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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집으로 갑니다 [新가족풍경 3] 가족과 집이 태어나는 진짜 이야기
2007년, 한국의 가족은 어떤 집에서 어떤 풍경으로 살고 있을까요?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을 맨눈으로 들여다봤습니다. 그 집엔 삶의 온기, 삶의 얼룩이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빛나는 풍경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가족이 있지요. 결국 가족의 온기가 있어야 비로소 집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사람이 없는 집의 풍경은 집이 아닌 아파트일 뿐입니다 . 영화감독 김용균이 이끄는 이야기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 바로 우리 집의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학교에서 막 돌아온 여덟 살 아이의 눈이니, 잠시 무릎을 굽히고 지켜봐 주세요.


(오른쪽) 회색 소파는 데코야, 소파 위 베개 커버는 세덱, 담요는 플루, 소파 테이블은 가구인, 빨간색과 흰색 사이드 테이블은 카르텔, 카펫은 한일 카페트 제품. 바닥의 게임기는 플레이스테이션 2.

S#1 엄마 없는 오후
엄마 없는 아파트
“엄마아” 학교 파하고 돌아온 아이가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집에 없습니다. “엄마 어디 갔지?” 혼자 자다 잠을 깬 것처럼 여덟 살배기 아이는 울컥 슬퍼집니다. “모기야, 내 새끼 물지 말고 날 물어라” 하고 모기에게 애원하던 엄마도, “도대체 누굴 닮은 거야? 또 빵점이야? 엄만 2등이 뭔지도 몰랐어”라며 도끼눈 뜨던 엄마도 보이지 않습니다. 몸을 눕히면 가을볕을 고스란히 받아주던 마루가 오늘은 휑뎅그렁하기만 합니다. “울 엄마 어디 갔지?”


식탁은 데코야, 샹들리에는 인라이트, 우유가 담긴 컵은 메프라, 식탁 위 보라색 냄비는 폰티냑, 바닥의 아동용 가방은 WP, 가스레인지 위 주전자는 옥소, 그 옆 스테인리스 냄비는 이딸라, 조리 도구는 헹켈, 개수대 안의 접시는 레녹스 제품.

엄마가 사라진 부엌은 부엌이 아니다
부엌엔 엄마 대신 아침 설거지, 아이의 간식 그릇, 우유잔 그리고 엄마의 말표 고무장갑만 나뒹굽니다. 아침이면 싱크대 위를, 점심이면 다용도실을, 저녁이면 김치 다라이 안을 휘젓고 다니던 엄마의 고무장갑. 엄마를 마법사로 만들어주는 말표 고무장갑. 그리고 냉장고 한 귀퉁이에 엄마의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엄마 할머니 집 갔다 저녁에 올 거야. 이모네 가서 놀아. 학원 꼭 가고. 그리고 너, 툭하면 화장실 불 안 끄는데, 내가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때도 불 켜져 있으면 그땐 알아서 해!” 메모 속에서라도 엄마를 발견한 아이의 마음은 그제야 좀 보들보들해집니다.

아이 혼자 있는 집, 아니 아파트 잠시도 곁을 떠난 적 없는 햇볕처럼, 아이 곁을 맴도는 엄마 냄새가 있습니다. 훈기처럼 집 안을 채우던 엄마 냄새. 엄마 없는 집에선 엄마 냄새도 나질 않습니다. 엄마 없는 이곳은 집이 아니라 아파트입니다. 침대에 배 깔고 ‘유희왕카드’로 딱지치기를 백 번 해도, ‘출동! 파워 변신 로봇’ 스티커로 벽을 도배해도 이상하게 방 안은 환해지지가 않습니다. 천장으로 벽으로 숨바꼭질하는 창 그림자를 안고 아이가 빈방을 지킵니다.


