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해외의 아름다운 집 Rebekka Bay - 공간이 단순해지면 이야기가 깊어진다
핀란드 패션·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리메꼬Marimekko의 감각을 이끄는 레베카 베이. 그는 코펜하겐의 오래된 다락방을 통해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새롭게 정의했다.
레베카 베이는 코스COS의 창립 멤버이자 갭Gap, 에버레인Everlane, 유니클로Uniqlo 등 글로벌 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2020년부터는 마리메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코펜하겐 패션 위크 런웨이 쇼, 이케아와 협업한 컬렉션 ‘바스투아’, 마리메꼬 스토어 론칭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marimekko.com

 

레베카 베이는 남편과 함께 수년간 뉴욕과 런던 등에서 생활한 후, 2020년부터 아들과 함께 고향인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거주하고 있다. 그는 마리메꼬 코펜하겐 오피스에서 일하고, 본사와는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업무를 이어간다.
 
요즘 가장 ‘창의적인’ 브랜드로 마리메꼬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브랜드는 이케아IKEA와 협업해 ‘바스투아BASTUA’ 가구 및 홈 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보이며, 북유럽 사우나 전통에서 영감받은 풍경과 추억을 담아냈다. 또한 블루보틀 커피와의 협업에서는 핀란드의 커피 문화인 ‘카흐비헷키kahvihetki’를 주제로 일상 속 여유를 제안했다. 마리메꼬의 시그너처 패턴 ‘우니꼬Unikko’를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굿즈 컬렉션은 북유럽 특유의 삶의 태도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장 최근에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아티스트 라일라 고하르Laila Gohar와 손잡고 ‘시스콘페티Siskonpeti’(‘자매의 침대’라는 뜻의 핀란드어. 여성들이 함께 슬립오버를 즐기며 보내는 친밀한 상황을 말함) 개념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를 펼쳤다. 이 전시는 공동체적 휴식 공간을 표현하며, 침구류와 파자마 세트, 수면 안대, 도자기 등 침실과 관련한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주목 받았다(해당 제품은 9월 출시 예정이다).
 
분BUNN이 디자인하고 지역 장인이 제작한 맞춤형 주방. 폴리싱 처리한 스테인리스의 건축적 구조미에 오리건 파인의 따뜻한 질감을 더해 조화를 이룬다. 무게감 있는 원목 주방 벽이 함께 어우러지며, 이 벽은 계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게나우Gaggenau 오븐을 빌트인했다.

이 프로젝트 중심에는 2020년부터 마리메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레베카 베이가 있다. 그는 디자인팀을 이끌며 전반적 디자인 전략을 총괄하며, 마리메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리메꼬가 원래 텍스타일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레베카 베이는 마리메꼬를 단순히 프린트를 다루는 집단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예술가 브랜드로 재정의하고자 했다. 그 결과 패션을 넘어 홈 컬렉션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

지속 가능한 소재의 선택, 공정한 제작 방식 등도 레베카의 디자인 철학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그의 코펜하겐 아파트 곳곳에도 이 같은 디자인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계단 쪽에서 바라본 거실 전경. 계단의 손잡이는 공중에 떠 있는 대형 선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조형미를 더한다. 계단 디딤판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것이 특징. 이사무 노구치의 종이 펜던트 조명과 마리나 보티에Marina Bautier의 데이베드가 공간에 포인트를 준다.
 
북유럽 감성에서 벗어난 공간 미학
수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친 레베카와 남편 리키 노드슨Ricky Nordson은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후 자신들에게 맞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했다. 코로나19 시기, 원격으로 계약한 넓은 아파트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뉴욕의 대형 로프트에서 누리던 안락함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집이 너무 넓다 보니 각자 방에 들어가면 서로의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았어요. 단절된 느낌이었죠. 저희에겐 불편했어요. 집 같은 포근함이 없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하고, 도심의 활기와 아늑함이 공존하는 삶을 그려보기로 했다.
 
도예가의 손길이 담긴 빈티지 세라믹 작품. 그는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수공예 작품을 특히 좋아한다.

새로 찾은 동네는 코펜하겐의 오래된 거리, 그뢰네가데Grønnegade. 왕의 정원과 항구에서 가까운 골목 한복판, 과거에는 빨래를 말리던 다락방이었다. 1700년대 초반에 지은 아파트 건물의 꼭대기 두 층은 빛과 움직임이 살아 있는 구조다. 드러난 기둥과 나선형 계단, 낮은 천장이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공간은 단번에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일 마감 처리한 애시우드 원목으로 제작한 분의 맞춤형 옷장.

