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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전시 건축가 조병수 〈Nobody Owns the Land: Earth, Forest, Mahk〉
땅의 건축가 조병수가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전시 〈MoscaPartners Variations 2025〉 중 매년 건축가 한 명을 대표 작가로 선정해 열리는 주제전에서 땅과 숲, 그리고 막에 대한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막과 비움’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미학을 건축 안팎으로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34년간 이어온 긴 여정의 한 자락이 오는 4월, 밀라노의 역사적 건축물인 팔라초 리타의 명예의 안뜰에 펼쳐진다.

작업실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 한국의 미를 탐구한 이 결과물을 4월, 밀라노에서 만날 수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꾸준히 가지를 뻗어나가듯, 건축가 조병수는 대학원 시절부터 뚝심 있게 ‘땅의 건축’을 탐험해왔다. 땅의 이야기는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는 건축 부문 큐레이터를 맡아 전 세계 24개 도시를 상징하는 집을 두고 그곳의 땅에 비치는 태양 빛을 실시간으로 표현한 전시 〈하나의 지구, 하나의 태양〉을 기획했고, 2010년 땅집으로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했을 때는 땅집을 지으며 퍼 올린 흙으로 인스톨레이션 작품을 만들어 수상을 기념했다.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는 전라도 해남, 경기도 파주 등 전국의 네 지역에서 흙을 퍼 와 전시하기도 했다. “저는 늘 땅을 존중하는 태도로 땅과 관계를 맺으며 그 기운과 더불어 사는 건축을 작업해왔습니다. 한국의 옛 건축이 그러했던 것처럼요. 서양의 건축이 바로크양식, 로코코양식 등 눈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면 우리의 건축은 관계 속에 있습니다. 땅과 하늘 그리고 자연과 관계 맺으며 소박한 건축물을 짓고, 이를 주변과 함께 경험하면서 인식하죠. 막과 비움으로 정의되는 한국적 자연스러움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으나 그마저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여유와 넉넉함, 백자와 분청에서 느껴지는 정서처럼요.”

모스카파트너스의 설립자인 카테리나 모스카Caterina Mosca는 건축가 조병수의 이러한 생각에 주목해 그를 이번 전시에 초청했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다. 모스카파트너스는 2014년부터 매년 전 세계 대표 건축가 한 명을 초청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전시를 열고 있다. 그간 디에베도 프란시스 케레(2016),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2017), 페소 본 에릭사우센(2019), 아이레스 마테우스(2021) 등 세계적 건축가가 참여했다. 올해의 주제는 ‘이주(Migration)’. 서로 다른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팔라초 리타 안뜰에 선보일 인스톨레이션. 대리석 바닥 위로 살짝 띄워 올린 구조물에 붉은 흙을 쌓는다. 관람객은 이곳을 맨발로 자유롭게 거닐고, 기대앉거나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다.이에 건축가 조병수가 화답하며 준비한 전시는 〈Nobody Owns the Land: Earth, Forest, Mahk〉. 그는 이번 전시를 아직 해외에서는 생소한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해 소개하는 기회로 삼았다. “서양에서는 한국 공예와 작가에 관심이 많지만, 그 본질에 있는 미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자연스러움, 검박하고 질박한 정서 등 몇몇 단어로 표현할 뿐이죠.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모습을 알리고,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팔라초에 입장한 관람객이 가장 먼저 만나는 장면은 안뜰을 뒤덮은 붉은 흙이다. 대리석 바닥에서 30cm가량 띄워 올린 직사각형 구조물 위로 흙을 켜켜이 쌓았다. 관람객은 신발을 벗고 흙을 밟으며 걷고, 앉거나 누워서 각자 시간을 보낸다. 땅과 대화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명상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시는 흙의 또 다른 결과물인 페인팅과 막사발로 이어진다. 안뜰을 둘러싼 회랑에는 전통 단청 재료인 돌가루와 흙가루를 캔버스에 칠하고 아래로 자연스레 흐르도록 해 완성한 작품을 수평으로 길게 이어 매달고, 다른 한쪽에는 막사발의 불완전함과 유연성을 표현한 그림, 현대적 방식과 해석을 담아 직접 만든 막사발을 전시해 한국의 미학을 실재하는 오브제로 보여준다. “이 막사발은 가장자리에 흙물이 이슬처럼 맺힌 흔적이 있어요. 틀에 흙물을 붓고 굳히다가 뒤집었을 때 흘러내린 것을 그대로 두어서 생겨난 거죠. 대부분은 이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어냅니다. 하지만 이 자체로도 아름답다 보고 즐기는 것에 한국의 미학이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편안하고 거스름 없이 바라보는 태도인 거죠.” 

회랑에는 ‘숲’ 연작과 전시 제목이자 핵심 메시지 ‘땅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를 전시한다.

‘숲’ 연작의 뒷면에는 전시 제목인 ‘Nobody Owns the Land’가 영문과 한글로 함께 쓰여 있다. 조병수는 “각자는 자연환경만큼이나 문화도 언어도 다르지만, 흙을 매개로 그 다름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고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떠올리며, 어차피 우리도 이 땅을 잠깐 점유했다가 떠나는 존재이니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메시지를 담아 이 문장을 썼다.

흙에서 시작해 흙으로 마무리되는 전시는 막사발처럼 뭉근하게 한국의 미를 전한다. 안뜰은 첫날엔 중앙에 한 사람씩만 걸어가게 하고, 둘째 날은 두 사람, 셋째 날은 세 사람, 이후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시나리오를 짰다. 관람객이 흙을 경험하는 세리머니얼한 장면을 영상으로 담고, 관람객이 땅을 대하며 느낀 감상이나 생각도 기록할 예정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이 모여 이 인스톨레이션이 비로소 완성된다. 땅이 만들어내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전시는 4월 6일부터 13일까지 밀라노 팔라초 리타에서 만날 수 있다.

건축가 조병수가 직접 빚은 막사발. 가장자리에 이슬처럼 맺힌 부분을 다듬는 대신 그대로 두고 즐기는 것에 아름다움을 대하는 한국적 태도가 담겨 있다.
조병수〈Nobody Owns the Land: Earth, Forest, Mahk〉
기간 4월 6일(일)~13일(일)
장소 Cortile dOnore, Palazzo Litta, Corso Magenta 24, Milano
전시 문의 @mosca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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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기태 기자 | 자료 제공 조병수건축연구소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