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하지? 후딱 씻고 어여 앉거라.” 추석이라고 찾아온 자식을 맞는 엄마는 밥 때를 조금이라도 넘기면 큰일 날 양 식사부터 챙긴다. 떠밀리듯 안방으로 들어가 앉으면 부엌에서 귀에 익은 도마 소리, 찌개 끓는 냄새가 난다. 이때부턴 없던 식욕도 되살아나는 듯하다. 자식과 손주를 위해 한 상 차려낸 엄마는 찬이 상에 넘치는데도 ‘내 정신 좀 봐, 열무김치를 잊었네’ 하며 연신 부엌을 오간다. “엄마, 그만 되었어요” 하며 말려도 막무가내다. 얼추 찬이 만족스럽다 싶으면 곁에 앉아 자식이 밥술 뜨는 모습을 흘끔흘끔 본다. 요즘 직장에 별 일은 없는지, 사업은 좀 나아졌는지, 건강은 어떤지를 살피는 중이다. 이때 밥을 깨작대거나 어두운 안색을 보이면 안 된다. 엄마는 자식이 밥 먹는 모양을 흘낏 보고서도 요즘 형편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 당연하다. 적이 20년 동안 세끼 밥을 먹이고 재운 자식이니 젓가락질 하는 폼만 봐도 속사정이 보일 터다.
밥상을 앞에 두고 심심한 말 몇 마디 주고받는 동안 모자母子간 회포는 거진 풀린다. 이윽고 아들의 젓가락은 어릴 때부터 먹던 ‘엄마표 추석 음식’으로 회귀한다. 이제는 살 만해져서 추석 상에 진수성찬이 오르건만, 절로 손이 가는 음식은 따로 있다. 우리네 어머니가 시부모와 남편과 철모르는 자식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해 마련한 추석 특식이다. 빠듯한 살림으로 마련한 음식은 기름진 어·육류는 아니었지만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영글게 했다. 30대부터 50대 남자 여섯 명에게 엄마의 추석 음식을 반추하라 했을 때 이들이 첫손에 꼽은 것이 바로 이 거칠고 소박한 특식이었다. 한창 성장기에 늘 아쉽기만 했던 투실투실한 굴비 한 쪽을 떠올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바라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기이한 모정을 되새김질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나무 그늘 맛 배추전 김중혁(소설가)
‘배추전’이라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처음 들어봤단 소리다. 아쉬울 뿐이다. 이렇게 맛있는 전을 모른다니….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좋은 배추를 고른다. 그리고, 잎사귀(라고 해야 할지, 날개라고 해야 할지)를 낱장으로 뜯어낸 다음 줄기의 뻣뻣한 부분을 몇 군데 부러뜨린다. 그러면 동그랗게 말렸던 부분이 편평하게 펴진다. 달궈진 팬에 기름을 붓고 배추를 그 안에 편다. 두 장의 잎을 위아래 엇갈리게 얹는 것이 좋다. 그러면 사각형이 된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놓은 반죽을 배추 잎 위에다 골고루 편다. 여기서 어머니의 핵심 기술이 등장한다. 우선 반죽이 관건이다. (모든 전이 마찬가지겠지만) 반죽의 농도가 정확해야 한다. 너무 묽으면 헤퍼지고 너무 걸쭉하면 제어가 힘들다. 적당해야 한다. 어머니들의 모든 요리법의 핵심은 바로 이 적당함이다. 계측할 수 없는 적당함, 말로 할 수 없는 적당함이 요리의 비법이다. 아무튼 오른손을 이용해 적당한 반죽을 적당량 뜬다. 손가락 끝으로 반죽을 흘리며 배추잎 구석구석 골고루 반죽을 묻힌다. 반죽이 손가락을 타고 미끄러진다. 그다음엔 손등 부분으로 반죽을 툭툭 친다. 반죽이 배추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뜨겁지 않을까? 왜 뜨겁지 않겠냐만 뜨겁지 않으시단다. 반복과 연륜은 모든 걸 가능케 한다. 적당한 시간에 한 번 뒤집어주면 배추전이 완성된다. 먹는 방법도 중요하다. 칼로 썰어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죽죽 찢어서 먹어야 제대로다. 양념장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그냥 먹어도 맛있다. 맛을 설명하자면, 심심하고 슴슴하고 한가하다. 여름 휴가철의 나무 그늘이다. 배추의 맛이 그렇듯 강한 맛은 전혀 없다. 아삭아삭 배추가 씹히는 소리와 몽글몽글 반죽이 입 속에 엉키는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맛이 전해진다. 초밥의 맛과 비슷하다. 생선과 밥알이 입 속에서 뒤엉키면서 하나의 완성된 맛에 도달하듯 배추와 반죽의 조화가 또 다른 맛의 감각을 되살려준다. 배추전은 두 장을 먹어도 입 속이 평온하다. 음식이 다녀간 흔적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조금 기다리면 배추의 구수한 맛이 입 안에 그득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배까지 불러온다. 어머니는 명절 때면 언제나 배추전을 하신다. 차례 상에는 올리지도 않는데, 어째서 어머니는 매번 배추전을 하실까?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음식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한 것이다. 흔한 얘기다. 하지만 그 흔한 얘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해하고 나면 배추전 한 장에도 가슴이 찌릿하다. 어머니도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이다.