전면적인 레노베이션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는 인테리어 및 가구 디자이너이자 친구인 루이즈와 마르쿠스 한니발 시그바르트(분Bunn 스튜디오)에게 집 개조를 맡겼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미학, 감각, 그리고 재료에 대해서 말이죠. 전형적인 스칸디 스타일의 밝은 인테리어보다는 뉴욕과 일본에서의 미니멀 라이프적 삶이 녹아든 공간을 바랐습니다.” 도널드 저드의 스프링 스트리트 101번지, 롱아일랜드시티의 노구치 뮤지엄, 펜실베이니아의 조지 나카시마 목공소 등에서 받은 영감이 공간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저드의 집에서 비움의 미학을 느꼈습니다. 장인의 손길이 담긴 모더니즘 가구와 오브제는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겼죠.”
 
일본 여행 때마다 하나둘 사서모은 사케 잔들. 그 소중한 잔들을 위해 분이 맞춤 제작한 전용 서랍.

목재 선택 역시 공간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색이 바래는 목재를 바랐다. 오크는 지나치게 일반적으로 느껴져서 따뜻하고 붉은 기운이 감도는 흙빛의 오리건 파인을 선택했다. 여기에 노란빛 오일로 마감한 애시우드를 더했다. 재료 간의 조합과 색채의 균형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결과였다.
 
“알바 알토의 작품에서 보이는 자연과 건축의 조화, 그리고 뉴욕에 있는  도널드 저드의 옛 집과 스튜디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
 
가구에서 시작한 미니멀 감성 라이프
이 집은 총 세 층으로 구성되었다. 3층 현관을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4층의 메인 공간으로 이어진다. 부부 침실은 복도 끝에, 아들 방은 5층 중이층(mezzanine)에 위치한다. 가족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는 곳곳에 설치한 미닫이문을 통해 보완했다. 계단은 집의 핵심 구조 중 하나. 계단 벽에는 수납과 전시 기능을 겸한 선반을 두어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해결했다.  
 
포울 키에르홀름의 PK54 원형 대리석 테이블을 중심으로 다양한 디자인 체어와 조명이 어우러진 다이닝 공간. 루찬 에르콜라니의 1956년 작 버터플라이 체어,  헤릿 릿벨의 지그재그 체어, 키에르홀름의 PK1, 아르네 야콥센의 앤트 체어가 놓여있다. 조명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인한 플로스의 토이오Toio 램프로, 산업적 미감이 공간에 균형을 더한다.
 
집의 중심은 단연 주방이다. 넓은 아일랜드 키친이 식사 공간과 라운지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축 역할을 한다. 광택 있는 스테인리스로 마감해 밤이 되면 주변을 은은한 빛으로 물들인다. 여기에 따뜻한 느낌의 목재를 더해 금속의 차가움을 중화하고 시각적 안정감을 꾀했다. 이 키친은 단순한 조리 공간을 넘어 일상과 삶의 중심이 되는 장소다. 레베카는 아침에는 이곳에서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가족의 리듬은 이 주방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 집은 천장이 낮고 구조가 비대칭이라 전형적인 아파트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특성이 개성과 온기를 만들어냈다. 자연스럽게 높이가 낮은 가구로 공간을 채웠다. 그중에서도 토고 소파는 편안한 분위기와 색감의 균형을 동시에 잡아주는 훌륭한 선택이었다. 물건 수를 최소화하려는 태도 또한 공간 전반에 반영되었다. 광고 업계 출신으로 가구 딜러로 활동하는 남편 리키는 가구 선택에도 철저한 원칙을 고수한다. “의자 하나를 고르는 데 2년이 걸릴 때도 있어요”라고 말할 만큼, 그는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가구를 찾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또 그들이 매일 사용하는 도자기를 비롯해 실용성과 미감을 겸비한 오브제들은 모두 집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다. “긴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리가 바라는 건 마음이 가라앉는 감각이에요. 모든 물건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은 삶이 훨씬 단순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집의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코펜하겐 시청 탑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고층 건물이 없고 전통적인 분위기가 유지된다.

공간은 이전 집보다 작아졌지만, 추억은 되레 많아졌다. 세 식구가 한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었고, 지인이나 친구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도 풍성해지고 있다.
 
 
 
 기사 전문은 <행복> 6월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E-매거진 보러가기
글 백세리 기자 | 사진 Anders Schønnemann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