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역 인근 유동 인구는 하루 15만여 명, 일주일 동안 열리는 팝업 이벤트는 평균 60여 건. 성수동은 다이내믹한 도시 서울에서도 가장 역동적 신이 펼쳐지는 동네다. 건축가 김찬중이 이끄는 더 시스템 랩은 성수동의 대표적 랜드마크들을 설계하며 이곳의 지역성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들이 성수동에 지었거나 앞으로 지을 건축은 모두 12곳. 용도와 규모, 스타일, 어느 하나 겹치는 것이 없다. 사무실이 있는 우란문화재단은 공연장과 레지던시까지 갖춘 12층 규모의 복합 문화시설이고, 지난해 디올 성수 맞은편에 문을 연 탬버린즈 성수는 골조만 남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공간과 브랜드를 함께 각인시켰다. 젠틀 몬스터 사옥은 강렬한 비주얼로 인해 아직 완공 전임에도 벌써 입소문이 퍼졌다.
타임라인을 좀 더 앞으로 돌려보면, 이른바 자본이 몰리는 동네에는 항상 더 시스템 랩의 작업이 있었다. 도산공원의 폴스미스 플래그십, 한남동 오피스(한남대로에서 하얀 비정형 파사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곡 서울식물원까지. 그들은 플라스틱이나 패브리케이션처럼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유일무이한 형태를 짓고, 산업 재료인 콘크리트를 수공예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이렇게 역설적 방법론이 작동하는 것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재료와 구축법마저도 새롭게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에 없던 모습으로 탄생한 건축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도시의 랜드마크로 지속하게 된다. 해외 유수의 건축가가 한국에 지사를 내고 출사표를 던지는 이때, 더 시스템 랩이 이 발 빠른 흐름에 반응해 새롭게 보여줄 건축은 또 어떤 모습일까? 그들의 작업이 공존하며 더욱 역동적으로 변할 서울을 지켜볼 기회를 얻은 우리는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더 시스템 랩
건축가 김찬중과 스태프 60여 명이 함께하는 더 시스템 랩은 주택부터 미술관·공연장 등의 문화시설, 상공간과 대형 오피스까지 스케일과 용도를 광범위하게 확장하며 작업하는 사무소다. 새로운 기술의 건축적 적용을 중심으로, 현재는 환경적 효율성을 찾아나가기 위한 새로운 디자인 서비스를 모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마곡 서울식물원 온실,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하나은행 플레이스1, JTBC 신사옥,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등이 있다. thesystemlab.com
ⓒ김용관
우란문화재단
성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시설. 덩어리를 쌓아 올린 듯한 외관은 주변에 모여 있는 작은 집(공방)들의 스케일에서 비롯됐다. 급변하는 이곳에 매끈하고 거대한 자기 완결적 유리 건물 대신 작은 덩어리들이 집합한 건물과 골목길의 모습이 되어 성수동의 고유한 도시적 관계를 이어간다.
ⓒ김용관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울릉도 북면 절벽 끝에 위치한 리조트. 본래 주인인 송곳산의 장대한 ‘기氣’의 영역 안에 있기에 건물보다는 작은 오브제 느낌으로 산과 겸허히 만나고자 했다. 소용돌이처럼 휜 형상은 객실마다 전혀 다른 뷰를 제공하며, 구조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 세계 최초로 초고강도 콘크리트 현장 타설에 도전했으며, 이는 역설적이게도 울릉도라는 섬이 만들어준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윤준환
탬버린즈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
개념적으로는 용적률 0%인 이 과감한 건축은 순수한 구조체만 남기자는 탬버린즈와의 합의에서 시작됐다. 재봉틀 공장이던 건물의 거친 골조와 지하의 유리 박스(매장)라는 의외의 조합이 강력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기존 골조와 새로운 유리 박스 사이에 여유롭게 남겨진 빈 공간은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김용관
코너 50
성수동에 완공한 세 개의 코너 시리즈 중 하나. 오래된 공장 지대이던 성수동의 질감과 잘게 나뉜 덩어리감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오피스 건물을 지역과 밀착시키려 했다. 벽돌을 적층해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듯한 발코니가 포함된 공용 공간과 초콜릿 윈도로 정의되는 사무 공간으로 구성했다.
