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스페인 리오하 테루아르terroir에서 발견한 혁신의 맛 The Land of Wine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 스페인. 그중에서도 최대 규모 와인 산지인 리오하Rioja에 다녀왔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시작된 6만 3593헥타르의 이곳에서는 혁신을 향한 열정이 가득 펼쳐지고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서 북쪽을 향해 달리자 드러난 망망대해 같은 빈야드vineyard,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장엄한 봉우리의 물결. 약 세 시간쯤 지났을까. 푸르른 풍경은 샌드스톤sandstone으로 지은 황톳빛 전통 가옥 파노라마로 뒤바뀌어 있었고, 마침내 첫 번째 목적지인 리오하 알타Rioja Alta 브리오네스Briones 마을에 자리한 산타 마리아 호텔Santa Maria Hotel에 도착했다. 16세기에 지은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이곳은 현재 리오하 전역에서 유일하게 미쉐린 키Michelin Key를 부여받은 부티크 호텔로, 첨단 시설과 서비스는 물론이고 매혹적인 건축과 인테리어, 그리고 이야기를 지녔다. 리오하에서 태어나고 푸에르토리코에서 자란 사업가 하비에르Javier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둥지를 틀고자 했는데, 그 결과로 리오하에 그와 그의 아내의 오랜 꿈이던 여행자를 위한 숙박업체를 세운 것이다. “리오하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작은 지역이지만 놀라운 잠재력을 지닌 곳입니다. 12개의 이크나이트ichnites(화석화된 공룡 발자국),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산 미얀 유소San Millán Yuso와 수소 Suso 수도원 등 다양한 유산이 있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스페인 와인 법에서 최고 등급인 DOCa(Denominación de Origen Calificada)를 부여받은 명산지로,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어요. 세계 어느 곳과도 대체 불가한 지역임은 틀림없습니다.”  

브리오네스의 비방코 박물관에서 바라본 전경. 우뚝 서 있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아순시온 가톨릭교회는 이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그 바로 옆에는 산타 마리아 호텔이 자리한다.


호텔이 자리한 브리오네스는 인구 7백 명에 불과하지만, 문화유산 등록 카테고리(Bien de interés Cultural)에 등재된 유적지이기도 하며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와인의 8천 년 역사를 다루는 비방코Vivanco 박물관과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아순시온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 가톨릭교회는 이곳의 상징이 되었다. “9년 전, 교회 앞에 도착했을 때 종소리를 듣고 즉시 매료되었어요. 무력감이 지배한 제 영혼에 한 줄기 빛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죠. 그간 들은 그 어떤 종소리보다 차분하고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바로 인근에 자리한 버려진 저택을 발견했는데, 아주 ‘특별한’ 호텔을 만들기에 이상적인 저택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챘어요. 의심의 여지가 없었죠.” 그렇게 전통 건축개조에 특화된 건축가 이그나시오 케사다Ignacio Quesada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사벨 로페스 비야Lopez Villa와 함께 객실 14개를 탄생시켰고, 모든 공간은 돌, 원목 따위의 자연에서 유래한 고귀한 소재를 통해 역사성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곳에 머물며 유독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이유다. 
이곳의 ‘히든 젬hidden gem’은 다름 아닌 지하층에 자리한 레스토랑이다. 와인을 만들고 저장하는 데 사용하던 와인 저장고와 와인 프레스를 복원해 레스토랑의 일부로 선보이고 있는 것. “지하 토양을 파낸 동굴인 와인 저장고는 리오하의 와인 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인데요, 높은 습도와 일정한 온도는 와인 제조 과정에서 와인을 숙성하는 데 적합해요. 그리고 저희는 이곳을 음식과 함께 인생과 우정을 나누는 곳으로 탈바꿈해 방문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기고자 했습니다.” 하비에르의 설명이다. 앞으로 행할 와이너리 여정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고조된 순간이었다.

지하층에 자리한, 과거 와인 저장고였던 칼라도스 레스토랑. 리오하 본토 음식을 선보인다.
스탠더드, 슈피리어, 딜럭스, 주니어 스위트룸, 베로네스로 구성한 호텔.
템프라니요, 그 너머의 맛을 찾아서
110월 초의 리오하는 최저기온 한 자릿수로 매일 크고 작은 비가 내렸고, ‘이 매서운 추위를 포도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궁금증이 생길 때쯤 웅장한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에브로Ebro강을 따라 약 62마일에 걸쳐 뻗어 있는 북부와 남부의 산맥은 북쪽 해안의 차갑고 비가 오는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종종 스페인 중부의 혹독한 기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리오하는 토종 포도 품종으로만 와인을 만드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한 곳이죠. 그리고 이곳의 다양한 토양, 기후, 고도는 매우 다양한 와인을 개발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특징은 우리가 리오하 와인 한잔을 마실 때 단지 와인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풍경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병에 담긴 ‘시간’을 마신다는 뜻이지요.” 그의 말대로 리오하의 대표 와인 산지인 리오하 알타, 리오하 알라베사Rioja Alavesa, 리오하 오리엔탈Rioja Oriental의 보데가에서 기후에 따른 차이점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오하 서부에 위치한 리오하 알타는 대서양 기후를 띠며 토양은 대부분 석회암이 섞인 철분이 풍부한 점토다. 다양한 고도로 인해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훌륭한 구조와 높은 산도를 지니고 있다. 한편 에브로강 북쪽 기슭에 자리한 작은 지역인 리오하 알라베사는 대서양 기후를 띠며, 세 지역 중 가장 습하고 서늘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와인은 보디감이 가벼운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동부 하위 지역의 리오하 오리엔탈은 지중해의 영향과 낮은 고도로 인해 기후가 훨씬 더 따뜻하고 건조하다. 주로 충적 토양으로 구성된 이 지역은 산도가 낮고 추출물과 알코올 함량이 높은 와인을 생산한다. 이처럼 리오하 알타와 리오하 알라베사는 기후, 토양 및 스타일 측면에서 품질 지향적 와인을 생산해 명성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리오하 오리엔탈은 평평한 지형과 따뜻한 기후로 인해 덜 주목받은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도 훌륭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 가르나차Garnacha가 번성한 곳이고, 그리고 단언컨대 가장 정겨웠다!

