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의 전면 창은 모두 북쪽을 향한다. 조문영 씨는 “산이 있으면 볼 것이 많다”는 평소의 믿음으로 과감히 북향을 택했는데, 그래도 남향 창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이 작은 사각 창을 만들었다.
내가 요즘 자주 떠올리는 단어가 ‘공간 자립’이다. 재정적 자립이나 정서적 자립도 어쩌면 공간 자립에서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믿음이 있다. 내게 맞는 가구를 고르고, 침구를 장만하고, 더 나아가 집 구조와 형태까지 결정할 수 있다면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편안하고 당당한 자족으로 꽉 차 있을 확률이 높다. 조문영 씨를 인터뷰하고, 그녀의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고 하면 으레 서울의 아파트, 네모반듯한 구조, 세 개 이상의 방 같은 요소를 떠받들며 살지만 그 프레임 바깥에도 우주 같고 꽃밭 같은 집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새삼스러운 자각.
콘크리트로 내외부, 바닥과 천장이 한 몸으로 붙어 있고 저 위 천창으로는 종교화 속 풍경처럼 빛이 흘러드는 집. 영혼을 위한 집의 모습 같기도 했다.
원하는 것과 굳이 필요치 않은 것이 흑과 백처럼 확실하고, 구석구석 박력이 넘치는 이 집은 도로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강과 숲이 우거진 가평의 국도를 달리다 마을 길로 우회전하면 채 2분도 안 돼 만날 수 있다. 그녀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가 맞닥뜨린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바닥 길이는 19.2m. 저 안쪽까지 공간이 제법 길게 이어지는데, 폭은 5.3m로 상대적으로 좁고 천고는 6m에 달해 세로로 길고, 천장은 아득하게 높은 동굴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저 안쪽 측면에서는 유리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종교화 속 그것처럼 내부를 성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만 본다면 이곳을 성당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복층 구조의 집은 구석구석 선택과 집중의 힘이 넘친다. 1층은 별도의 공간 구획 없이 하나의 커다란 직사각형으로 이뤄졌고, 그 위로 단출하게 작은 박스 공간을 올렸다. 2층에 있는 이 작은 공간의 용도는 침실. 문영 씨는 이곳에서 침대도 없이 이부자리만 깔고 잔다. 식탁과 수납공간도 독특하다. 콘크리트와 합이 좋은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커다란 주방 시스템을 짜 넣었고, 냉장고와 옷장까지 모두 매립형으로 디자인했다. 무광의 알루미늄 문을 열면 냉장고도 나오고, 옷장도 나오는 식이다. 벽난로 역시 현대적 모습이다. 콘크리트 벽 하단에 직사각 형태로 난로를 매립했고, 그 위로 은빛 연통이 5.9m 높이로 공간을 수직으로 가르는데, 사각과 원통의 도형 놀이처럼 리드미컬한 기쁨이 느껴진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2층으로 올라가는 긴 경사로. 또박또박 평범한 계단 대신 15m 길이의 긴 경사로로 길을 냈는데, 런웨이나 활주로처럼 시원한 맛이 있는 데다 휠체어가 지나갈 만큼 폭이 넓고, 양쪽으로 콘크리트 벽이 우뚝 버티고 있어 위아래 어느 쪽에서 보든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독창적 디자인 뒤에 선하고 염치 있는 마음
이렇듯 과감하고 독창적 디자인이 나올 수 있던 배경을 볼까? “바이아키텍쳐 이병엽 소장님·김괄 실장님이 이 집을 설계해주셨는데, 설계 전부터 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치토와 계피가 있으니 명확하게 똑떨어지는 것이 많더라고요. 우선 애들이 노견이라 계단이 없어야 했어요. 침대에서 떨어지면 안 되니 침실 같은 별도의 방도 필요 없었고요. 가구를 포함해 무언가를 계속 사고 바꾸는 일이 제겐 어려워요. 공장에서 무언가를 계속 생산하고, 그걸 위해 또 많은 자원이 들어가고, 얼마 안 가 다시 버려지는 사이클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선반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구를 빌트인으로 넣었습니다. 가구디자인과를 나왔는데 가구 들이는 걸 싫어하네요.(웃음) 뉴욕에 있는 어떤 집을 떠올리면 별다른 가구 없이 구석에 피아노 한 대가 있고 그 끝에 매트리스 하나만 덜렁 있는 풍경이 떠오르는데, 그런 집을 원했어요.
피아노만큼은 꼭 사고 싶었는데 천고가 높으니 전자피아노만으로 충분하더라고요. 툭 하고 건반을 누르면 마치 동굴에서 연주회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7년 전, ‘카풀’이 유행한 것 아세요? 당시 저는 메가박스 디자인팀에서 일했는데, 집이 있던 홍대 쪽에서 신사까지 차를 몰고 다녔어요. 카풀을 통해 어떤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분 절친이 이병엽 소장님이었어요. 그렇게 소장님과 인연이 되고 소장님이 합정에서 운영하던 ‘취향관’에도 자주 드나들면서 이렇게 집까지 짓게 되었지요. 이것저것 세심하게 신경 써주고 땅까지 함께 봐주는 걸 보면서 소장님께 최대한 정확한 매뉴얼을 드려야겠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다며 우왕좌왕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집에 바라는 바와 필요한 것을 PPT로 정리하고, 집에 어울릴 것 같은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어 공유했어요. 건축가의 수고로움을 최대한 덜어준다는 것이 당시 저의 의지였습니다.”
