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에는 석양을 보며 족욕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다.
오바마小浜는 3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인구가 사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마을이다. 아시아 대륙과 가까워 일본이 오랫동안 쇄국정책을 펼치던 시기에도 무역항으로 개방한 곳이다. 일본이 습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오바마는 여름에도 제법 선선하다. 마을은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 마을 뒤쪽에 자리하는데, 원시림이 나무로 된 터널 같은 모습이다. 길가에는 오랜 전통을 지닌 료칸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나가사키 짬뽕 못지않게 오바마 짬뽕으로도 일본에서는 유명한 편. 돼지 뼈 국물의 향이 굉장히 강한 나가사키 짬뽕과 달리 오바마 짬뽕은 해산물과 풍부한 채소로 육수를 만들어 좀 더 순하고 검박한 맛으로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쉬지 않고 보글보글 끓는 온천이다. 1천3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용했는데도 마르지 않을 정도로 온천수가 풍족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에서 가장 긴 족욕탕인 핫 풋 105도 보유하고 있다. 105는 족욕탕의 길이 105m를 뜻한다. 족욕탕에 앉아 발을 담그면 눈앞에는 바다가 펼쳐진다. 일몰을 감상하고 한갓진 온천 마을을 여유로이 거닐 수 있다. 마을 곳곳에는 지면을 뚫고 올라오는 온천 증기를 이용해 채소나 달걀, 여러 해산물을 찜통에 넣어 쪄 먹는다. 나가사키현 내에서는 오바마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다. 풍족한 물처럼 마을 사람들도 후한 인심으로 방문객을 환대한다.각종 해산물과 채소를 넣어 쪄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래된 대목장의 집을 수선해 만든 카리미즈안. 1층은 디자인 숍, 2층은 카페로 운영한다.
허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부한 재료를 가진 마을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바로 인구 이탈이다. 일본 또한 일자리나 기회를 찾아 지역에서 도시로 줄줄이 이동하는 현상은 막을 수 없었다. 여느 도시가 그렇듯 청년들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온천의 열기는 쉼 없이 끓고 있었지만, 마을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의 생기는 조금씩 사라지는 듯 보였다.
그런 오바마에 최근 청년과 이주민이 들어오고 있다.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나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군도 다양하다. 젊은 디자이너부터 시작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유명 셰프들도 오바마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오바마로 몰려오는 중이다.
시작은 2020년 세상을 떠난 유명 건축가 겸 디자이너 시로타니 코세이城谷耕生였다. 킨토, 무인양품 등과의 협업으로 잘 알려진 그는 운젠시에서 태어나 이탈리아로 건너가 밀라노의 건축·디자인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엔초 마리,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등과 공동 작업을 하며 명망을 높인 그는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일과 삶의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을 이어가고 싶었다. 귀국 비행기 티켓을 대도시가 아닌 오바마행으로 끊었다. 그곳에서 필요한 만큼 일을 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며 자연경관을 즐기고 활용하는 삶을 실천했다. 낡고 오래된 마을을 살기 좋은 마을로 바꾸는 지역 재생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규슈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품고 있는 지역이다.
그가 직조한 삶의 패턴을 보고 여러 사람이 오바마로 이주했다. 마을에 다시금 활기가 솟아났다. 중국과 대만 및 한국의 여러 지역 관계자 또한 그 비결을 파헤치고자 오바마를 찾았다. 가리는 것 없이 디자인하던 시로타니 코세이는 오바마에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기에 이르렀다.
故 시로타니 코세이와 함께 오바마의 지역 재생 과정을 이끌고, 현재는 지역의 상생을 모색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카리미즈안, 카리미즈 서울
옥은희 대표
대학 시절, 도예가 옥은희는 조형 도자보다는 쓰임이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문양을 그리고 싶었으나 한국에서는 배울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일본 아리타로 날아가 배움을 이어갔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오바마라는 지역을 알게 됐다. 처음 본 오바마의 풍경은 생경했다. “길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어요. 아이들은 증기 주변에 서서 몸을 녹이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각자가 가져온 찜 바구니에 굴이나 게와 채소를 넣어 쪄 먹고 있었어요. 바다를 보며 족욕하는 모습도 생소하지만 동시에 부러웠어요.”카리미즈안과 카리미즈 서울의 대표 옥은희 작가.
그가 살던 아리타와 오바마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아리타는 기법과 전통을 보존하고 명맥을 이어가기 때문에 담이 높고 교류가 적은 동네였다. 오바마는 관광지다 보니 누가 와도 반갑게 맞이하는 환대가 도시에 배어 있었다. 그것이 이방인의 눈에 오바마 지역만이 지닌 매력으로 비쳤다. 자연스레 오바마로 이주하게 됐다. 그곳에서 남편 시로타니 코세이를 만났다.
2010년 남편과 함께 대목장이 지은 집을 수선해 카리미즈안刈水庵을 열었다. 오바마가 지닌 장점을 알리고 이 지역이 언젠가 떠날 곳이 아닌 와보고 싶은 곳, 살아도 좋은 곳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보존하는 형태로 재수선한 카리미즈안은 디자인 숍이자 카페로 운영했다. 1년에 네 차례씩 디자인 마켓을 열었다. 감각적이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 제품, 오래됐지만 전통이 살아 있는 좋은 물건,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요리 등을 내놓았다. “디자인만 좋은 제품이 아니라 지역에서 나는 물건,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어요.” 지역 장인들이 만든 메이드인 나가사키 제품을 비롯해 시로타니와 옥은희 부부가 엄선한 고퀄리티 디자인 제품을 판매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조형 도자보다 쓰임이 있는 도자를 만들기 위해 아리타로 유학을 떠난 옥은희 작가의 작품.
