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st(Beauty and Danger)’, acrylic on canvas, 72.7×116.8cm, 2024
지난 전시 자료에서 “텍스트가 작업의 시작을 결정한다”라는 작가님의 글을 읽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번 표지 작품 ‘Dear’에도 ‘Wendy’라는 텍스트가 제목처럼 그려져 있어요. 텍스트가 음하영 작가의 작품을 말해주는 열쇠인가요?
사실 작업의 시작이 텍스트이긴 하지만, 그 텍스트가 제 작품을 규정하지 않아요. 제가 스팸 메일 구독자라 작업실에 나와 제일 먼저 스팸 메일을 읽거든요. 주로 외국에서 온 것이 많은데,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형태로 먼저 다가와요. 그런데 그 단어들이 묘하게 예뻐요. 참 노력해서 고른 단어 같거든요. 균형도 조형성도 좋고요. 물론 상업적 마케팅이겠지만 제게는 그게 뭔가 정서 같은 걸로 느껴졌어요. 작품 ‘Dear’는, 제가 이 그림을 시작할 즈음 <피터팬> 원서를 읽고 있었는데, 웬디의 풀 네임이 나오더라고요. Wendy Moira Angela Darling(표지 작품에 이 텍스트도 등장한다). 어감도 좋고 따뜻해 보이고, 웬디 방에 뭐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그래서 시작했는데, 그림이 진행되면서 제 감정도 그림도 계속 바뀌더라고요. 어느 날은 집에 있는 딸내미 같았어요. 열 살인데, 주말이면 거의 작업실에 같이 나와서 그림 그리고 놀아요. 근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좀 무서워요.
얘가 참 나랑 비슷하구나. 그림 그리면서 그런 걸 부쩍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서 작품 제목이 ‘Dear’죠. 음… 한강 작가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님이 “딸은 나를 넘어섰기 때문에 내가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이야기에서 ‘친애하는’이라는 건 저런 느낌이겠구나 싶었죠. 이 작품의 제목을 지을 때 이 아이는 친애할 수밖에 없는 존재구나, 그런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언어는 기호이며 약속이잖아요. 작가님은 텍스트가 작품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감상하는 사람은 그림 속 텍스트의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되짚게 돼요.
저는 스팸 메일 문구뿐만 아니라 듀플로(유아용 블록)에 적힌 단어, <피터팬> 대사, 뉴스에 보도된 정치인의 대화 등 다양한 텍스트에서 작업을 시작해요. 하지만 그 텍스트가 제 그림 속 이미지를 지시하지 않는 건 분명해요. 의미를 기록하는 수단을 넘어선다고 봐야죠. 예를 들어보자면 ‘Dui’라는 이름의 작품들이 있는데, 원래 그 단어의 뜻이 술이나 약물을 먹고 운전한다는 되게 안 좋은 거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니까 ‘듀이’라고 아주 귀여운 어감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런 지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더더욱 텍스트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 거고요. 감상자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도 재미있죠.
‘DUI(Dual Perspective)’, acrylic on canvas, 112x145.5cm, 2024
“어린아이와 어른 사이에 위치한 화풍을 구사하려 한다.” 이런 말도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작품을 동화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제 작업이 동화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대신 아이들 그림에 놀라긴 하죠. 애들은 그림을 놀이로 생각하잖아요.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워요. 뭘 의도하지도 않고요. 저는 그 나이브함, 그렇게 계속 바뀌는 과정이 좋아요. 제 그림도 그러면 좋겠고요. 그날그날의 감정에 충실한 시간이길 바라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흔적이 남는 거죠.
흔적이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작품 속에 그리다 지운 흔적이 많아요.
음… 지우는 데도 저만의 기준이 있어요. 우아함. 저는 늘 아름다움의 그 다음 버전이 뭔지 고민하는데, 그게 우아함 같아요. 우아함은 뭔가 좀 빈 구석, 공허한 감정과 함께 있는 것 같고, 아름다움보다 사람 마음에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그 우아함이라는 기준으로 ‘이건 너무 많아’ ‘이건 너무 심심해’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덧그리고 또 지우다 보니 레이어링이 되는 거죠. 그런데 예전엔 그 지워짐이라는 행위에 좀 집착한 것 같아요. 평론가든 관객이든 누군가의 이야기에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 요즘엔 예전보다 지우는 게 줄었어요. 좀 더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생각하니 지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남길 줄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이번 개인전의 제목도 예요. ‘여운 있는 우아함’ 정도 되겠네요.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감정을 작품에 담고 싶어 하는 음하영 작가의 정서적 여정, 그 흔적.
이번 개인전의 부제가 ‘일상과 상상의 교차점’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도 특별한 두 단어를 끌어왔네요.
음… 집, 작업실, 집, 작업실이 제 루틴이에요. 이렇게 단순한데도 하루하루 저를 막 흔드는 일이 이렇게 많다는 게 신기해요. 사람들은 일상이 늘 단조롭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제겐 이 단조로운 루틴이 공상과 사유의 시간을 줘요. 아내가 저보고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음… 맞는 말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작업실 위쪽에 있는 편의점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물건 사는 초등학생을 보면 쟤는 수학을 잘할까, 영어를 더 잘할까, 엄마나 아빠 중 누구 얼굴을 닮았을까 상상해요. 매일 약주 드시는 할아버지를 궁금해하고요. 찬바람 쌩쌩 부는 저 사람은 어떤 집에 살까 생각하죠. 그렇지만 묻지는 않아요. 그렇게 한 발짝 떨어진 관찰자가 되어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해요.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단조로운 루틴이 제게 오히려 공상과 사유의 시간을 허락한 거죠. ‘과잉된 상상력을 선물받은 삶’이라고 할까. 그게 작품 속에 담기는 거고요. 관람객에게 좀 더 친숙하라고 갤러리에서 ‘일상과 상상’이란 부제를 붙였는데, 그것도 좋아요. 제가 말하는 ‘The Lingering Grace’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그런 느낌이겠다 싶거든요.
‘마음속 중심이 이동하는 정서적 여정’이란 인상적 문구를 전시 소개 자료에서 발견했어요.
음…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아내와 싸운 날이라고 쳐요. 저는 그 감정을 작품으로 끌고 와서 끝으로 몰아가더라고요. 그런 느낌이 작업에 실리기를 원하고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감정을 작품에 담아내면서 제 마음속 중심이 서서히 이동하는 걸 느껴요. 제 작품을 보는 이들은 그 정서를 또 다르게 받아들일 거고요. 저는 그런 게 흥미로워요. 오랜 친구든 가족이든 우리는 그 사람의 정서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잖아요. 그것처럼 그림도 성격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내 그림들이 하나하나 다른 소리를 내면 좋겠다, 나이 들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걸 정서적 여정이라 표현한 거예요. 그 여정을 좀 균일하게 끌고 가고 싶다, 이게 우아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나이 드는 게 너무 좋네요.송파구 방이동의 음하영 작가 작업실. 그에게 오히려 공상과 사유의 시간을 허락하는 ‘단조로운 루틴’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판화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과 순수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 및 매체를 다루는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보그 코리아>를 통해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경력을 시작한 그는 영국 레모네이드 일러스트레이션 에이전시의 최초 한국인 아티스트로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국제적 활동을 펼쳤습니다. 현재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길이구갤러리 전속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음하영 개인전
기간 2월 28일까지
장소 이길이구 갤러리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일·월요일, 공휴일 휴관)
문의 02-6203-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