주먹만 한 송편김장권(한옥 건축가·북촌 HRC 대표)
어머니의 손은 남들보다 유난히 크게 여겨진다. 눈 크게 뜨고 봐도 내 한 손으로 폭 감쌀 정도로 자그마한데, 아마 그 손으로 베푸는 마음이 무척 컸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만든 추석 송편을 보아도 그렇다. 어머니는 하나만 먹어도 배부르면서 맛있는 송편을 푸짐히 만드셨다. 하도 큼직해서 한입에 먹을 수 없을 정도다. 요즘 기계로 찍어낸 송편과는 여러모로 비교된다. 크기도 다를 뿐더러 어머니의 송편에는 소가 열 배쯤 더 들어간다. 소의 내용물도 독특하다. 인절미의 콩가루 만들 때 쓰는 노란콩을 깨알만 한 크기로 다진 뒤 꿀에 잰 것을 한 숟갈 듬뿍 집어넣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송편을 깨물면 꿀떡처럼 달콤하고 고소하다. 지금까지는 우리 집 외에는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다. 이 송편이 가장 맛있을 때는 물론 솔잎을 털어내며 찜기에서 갓 꺼냈을 순간이다. 어머니가 참기름을 살짝 바르시는 찰나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손이 갈 만큼 그 송편은 유혹적이다. 이제는 자식과 손주들까지 배불리 먹으려면 송편이 더 넉넉해야 하기에 추석 때면 온 가족이 달려들어 송편을 빚어야 한다. 꼬맹이들이 만든 ‘공룡 송편’ ‘튤립 송편’이나 며느리들이 빚은 날씬한 송편 사이로 어머니의 투박한 송편이 눈에 드는 것은 과연 나뿐일까? 어머니의 따뜻하고 도톰한 손은 귀경길까지 나를 보살핀다. “돌아가면서 차에서 먹거라”하며 녹두 빈대떡과 식혜를 싸주시곤 하신다. “운전하면서 열지 말고, 꼭 차를 세워놓고 먹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도시락을 열면 집어 먹기 쉽게 한입 크기로 자른 녹두 빈대떡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거기에 어머니 얼굴도 보인다.
할머니가 얹어주는 고추장 굴비 장아찌남경표(요리사·일식 퓨전 레스토랑 옌 쉐프)
미각만을 기준 삼자면 나는 한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할머니의 음식이다. 전남 담양이 고향인 할머니의 손맛은 동네에서도 알아주었다. 장맛이 제일 좋은 집으로 소문났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장맛을 배가시키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굴비 장아찌다. 추석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굴비를 사다가 고추장에 숭숭 박는다. 좀 지나서 굴비에 양념이 배어들면 밥상에 올린다. 깨를 약간 뿌린 것 외에 다른 양념을 가미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손으로 고추장을 닦아낸 뒤 쭉쭉 찢어서 큰손주인 내 밥술에 얹어주셨다. 그 맛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첫 맛은 짭쪼름하고 매콤하다. 조금 씹다 보면 고소한 굴비 육즙이 쫄깃쫄깃한 육질 사이로 배어난다. 굴비 장아찌 한 마리를 통째로 다 먹으려면 늘 밥 한 공기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마 우리 음식을 조금만 더 좋아했으면 할머니의 이 굴비 장아찌가 나를 한식 요리사의 길로 이끌지 않았을까 싶다. 스무 살까지 추석 상에 빠지지 않았던 굴비 장아찌, 이제는 영영 맛볼 수 없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그 풍미와 주름진 할머니의 손가락에 묻은 불그스름한 고추장에 대한 기억은 이토록 생생한데 말이다.
