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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제주 이석창 대표 조경은 경관을 만들기보다 ‘지키는’ 일
제주의 고유한 풍경인 밭담을 구현한 포도호텔부터 제주 습지를 닮은 정원으로 국내 생태 조경의 표준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핀크스 비오토피아, 그리고 인천국제공항, 서울식물원 식물문화센터 등 국가적 규모의 프로젝트까지. 조경가이자 생태 복원 전문가인 자연제주 이석창 대표는 식물에서 시작해 땅과 생물, 문화까지 고루 관계 맺는 경관을 만들어왔다.

이석창 대표가 가꾸는 7만m2 규모의 활오름 정원.그가 30년 넘게 키워온 식물 중 제주에 적응한 수종이 자라는 곳이다.
“제주에서는 여기서 가장 먼저 벚꽃이 피어요. 한반도에서 가장 빨리 봄이 찾아오는 장소라 보면 됩니다.” 제주 활오름에 위치한 그의 정원에서 만난 이석창 대표는 한 걸음 뗄 때마다 나타나는 식물에 대해 연신 이야깃거리를 풀어놓았다. “그라스 트리는 호주에서 사는데, 1년에 1cm 자랄까 말까 해요. 그만큼 성장이 느리지만 산불이 나도 살아나는 강인한 식물이기도 합니다. 잎은 휘발성이 강해서 불에 잘 타는데, 줄기는 내화성이 뛰어나서 잘 타지 않거든요.”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던 그는 대학교에서 임학을 배우고 고향 서귀포에 돌아와 1986년 여미지식물원에 식물과장으로 부임했다. 그곳에서 세계 각국의 식물을 들여와 심고 키우는 일을 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1990년 조경 회사인 ‘자연제주’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은 조경의 초기 단계였어요. 여미지식물원에서 다양한 기후대의 식물을 접한 덕분에 전국의 식물원에 제 손길이 닿을 수 있었죠.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온 것입니다.” 식물에서 시작한 일은 자연스레 조경으로 이어졌다. 그는 식물을 보기 좋게 배치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자라는 생태를 만드는 일에 더 집중했다. “저는 전문적인 조경학이나 조경의 방법론을 배워서 작업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이 땅은 원래 어떤 대지였을까 생각하면서 잠재된 본래의 모습을 일깨워주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에 가까웠죠. 그곳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자연의 흔적을 살피고, 때로는 한옥의 차경처럼 주변의 식생과 경관을 옮겨 오기도 하면서요.”


비오토피아

핀크스 골프 클럽
벽돌에 “벽돌아,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던진 건축가 루이스 칸처럼, 이석창 대표 또한 이미 존재하던 자연에 그 답을 구했다. 그렇게 자연을 담고, 또 닮은 모습으로 하나의 생태계를 구현하는 생태 조경이라는 개념이 자연제주의 주요한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이석창 대표의 조경 철학을 만드는 데 또 한 가지 중요한 존재는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땅 제주다. 제주는 해발 1950m의 한라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독특한 지형, 섬이라는 조건 덕분에 다양한 미기후대가 분포한다. “지역과 고도에 따라 아열대부터 한대까지 기후가 굉장히 다양해요. 그에 따라 식생은 물론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도 달라집니다. 식물은 환경에 반응해 변하고, 그것이 합쳐져 하나의 경관을 이뤄요. 시시각각 바뀌는 기후에서 살았던 덕분에 주변의 맥락을 읽고, 그에 적절한 식생 경관을 살려내는 것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었죠.”


가시리 농장 온실에서 만난 이석창 대표

포도호텔
이후 그는 제주의 식생과 문화를 품은 수많은 조경 작품을 지어왔다. 핀크스 골프 클럽은 흔한 야자수 한 그루 없이 자생식물로만 제주의 고유한 풍경을 구현해 골프장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했고,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포도호텔은 제주 민가의 풍경인 밭담(얼기설기 쌓은 현무암이 밭의 경계 역할을 하던 돌담)으로 앞마당을 짓고, 뒷마당에는 울창한 낙엽수림과 함께 1100고지의 고층 습원을 재현했다. “보통 호텔은 고층으로 짓는데, 여긴 단층으로 나지막하게 짓는다는 거예요. 건물이 자연에 안기는 모습이라면, 폭 안길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제주 전통 밭, 마을 정경 같은 소박한 풍경을 가져왔어요. 실제로 전통 작물인 유채꽃이나 무, 보리를 심기도 했죠.” 핀크스 비오토피아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테마가 조경의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였다. 그는 제주 습지와 계곡의 경관을 담아 13만㎡를 넘는 생태공원을 조성해 자연 자체인 환경을 완성했다.


이석창 대표가 스케치한 활오름 정원 동쪽 계획안. 그가 30년 넘게 키워온 식물들이 그림 곳곳에 자리한다.
자연제주의 모든 작업은 이석창 대표의 활오름 정원과 가시리 농장에서 시작된다. 7만㎡ 규모의 정원은 4백 년 된 올리브나무를 비롯해 나무고사리, 그라스 트리, 계수나무, 용설란 등 지중해성기후의 식물 군락이 경관을 이루며, 그가 30년 넘게 키워온 식물 중 제주에 적응한 수종이 자라는 곳이다. “활오름에도 위치에 따라 여러 미기후가 존재해요. 각각에 적합한 식물을 배치하고 가꾸어 몇 년 뒤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활오름 정원이 그의 식물로 경관을 만들어가는 장소라면, 가시리 농장은 그 식물을 키우고 관찰하는 테스트 베드다. 그간의 프로젝트를 가능케 한 자연제주의 허파 같은 곳이기도 하다. 건조한 지대의 선인장부터 습한 기후에서 자라는 야자류, 고사리까지 열대·아열대기후의 다양한 식물이 자란다. 여기에서 자란 식물이 서울식물원 온실, 국립생태원으로 옮겨져 지금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조경은 그 장소가 지닌 고유한 자연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자연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를 살피고 그곳을 이루는 여러 인자의 특성과 관계를 존중하며 설계해왔습니다. 그렇게 바탕을 만들어준 다음은 시간과 자연의 몫이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다양한 식물로 경관을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조경가의 가드닝 팁


정원의 재료를 구입할 때
돌확이나 항아리, 화분은 양재나 헌인화훼단지 등 규모가 큰 꽃 시장 주변에 있는 조경 부자재 가게에서 판매한다. 돌이나 고사목 같은 자연 소재는 조경 회사에 문의할 것.



열대·아열대 식물을 키우고 싶을 때
열대·아열대 식물은 대개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자라기 때문에 온대 기후의 식물보다 오히려 그늘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 그래서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편. 여우꼬리야자, 아레카야자, 벤자민고무나무는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 강해 비교적 쉽게 키울 수 있다. 크로톤은 잎의 색감이 강렬해 이국적 느낌을 내기 좋다.



식물을 고를 때
잎의 상태를 체크하자. 본래 지녀야 할 색상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병충해의 흔적은 없는지 살펴보고 어떤 토양에서 자라왔는지도 미리 확인하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물에 필요한 생육 조건을 맞춰줄 수 있는지다. 온도와 습도, 광량은 기본!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 자료 제공 자연제주, SK핀크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