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암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겸하고 있는 클럽 에스프레소. 창의문 앞 큰길에 있다.
2 커피 얼룩으로 모양을 낸 클럽 에스프레소의 메뉴판.
3, 4 클럽 에스프레소에서는 커피 원두도 판매하고 있다. 공사 중인 2층이 완성되면 커피 아카데미를 열 예정이다.
택시 기사가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동네라지만 부암동에는 의외로 소문난 유명한 곳이 많다. 뜨내기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보다는 동네 단골과 입소문 따라 온 이들이 꾸준히 찾는 명소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 부암동 나들이 길에 꼭 들러봐야 할 개성 있는 공간들을 소개한다.
클럽 에스프레소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커피 맛 좋기로 유명한 곳으로, 1990년 대학로에 문을 열었고 부암동으로 옮긴 지는 6년이 되었다. 마은식 사장은 이곳 커피 맛의 비결을 ‘갓 볶은 신선한 원두’라 말한다. 식상한 대답 같지만 그 말이 진정한 정답. 엄선하여 구입해 온 세계 각국의 생두를 직접 로스팅하는데, 일주일 이내에 볶은 원두를 갈아 핸드 드립 방식으로 만드는 커피 맛이 풍부하고 그윽하다. 콜롬비아, 과테말라, 쿠바, 케냐 등 산지별 커피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움. 조만간 커피 경매에서 낙찰받은 세계 16위 평가의 혼두라스 커피도 들어올 예정. 매장에서 직접 구워내는 머핀과 스콘도 먹어보지 않으면 후회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 문을 연다. 문의 02-764-8719
손만두집 그저 요리하는 것 좋아하고 가족들 중 가장 만두를 빨리 빚어서 만두집을 냈다는 박혜경 사장. 1993년 살림하던 집의 마당 한쪽에 차린 만두집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고 전한다. 아예 2층 양옥을 통째로 만두집으로 운영한 지가 오래인데, 손으로 빚은 이곳의 만두는 담백하고 속이 알차 그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미료 대신 직접 담근 간장으로 맛을 내 깔끔하고 정갈하다. 맑은 고기 국물에 속이 꽉 찬 만두를 넣어 매운맛 감돌게 끓인 만둣국, 오이, 버섯 등 고기 없이 야채로만 만든 개운한 맛의 소만두, 뜨거운 것이 싫은 여름에 새콤하고 시원하게 내는 편수 찬국 등의 메뉴가 정성스럽다. 시원한 유리창으로 한눈에 보이는 부암동 풍경은 덤이다. 오전 11시 2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문의 02-379-2648
5 테이블 세 개가 전부인 작은 치킨 호프집 치어스의 외관.
6 치어스의 프라이드 치킨은 고소함과 바삭함이 제대로다. 함께 나오는 감자도 맛이 좋다.
7정성 담긴 손맛을 자랑하는 손만두집.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고 외국인도 자주 찾는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부암동 풍경은 덤.
치어스 테이블이 세 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지만 그냥 지나쳤다가는 후회한다. 바삭하고 고소하게 튀겨낸 이곳의 치킨은 식어도 맛있을 정도로 수준급. 배달도 안 되고 반 마리도 안 되고 양념도 안 되지만, 항상 단골손님으로 붐비며 전화 주문 후 직접 가지러 오는 손님도 많다.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정 많은 사장님은 “그래도 맛있다고 난리야. 특히 감자가 맛있다고 인기 폭발이야”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프라이드 치킨과 함께 매콤새콤한 골뱅이국수도 맛보지 않으면 섭섭한 메뉴. 통영에서 산지 직송으로 가져온다는 해삼, 멍게도 싱싱하고 향긋하다. 오후 2시부터 새벽 1~2시까지 문을 연다. 아쉽게도 신용카드는 사용 불가. 문의 02-391-3566
아트 포 라이프 오보에 연주자 성필관 씨와 플루트 연주자 용미정 씨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매주 클래식 음악회를 여는 작은 공연장과 운치 있는 인테리어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함께 있다. 이곳의 하우스 콘서트는 아담한 규모이지만 성필관, 용미정 씨를 비롯 실력 있는 프로 연주자들이 무대에 선다. 공연은 회원으로 가입하면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다. 함께 있는 ‘뜰안 레스토랑’은 요리에 관심이 많은 용미정 씨의 진두지휘 아래 운영되는데, 한국적인 입맛과 제철 재료를 가미한 이탈리아 음식을 선보인다.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에 어울리는 멋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주말 저녁 와인을 즐긴다면 더없이 좋을 듯.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 문의 02-3217-9364
환기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로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와 뉴욕에까지 그 이름을 알린 화가 김환기를 기념하여 설립한 미술관. 그의 작고 이듬해인 1992년 아내이자 문필가인 김향안 여사가 세웠다. 한국적인 서정주의가 느껴지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상시적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체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업실 소품도 전시되어 있다. 상설전 외에 꾸준히 선보이는 기획전도 알찬 내용이 많다. 건축가 우규승이 설계한 화강암 외벽의 현대적인 건물도 볼거리.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문의 02-391-7701
8 아트 포 라이프의 뜰안 레스토랑. 운치 있는 실내와 소박한 마당 공간이 매력적. 주말 저녁 와인을 즐기기에 좋을 듯하다.
