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의 절반은 실제 경험이 모티프 김병욱 PD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경주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경주고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부친과 형제들은 게임을 하며 놀았다. 가족들이 빙 둘러앉은 가운데 진행자가 단어 서른 개를 번호와 함께 불러준 뒤 각 번호에 맞는 단어를 기억했다가 빨리 대답하는 게임이 주 종목이었다. 3남 1녀 가운데 셋째인 그는 형과 누나가 하나 둘 대학 공부하러 서울로 떠나자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서 놀았다. 이를테면 올림픽대회나 월드컵축구대회 같은 족보 없는 게임 같은 것이다. 오랜 습관인 그의 혼자 놀기와 가족과 더불어 게임을 즐기는 일상은 지금도 비슷하다. 그러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방영되던 지난 8~9개월여 동안 이런 삶은 없었다. 스태프, 작가, 연기자와 함께하는 프로그램 공동체의 조직자로서의 삶이 있을 뿐이었다.
대략 15년 전 여름, 그가 경주에서 공수해 온 따뜻한 황남빵을 먹었던 여인(훗날 그의 아내가 된) 은경희 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어떤 작품이든 시작할 때마다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는 스타일. 평소의 조용한 모습은 사라지고 백열白熱적인 사람이 된다. 특히 <거침없이 하이킥>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기운이나 열정이 최고조에 달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촬영은 물론이고 대본 회의 및 대본 수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작과정에 매달리다 보니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는데도 마지막까지 불굴의 투혼을 발휘했다. 종영하던 날 아침, 밤새 이어진 촬영을 끝내고 귀가한 그의 눈빛은 영롱하게 빛났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경우 유난히 회자가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저희 편집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야동순재’ ‘식신준하’ ‘사육해미’처럼 사자성어로 이름 부르기가 유행했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제가 연출한 시트콤 중에서도 가장 만화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연출한 시트콤 가운데 처음으로 조금 드라마적이고 판타지가 많은 쪽으로 바뀌었거든요. 이름으로 사자성어를 만들 수 있는 것 자체가 만화적인데, 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어요.”
“간첩을 등장시키는 등 기존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설정들이 재밌었어요. 이런 설정은 어떻게 만들었나요?”“미국 드라마 중에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일종의 멜로 드라마인데 그 안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모와 미스터리가 들어 있어서 미스터리와 멜로 두 장르가 합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시청자들은 하나의 드라마를 보면서 두 가지 만족을 느낄 수 있죠. 그런 점을 조금 벤치마킹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거침없이 하이킥>을 시작하면서 멜로, 미스터리, 스릴러 등 모든 장르가 다 들어 있는 전대미문의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것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성공시킨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도 만족해요.”
“<순풍 산부인과> 등의 전작들과 <거침없이 하이킥>의 차이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보통 시트콤은 시추에이션이라고 하는 한 회 이야기로 다 마무리가 돼요. 그래서 다음 날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거침없이 하이킥>은 방송사 사이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시간에 방영돼서 드라마를 많이 넣었어요. 그리고 촬영과 같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시스템을 적용했고요.”
“지금까지 연출한 시트콤들이 대개 대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경우가 많은데 가족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면 좋은 점은 뭔가요?”
촬영 현장의 김병욱 PD. 이순재 씨는 그에 대해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는 치밀하고 철저한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3대가 사는 대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드라마는 결국 인간과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하니까 대가족을 소재로 하면 사회를 드라마에 대입하기 좋죠. 예를 들면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이순재 씨를 노무현 대통령처럼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박해미 씨를 이건희 회장처럼 경제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유하면서 사회 이야기를 담았어요. 부부 사이는 물론이고 사람 관계에서는 권력이 누구한테 있는지 하는 문제가 항상 있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힘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이런 것은 코미디의 소재로 언제나 적절한 것 같아요. 또한 가족만큼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집단은 없잖아요? 회사 동료가 아무리 친하기로서니 엄마보다 더 친하지는 못하겠죠(웃음).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가족 시트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김병욱 PD 가족의 실제 삶도 시트콤과 비슷한가요?
“예,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 안에는 작가들의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어요. 작가들과 회의를 하다 보면 실생활의 경험을 채택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요. 저는 실제 경험을 적어놓기도 해요. 하지만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고 약간 다르게 윤색을 하죠. 에피소드의 절반 정도는 저희들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절반은 머리에서 나왔고, 나머지 절반은 손발에서 나온 셈이에요.”