기억으로 돌아온 못생긴 콩설기 김학민(푸드 칼럼니스트·학민사 대표)
좀 썰렁한 이야기 같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특정한 맛에 대해 개인들이 받아들이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살아온 사회경제적, 문화적 환경이 다른 데서 기인하는 특정 음식에 대한 이질감이 선호를 극단화하기도 할 것이다. 한 음식을 변화 없이 상당 기간 상식하게 될 때에도 그 음식을 싫어하게 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세끼를 거의 국수로 때웠다면 어른이 된 후에도 국수가 별로 당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50년대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그야말로 전 국민이 궁핍한 상태였다. 내가 자란 농촌은 농사지을 땅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나, 그 땅을 부쳐먹던 소작인이나 설날이 지나고 나면 끼니를 간신간신 잇거나 양식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집들이 많았다. 살림을 규모 있게 했던 나의 어머니는 기나긴 한겨울, 아침은 밥을 먹더라도 점심, 저녁은 수제비, 김치죽으로 하여 양식을 아꼈다. 배불리 먹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춘궁기에 식구들이 굶는 일은 없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 길이 없는 형제들은 왜 매일 수제비 아니면 김치죽이냐며 칭얼댔다. 물론 나중에 커서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맛의 기억이란 묘한지 그때 그 시절 어려움을 이겨내게 했던 그 음식들엔 상당 기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묘하다. 20, 30대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은 그 시절의 음식이 마흔 중반에 들어서고 나서는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조악한 음식들조차 아련히 사라져버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난날의 추억이기 때문이리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봄이면 찔레를 꺾어 먹고, 초여름이면 풋풋하게 맺은 밀 이삭을 불에 구워 먹었다. 그러다 보면 햇보리가 나온다. 그때부터는 채소와 과일, 햇곡식으로 먹을거리가 좀 풍부해진다. 그러고는 가을과 함께 추석이 온다. 있는 집은 풍성하게, 없는 집은 단출하게 명절 준비를 한다. 본격적으로 추수하기 전에 햅쌀을 조금 찧어 송편을 빚고, 또 오랜만에 흰 쌀밥이 상에 올라 식구들의 환성을 자아낸다.
콩설기는 추석 즈음 어머니가 해주셨던 떡이다. 요즘의 백설기처럼 넉넉하게 쌀을 빻아 시루로 쪄낸 모양 있는 떡이 아니다. 장작불로 하는 가마솥 밥물이 잦아들 즈음 쌀가루에 풋콩을 잘 섞은 다음 밥 위에서 얹고 쪄 익히는 떡이다. 개떡 같은 모양으로, 꺼내면 밑에는 밥알이 더덕더덕 붙어 있어 볼품이 없다.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기억해내 보려는데, 왜 지극히 ‘시골스러운’ 이 콩설기만 떠오를까? 허겁지겁 맛있게 콩설기를 먹어대던 아이들을 바라보며 본인은 떡 한 조각 베어 물지 못하던 어머니, 지금은 먼 나라에 계신 그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익은 음식이기 때문이리라.
