조건 내지는 자질, 그런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요. 이에 대해 고민을 하고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 보니 ‘나도 이렇게 고민이 많고 힘든데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용기를 갖게 된 거죠.”

책이 나온 뒤 여러 언론사에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나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최초의 여성 공직자들을 실명 비판한 것에 대한 관심을 보였어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이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최초의 여성들이 공직에서 일하던 시대는 그만큼 고단하고 힘든 때예요. 저 또한 그분들의 공헌을 인정해요. 하지만 이 책은 그분들의 공헌과는 별개로 새로운 준비를 하자는 의미에서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내놓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성 리더십을 설명해주시겠어요?
“여성으로서 리더가 되려면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이야기했지요. 미래 사회에는 여성과 남성이 구분되지 않을 테지만 아직은 구분되어 있으니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거고요. 궁극적으로 제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는 건 여성 리더십보다는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미경 전 검사님께서는 ‘리더의 성공이란 리더를 포함한 조직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성공한 리더라고 생각하는 분은 누군가요?
“초임 검사로 1년을 보낸 뒤 만났던 부장 검사님이 계세요. 그분은 아랫사람이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자극하는 방법, 격려하는 방법을 알고 계셨어요, 저는 그분을 신뢰했고, 내게 힘을 주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100%를 다 쏟아서 일했어요. 무엇보다 그분은 저를 소중한 인물로 대접해주었고, 스스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관심을 표시해주었지요. 자신의 야망을 솔직하게 드러낸, 그래서 야망을 품격 있게 만든 링컨 대통령도 너무 좋아해요.”

정 전 검사님의 야망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는 행복한 검사가 되자는 게 저의 야망이었던 같아요. 검사가 참 힘든 직업이거든요. 다른 사람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어느새 나도 불행한 얼굴을 하고 힘들어하기 쉬워요. 여유도 없어지고요. 그래서 검사 일을 하는 동안 ‘나는 행복한 검사가 되자’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했어요.”

남 주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시작해 1년 동안 집필했다. 원고를 탈고한 뒤 그는 두 분의 어머니와 관련된 내용을 길러주신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다.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다면 싣지 않을 생각이었다. 글을 읽은 어머니는 식탁에서 울고,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던 그는 방으로 들어가서 울었다. 딸이 결혼하던 때, 모녀지간의 관계에 대해 사위 될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어머니는 ‘책에 필요한 내용이라면 나는 괜찮다’라고 말씀하셨다.

아직 어리지만 두 아들도 행복한 리더로 자라길 바라시겠지요?
“예. 하지만 아직은 애들이 너무 어려서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애들 수준에 맞춰서 하려고 하는 편인데, 주로 ‘많이 도와주라’고 이야기해요. 아직 어려서 자기 것만 챙기고, 자기 걸 빼앗기면 다투는 유아기의 욕심이 많이 있어요(웃음). 팀으로 하는 운동을 시켜보고 싶고, 남에게 주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해요.”

남에게 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리더십은 어떤 상관이 있는지요?
“리더는 자기 혼자 일하는 게 아니거든요. 같이 협력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에요. 자기 혼자 할 때 백점을 맞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리더가 돼서도 백점을 맞기란 어려워요. 왜냐하면 같이 하는 작업은 혼자 하는 일과 다르거든요. 같이 하는 일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같이 하는 거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 100% 헌신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백점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없어요. 자기 혼자만 공부를 잘하는 엘리트형 리더들이 흔히 갖는 한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예요. 그래서 얼마 전 서울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특강에서 ‘친구들에게 자기가 만든 자료와 답을 보여주고, 아는 건 가르쳐주라’고 이야기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비슷한 실력을 가진 친구에게 자료를 주고 답도 알려주면 그 친구의 실력이나 성적이 더 높아질 텐데요?
“그렇지 않아요. 자료를 만들고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정도면 사실은 다른 아이가 더 뛰어난 거죠. 그러니 아는 걸 다 가르쳐줘도 돼요. 그래서 이 아이가 팔을 벌렸을 때, 그 그늘 밑으로 친구들이 많이 올 수 있어야 리더가 되는 거지, 자기 혼자서 리더가 되지는 않아요. 자기 혼자만 잘하는 사람은 어느 선까지는 빨리 올라갈 수 있어도 성공한 리더가 되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사람 마음을 움직이면서 윈윈win-win 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대개 그런 사람 밑에는 사람이 오지 않을뿐더러 오더라도 충성하지 않아요.”

그가 검찰청에 사직서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인터뷰를 마친 뒤였다. 파견근무를 마치면 이전에 근무하던 곳으로 복귀하게 되는 검찰의 통상적인 인사 관례와 달리 그는 이번 인사이동에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고, 심사숙고 끝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이 책의 발간 활동과 전직 여성 공직자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이 문책성 인사로 이어진 것이라고 추측, 보도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역동적인 업무의 속성에 이끌려 검사가 되었고, 오로지 ‘검사 정미경’만을 생각했다던 그의 모습은 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어디서든 행복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넉넉한 그늘을 드리운 여성이라는 것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으니, 안타깝기는 해도 걱정되지는 않았다.

남성 위주의 조직에서일하는 여성을 위한 조언 5
1
무슨 일이든 꼼꼼히 준비한 후 착수해야 한다.
2 나와 맞지 않는 상사와 대화할 때는 가능한 한 하고 싶은 말을 다하되, 반드시 예의를 지켜라.
3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라. 다만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한다.
4 남자 동료들이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나를 만들자.
5 여자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면 서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
<여자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 중에서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