“가족들이 어떤 캐릭터를 지목하며 자신을 모델로 했냐고 묻는 경우도 있겠네요?”
“많아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모델로 쓰는가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웃음) 비슷하다 그러면 큰일 나겠죠.”
“인터뷰를 준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거침없이 하이킥>의 가장 큰 장점으로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 있는 점’을 꼽더군요. 덕분에 출연 배우 대부분이 CF 출연을 해 화제가 되었어요.”
“예전 시트콤은 출연진들의 망가진 모습이 웃겨서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았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에는 귀여운 사람은 많아도 망가진 사람은 없었어요. 지금도 출연진 모두가 시즌2를 하자고 하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아요. 배우가 망가지면 프로그램은 재밌으나 그 사람의 망가진 이미지는 한동안 회복하기 힘들거든요.”
“김병욱 PD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성격이 급해요. 되게 급해요.”
“총 1백67회가 방영된 <거침없이 하이킥>의 마지막 방송은 많은 추측과 논란 속에서 방송되었어요. 특히 예쁜 사랑을 보여주었던 민민 커플(민용과 민정)의 이별에 슬퍼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해피 엔딩으로 끝내지 않은 까닭이 있을까요?”
“아마 저의 허무적인 세계관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면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요. 세월에 따라 잊혀지죠. 불같은 사랑이지만 뒤에 보면 힘을 잃고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요. 그게 저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아무리 치열했던 사랑도 뒤에는 추억이 되는 걸 보여줘요.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사람의 사고나 감정은 끊임없이 변해요. 많은 드라마들은 그것들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지만 저희는 기어이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눈물이 있는 웃음을 통해 시트콤의 격을 한 단계 높인 <거침없이 하이킥>. 재밌으면서도 진한 페이소스가 여운을 깊게 만들었다.
단수를 낮추면 게임이 즐겁다 김병욱 PD의 인생에서 ‘자유’를 빼놓으면 앙꼬 빠진 찐빵이 된다. 그의 삶은 자유를 위해 존재했고, 47년 인생은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다름이 아니다. 명문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독학하다시피 공부를 했고, 군 생활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카투사에서 보냈다. 자유로운 직업이라는 이유로 방송국 PD가 되었고, 무명일 때 프리랜서로 독립한 것도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 그의 자유로운 기질과 상관 있을 것이다.
“여행은 주로 어떤 곳으로 다니시나요?”
“그냥 차를 몰고 일주일 정도씩 전국을 다니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가족들과 같이 가기도 하지만 혼자 갈 때에는 목적 없이 사람들 사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다니는 걸 좋아해요.”
“목적 없이 다니는 여행이 왜 좋으세요?”
“관조적인 성격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인간극장> 같은 걸 좋아해요. 사람이 들어 있는 다큐멘터리가 좋아요. 제가 (혼자 노는 데 익숙해서) 사람들과의 소통이 적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사는 그 자체를 보는 걸 좋아해요. 자연 풍경보다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자연 풍경보다 사람 풍경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게 재밌어요. 저는 특이하게 스포츠 중계 중에서 마라톤 중계를 아주 열심히 봐요. 사람들은 “아니, 그걸 지루해서 어떻게 봐?”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달리면서 구간마다 선두가 바뀌고, 그에 따른 표정도 다 보여요. 그 표정을 보면 ‘저 사람이 힘이 빠지는구나’,‘한 10km쯤 되면 뒤처지겠다(웃음)’ 하는 것도 알 수 있어요.”
“관찰력이 탁월하신 것 같네요?”
“탁월하다기보다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취미라면 취미겠네요. 주변 사람에게서 캐릭터의 모티프를 얻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가장 인상 깊게 각인되어 있는 사람 풍경은 무엇인가요?”
“그냥 밥집 아주머니가 그 무거운 ‘다라이’를 이고 가시는 것만 봐도 아늑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저분은 집에 가서 뭘 할까, 집에 가면 누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저 사람들은 뭘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궁금해요. 같은 사건을 보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보는데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다른 점이 신기하고 좋다고 생각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시겠지요?”