S#2 엄마와 함께한 오후
엄마 집을 찾아간 엄마
남편도 아이도 기억하지 못한 생일날 오후,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얘야, 와서 밥 먹어라. 더운 국에 밥 몇 술 뜨고 가거라.” 엄마는 복숭아 한 상자 사 들고 엄마의 엄마 집에 갑니다. “윤석이 낳을 때 엄마가 그랬잖아. ‘내 새끼가 내 새끼 낳느라고 얼마나 애썼냐.’ 엄마가 없으면 마흔 다 된 나를 누가 내 새끼라고 불러줄까. 엄마, 엄마가 없으면 난 어떡해?” 오늘만큼은 어머니가 종일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늘만큼은 나만의 엄마였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의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
엄마 집을 찾아간 엄마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밥상이 그리웠습니다. 새끼들 입으로 밥 넘어가는 소리에 헤벌쭉 웃으시던 어머니. 그러곤 김치 찢고 난 손가락을 ‘쪽’ 빨아 드시는 것으로 반찬을 삼으시던 어머니. 내 꽃자리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며, 길 가던 거지도 집 안에 들여 배불리 먹이던 어머니. 어머니가 ‘내 새끼’ 생일상을 한 상 차려주셨습니다. 미역국에 묻은 바다 내음, 장아찌에 묻은 흙 내음, 마주 앉은 어머니의 눈길도 섞어 모처럼 기쁨의 밥을 말아먹습니다. 들쭉날쭉하던 마음도 어느새 환해집니다. “요새는 밥도 잘하다 못하다 그런다. 질다가 되다가. 에휴, 늙어서 그런다 늙어서.”

엄만 할머니 집에서도 우리 집만 생각해
“참 이상해. 엄마 손만 거치면 비실비실 배삼룡이던 화초도 벌떡 일어나잖아.” “사람이고 화초고 맘 가면 크는 거지, 뭐 별거 없다.” 동서벌꿀 유리병에 숟가락으로 고추장을 퍼 담던 어머니가 무심하게 말을 툭 던집니다. 장독 그늘조차 따스하고 환한 오후입니다. “엄마 근데, 저 약탕기 우리 집에 가져가면 안 돼?”


꽃보다 고운 어머니 꽃보다 고운 어머니 방
아직도 시장 가는 길에 남의 집 대문 안에 핀 꽃구경에 넋을 잃는 우리 어머니.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여자로 살게 하는 꽃무늬 팬티를 입는 우리 어머니. 백화점에 가서 시폰 원피스 한 벌 사드렸더니,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 입어보는 우리 어머니. 전신 거울 앞에서 꽃 같은 얼굴로 “아이고 곱다…”라며 웃던 우리 어머니. “엄마, 오래 오래 사세요. 꽃비단 이부자리 만날 깔아드릴게요.”