국물까지 비우는 게장과 오이소박이 이홍석(CF 감독)
추석 무렵이면 나의 오감五感은 기억 속에서 어머니의 게장을 재생하는 작전에 돌입한다. 연어가 고향 찾아 회귀하듯 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동네에서 알아줬다. 뭐든 맛있게 만드셨음은 물론이고 다른 집에서 볼 수 없는 창의적인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게장만 보아도 그렇다. 추석 무렵에 잡히는 알이 꽉 찬 암놈 꽃게를 사다가 양념게장과 간장게장이 결합한 형태의 게장을 만드시곤 했다. 비법을 공개하자면 이렇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무친 양념게장에 끓인 간장을 식혀서 붓는 거다. 이렇게 만든 게장 맛을 어설프나마 말로 묘사하자면 매콤하면서도 깊고 구수하다고 할까. 부추와 실파를 넉넉히 넣으면 잡내가 사라지고 향긋하다. 추석날 게장이 상에 오르면 밥상에서는 치열한 ‘게 뚜껑 쟁탈전’이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뚜껑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는 특혜를 누렸다. 이 때문에 형과 누나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지만, 그게 대수랴. 사흘을 앓다가도 ‘게장 먹어라’ 하면 벌떡 일어나서 밥 세 공기를 해치울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는데…. 잠깐 그 기억을 재생해보자. 양념이 흥건한 뚜껑에 밥을 넣고 비벼서 한술 뜨면 첫 맛은 맵고 짭짤하다. 이때 밥알과 섞인 게 알이 혀에 착 감길 때의 맛을 충분히 즐긴다. 뚜껑에 자리가 생겨 다시 밥 한 숟가락 더 넣고 비비면 이제 간이 좀 맞는다. 또다시 밥 넣고 비비고, 먹고 다시 비비고…. 뚜껑의 구석구석에 밥을 밀어 넣어봐도 맨밥이나 다름없이 심심한 맛이 날 때까지 비벼가며 먹는다. 흔한 음식 같지만 어머니의 추석 상에서 오이소박이도 빼놓을 수 없다. 어머니의 오이소박이에는 멸치 액젓과 새우젓이 듬뿍 들어서 칼칼하고 시원하다. 오이가 터질 정도로 부추 소를 꽉 채운 이 오이소박이는 한입에 우적우적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부추 향이 번진다. 그 순간 흐뭇해진다. 아, 엄마의 밥상이구나!
추석 코스 요리의 감초 무채나물 김도일(브랜드 밸류 크리에이터·제네시스 그룹 고문)
무채나물을 먹지 않으면 추석을 지낸 것 같지 않다. 무채나물은 채 친 무를 참기름과 소금을 넣고 볶다가 물을 약간 넣어 자박자박 끓인 뒤 식혀서 차게 먹는 단순하고 흔한 음식이지만 내겐 참 특별하다. 상을 받자마자 한 숟가락 떠 먹으니 깔끔한 애피타이저요, 다른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곁들이니 감초 같은 사이드 메뉴요, 모든 음식의 뒷마무리로도 들이켜니 디저트인 셈이다. 특히 송편이나 전을 먹고 난 뒤 무채나물을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다른 음식의 맛을 없애지 않으면서도 텁텁한 느낌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레시피는 간단하지만 음식 솜씨 좋은 아내는 할 줄 모른다. 소금 간을 아주 적절히 하는 것이 관건인데, 이 지점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추석 상에서 하얀 사기그릇에 소복하게 담긴 무채나물을 볼 때마다 어쩐지 안심이 된다. 올해 여든 살이 된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인 것에 대해, 혹은 이번 추석에도 이리 안온한 품에 들어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일 것이다.
밥상을 앞에 두고 심심한 말 몇 마디 주고받는 동안 모자母子간 회포는 거진 풀린다. 이윽고 아들의 젓가락은 어릴 때부터 먹던 ‘엄마표 추석 음식’으로 회귀한다. 이제는 살 만해져서 추석 상에 진수성찬이 오르건만, 절로 손이 가는 음식은 따로 있다. 우리네 어머니가 시부모와 남편과 철모르는 자식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해 마련한 추석 특식이다. 빠듯한 살림으로 마련한 음식은 기름진 어·육류는 아니었지만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영글게 했다. 30대부터 50대 남자 여섯 명에게 엄마의 추석 음식을 반추하라 했을 때 이들이 첫손에 꼽은 것이 바로 이 거칠고 소박한 특식이었다. 한창 성장기에 늘 아쉽기만 했던 투실투실한 굴비 한 쪽을 떠올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바라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기이한 모정을 되새김질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나무 그늘 맛 배추전 김중혁(소설가)