9 아트 포 라이프의 뜰안 레스토랑 메뉴 중 ‘소를 넣은 오징어 스튜’.
10 환기미술관에서는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의 자전 에세이를 판매한다.
미호 단골이 아니면 찾기 힘든 홍익대학교 앞 골목에 있던 옷가게 미호가 몇 달 전 부암동으로 이사를 왔다. 소박한 마당이 있는 작은 주택이 미호의 새 작업실. 삐걱거리는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옷 짓는 미싱 소리가 드륵드륵 새어 나오는 작은 집이 나타난다. 편안한 실루엣, 톤다운된 컬러, 감각적인 커팅이 멋스러운 미호 옷의 매력은 이곳에서도 여전하다. 구석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햇빛 부서지는 창가에서 옷을 짓는 윤미선 씨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운 마음이 든다. 수작업을 통해 때마다 다른 디자인의 옷을 만드는 미호의 방식이 부암동에 잘 어울리는 듯하다.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문을 연다. 문의 02-395-7604
동양방아간 빨간 벽돌 위에 커다랗게 쓰여 있는 ‘동양방아간’이란 글씨가 정겨운 동네 명물. 떡 맛 좋기로 유명한데, 왕송편, 인절미, 증편, 쑥떡, 백설기가 구수하고 맛있어 새벽부터 떡을 사려는 손님이 줄을 잇는다. 이곳의 떡 맛을 책임지는 차옥순 할머니는 부암동에서 방앗간을 연 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구수한 쌀 본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향료, 색소는 물론 잣, 호두 같은 견과류도 거의 쓰지 않는다고. 새벽 4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문의 02-379-1941
11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는 환기미술관.
12 환기미술관 내부. 건물 자체도 미술 작품 못지않은 볼거리다.
13 삐걱거리는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마당과 함께 미호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14 왕송편, 인절미 등 떡 맛 좋기로 유명한 동양방아간.
1 부암동 보은마트 뒤쪽 골목길로 끝까지 올라가면 이 같은 전망을 볼 수 있다.
2, 5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깊은 계곡, 백사실.부암동은 예로부터 물 맑기로 유명하다.
3 서울 성곽 사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 축대와 기와지붕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4 청와대 뒤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 유난히 무궁화가 많은 편.
6 푸른 자연과 역사 유적지, 정겨운 골목이 공존하는 부암동은 산책하기 좋은 동네다.
산골 기분 내는 등산길 VS. 집 구경하는 골목길
부암동은 도심에서 멀지 않은데도 흡사 강원도 두메산골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물드는 노을 또한 일품이다. 예로부터 풍광이 멋있기로 유명해 조선시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정자 무계정사,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 일제강점기 소설가 현진건의 집터 등이 모두 여기에 있다. 3년 전까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기에 녹지의 보존 상태도 좋은 편.
백사실 계곡길 부암동에서 꼭 들러보면 좋을 대표적인 산책길. 동양방아간 오른쪽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입구가 나타나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나무와 시원한 물소리를 들려주는 계곡이 이어진다. 이 계곡은 도롱뇽 서식지로 보호하고 있을 만큼 때 묻지 않은 곳. 몇십 년 전에는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이 맑디맑아 옥빛을 띨 정도였다고 토박이들은 전한다. 백사실은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이항복의 별장 터로 추정되는 곳. 실제 백사실 중간에 옛 집터임을 증명해주는 돌기둥과 그 아래 연못가에 정자 터가 남아 있다. 백사실의 ‘백사’는 이항복의 호에서 유래한 것.
