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 씨가 일상생활을 하는 주무대인 이재하 작가 테이블. 현재는 개인전 <값이 없는 자유>를 위해 좋아하는 시집과 직접 쓴 시 등으로 작가의 아틀리에처럼 연출했다.
가장 자유로운 공간은 집이 아닐까. 특히 1인 가구라면, 집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인 셈이니 말이다. 그만큼 디자인은 물론, 활용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다. 작업실과 겸하는가 하면, 취향을 드러내 집 전체를 하나의 전시장으로 사용하거나, 지인들과 차와 이야기를 나눌 다실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노정빈 씨에게 집의 또 하나의 기능은 바로 소통의 창구다. 정빈 씨는 예술경영과 디자인을 전공한 만큼 미술·조각·연극·건축 등 예술과 문화 전반에 큰 애정이 있으며, 30년간 F&B 사업을 일궈온 부모님의 영향으로 건강한 먹거리, 특히 전통 식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실제로 자음이라는 식문화 디자인 스튜디오를 통해 차와 식품 전반에 대한 기획 컨설팅을 하고, 각지 장인을 만나 다시자연이라는 전통 식품 상생 브랜드를 기획 및 운영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전시 공간 음愔 갤러리도 운영 중이다. 그의 다채로운 활동의 기반에는 자연에 대한 깊은 편애가 자리한다. “자연은 언제나 제게 영감과 쉼을 주는 존재예요. 첫 독립지로 연희동을 택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친구 때문에 이 동네를 알게 되었는데, 산자락의 정겨운 동네 모습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가을이 한창이던 날 집을 보러 왔는데, 단풍 든 안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사를 결심했죠.” 이사 올 당시부터 ‘내 집은 건물 안이 아닌 바깥의 모든 자연이다’라는 마음을 지녔다는 정빈 씨. 첫 독립 때는 원룸에 살다, 같은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이사했다.
갤러리로 사용하는 1층. 현재는 정빈 씨의 개인전에 맞춰 가구를 배치했으나, 전시를 열고 싶은 작가가 있으면 그가 원하는 배치로 바꿔줄 예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제가 자연으로부터 느낀 위로와 쉼을 경험하길 바랐어요. 집의 일부 공간은 언제나 유휴 공간인 셈이니 이를 활용해 갤러리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죠.”그의 현재 보금자리는 복층이 딸린 1.5룸이다. 그중 복층은 침실로, 주방과 미닫이문으로 나뉜 큰방이 있는 1층 전체는 갤러리로 계획했다. 별다른 공사는 하지 않았다. 나무 계단과 난간, 박공 형태를 살린 창, 세월이 묻어난 미닫이문 등 기존 구조를 최대한 살리고 오래된 벽지와 주방 가구만 바꿨다. 어떤 작품도 포용할 수 있도록 백색으로 말이다. 추가로 가구를 들이는 대신 대신 진열대 겸 식탁으로 쓸 테이블만 이재하 작가에게 맞춤형 사이즈로 하나 의뢰했다. 나머지는 그가 독립 후 3년간 모은 소장품이다. 자연과 한국적 멋을 좋아하는 만큼 고가구와 매란국죽 화분, 도자기 등 취향을 담은 소품으로 공간을 꾸몄다. 특히 공간에 빛을 들이는 방법에 신경 썼는데, 자연의 빛과 실루엣을 감각하기 위해 투공성 있는 천, 레진과 한지를 켜켜이 쌓아 만든 손상우 작가의 작품을 커튼 대신 사용했다. ‘고요하다’는 갤러리 이름의 뜻처럼 빛마저 평온한 공간을 완성한 것.
주방 상부장 위를 가득 채운 정빈 씨의 소장품. 상부장 안에는 직접 브랜딩한 다시자연의 식재료와 3년간 모은 소장품이 깔끔히 정리되어 있다.
취재 당시, 음 갤러리에서는 정빈 씨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의 첫 개인전이자 갤러리의 개관전 <값이 없는 자유>. “값이 없는 자유라는 말은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마음속에 들어온 문장 중 하나예요. 자연에서 느낀 안위처럼 물질적인 값을 치르지 않아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분명 있거든요. 이번 전시를 보러 온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해보시길 바랐어요. 저마다의 목표나 이상, 이를 좇는 일과 자유에 대해서도요. 새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재료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노정빈 씨는 오죽과 반닫이, 안산의 풍경이 어우러진 이 공간이 자신의 취향이 가장 집약된 곳이라고 소개했다. 소장품으로 세팅을 종종 바꾸는 편이며, 지금은 전시를 위해 그의 작품과 매화 분재를 진열했다.
5월 한 달간 주말마다 열린 그의 개인전은 예약제로 운영했는데, 빈 예약 시간이 없을 만큼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 전시라는 콘텐츠를 통해 결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 나누며 연결되는 곳. 소통의 창구라는 그의 말이 정확히 실현된 셈이다. 그가 갤러리를 만든 또 다른 목표는 신진 작가 지원이다.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 신진 작가가 작품 활동에 집중할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것.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 헌신이 집약된 그의 공간에서 또 어떤 전시가 이야기를 풀어낼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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