‘배추전’이라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처음 들어봤단 소리다. 아쉬울 뿐이다. 이렇게 맛있는 전을 모른다니….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좋은 배추를 고른다. 그리고, 잎사귀(라고 해야 할지, 날개라고 해야 할지)를 낱장으로 뜯어낸 다음 줄기의 뻣뻣한 부분을 몇 군데 부러뜨린다. 그러면 동그랗게 말렸던 부분이 편평하게 펴진다. 달궈진 팬에 기름을 붓고 배추를 그 안에 편다. 두 장의 잎을 위아래 엇갈리게 얹는 것이 좋다. 그러면 사각형이 된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놓은 반죽을 배추 잎 위에다 골고루 편다. 여기서 어머니의 핵심 기술이 등장한다. 우선 반죽이 관건이다. (모든 전이 마찬가지겠지만) 반죽의 농도가 정확해야 한다. 너무 묽으면 헤퍼지고 너무 걸쭉하면 제어가 힘들다. 적당해야 한다. 어머니들의 모든 요리법의 핵심은 바로 이 적당함이다. 계측할 수 없는 적당함, 말로 할 수 없는 적당함이 요리의 비법이다. 아무튼 오른손을 이용해 적당한 반죽을 적당량 뜬다. 손가락 끝으로 반죽을 흘리며 배추잎 구석구석 골고루 반죽을 묻힌다. 반죽이 손가락을 타고 미끄러진다. 그다음엔 손등 부분으로 반죽을 툭툭 친다. 반죽이 배추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뜨겁지 않을까? 왜 뜨겁지 않겠냐만 뜨겁지 않으시단다. 반복과 연륜은 모든 걸 가능케 한다. 적당한 시간에 한 번 뒤집어주면 배추전이 완성된다. 먹는 방법도 중요하다. 칼로 썰어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죽죽 찢어서 먹어야 제대로다. 양념장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그냥 먹어도 맛있다. 맛을 설명하자면, 심심하고 슴슴하고 한가하다. 여름 휴가철의 나무 그늘이다. 배추의 맛이 그렇듯 강한 맛은 전혀 없다. 아삭아삭 배추가 씹히는 소리와 몽글몽글 반죽이 입 속에 엉키는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맛이 전해진다. 초밥의 맛과 비슷하다. 생선과 밥알이 입 속에서 뒤엉키면서 하나의 완성된 맛에 도달하듯 배추와 반죽의 조화가 또 다른 맛의 감각을 되살려준다. 배추전은 두 장을 먹어도 입 속이 평온하다. 음식이 다녀간 흔적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조금 기다리면 배추의 구수한 맛이 입 안에 그득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배까지 불러온다. 어머니는 명절 때면 언제나 배추전을 하신다. 차례 상에는 올리지도 않는데, 어째서 어머니는 매번 배추전을 하실까?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음식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한 것이다. 흔한 얘기다. 하지만 그 흔한 얘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해하고 나면 배추전 한 장에도 가슴이 찌릿하다. 어머니도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이다.
주먹만 한 송편김장권(한옥 건축가·북촌 HRC 대표)
어머니의 손은 남들보다 유난히 크게 여겨진다. 눈 크게 뜨고 봐도 내 한 손으로 폭 감쌀 정도로 자그마한데, 아마 그 손으로 베푸는 마음이 무척 컸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만든 추석 송편을 보아도 그렇다. 어머니는 하나만 먹어도 배부르면서 맛있는 송편을 푸짐히 만드셨다. 하도 큼직해서 한입에 먹을 수 없을 정도다. 요즘 기계로 찍어낸 송편과는 여러모로 비교된다. 크기도 다를 뿐더러 어머니의 송편에는 소가 열 배쯤 더 들어간다. 소의 내용물도 독특하다. 인절미의 콩가루 만들 때 쓰는 노란콩을 깨알만 한 크기로 다진 뒤 꿀에 잰 것을 한 숟갈 듬뿍 집어넣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송편을 깨물면 꿀떡처럼 달콤하고 고소하다. 지금까지는 우리 집 외에는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다. 이 송편이 가장 맛있을 때는 물론 솔잎을 털어내며 찜기에서 갓 꺼냈을 순간이다. 어머니가 참기름을 살짝 바르시는 찰나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손이 갈 만큼 그 송편은 유혹적이다. 이제는 자식과 손주들까지 배불리 먹으려면 송편이 더 넉넉해야 하기에 추석 때면 온 가족이 달려들어 송편을 빚어야 한다. 꼬맹이들이 만든 ‘공룡 송편’ ‘튤립 송편’이나 며느리들이 빚은 날씬한 송편 사이로 어머니의 투박한 송편이 눈에 드는 것은 과연 나뿐일까? 어머니의 따뜻하고 도톰한 손은 귀경길까지 나를 보살핀다. “돌아가면서 차에서 먹거라”하며 녹두 빈대떡과 식혜를 싸주시곤 하신다. “운전하면서 열지 말고, 꼭 차를 세워놓고 먹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도시락을 열면 집어 먹기 쉽게 한입 크기로 자른 녹두 빈대떡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거기에 어머니 얼굴도 보인다.
