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출신 현대 미술가 케이티 패터슨. 과학, 기술, 자연, 시간, 그리고 우주를 주제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대표작으로는 ‘미래 도서관(The Future Library)’ ‘The Dying Star Letters’ ‘All the Dead Stars’ ‘Timepieces’ 등이 있다. 그는 설치 미술, 조명, 사운드,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주와 인간의 연결성을 탐구한다. 터너상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여러 국제 예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몽상가 케이티 패터슨이 상상한 미래 도서관
저는 10여 년 전부터 ‘미래 도서관’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품었습니다. 미래의 책을 위해 나무를 심는다는 아이디어는 나무의 나이테와 책의 장(chapter)을 연결하는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는 나무가 공기와 물처럼 작가의 생각을 흡수하고, 나이테가 책의 장이 되어 수십 년 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상상에 그칠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 비전은 공공 예술 위원회 시추에이션Situations과 비에르비카 웃비클링Bjørvika Utvikling의 요청으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슬로 스페이스Slow Space’라는 공공 예술 작품 시리즈의 하나로 오슬로 항구 지역에 설치할 작품을 의뢰했습니다.
도서관이 숲의 일부로 자리 잡아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오슬로시가 선물한 노르마르카 숲에 가문비나무 1천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 나무들은 1백 년 후 최소 3천 권의 선집을 인쇄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저는 노르웨이가 미래 도서관을 위한 최적의 장소라 확신했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나라는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과 생태 그리고 미래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래 도서관 트러스트(Future Library Trust)’를 설립하며, 첫 번째 작가로 마거릿 애트우드를 초대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케이티 패터슨이 아틀리에 오슬로와 룬 하임 건축가와 함께 설계한 침묵의 방. 내부로 들어가면 작가 1백 명의 원고를 보관할 수 있는 유리 서랍이 있다. Katie Paterson, Future Library, 2014~2114, Silent Room.
침묵의 방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옆에 있는 비에르비카에 위치한 오슬로 중앙 공공 도서관 건물에 자리한다. Katie Paterson, Future Library, 2014~2114,. Silent Room.
침묵의 방이 품은 의미
노르마르카 숲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어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뉴멕시코의 광활한 평원처럼 넓지는 않지만, 자연의 깊이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도시의 소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자연의 소리만이 숲을 채웁니다.
매년 이곳에서 선정작 발표 세리머니를 진행합니다. 작가는 자신이 쓴 원고를 직접 숲으로 가져와 창의적 방식으로 발표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던 순간은 한강 작가의 세리머니였습니다. 그는 고향에서 커다란 흰 천을 가져왔는데, 이동 중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더러워진’ 천으로 원고를 감쌌습니다. 그 장면은 마치 결혼식과 장례식을 동시에 연상케 했습니다. 그의 연설 역시 강렬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2019년에는 한강이 다섯 번째 작가로 선정되어 자신의 미공개 원고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를 전달했다. Katie Paterson, Future Library, 2014~2114. Photo by Kristin von Hirsch, 2019
“(중략)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는 내가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쓰는 글이 잘 완성되기만을 바랐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아는 사람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나니까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동시대 사람들을 위한 편지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도 모르게 언어라는 것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글을 쓰고 있었다라고. 아마도 1백 년 뒤 미래 도서관의 책을 읽을 사람들인 거죠. 우리가 쓴 편지를 받아볼, 그리 다르지 않을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 그 신뢰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보면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일 수 있어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 그걸 또 넘겨받아서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설령 인류가 살아남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는 신뢰가 있는 거고. 저도 그 신뢰를 신뢰합니다. (후략).”
_ 한강의 세리머니 연설 중
이 세리머니는 침묵의 방에 원고를 넣으며 마무리됩니다.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의 일부인 침묵의 방은 노르마르카 숲 인근에 위치한 데이크만 비에르비카Deichman Bjørvika 도서관의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틀리에 오슬로Atelier Oslo와 룬 하임Lund Hagem이 노르마르카에서 벌채한 나무를 사용해 약 1만 6천 개의 나뭇조각으로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또한 유리 서랍 1백 개를 설치했고, 각 서랍에는 작가의 이름과 기고 연도를 새겼습니다.
이곳은 2022년 개관한 이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세 살 된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가족을 만났습니다. 아이는 방 안을 기어다니며 탐험했고, “우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매우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침묵의 방은 이렇게 모든 이에게,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특별한 공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매년 작가가 원고를 전달하는 세리머니가 노르마르카 숲에서 개최된다. 이 행사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1백 년 후를 상상하며
현재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작가들이 원고에 지금 이 시대의 무언가를 담아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1백 년이 지나면 이 원고들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작가들이 쓴 원고가 무척 궁금합니다. 하지만 그 글을 읽고 싶다는 욕망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글을 읽는 순간, 이 프로젝트가 지닌 마법이 깨지고 무언가 소중한 것이 손상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미래 도서관은 단순히 도서관을 짓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이 숲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연의 소리와 숨결을 느끼고,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를 바랐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미래를 상상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할 기회를 제공하며, 우리가 자연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도록 돕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다행히 나무들은 지금도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매년 열리는 세리머니는 나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축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나무들이 별 탈 없이 계속 건강하게 자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