창의문 백사실 계곡길을 따라 등산하는 것이 숨차다면 클럽 에스프레소 뒤쪽에 있는 창의문 구경을 하는 것도 좋겠다. 이 문은 조선왕조가 한양을 둘러 쌓은 성곽에서 사대문에 더해 있었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 네 개의 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데, 광희문이나 흥인지문(동대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쌓아 올린 축대와 기와지붕에서 위엄과 기품이 느껴진다. 탁 트인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운치 있는데, 창의문 가운데 천장을 올려다보면 닭이 그려져 있다. 이는 창의문 밖의 지형이 마치 지네와 흡사하다 하여 그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 지네의 상극인 닭을 그려놓은 것이라 한다.
7, 11 이불을 널고 고추를 말리는 풍경도 재미 있는 눈요깃거리.
8,9,10 아무렇게나 내 놓은 의자, 화분도 운치를 더한다.동네 산책산골 기분 내는 등산길
환기미술관 뒷골목 정겨운 주택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굽이진 골목길도 구미가 당기는 산책 코스.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방송국에서도 드라마 촬영을 위해 소박한 주택가 풍경이 필요할 때마다 즐겨 헌팅하는 장소가 바로 부암동이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와 달리 제각각 개성이 있는 주택들, 70~80년대쯤의 소박한 정취를 간직한 채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이 많다. 평창동처럼 위압적인 높은 담으로 행인을 배척하지 않고, 타운하우스처럼 비현실적인 깔끔함으로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당장이라도 아이들이 뛰어나와 고무줄놀이를 할 것 같은 익숙한 길이 반갑다.
현진건 집터 골목 동양방아간, 환기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아기자기한 집 구경을 할 수 있는 코스다. 삐걱거리는 철제 대문과 마당에 내놓은 싸구려 플라스틱 화분,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초록 덩굴, 녹슨 구멍가게 간판이 정겨워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보은마트 오른쪽의 골목은 경사는 급격하지만 시원스러운 전망을 볼 수 있는 길. 텃밭 딸린 집들을 지나 골목 끝까지 올라가면 산자락 아래 부암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만난다. 부암동사무소 오른쪽 골목, 샤니식당을 끼고 우회전하면 나타나는 현진건 집터 골목은 멋진 집을 눈요기할 수 있는 코스. 울창하고 높은 나무들 사이로 유명 건축가가 지은 큰 규모의 특색 있는 집이 많다.
부암동에 오지 마세요!
건축가 황두진은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에서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도심 역사지구 보존 사업에서도 이 지역은 빠져 있다. 이렇다 할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지역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 ‘세간의 관심’이라는 것이 한 동네를 얼마나 순식간에 망쳐놓는지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취재하며 만난 부암동 사람들은 세간의 관심이 더해지면 가회동, 삼청동처럼 동네와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은 앤티크 상점, 갤러리들이 동네의 정서를 해할 것이란 걱정을 안고 있었다.
그들의 바람에 번쩍 정신이 든 <행복>은 이 동네를 들여다보면서 동화적인 환상이나 무책임한 낙관은 잠시 내려놓았다. 대신 폭우 속·밤안개 속·폭염 속에서 골목길을 누비고, 동사무소 평상에 앉아 할머니 말벗도 해드리고, 밤에만 나타난다는 이 동네 베짱이 화가도 만났다. 그렇게 만난 그들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든, 가깝고 정겨운 동네든 사람과 사람들을 통해서만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줬다. 취재가 끝난 후 우리는 부암동 사람들처럼 한 가지 바람을 갖게 됐다. 더 이상 상업화되지 않기를(여기서 ‘상업화’는 단순히 가게가 많아지는 것뿐 아니라, 집값에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뜻한다), 복고 취미가 짬뽕된 제2의 삼청동이 되지 않기를. 그 바람에 건축가 황두진 씨의 제언을 덧붙인다. “삼각산 문화 밸리(예술인과 학자들이 문화 운동을 벌이는 부암동·통의동 일대)는 복고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폐쇄적인 지역이 될 위험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삶으로서 예술을 생산하는 ‘중인’들의 문화, ‘집’ 중심의 자생적 문화 활동이 이곳에서 일어나길 소망한다. 고급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클이 생기고, 예술가들이 이들을 위해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집에 관람객들이 모여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