할머니가 얹어주는 고추장 굴비 장아찌남경표(요리사·일식 퓨전 레스토랑 옌 쉐프)
미각만을 기준 삼자면 나는 한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할머니의 음식이다. 전남 담양이 고향인 할머니의 손맛은 동네에서도 알아주었다. 장맛이 제일 좋은 집으로 소문났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장맛을 배가시키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굴비 장아찌다. 추석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굴비를 사다가 고추장에 숭숭 박는다. 좀 지나서 굴비에 양념이 배어들면 밥상에 올린다. 깨를 약간 뿌린 것 외에 다른 양념을 가미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손으로 고추장을 닦아낸 뒤 쭉쭉 찢어서 큰손주인 내 밥술에 얹어주셨다. 그 맛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첫 맛은 짭쪼름하고 매콤하다. 조금 씹다 보면 고소한 굴비 육즙이 쫄깃쫄깃한 육질 사이로 배어난다. 굴비 장아찌 한 마리를 통째로 다 먹으려면 늘 밥 한 공기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마 우리 음식을 조금만 더 좋아했으면 할머니의 이 굴비 장아찌가 나를 한식 요리사의 길로 이끌지 않았을까 싶다. 스무 살까지 추석 상에 빠지지 않았던 굴비 장아찌, 이제는 영영 맛볼 수 없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그 풍미와 주름진 할머니의 손가락에 묻은 불그스름한 고추장에 대한 기억은 이토록 생생한데 말이다.
기억으로 돌아온 못생긴 콩설기 김학민(푸드 칼럼니스트·학민사 대표)
좀 썰렁한 이야기 같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특정한 맛에 대해 개인들이 받아들이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살아온 사회경제적, 문화적 환경이 다른 데서 기인하는 특정 음식에 대한 이질감이 선호를 극단화하기도 할 것이다. 한 음식을 변화 없이 상당 기간 상식하게 될 때에도 그 음식을 싫어하게 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세끼를 거의 국수로 때웠다면 어른이 된 후에도 국수가 별로 당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50년대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그야말로 전 국민이 궁핍한 상태였다. 내가 자란 농촌은 농사지을 땅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나, 그 땅을 부쳐먹던 소작인이나 설날이 지나고 나면 끼니를 간신간신 잇거나 양식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집들이 많았다. 살림을 규모 있게 했던 나의 어머니는 기나긴 한겨울, 아침은 밥을 먹더라도 점심, 저녁은 수제비, 김치죽으로 하여 양식을 아꼈다. 배불리 먹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춘궁기에 식구들이 굶는 일은 없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 길이 없는 형제들은 왜 매일 수제비 아니면 김치죽이냐며 칭얼댔다. 물론 나중에 커서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맛의 기억이란 묘한지 그때 그 시절 어려움을 이겨내게 했던 그 음식들엔 상당 기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묘하다. 20, 30대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은 그 시절의 음식이 마흔 중반에 들어서고 나서는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조악한 음식들조차 아련히 사라져버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난날의 추억이기 때문이리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봄이면 찔레를 꺾어 먹고, 초여름이면 풋풋하게 맺은 밀 이삭을 불에 구워 먹었다. 그러다 보면 햇보리가 나온다. 그때부터는 채소와 과일, 햇곡식으로 먹을거리가 좀 풍부해진다. 그러고는 가을과 함께 추석이 온다. 있는 집은 풍성하게, 없는 집은 단출하게 명절 준비를 한다. 본격적으로 추수하기 전에 햅쌀을 조금 찧어 송편을 빚고, 또 오랜만에 흰 쌀밥이 상에 올라 식구들의 환성을 자아낸다.