설계 당시부터 세심하게 고려해 만든 콘크리트 선반. 독창적이면서도 입체적 미감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묵직한 포인트다.
어디에서라도 인생은 계속된다
이 집을 짓기 전 그녀는 양평 끝자락인 지평에 전셋집을 얻어 살았다. 다리를 건너 언덕 맨 위 자락에 있는 목조 주택이었다. 홍대 쪽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다 코로나19로 실직 상태였던 그녀는 어느 날 돌연 경기도행을 택했다. “돌아보면 홧김이었어요. 계피에 치토까지, 반려견이 두 마리로 늘자 퇴근 후 일상이던 저녁 산책이 점점 힘들어졌어요. 괜한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생기더라고요. 애들이 풀숲에 소변을 보고 있으면 식물이 죽으니 조심해달라는 분도 있고요. 안 되겠다, 서울 근교에 마당 있는 집으로 가자, 싶었지요. 양평이 그렇게 큰지도 몰랐고 지평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그곳에 갔어요. 정말 맨 끝 동네, 언덕배기 집이라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주변이 어두우니 집에 불을 켜면 밖에서 안이 더 잘 보이잖아요. 야생동물도 무섭고요. 걱정과 달리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을 보내면서 시골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어요. 개들도 너무 좋아했는데, 꼭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면서 변을 봤어요. 그런 모습을 보는 저도 덩달아 행복하고요. 마침내 일상의 질이 훅 올라간 것 같았지요.”
그곳에서 2년간 무탈하게 살았는데, 2022년의 집중호우가 그 집을 나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연일 폭우가 쏟아지면서 마을 앞에 있던 교량이 두 동강 난 거죠. 사유재산이다 보니 복구도 바로 안 되고 집에 비는 흘러내리듯 해 새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쉽지 않았어요. 개가 두 마리라고 하니 집 망가진다며 받아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집을 지은 건 아버지 덕분이었어요. 제주도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살고 계시던 터라 집 짓는 것도 방법이지 싶으셨던 모양이에요.”
“서울을 떠나는 건 비유하자면 퇴사 같은 거예요. 해보기 전까지는 막막하고 아득한데, 막상 결단하고 나면 이내 새로운 챕터가 열리지요. 지평에서 살면서 하나 배운 게 있어요. ‘나를 아무 데나 던져놓는 것에 대해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구나.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구나’.막다른 길 같던 곳에서 인생은 또 계속되더라고요.”
지평에서 겪은 2년간의 주택살이 경험도 맷집처럼 든든한 내공이 되어 주었다. “서울을 떠나는 건 비유하자면 퇴사 같은 거예요. 해보기 전까지는 막막하고 아득한데 막상 결단하고 나면 이내 새로운 챕터가 열리지요. 지평에서 살면서 하나 배운 게 있어요. ‘나를 아무 데나 던져놓는 것에 대해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구나.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막다른 길 같던 곳에서 인생은 또 계속되더라고요.”
집을 지어 살거나 저 멀리 단독주택에 살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층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이런저런 생활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식탁 차리기부터 정원 가꾸기까지 다양한 집의 시간 중 내가 정말 좋아하는 기쁨은 어떤 것인지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 “20대 후반까지는 외로움을 많이 탔어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자책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저란 사람이 좀 더 선명하게 읽히더라고요. 집에 친구들이 오는 건 반갑지만 자정 전에는 가면 좋겠는 거예요. 부부싸움을 하고 우리 집에 오는 친구가 있는데, 아침 밥상을 차려주는 것도 쉽지 않고요.(웃음) 외로움을 타는 줄 알았더니 실은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어딘가에 속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하루하루 내 속도대로 살다 보니 생각만큼 외롭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꽉 차고 풍성해지는 기분이었지요. 집은 너저분하고 잡초는 몇 달째 안 뽑아 정글 같았지만 마음은 조용하니 편했어요. 인생에는 사람보다 큰 것도 있더라고요. 마을이나 자연 같은.” 4월의 어느 날 그녀는 SNS에 이렇게 썼다. “몇 초만 집 밖에 서 있어도 절대 인간만 바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도 창밖엔 흰나비 둘이 공중에서 짝짓기하느라 바쁘고, 그저께 우리 집에 들어온 나방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조금 더 안전한 구석을 찾아다니고, 황량함 걱정이 무색하게 자고 일어나면 풀과 나무는 쑥쑥 잘도 자라 있고, 비가 오면 그동안 어디 다 있었는지 지렁이들이 끙차끙차 기어 나온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비인간 동물들은 땅 밑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우리 주변을 쉴 새 없이 맴돈다.”
밖에서 본 외관. 설계는 이병엽 소장이 이끄는 바이아키텍쳐에서 맡았다. 단단하면서도 세련되고 다정한 분위기인데, 이는 이병엽 소장의 개인적 캐릭터와도 비슷하다.
그녀와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다 보니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던 치토와 계피는 제집에 누워 잠이 들락 말락이었다. 천창으로 쏟아지는 빛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북쪽으로 낸 창을 통해 보이는 국유림은 보디가드처럼 든든했다. 조용한 듯 단단한 그녀는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일에서도 졸업해, 이곳 가평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내 자식들도 그녀처럼 공간으로 자족하고, 땅 위에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시의 강퍅한 인심을 피해 가평에 마련한 콘크리트 집. 성전 같은 그곳에서 그들 세 가족은 오래오래 안전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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