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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만 1천5백 번 간 컬렉터 김세종 조선민화, 그 놀라운 Fantasia에 사로잡혀서는
“저는 소시민입니다. 빚이라도 내서 재원을 끌어모아야 하고, 내가 추구하는 미적 관점에 합당한 작품을 찾아내야 하죠. 오케스트라 단원을 구성하듯 일정한 수준과 내 수집 철학에 합당한 작품을 찾아온 겁니다. 독립운동 하는 심정이었어요. 이 길이, 내 관점이 맞는지…. 아직 미적 가치 규정도 없는 분야였으니까요.” 30대 초반에 우연히 민화를 만났고, 잠을 못 이루었다. 마흔을 넘긴 나이부터 민화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상식을 깨버리는 그 불가해한 미에 빠져 산 25년이었다. 그가 자신의 컬렉션 인생을 중간 종합하는 화집 <판타지아 조선민화>를 펴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그의 눈이 으뜸으로 지목한 그림을 소개한다.

화조도, 종이에 채색, 66.0×34.0cm


관심이 재능이 되고, 재능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사회적 책임이 되고, 그것이 자기 성찰도 되는 좋은 사례를 나는 보았다. 그는 애호가로 시작해 25년 동안 민화를 탐닉하여 자기 이름의 컬렉션을 만들었다. 또한 소장품 1천여 점을 주제에 따라 솎아 국내외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스스로 발견한 그 불가사의한 미를 책으로 종합하였으니, 이만큼 마땅한 예를 찾지 못하겠다.


“민화를 수집하던 초기에 <이조의 민화>(일본 고단샤 발행)에 수록된 일본민예관 소장 민화 몇 점에 강한 의문이 들었어요. 특히 산수화 두 점과 4폭짜리 책거리 병품에 묘하게 눈길이 갔는데, 어딘지 서툴고 허접해 보였죠. 그런데 이우환, 장욱진, 박생광, 김종학, 권옥연 같은 화가가 이 민화를 회화적 관점에서 수집하고, 작품 모티프로 삼았단 말이에요. 야나기 무네요시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미의 세계. 현대 미학으로는 해석 불가능. 세상에 알려지는 날에는 세계가 난리 날 것’이라 했고요. 나는 이 그림이 일률적 미의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정통 민화(궁중 민화라 불리는)에서 벗어난 바보스런 류의 민중 민화를 찾았고, ‘바보 민화’ ‘순수 민화’ 같은 이름으로 불렀어요. 그 그림에 미적 해석을 더한 이론가를 찾았지만 없었죠. 도상학적 관점에서 상징체계를 말할 뿐이었어요. 분명 그 그림에 회화적 관점이 있을 텐데 말이죠.”