콩설기는 추석 즈음 어머니가 해주셨던 떡이다. 요즘의 백설기처럼 넉넉하게 쌀을 빻아 시루로 쪄낸 모양 있는 떡이 아니다. 장작불로 하는 가마솥 밥물이 잦아들 즈음 쌀가루에 풋콩을 잘 섞은 다음 밥 위에서 얹고 쪄 익히는 떡이다. 개떡 같은 모양으로, 꺼내면 밑에는 밥알이 더덕더덕 붙어 있어 볼품이 없다.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기억해내 보려는데, 왜 지극히 ‘시골스러운’ 이 콩설기만 떠오를까? 허겁지겁 맛있게 콩설기를 먹어대던 아이들을 바라보며 본인은 떡 한 조각 베어 물지 못하던 어머니, 지금은 먼 나라에 계신 그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익은 음식이기 때문이리라.
국물까지 비우는 게장과 오이소박이 이홍석(CF 감독)
추석 무렵이면 나의 오감五感은 기억 속에서 어머니의 게장을 재생하는 작전에 돌입한다. 연어가 고향 찾아 회귀하듯 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동네에서 알아줬다. 뭐든 맛있게 만드셨음은 물론이고 다른 집에서 볼 수 없는 창의적인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게장만 보아도 그렇다. 추석 무렵에 잡히는 알이 꽉 찬 암놈 꽃게를 사다가 양념게장과 간장게장이 결합한 형태의 게장을 만드시곤 했다. 비법을 공개하자면 이렇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무친 양념게장에 끓인 간장을 식혀서 붓는 거다. 이렇게 만든 게장 맛을 어설프나마 말로 묘사하자면 매콤하면서도 깊고 구수하다고 할까. 부추와 실파를 넉넉히 넣으면 잡내가 사라지고 향긋하다. 추석날 게장이 상에 오르면 밥상에서는 치열한 ‘게 뚜껑 쟁탈전’이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뚜껑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는 특혜를 누렸다. 이 때문에 형과 누나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지만, 그게 대수랴. 사흘을 앓다가도 ‘게장 먹어라’ 하면 벌떡 일어나서 밥 세 공기를 해치울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는데…. 잠깐 그 기억을 재생해보자. 양념이 흥건한 뚜껑에 밥을 넣고 비벼서 한술 뜨면 첫 맛은 맵고 짭짤하다. 이때 밥알과 섞인 게 알이 혀에 착 감길 때의 맛을 충분히 즐긴다. 뚜껑에 자리가 생겨 다시 밥 한 숟가락 더 넣고 비비면 이제 간이 좀 맞는다. 또다시 밥 넣고 비비고, 먹고 다시 비비고…. 뚜껑의 구석구석에 밥을 밀어 넣어봐도 맨밥이나 다름없이 심심한 맛이 날 때까지 비벼가며 먹는다. 흔한 음식 같지만 어머니의 추석 상에서 오이소박이도 빼놓을 수 없다. 어머니의 오이소박이에는 멸치 액젓과 새우젓이 듬뿍 들어서 칼칼하고 시원하다. 오이가 터질 정도로 부추 소를 꽉 채운 이 오이소박이는 한입에 우적우적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부추 향이 번진다. 그 순간 흐뭇해진다. 아, 엄마의 밥상이구나!
추석 코스 요리의 감초 무채나물 김도일(브랜드 밸류 크리에이터·제네시스 그룹 고문)
무채나물을 먹지 않으면 추석을 지낸 것 같지 않다. 무채나물은 채 친 무를 참기름과 소금을 넣고 볶다가 물을 약간 넣어 자박자박 끓인 뒤 식혀서 차게 먹는 단순하고 흔한 음식이지만 내겐 참 특별하다. 상을 받자마자 한 숟가락 떠 먹으니 깔끔한 애피타이저요, 다른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곁들이니 감초 같은 사이드 메뉴요, 모든 음식의 뒷마무리로도 들이켜니 디저트인 셈이다. 특히 송편이나 전을 먹고 난 뒤 무채나물을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다른 음식의 맛을 없애지 않으면서도 텁텁한 느낌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레시피는 간단하지만 음식 솜씨 좋은 아내는 할 줄 모른다. 소금 간을 아주 적절히 하는 것이 관건인데, 이 지점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추석 상에서 하얀 사기그릇에 소복하게 담긴 무채나물을 볼 때마다 어쩐지 안심이 된다. 올해 여든 살이 된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인 것에 대해, 혹은 이번 추석에도 이리 안온한 품에 들어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