옥은희 작가는 그림을 ‘잘’ 그리려 하지 않는다. 조금 삐뚤어져도 힘을 뺀 채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인다. 삶의 여유를 추구하는 오바마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닮아 있다.
지역의 가치를 인정받은 듯, 외지인이 몰려오자 오바마에 살던 사람들도 일상의 가치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한때 사라졌던 지역의 축제도 다시금 성행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오바마에서 가업을 이어받은 2세, 3세 친구들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져요.”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나 환대하고 협력한다. 레스토랑을 새로 열고 싶어 하는 이주자가 찾아오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다. 분주한 하루를 마친 후에는 석양을 바라보며 족욕을 즐긴다. 생경하면서도 부러워하던 장면을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이 됐다.
독자 여행
일본 오바마 지역의 외피뿐만 아니라 상생과 관용의 정신이 깃든 그 내부를 경험할 수 있는 여행에 동행하세요. 카리미즈안 옥은희 대표가 멘토이자 기획자로 함께합니다. 5월 21일(수) ~ 24일(토) 일정으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클릭)를 참고하세요.
케시키 디자인 스튜디오
후루쇼 유다이·후루쇼 유이
디자이너 후루쇼 유다이古庄 悠泰는 규슈 대학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배우던 무렵, 시로타니 코세이의 생활상을 우연히 접했다. “바다 앞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스튜디오에 지인들을 초대해 바다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디자이너가 이렇게 여유롭고 즐거운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후 2013년 시로타니가 운영하는 카리미즈안과 스튜디오 시로타니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2016년 오바마에 그래픽디자인 사무소 케시키 디자인 스튜디오keshiki Design Studio를 열었다. 왼쪽 후루쇼 유이와 후루쇼 유다이 부부. 오른쪽 오바마 사람들의 매력을 전하기 위한 오바마 미트 업 가이드를 만들었다.
그는 오바마의 매력을 ‘작은 것의 풍요로움’ 그리고 ‘사람의 다양성’이라고 표현한다. “오바마는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남북 2km도 안 되는 지역에 온천가, 상가, 주택, 자연이 뒤섞여 있어요. 거리를 걷거나 가게에 가면 자연스레 대화를 하게 되는 형태죠. 사람과의 연결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작은 크기에서 느껴지는 삶의 풍요로움. 오바마에 최근 이주자가 늘어나는 건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요?”지역 상인과 협업한 제품 패키지 모습.
일러스트레이터 후루쇼 유이古庄 結는 시로타니 코세이가 만든 카리미즈안을 종종 방문하는 외지인 중 하나였다. 쉬는 날이면 자주 찾은 마을에서 한번 살아볼까 결심해 오바마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일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바마의 가게와 료칸 등에서 의뢰받는 일이 많았다. “디자인이나 일러스트에 비용을 지불해 좋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인식이 오바마 지역에 녹아 있었어요. 오바마는 작은 곳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깝고, 그로 인한 따뜻한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메지로 크라프트
야마자키 키슈·야마자키 카쓰미
메지로 크라프트의 야마자키 키슈山﨑超崇는 고교 졸업 후 측량과 부동산 관련 일을 하다 디자인 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시로타니 코세이를 만나 오바마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스튜디오 시로타니에서 그래픽, 프로덕트, 인테리어, 상점, 점포, 주택 설계 건축 등을 하며 지역민과 협업하던 그는 이후 오바마에서 메지로 크라프트Mejiro Craft를 설립하고 나가사키현 내 지역민을 중심으로 빈집, 자연환경 조사, 상업 점포 설계, 주택, 가구, 프로덕트, 마을 만들기, 브랜딩, 지역 투어 등을 해왔다. “오바마는 풍부한 자연환경에서 길러진 ‘다양성’이 있어요. 바다와 산, 온천 등 풍부한 자연과 잘 어우러지며 지혜롭게 생활해온 선인들이 있었기에 오바마 거리는 다양한 교류와 협력이 일어나는 풍요로운 삶의 장소가 됐죠. 시로타니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만든 오바마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저 또한 잘 계승하고 싶어요.”디자이너 야마자키 키슈와 텍스타일 작가 야마자키 카쓰미.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텍스타일 작가 야마자키 카쓰미山﨑香澄는 북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누리던 한갓지고 여유로운 일상을 고국에서도 이어가고 싶었다. 귀국 후 작업 공간이 딸린 집을 찾던 중 카리미즈에서 주최한 ‘카리미즈 디자인 마켓’의 출점자 제안을 받았다. 오바마를 방문해 시로타니 코세이와 주변 관계자, 지역 주민이 만드는 분위기를 보고 이곳에서의 삶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텍스타일 관련 제조나 작업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남편 키슈와 함께 메지로 크라프트의 인테리어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 행복으로 떠나요 오바마의 라이프스타일을 빚어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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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서부에 자리한 운젠시에는 어딘가 익숙한 이름의 마을이 있다. 오바마다. 이름은 익숙하나 지역에 대한 정보는 생소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매력이 있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은 물론, 끝없이 솟아오르는 온천 또한 매력이 넘친다. 그리고 사람이다. 오바마는 빽빽하게 채워진 도시의 스케줄표에 적을 수 없는 여유의 시간이 틈입해 있다. 〈행복〉이 작은 마을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오바마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크리에이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