한국의 토종 가구 브랜드
한국 가구 브랜드의 역사는 1966년 보루네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원목 오퍼상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한때 책상 가구의 대명사였다. 둘째는 1970년 부엌 가구로 시작한 한샘. 1997년 홈 인테리어 패키지 개념을 제시하며 종합 인테리어 기업으로 도약했다. 셋째는 1971년 서일공업사로 출발한 에넥스. 서일공업사는 1976년 ㈜오리표 씽크로 법인을 전환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에넥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는 1977년 태어난 리바트이다. 금강목재공업으로 시작했다. 다섯째는 1982년 태어난 까사미아, 여섯째는 1994년 시작된 일룸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가구는 우리의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제2의 쓰임을 갖게 된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생활 문화 덕분이다. ‘바닥’ 생활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소파는 아직까지도 등받이로서, 혹은 TV 보다 스르르 낮잠에 빠져드는 데이 베드의 역할을 더 많이 한다. 식탁은 어떠한가? 만두 빚을 때, 콩나물 손질할 때, 김치 담글 때 더없이 훌륭한 조리대가 된다. 여기에 아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부모 커뮤니티의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식탁 옆에는 작은 교자상 혹은 티 테이블이 꼭 세워져 있다. 중요한 손님은 거실에서 맞아야 하며, 정성스럽게 ‘한 상 차려’ 대접해야 하는 정서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흥 부촌 삼성동 아이파크 vs. 30년 전통 부촌 광장동 워커힐 아파트
엄마와 딸이 닮았다는 것은 한마디 대화만으로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엄마와 딸의 모습일 것이다. 앞집이 서울에서 가장 비싼 삼성동 아이파크(평당가 5천4백35만 원)로 이사 가는 게 배 아파, 괜한 앞집 아줌마 꼬투리 잡는 엄마나, 뒤늦게 결혼한 친구가 이촌1동 GS한강자이(평당가 약 3천5백25만 원)에 신접살림 차린 것이 배 아파 “공부는 못했던 게 시집은 잘 갔다”고 말하는 거나…. 이 두 아파트는 서울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 외에도 구별 최고 평당가인 아파트를 꼽아보면, 송파구 잠실7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약 4천51만 원), 서초구 서초동 롯데캐슬클래식(약 3천5백74만 원),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2단지(약 3천2백15만 원), 구로구 항동 그린빌라(약 2천9백21만 원),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약 2천7백59만 원), 영등포구 여의도동 공작아파트(약 2천8백52만 원), 마포구 상암동 상암월드컵6단지(약 2천4백67만 원) 등이 있다.
(자료 출처: 2007년 8월 13일 ‘부동산뱅크’ 조사)


CD 수납함으로 쓰인 양철 트렁크는 엣코너에서 판매, 라디오는 티볼리 제품으로 현대프리비아 쇼핑몰에서 판매, 전화기는 크로슬리 제품. 침대 옆 슬리퍼는 무지, 일인용 소파는 디테일, TV장으로 쓰인 캐비닛은 이케아 제품.

S#3 이모와 함께한 오후

멋쟁이 이모의 한옥
아이 이모네 집 마당에는 손바닥만 한 하늘이 있습니다. 양떼 같은 구름이 지날 때, 수증기 구름이 지날 때, 먹구름이 몰려올 때 이모는 문을 훌훌 열어젖힙니다. 목을 빼고 천천히 올려다보는 하늘이 일품이라며 22평짜리 한옥을 신혼집으로 만들었습니다. 품위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고 엄마와 이모를 가르쳤던 할머니는 이 품위 있는 한옥을 두고 “에이고, 이 콧구멍만 한 집에서 애 낳으면 그 짐 다 어디다 놓을래?” 하며 이모부를 째려봤습니다. 엄마는 이런 집은 얼마짜리냐며 얄밉게 놀렸습니다. “이모, 엄마가 집에 가서 아빠한테 한옥으로 이사 가자더라.” “꼬맹아, 원래 여잔 다 그래.”

금성사부터 엑스캔버스까지 한국 TV 40년史
2007년 현재 가족 생활의 중심에 놓인 TV. 한국 최초의 흑백 TV는 1966년 금성사(현 LG전자)에서 만들었다. 1974년 아남산업(현 아남전자)과 일본 내쇼널 전자와의 협력으로 한국 최초의 컬러 TV를 개발했으나 사치품으로 취급받아 생산이 금지되었고, 1980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1998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TV를 출시했다. 그리고 2001년 LG전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PDP TV를 개발했다. 1970년대 초, 대부분의 흑백 TV는 기술 발달 부진으로 선진국 개발 사례를 답습해 케이스를 나무로 제작한 콘솔형 TV를 생산했다. 17·19인치가 주종이었으며 전면에는 접이식 도어가 설치되었다. 채널은 다이얼을 돌려 맞춰나갔다. 이후 컬러 TV의 등장은 채널을 버튼식으로 바꿔놓았고, TV의 부피도 줄였다. 그리고 2000년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TV의 부피를 대폭 줄여, 액자 같은 TV를 탄생시켰다. 더 이상 버튼이 TV 바깥으로 나와 있을 필요가 없고 리모컨 하나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다. 심지어 디지털 TV는 ‘디지털 홈’ 기술의 핵심 요소로, 우리 생활의 중심에서 집 안을 통제하는 내용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다. TV를 통한 조명 제어, 출입문 개폐, 여러 디지털 가전과의 연동은 기본인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할머니도 엄마도 이모도 부르는 내 이름,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많이 먹으소. 요 봄나물처럼 살찐 엉덩이 좀 보소.” “이모, 엄마는 날 보고 내 새끼라 하고, 이모도 날 보고 내 새끼라 하고, 할머니도 날 보고 내 새끼라 하고, 할머니는 가끔 엄마 보고도 내 새끼라고 하잖아. 그럼 난 누구 새끼예요?”