ⓒ홍성준
디에이치갤러리
현대건설의 홍보관인 동시에 주거 공간과 개인용 모빌리티가 혼성된 미래 상황을 예측하기 위한 실험체 성격을 지닌 장소. 로마의 판테온과 유사하게 건물 전체를 경사로로 감싸는 형식으로 지었다. 전체를 경사로로 구성했기 때문에 외관은 연속적 형태를 띠고, 내부에서는 도시 경관을 파노라마로 경험할 수 있다.
“모든 프로젝트는 저마다 나름의 해답이 있습니다. 그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건축의 본질인데, 저희는 그 프로젝트에 가장 최적화된 체계를 찾아내고 싶은 거예요.”
산업디자인을 하려다 건축을 공부하게 됐다고요. 건축의 어떤 점이 흥미로웠나요?
복합적인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느끼는 재미가 건축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은 괴롭지. 고통스러운 일이에요.(웃음)
더 시스템 랩은 개소 초기부터 새로운 것을 꾸준히 시도했습니다. 건축에 흔히 쓰지 않던 재료로 건물을 짓고, 산업의 제조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한강 나들목 터널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가 첫 작업이었는데, 플라스틱을 재료로 사용했어요. 당시에는 실제로 만드는 일보다 이것이 가능한지 증명하고 설득하는 데 훨씬 긴 시간이 걸렸어요. 그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러 소재와 구축법으로 건축을 만들고, 그 결과물이 앞으로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작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세대의 건축가가 더 잘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거죠.
프로젝트를 결정할 때 그런 부분을 시도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아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나요?
주어진 미션이 얼마나 흥미로운지를 봅니다. 이를테면 하나은행 삼성동 지점은 은행의 리테일에 대한 솔루션이에요. 요즘에는 대부분 모바일을 이용하다 보니 아무도 은행에 가지 않아요. 그렇다고 무작정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은행을 설계하는 미션을 받으면 ‘은행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지?’ 하면서 흥미가 솟는 거죠. 모든 프로젝트는 저마다 나름의 해답이 있습니다. 그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건축의 본질인데, 저희는 그 프로젝트에 가장 최적화된 체계를 찾아내고 싶은 거예요. 그 지점이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인지 더 시스템 랩의 작업을 보면 스타일만큼이나 새로운 공간 유형도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결과물에서 드러나는 모습보다는 어떤 문제를 풀어내는 해결사라는 것이 정체성이 되었으면 해요.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서도 우리가 잘하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에 맞는 해법을 새롭게 찾으려 하고요. 그래서 설계사무소이지만 포지셔닝은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깝습니다. 건축을 매개로 기획과 운영에도 관여하죠. JTBC 신사옥을 예로 들자면, 지금의 방송국은 프로그램의 성패를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서 스튜디오 개수를 산정하기가 어렵다고 해요. 그래서 유연성이 좋은 공장의 구조를 수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전환 가능한 공간을 설계했어요.
앞으로 10년 후 더 시스템 랩의 모습은 어땠으면 하나요?
지속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조직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는 건축이 대부분 어떤 현상이 일어난 후에 투입됐어요. 그러나 지구 환경에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건축가입니다. 환경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사람들이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 집의 역할 등 모든 것에서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날 거예요. 그때 적정선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거주 환경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가 어느 정도 규모나 여력이 된다면 그걸 먼저 준비하는 조직이 되려는 거죠. 결국 자본을 쥔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기에 연구도 중요하지만, 확산을 시켜야 해요. 요즘 가장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기사 전문은 <행복> 12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The Designer 도시에 상징을 심는 건축가 김찬중
-
아이코닉한 건축으로 도시에 형식과 의미를 뿌리내리는 건축가 김찬중과의 대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