이 사람은 국립중앙박물관만 1천5백 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서울관을 각각 6백 번 이상 드나들며 유물을 외우다시피 했다. 오사카 동양도자 박물관, 도쿄 국립박물관도 숱하게 출입했다. 한 작품 앞에서 두세 시간씩 멈춰 감동하고, 미감을 육화해온 사람이다. 그 안목으로 조선민화를 25년 넘게 톡았다. “어디에도 없는 추상미와 해학미가 첫째죠. 풀이든 꽃이든 사실대로 그린 것 없이 제멋대로예요 그런데 방금 붓을 놓은 듯 생생해요. 문자도의 새우 하나를 그려도 추상과 반추상이 섞인, 기이한 초현실적 세계죠. 철학적 배경 없이는 해석하기 힘든 현대미술의 추상성과는 또 달라요. 친숙해요. 진솔하고 위트가 넘쳐요. 예지력과 통찰력으로 자연과 사물을 해석한 이의 그림이더란 말이죠. 익명으로 그린 그림이어서 애당초 가식이나 위선이 끼어들 자리도 없고요. 본올 따라 그린 허접한 민화도 많지만, 회화적 관점으로 보면 천재적 작가가 그린 명작이 존재하더군요.”(<나는 조선민화 천재 화가를 찾았다>에 그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무엇보다 민화는 그린 이만의 것이 아니다. 조상과 자연과 그린 이, 삼자의 합작품이다. 세상을 통짜로 보는 눈, 즉 우주관이 그 안에 담겼다. 맨눈으로 저 멀리 수억 광년을 달려온 별빛올 바라보며 우주 속 나의 좌표를 살펴본 아무개 씨의 그림. 그는 그 아무개 씨를 ‘조선민화 천재 화가’라 부른다. “민화는 한민족의 감성과 심성의 유전자, 즉 집단 무의식에서 비롯된 그림”이라는 명쾌한 문장으로 갈음한다.
그 사반세기의 탐닉이 <판타지아 조선민화>라는 대장정으로 묶였다. 자신의 컬렉션을 집대성한 도록이자, 민화의 조형성을 탐구한 자료집이다. 무엇보다 시각이 독창적이다. 소재가 지닌 상징과 알레고리를 파악하는 데만 급급하지 않는다. 대신 즉흥성, 생명력, 인정, 자발성, 활기, 휴머니즘을 내포한 순수 회화, K-아트의 본류로 민화를 해석해냈다. <판타지아 조선민화>는 ‘안내서 없이 민화라는 예술 세계를 여행 다니고 싶은 이를 위한 안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구운몽도“숙종 13년(1687) 김만중이 집필한 소설 <구운몽>의 한 장면을 민화로 표현했다. 당시 사대부 양반가에서는 소설의 한 줄거리를 병풍 그림으로 만들어 감상의 대상과 실용적 장식화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화원이 화려하고 섬세하게 그린 18세기 <구운몽> 민화가 더러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 후기부터 20세기 초반에 그려진 구운몽도는 앞선 시대의 화풍과 전혀 다르다. 특히 이 작품은 소설 내용을 무시하듯 자유롭고 파격적인 화면 구성이 엿보이는, 범상치 않은 조형 세계라 하겠다. 2층 기와집을 초현실적인 추상으로 배치하고, 인물 또한 단순하고 경괘한 선묘로 표현했다. 미학적 해석을 거부하듯 무작위로 그린 신명나는 표현을 볼 때마다 마냥 즐겁다.종이에 채색, 114.0×36.2cm

 

 

화조도“조선민화의 화조도는 어떤 장르보다 대중성을 확보한 그림으로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동양 특유의 정서와 가치관이 녹아 있다. 이 그림은 고단샤 발행 <이조의 민화>에서 소개한 유명 작품이다. 재일 교포이자 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이 애장한 그림이라고 한다. 일본 내 경매를 통해 국내로 돌아왔다. 도교의 월력을 도표로 그리고, 하단에 매화를 그렸다. 그림의 상단은 도교적 내용이라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고, 하단의 화조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른쪽 아래에 매화의 둥치를 사선으로 간단히 그리고, 꽃잎을 평면화시켜 자연스럽게 늘어놓았다. 위쪽에 이르러 꽃잎을 일렬로 줄 세운 것이 독특하다. 현대 추상화의 발상으로 본다 해도 무방하고, 상식을 무참히 무시한 기발하고 파격적인 그림이라 하겠다. 김종학, 송수남 등 많은 작가가 이러한 신선한 조형을 모티프 삼아 새로운 창의적 작품을 남겼다. 이 화조도의 조형 세계는 순수 회화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종이에 채색, 53.0×28.2cm

 

 


<판타지아 조선민화> 조선민화가 지닌 불가사의한 미의 세계를 집대성한 김세종만의 독보적 컬렉션을 네 권의 책으로 묶었다. 민화를 순수 회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조형적 아름다움을 품은 작품만 선별해 엮은 새로운 형식의 민화집이다. 화조도, 산수도, 책거리·문자도, 호랑이·무신도라는 큰 테두리 안에 어해도, 구운몽도, 삼국지도 등 좀 더 세부적 장르까지 아울렀다. 4권 세트, 40만 원, 아트북스.

 

 

문자도“문자도는 조선 왕조가 쇠하던 시기에 등장한 그림으로, 세계사에서 볼 수 없는 문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마을마다 사대부 집안과 일반 백성이 널리 그려 사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량생산된 허접한 문자도의 틈바구니에서도 이처럼 독창적이고 불가사의할 정도로 회화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이 문자도는 유교의 덕목과 이상향을 재미있게 그려 계몽과 감상의 대상으로 삼은 그림으로 孝, 弟, 忠, 信, 禮, 義, 廉, 恥 중 忠 자의 한 폭이다. 충 자에 등장하는 대나무와 새우를 자세히 보자. 작가는 평생 대나무와 새우를 본 적이 없는 듯 상상의 조형으로 해석했다. 어찌 이 문자도 속 대나무를 대나무라 하겠는가? 어찌 이 새우를 새우라 하겠는가?”종이에 채색, 84.0×3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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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혜경 | 자료 제공 평창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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