S#4 가족의 밤
“체할라, 물 마셔라. 끼니 거르지 말아라.” 평생토록 밥을 먹이는 우리 어머니. “엄마, 엄마 새끼보다 내 새끼가 더 예뻐서 미안해요. 내 새끼 저녁밥 먹이러 가요.” 늙은 달이 떠오른 저녁, 아이 엄마가 집에 돌아옵니다. 현관문을 열자 콩 볶는 소리를 내며 폭죽이 터집니다. 삐뚤삐뚤 써 내려간 카드 한 장 들고 내 새끼가 달려옵니다. ‘엄마 생일 몰라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내 생일은 꼭 기억해야 해요, 엄마!’

나이가 많을수록 아파트를 선호하는 한국인
요즘 한국 사람들은 단독주택(44.4%)과 아파트(41.7%)에 비슷한 비율로 살고 있다(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통계청). 서울시의 통계치만 놓고 본다면 단독주택 가구 수가 아파트 가구 수보다 6%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가구주의 연령이 높을수록 단독주택의 비중이 낮아지고 아파트 비중이 커진다. 예를 들어 가구주의 연령이 30~34세인 경우 아파트 거주 비율은 33.1%였으나, 50~54세에서는 44%로 나타났다. 6대 광역시를 살펴보면, 부산은 단독주택 42%, 아파트 44%, 대구는 단독주택 48%, 아파트 44%, 인천은 단독주택이 27%, 아파트가 46%를 차지한다. 광주는 단독주택 인구가 40%, 아파트가 57%, 대전은 단독주택 41%, 아파트 49%, 울산은 단독주택 40%, 아파트 50%로 나타났다. 경기도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단독주택이 34%, 아파트 49% 가량이다. 단독주택과 아파트 다음으로 많은 주거 형태는 다세대주택, 연립주택의 순으로 나타났다.


S#5 가족이 가득한 집
한국의 가족이 삶의 흔적을 묻히며 사는 ‘진짜’ 집의 풍경을 그리려 할 때 가장 먼저 김용균 감독의 영화 <와니와 준하>가 떠올랐습니다. 기억과 공간을 버무려 수채화풍의 기류를 만들어낸 그의 영화는 우리를 부드러운 힘으로 압도했고, 곧바로 그에게 스토리 기획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생생한 모습이 자칫 밋밋하고 초라해 보일 수 있다는 우리의 우려를 그는 진정성 짙은 이야기로 가라앉혔습니다. 엄마가 외출한 오후, 텅 빈 집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그 정서에 대한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우리는 한 편의 동화 같은 글과 화보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기억과 공간에 대해 깊숙한 시선을 가진 김용균 감독은 <와니와 준하> <분홍신>을 연출했고 현재 명성황후의 삶을 그린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낮을 보낸 가족들이 한데 모이자 아파트는 비로소 집이 됩니다. 사람이 모여 만든 둥지, 집은 곧 가족입니다. 쓴맛도 씹어 서로 나누는 가족이 모여 사는 곳, 그곳이 바로 집입니다. 나는 오늘도 우리 집으로 갑니다.

 

최혜경,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