“즐겁게 일하지만 많이 받아요. 어떻게 푸냐고요? 술을 잘 못 마시므로 술로 풀지는 않고요, 인터넷 바둑을 두면서 푸는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4단. 그의 바둑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실전에 임할 때는 실력보다 낮추어 1단이라고 한다. 단수를 낮추면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실제 등급을 3단 정도 낮춰서 바둑을 두시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살면 좀 더 재밌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걸 좀 즐겨요. (학업이든 일이든) 약간 상위 그룹에 속해 있는 게 가장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성적이 상위 그룹이었는데 고등학교에서도 상위 그룹이었어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상위권 중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라 저는 약간 하위 그룹으로 처져야 되었거든요(웃음). 그리고 일등도 못했어요. 그냥 어느 집단이든 ‘이 정도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중상위 그룹에 있으면 완벽하게 저를 숨길 수가 있고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갖게 되죠.”
그는 일을 하면서도 중상위 그룹에 있었던 것 같다. 시트콤 PD로서 그는 높은 시청률을 얻었으며 더불어 미디어와 평단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자는 수차례의 러브 콜을 받고도 거절한 것은 이러한 성향과 상관 있어 보인다. <순풍 산부인과>와 함께 성공적으로 입문한 지 10년째, 이제는 체급 전환을 위한 준비를 마쳤는가 보다. 다음 작품은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중3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부친과 함께 등교했다. 그가 경주중·고등학교에 다녔고 부친은 경주고등학교 교사였던 까닭이다. 집에서는 아버지요, 학교에서는 선생님이었던 부친과의 관계는 어떠했을지…. 모르긴 몰라도 여느 집 부자 사이와는 달랐을 것이다.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의 연장 방영 불가 의견을 밝히면서 그 이유로 ‘아내와 딸의 불만도 높고…’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가정적인 남자’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저는 가족을 되게 좋아하고 실제로 가정적이기도 해요. 제가 자랄 때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게임을 할 정도로 화목한 가정이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게는 가족이 좀 어색한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일은 있어도 어머니한테 편지로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쓰는 건 죽어도 못하겠어요. 가족이니까 못하겠어요. 늘 얼굴을 부딪치며 살고 제 속속들이 다 아는 가족에게 글이나 생각을 좀 윤색하는 게 싫어요. 요새 사람들은 ‘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창피해서 잘 못하겠더라고요(웃음).”
“사랑 표현에 어색해하는 사람도 자녀에게는 예외일 수 있잖아요?”
“저는 별로 그렇게 많이 안 해요. 우리끼리는 좀 쑥스러워요. 저는 가족한테 쑥스러운 게 좀 많아요(웃음).”
“부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때는 언제인가요?”
“시댁에 정말 잘해요. 저희 형제들이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여서 부모님께 살갑게 하지 못하거든요. 단순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 친구가 되어드려요.”
“딸 시은 양과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나 사랑하는 마음은 어떻게 표현하나요?”
“(웃으며) 장난쳐요. 그냥 친구 사이처럼 레슬링도 하고 별 장난을 다 쳐요. 얘가 어릴 때부터 아주 어이없는 놀이를 많이 하고 놀았어요. 제가 농담을 자주 했더니 우리 애도 농담을 즐겨요.”
“시은 양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유로운 애가 되면 좋겠어요. 너무 규격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면 좋겠어요.”
“왜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그게 인생을 참되게 사는 것 같아서요. 저 같은 경우는 아버지가 학교에 계시고 그 도시의 유지시라 체면 같은 걸 많이 생각해야 됐어요. 좀 갑갑했죠. 저는 집에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하는 공부가 효율도 훨씬 나은 편이라 검정고시를 치면 좋겠는데 그걸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떤 사고를 하든 간에 조금 얽매이는 게 있지요. 그래서 전 아주 자유로운 사람들을 보면 정말 좋아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잠깐 들른 그의 아파트 서재에는 김훈의 <남한산성>부터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까지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남한산성>은 기형도와 김훈의 산문을 좋아하고 박민규의 소설을 좋아하는 그의 책이었고, <신의 물방울>은 시은 양의 것이라고 했다. 직업상 만화책을 좋아해야 하는 그는 만화보다 깊은 사유에서 길어 올린 산문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모색해온 그는 ‘행복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대해 껄껄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고는 기자에게 ‘알아서 쓰라’고 말했다. 알지는 못해도 자유와 행복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자유론이 곧 행복론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던 차, 운 좋게도 그의 딸 시은 양이 쓴 행복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눈을 뜨고 / 숨을 쉬고 / 하루 세 끼를 먹고 / 잠을 자고 /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 어쩜 어떤 이에게는 사소하고도 당연한 것일지라도 /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감사할 일이고, 대단한 행복일 수도 있다. //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듯 / 주변의 사람들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 그들과 얘기하고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이 순간은 / 어떤 이에게는 우정이 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되고 / 또 어떤 이들에겐 사랑이 되어 대단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하략)”