 호텔의 안뜰. 돌, 원목 등 자연 소재를 그대로 유지해 16세기 빌딩이 지닌 유구한 역사성을 느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곳의 대표 적포도 품종 ‘템프라니요Tempranillo’의 참맛을 깨달은 여정이기도 했다. 템프라니요는 일반적으로 블랙체리, 시가상자, 흑설탕, 무화과 향이 느껴지며, 피노 누아Pinot Noir와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의 중간 맛과 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급 템프라니요는 20년 이상 숙성할 수 있는 산도와 숙성력을 지니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강해진다고. “템프라노는 일찍(early)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조생종인 이 품종의 특징을 따른 이름입니다.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경우, 우아함과 산미가 특히 좋지요.” 로베르토의 설명이다. 그 외에 리오하에서는 가르나차, 그라시아노, 마주엘로도 주로 생산한다. 물론 화이트와 로제, 스파클링에 대한 전 세계적인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와인 애호가들이 더 가벼운 와인을 찾으면서 리오하의 와인 생산자들은 다시금 생산량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화이트 와인 품종인 템프라니요 블랑코Tempranillo blanco 같은 청포도 생산량도 확연히 많아짐을 알 수 있었다. “리오하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90%가 레드 와인이지만, 저희는 리오하의 화이트 와인이 이토록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라는 고메스 크루사도Gómez Cruzado 직원의 포부를 듣고 나는 리오하 와인의 미래는 과거와 현재보다 더 밝을 것임을 예감했다.


와인과 음식은 영원한 단짝, 리오하 가스트로미Gastronomy
미식의 향연이 펼쳐진 리오하의 와인 여정. 올리브 오일 공장 알마자라Almazara에서는 전통적으로 오일을 만드는 방법과 기계를 탐험하며 프리미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접했고, 버섯 뮤지엄 풍히투리스모Fungiturismo에서는 재배 방법을 배우는 동시에 최상 상태의 생표고버섯과 오이스터 머시룸을 맛보았다. 그뿐이랴. 타파스의 본고장인 카예 라우렐Calle Laurel에서 맛본 핀초, 랜드로버를 타고 보데가 레세아의 해발 600m 빈야드에서 먹은 마른 포도나무 가지에 불을 피워 구운 양갈비, 그리고 샤포 와인Châpeau Wines에서 베르무트와 페어링한 라 알라메다La Alameda 레스토랑의 주 메뉴인 애저구이(roasted suckling pig)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이 외에 가장 ‘리오하’다우면서도 창의적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네 곳을 소개한다.

소피타스Sopitas
동굴 같은 구조물 안에 자리한 독특한 레스토랑으로, 프라이빗한 룸이 있어 아늑하고 친밀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아르네도에 위치한 이 레스토랑은 마늘 수프, 로스트 키드 및 다양하고 신선한 현지 식재료를 사용한 스페인 전통 요리와 지역 요리를 맛볼 수 있다. sopitas.es


라 우에르타 비에하La Huerta Vieja
바스크와 리오하 요리의 전통에 뿌리를 둔 미식을 제안한다. 최고의 육지와 바다의 풍미를 결합하고 현대적 감각을 더한 30년 역사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비일상적인 맛을 일상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칸타브리아산맥과 이시오스 와이너리의 전망이 일품이다. lahuertavieja.com



아예가르Allegar
산타 마리아 호텔에 자리한 레스토랑. ‘접시를 깨끗하게 긁어내다’라는 뜻의 리오하 지역 단어에서 따온 아예가르는 강렬한 풍미와 트롱프뢰유가 가미된 리오하 요리의 새로운 해석에 초점을 맞춘 요리를 선보인다. 산 로렌소 버섯 육수 베이스의 트러플 라비올리, 비트 뿌리, 리오잔 케이크 타코를 함께 곁들인 숙성 갈리시안 쇠고기 스테이크, 우유에 적신 브리오슈 빵 토리드가 대표적 메뉴다. santamariabriones.com



룸브레Lumbre

룸브레는 셰프 세르히오 에르난도 디에스Sergio Hernando Diez가 이끌며, 리오하 전통 음식과 누벨 요리를 결합한 미식을 선보인다. 엄선한 제철 농산물과 주변 지역의 식재료를 사용해 보다 전위적이고 혁신적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과거 와이너리이던 곳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완성한 룸브레는 나무, 돌, 철과 같은 고귀한 재료로 꾸며 17세기 역사로 가득한 공간도 조명한다. lumbrerestaurante.com

 

취재 협조 TURESPAÑA(www.spain.info)


관련 기사 ▶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와이너리 10 기사 보러 가기

글 백세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