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성의 DNA가 흐르는 도시
“서울은 조선 시대 이래로 나라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작은 면적의 도시가 주변으로 점차 확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서울입니다. 부산은 그 반대예요. 서서히 커진 게 아니라 급격한 인구 이동으로 형성된 도시입니다.” 2023년 부산 도시 브랜드의 총괄을 맡은 황부영 디렉터는 부산 도시의 특징이 역사적 고비의 순간마다 몰려든 다양한 사람의 집합에 있다고 말한다.
본래 부산은 부자 부를 써서 부산富山이라 썼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가마솥 부를 쓴 부산釜山으로 바뀌었다. 이름을 바꾼 후, 부산은 여러 의미로 들끓는 가마솥 같은 뜨거운 세월을 보냈다. 조선 시대만 해도 부산은 해안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왜구가 뱃머리를 들이밀며 찾아오는 곳이었다. 당시 조선은 왜구의 침략을 방지하고자 지금의 삼포를 개방했으나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개항지 부산은 왜인들이 살며 무역하는 포구 역할과 일본 사신이 한양으로 가기 전 상륙하는 도시로 자리 잡았다. 한국전쟁 때는 총포를 피해 내려온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다른 언어를 쓰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좋든 싫든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비극적 순간마다 최전선 역할을 하던 부산은 역설적으로 부산만의 풍광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다양한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삶의 방식을 부산이라는 새로운 터전에 풀어놓았다. 조선방직 공장 노동자가 즐겨 먹던 낙곱새볶음,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밀면, 부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돼지국밥이 부산이란 거대한 밥상 위에 차려졌다. 음식 외에도 각종 건축물이나 도시 풍경 또한 여러 형태와 자재로 뒤섞였다. 해방 이후 일본이 남기고 간 주거와 항만은 부산 시민의 손길이 닿으며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부산스러운 인상을 만들어냈다. 남겨진 것을 허물기보다 활용하는 태도는 이후 다양한 근현대 건축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이와 맞물려 발달한 토목 기술은 해안의 대규모 매립을 가능하게 만들어 바다와 산의 지분이 높고 사람이 살 땅이 좁은 부산의 지리적 단점을 보완하는 데 일조했다. 덕분에 토박이와 토박이 아닌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게 된 부산은 이후 도로 및 교통 기술 발달과 삼포지향三抱之鄕이라 불리는 부산의 자연 풍경을 보다 많은 이에게 알릴 수 있는 접근성을 지니게 됐다. 사람이 모여들자 문화가 피어났다. 아트부산,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세계적 문화 예술 축제가 도심을 수놓으며 부산 시민 수에 맞먹는 연간 누적 30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우뚝 섰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어렴풋하게 들어본 부산의 이야기다.
이즈음에서 <행복>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면 철저한 계획보다는 우연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부산이 세계적 도시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힘의 원천에 대해 말이다. 부랴부랴 짐을 싸서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부산을 지탱하는 이들에게 그 이유를 듣기 위해서.
“부산의 문화는 역사적 선형성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아요. XY 좌표가 럭비공처럼 튀어서 섞인 것에 가깝죠.” _오초량 최성우 대표
“새로운 문화를 빠르게 수용하면서도, 지역 고유의 정서와 서사를 간직하고 있어 실험성과 진정성이 공존할 수 있는 예술적 환경이 형성된다고
생각해요.” _조현화랑 주민영 대표
부산 근대 역사를 머금은 복합 교육 문화 공간 오초량은 역사의 아픔이 담긴 곳이지만, 오초량 최성우 대표는 건물의 의미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봤다. 적산 가옥이라는 외피를 벗겨보면, 그곳에는 세월을 보낸 부산 사람들의 손자국과 삶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알기에 휘몰아치는 도시 개발의 풍파 속에서도 건물을 지켜내고자 분투했다. 그렇게 지켜낸 집을 모두의 공간으로 개방하고, 사람이 살던 곳을 여러 가지 문화 활동으로 채워 넣었다. 부산 달맞이길에 자리한 조현화랑은 주변 자연경관을 잃지 않으며 예술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주민영 대표는 로컬 브랜드와의 지속적 협업 등 오늘날 갤러리의 역할에 대한 조현화랑만의 방식을 그려가고 있다.
“옛날부터 새로운 문물은 항구로 들어왔잖아요. 스페셜티 커피의 부흥이랄까. 이것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던 것도, 새로운 맛을 받아들이고 정보를 함께 나눠 커피 열풍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도 이런 특징이 이유라면 이유 아닐까 싶어요.” _모모스커피 이현기 대표
지역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 새로운 문화의 싹을 틔운 로컬 브랜드도 있다. 글로벌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모모스커피의 이현기 대표는 부산의 개방성이 낯선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었다고 말한다. 2019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 전주연 대표의 삶은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꿈을 찾고, 성장 기반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태어난 땅이 주는 안정감을 토대 삼아 꿈을 펼치는 빈티지 가구 편집숍도 있다. 해운대에 자리한 에임빌라는 비단 빈티지 가구 편집숍에 머물지 않고, 가구를 활용한 다채로운 전시를 기획하며 부산에서 자신만의 관점과 안목을 유지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관광객 중 안토니오 가우디 건축물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이 60%를 차지한다고 해요. 저의 건축물도 그렇게 부산의 마중물이 되고,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되는 것을 목표로 지금처럼 작업하려 합니다.” _PDM파트너스 고성호 대표
여러 문화가 뒤섞여 들끓던 부산이란 도시를 묘하게 닮은 두 사례도 있다. 복합 문화 공간 에케의 이효진 대표는 든든한 동료인 동시에 친구의 브랜드, 자주 찾던 브런치 레스토랑, 좋아하는 일식당, 건물을 설계한 건축 사무소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연을 맺어온 사람들의 삶을 공간 속에 넣었다. PDM파트너스의 고성호 건축가는 성림목장을 과거 목장이던 시절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기억이 쌓일 수 있는 건축을 위해 목장의 원형은 보존하면서 나머지 공간은 철거 후 주변 환경을 복원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분야도 상황도 전혀 달랐지만, 어쩐지 부산을 부산답게 만드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뚜렷해진 기분이 들었다.
과거 부산은 역사적 맥락, 지정학적 특수성, 그리고 문명 기술의 발달이라는 재료를 거대한 가마솥에 넣고 끓여 만들어졌다. 마구잡이로 뒤섞여 형성된 문화가 부산을 지금까지 숨 쉬게 했으며, 그 계보는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글로벌 도시 부산을 부산답게 하는 것, 그것은 부산이란 도시에 흐르는 이질성이라는 DNA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