시은 양의 글은 “파랑새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맸던 치르치르와 미치르 자매가 결국 자기 집 처마 밑에서 행복을 발견했듯이 우리도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행복은 파랑새로부터 자유로워진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마음에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대략 15년 전 여름, 그가 경주에서 공수해 온 따뜻한 황남빵을 먹었던 여인(훗날 그의 아내가 된) 은경희 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어떤 작품이든 시작할 때마다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는 스타일. 평소의 조용한 모습은 사라지고 백열白熱적인 사람이 된다. 특히 <거침없이 하이킥>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기운이나 열정이 최고조에 달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촬영은 물론이고 대본 회의 및 대본 수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작과정에 매달리다 보니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는데도 마지막까지 불굴의 투혼을 발휘했다. 종영하던 날 아침, 밤새 이어진 촬영을 끝내고 귀가한 그의 눈빛은 영롱하게 빛났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경우 유난히 회자가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저희 편집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야동순재’ ‘식신준하’ ‘사육해미’처럼 사자성어로 이름 부르기가 유행했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제가 연출한 시트콤 중에서도 가장 만화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연출한 시트콤 가운데 처음으로 조금 드라마적이고 판타지가 많은 쪽으로 바뀌었거든요. 이름으로 사자성어를 만들 수 있는 것 자체가 만화적인데, 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어요.”
“간첩을 등장시키는 등 기존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설정들이 재밌었어요. 이런 설정은 어떻게 만들었나요?”“미국 드라마 중에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일종의 멜로 드라마인데 그 안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모와 미스터리가 들어 있어서 미스터리와 멜로 두 장르가 합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시청자들은 하나의 드라마를 보면서 두 가지 만족을 느낄 수 있죠. 그런 점을 조금 벤치마킹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거침없이 하이킥>을 시작하면서 멜로, 미스터리, 스릴러 등 모든 장르가 다 들어 있는 전대미문의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것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성공시킨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도 만족해요.”
“<순풍 산부인과> 등의 전작들과 <거침없이 하이킥>의 차이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보통 시트콤은 시추에이션이라고 하는 한 회 이야기로 다 마무리가 돼요. 그래서 다음 날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거침없이 하이킥>은 방송사 사이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시간에 방영돼서 드라마를 많이 넣었어요. 그리고 촬영과 같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시스템을 적용했고요.”
“지금까지 연출한 시트콤들이 대개 대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경우가 많은데 가족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면 좋은 점은 뭔가요?”
촬영 현장의 김병욱 PD. 이순재 씨는 그에 대해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는 치밀하고 철저한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3대가 사는 대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드라마는 결국 인간과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하니까 대가족을 소재로 하면 사회를 드라마에 대입하기 좋죠. 예를 들면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이순재 씨를 노무현 대통령처럼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박해미 씨를 이건희 회장처럼 경제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유하면서 사회 이야기를 담았어요. 부부 사이는 물론이고 사람 관계에서는 권력이 누구한테 있는지 하는 문제가 항상 있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힘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이런 것은 코미디의 소재로 언제나 적절한 것 같아요. 또한 가족만큼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집단은 없잖아요? 회사 동료가 아무리 친하기로서니 엄마보다 더 친하지는 못하겠죠(웃음).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가족 시트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김병욱 PD 가족의 실제 삶도 시트콤과 비슷한가요?
“예,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 안에는 작가들의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어요. 작가들과 회의를 하다 보면 실생활의 경험을 채택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요. 저는 실제 경험을 적어놓기도 해요. 하지만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고 약간 다르게 윤색을 하죠. 에피소드의 절반 정도는 저희들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절반은 머리에서 나왔고, 나머지 절반은 손발에서 나온 셈이에요.”
“가족들이 어떤 캐릭터를 지목하며 자신을 모델로 했냐고 묻는 경우도 있겠네요?”
“많아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모델로 쓰는가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웃음) 비슷하다 그러면 큰일 나겠죠.”
“인터뷰를 준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거침없이 하이킥>의 가장 큰 장점으로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 있는 점’을 꼽더군요. 덕분에 출연 배우 대부분이 CF 출연을 해 화제가 되었어요.”
“예전 시트콤은 출연진들의 망가진 모습이 웃겨서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았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에는 귀여운 사람은 많아도 망가진 사람은 없었어요. 지금도 출연진 모두가 시즌2를 하자고 하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아요. 배우가 망가지면 프로그램은 재밌으나 그 사람의 망가진 이미지는 한동안 회복하기 힘들거든요.”
“김병욱 PD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성격이 급해요. 되게 급해요.”
“총 1백67회가 방영된 <거침없이 하이킥>의 마지막 방송은 많은 추측과 논란 속에서 방송되었어요. 특히 예쁜 사랑을 보여주었던 민민 커플(민용과 민정)의 이별에 슬퍼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해피 엔딩으로 끝내지 않은 까닭이 있을까요?”
“아마 저의 허무적인 세계관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면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요. 세월에 따라 잊혀지죠. 불같은 사랑이지만 뒤에 보면 힘을 잃고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요. 그게 저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아무리 치열했던 사랑도 뒤에는 추억이 되는 걸 보여줘요.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사람의 사고나 감정은 끊임없이 변해요. 많은 드라마들은 그것들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지만 저희는 기어이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눈물이 있는 웃음을 통해 시트콤의 격을 한 단계 높인 <거침없이 하이킥>. 재밌으면서도 진한 페이소스가 여운을 깊게 만들었다.
단수를 낮추면 게임이 즐겁다 김병욱 PD의 인생에서 ‘자유’를 빼놓으면 앙꼬 빠진 찐빵이 된다. 그의 삶은 자유를 위해 존재했고, 47년 인생은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다름이 아니다. 명문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독학하다시피 공부를 했고, 군 생활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카투사에서 보냈다. 자유로운 직업이라는 이유로 방송국 PD가 되었고, 무명일 때 프리랜서로 독립한 것도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 그의 자유로운 기질과 상관 있을 것이다.
“여행은 주로 어떤 곳으로 다니시나요?”
“그냥 차를 몰고 일주일 정도씩 전국을 다니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가족들과 같이 가기도 하지만 혼자 갈 때에는 목적 없이 사람들 사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다니는 걸 좋아해요.”
“목적 없이 다니는 여행이 왜 좋으세요?”
“관조적인 성격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인간극장> 같은 걸 좋아해요. 사람이 들어 있는 다큐멘터리가 좋아요. 제가 (혼자 노는 데 익숙해서) 사람들과의 소통이 적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사는 그 자체를 보는 걸 좋아해요. 자연 풍경보다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자연 풍경보다 사람 풍경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게 재밌어요. 저는 특이하게 스포츠 중계 중에서 마라톤 중계를 아주 열심히 봐요. 사람들은 “아니, 그걸 지루해서 어떻게 봐?”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달리면서 구간마다 선두가 바뀌고, 그에 따른 표정도 다 보여요. 그 표정을 보면 ‘저 사람이 힘이 빠지는구나’,‘한 10km쯤 되면 뒤처지겠다(웃음)’ 하는 것도 알 수 있어요.”
“관찰력이 탁월하신 것 같네요?”
“탁월하다기보다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취미라면 취미겠네요. 주변 사람에게서 캐릭터의 모티프를 얻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가장 인상 깊게 각인되어 있는 사람 풍경은 무엇인가요?”
“그냥 밥집 아주머니가 그 무거운 ‘다라이’를 이고 가시는 것만 봐도 아늑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저분은 집에 가서 뭘 할까, 집에 가면 누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저 사람들은 뭘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궁금해요. 같은 사건을 보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보는데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다른 점이 신기하고 좋다고 생각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시겠지요?”
“즐겁게 일하지만 많이 받아요. 어떻게 푸냐고요? 술을 잘 못 마시므로 술로 풀지는 않고요, 인터넷 바둑을 두면서 푸는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4단. 그의 바둑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실전에 임할 때는 실력보다 낮추어 1단이라고 한다. 단수를 낮추면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실제 등급을 3단 정도 낮춰서 바둑을 두시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살면 좀 더 재밌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걸 좀 즐겨요. (학업이든 일이든) 약간 상위 그룹에 속해 있는 게 가장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성적이 상위 그룹이었는데 고등학교에서도 상위 그룹이었어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상위권 중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라 저는 약간 하위 그룹으로 처져야 되었거든요(웃음). 그리고 일등도 못했어요. 그냥 어느 집단이든 ‘이 정도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중상위 그룹에 있으면 완벽하게 저를 숨길 수가 있고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갖게 되죠.”
그는 일을 하면서도 중상위 그룹에 있었던 것 같다. 시트콤 PD로서 그는 높은 시청률을 얻었으며 더불어 미디어와 평단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자는 수차례의 러브 콜을 받고도 거절한 것은 이러한 성향과 상관 있어 보인다. <순풍 산부인과>와 함께 성공적으로 입문한 지 10년째, 이제는 체급 전환을 위한 준비를 마쳤는가 보다. 다음 작품은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중3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부친과 함께 등교했다. 그가 경주중·고등학교에 다녔고 부친은 경주고등학교 교사였던 까닭이다. 집에서는 아버지요, 학교에서는 선생님이었던 부친과의 관계는 어떠했을지…. 모르긴 몰라도 여느 집 부자 사이와는 달랐을 것이다.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의 연장 방영 불가 의견을 밝히면서 그 이유로 ‘아내와 딸의 불만도 높고…’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가정적인 남자’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저는 가족을 되게 좋아하고 실제로 가정적이기도 해요. 제가 자랄 때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게임을 할 정도로 화목한 가정이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게는 가족이 좀 어색한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일은 있어도 어머니한테 편지로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쓰는 건 죽어도 못하겠어요. 가족이니까 못하겠어요. 늘 얼굴을 부딪치며 살고 제 속속들이 다 아는 가족에게 글이나 생각을 좀 윤색하는 게 싫어요. 요새 사람들은 ‘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창피해서 잘 못하겠더라고요(웃음).”
“사랑 표현에 어색해하는 사람도 자녀에게는 예외일 수 있잖아요?”
“저는 별로 그렇게 많이 안 해요. 우리끼리는 좀 쑥스러워요. 저는 가족한테 쑥스러운 게 좀 많아요(웃음).”
“부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때는 언제인가요?”
“시댁에 정말 잘해요. 저희 형제들이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여서 부모님께 살갑게 하지 못하거든요. 단순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 친구가 되어드려요.”
“딸 시은 양과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나 사랑하는 마음은 어떻게 표현하나요?”
“(웃으며) 장난쳐요. 그냥 친구 사이처럼 레슬링도 하고 별 장난을 다 쳐요. 얘가 어릴 때부터 아주 어이없는 놀이를 많이 하고 놀았어요. 제가 농담을 자주 했더니 우리 애도 농담을 즐겨요.”
“시은 양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유로운 애가 되면 좋겠어요. 너무 규격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면 좋겠어요.”
“왜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그게 인생을 참되게 사는 것 같아서요. 저 같은 경우는 아버지가 학교에 계시고 그 도시의 유지시라 체면 같은 걸 많이 생각해야 됐어요. 좀 갑갑했죠. 저는 집에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하는 공부가 효율도 훨씬 나은 편이라 검정고시를 치면 좋겠는데 그걸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떤 사고를 하든 간에 조금 얽매이는 게 있지요. 그래서 전 아주 자유로운 사람들을 보면 정말 좋아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잠깐 들른 그의 아파트 서재에는 김훈의 <남한산성>부터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까지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남한산성>은 기형도와 김훈의 산문을 좋아하고 박민규의 소설을 좋아하는 그의 책이었고, <신의 물방울>은 시은 양의 것이라고 했다. 직업상 만화책을 좋아해야 하는 그는 만화보다 깊은 사유에서 길어 올린 산문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모색해온 그는 ‘행복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대해 껄껄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고는 기자에게 ‘알아서 쓰라’고 말했다. 알지는 못해도 자유와 행복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자유론이 곧 행복론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던 차, 운 좋게도 그의 딸 시은 양이 쓴 행복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눈을 뜨고 / 숨을 쉬고 / 하루 세 끼를 먹고 / 잠을 자고 /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 어쩜 어떤 이에게는 사소하고도 당연한 것일지라도 /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감사할 일이고, 대단한 행복일 수도 있다. //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듯 / 주변의 사람들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 그들과 얘기하고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이 순간은 / 어떤 이에게는 우정이 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되고 / 또 어떤 이들에겐 사랑이 되어 대단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하략)”
시은 양의 글은 “파랑새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맸던 치르치르와 미치르 자매가 결국 자기 집 처마 밑에서 행복을 발견했듯이 우리도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행복은 파랑새로부터 자유로워진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마음에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