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사무실에서 만난 지랩의 노경록, 박중현 대표. 기획부터 설계, 브랜딩에 이르는 토털 디자인이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지랩Z_Lab
개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공간과 장소를 만드는 디자인 그룹. 기획부터 브랜딩, 건축설계, 공간 디자인, 스타일링을 아우르며 머무는 곳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생각을 제시한다. 대표작으로 어라운드 폴리, 오월학교, 잔월, 브리드호텔 양양 등이 있다. z-lab.co.kr
머무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공간으로 여행 방식까지 바꿔낸 ‘스테이’. 지랩은 스테이라는 장르를 처음 개척한 건축가다. 2013년 설립한 이후 토리 코티지, 제로플레이스 등 초기에 설계한 스테이가 알려지면서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왔고, 제주에만 50여 채에 달하는 공간을 완성했다. 2015년에는 비슷한 감도의 스테이를 모아 하나의 플랫폼에서 소개하는 스테이폴리오를 설립하며 운영까지 비즈니스를 넓혔다. 그 본거지가 된 곳이 바로 서촌이다. 이번 행복작당에서 소개한 한옥에세이 시리즈와 헤브레를 비롯해 서촌의 수많은 도시 한옥을 고쳤고, 호스트가 다른 스테이를 한데 엮고 하나의 리조트처럼 운영하는 마을 호텔의 개념으로 동네를 여행하는 새로운 해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건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단순히 건축에 국한하지 않고 기획부터 운영까지 넘나들며 공간을 ‘토털 디자인’의 영역에서 작업했기 때문이다. 스테이라는 장르에 이어 건축가의 업역까지 새롭게 제시해 온 지랩은 최근 공공기관이나 브랜드의 스테이를 기획하며 또 한 번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그때와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스테이에 대해 물었다.
ⓒ이병근 여여(2024)
제주 동쪽 선흘리 마을의 끝자락, 작은 과수원과 텃밭이 숲처럼 둘러싼 곳에 자리한 스테이. 숲을 향해 열린 형태로 계획하고 통창을 내 제주 숲의 풍경이 가득 펼쳐진다. 투숙객은 선흘 삼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거나 차를 마시며 일상에 묻어둔 본연의 자신과 조우하게 된다.
ⓒ문성주 조차(2023)
조천 바다는 평소에는 호수처럼 잔잔하지만 물이 빠지면 바닷속 거친 지형이 드러나며 극적으로 바뀐다. 조차는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조천의 바다와 하늘을 조망하며 하루의 시간을 감각하도록 설계한 스테이다. 박공집은 짙은 색감의 목재를 섬세한 비례로 디자인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이면서도 분절된 모습으로 다가오고, 실내를 이루는 어두운 색감과 각기 다른 질감의 마감재는 스테이에 스미는 빛을 다양한 각도로 흡수·반사하며 풍성한 공간감을 만든다.
ⓒ이병근 재재소소(2023)
산방산을 배경으로 나지막이 자리한 제주 덕수리 마을 외곽의 귤밭에 두 채의 스테이를 지은 프로젝트. 제주 마을의 공간적 구조에 도시의 직선적 요소를 더해 하나의 마을을 만들 듯 설계했다. 스테이에 들어서며 마주하는 파사드는 산방산의 시퀀스와 연속되도록 돌과 이끼를 연출해 이곳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병근 소게(2023)
도시에서 이주한 클라이언트를 위해 제주의 오래된 주택과 돌창고를 스테이로 고치고, 주택을 새로 지은 프로젝트. 스테이는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온전한 쉼을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양옥집과 돌창고는 기존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고 노출해 건축물이 지닌 기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돌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어우러져 오래된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재석 스테이 느릇(2023)
제주 표선면에 위치한 농장 보롬왓에 지은 스테이. 메밀밭과 삼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의 풍경을 마주하고 느낀 위안을 건축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느릇의 진정한 가치는 제주의 자연 환경, 보롬왓의 건물과 자연 풍경을 계속 일구어 갈 건축주, 느릇의 음식과 공간을 경험할 투숙객이 모여 비로소 건축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단순한 어휘로 디자인하고 수평적으로 배치한 건물은 자연 풍경 속에 최소한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검은색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지붕은 주변과 자연스럽게 경계를 형성하며 현무암처럼 자연에 묵묵히 녹아든다.
지금은 스테이 건축가라는 정체성이 확고하지만, 처음에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개소 초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노경록 시기적으로는 지랩이 먼저이지만, 사실 스테이폴리오 같은 플랫폼 비즈니스를 해보자는 것이 시작이었어요. 스테이폴리오 이상묵 대표까지 저희 셋은 대학교 선후배로 만나 가까이 지내왔고, 우연히 2011년 이상묵 대표의 부모님 댁(식당)을 펜션으로 고치는 제로플레이스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됐어요. 공간을 멋지게 완성했는데, 막상 소개할 플랫폼이 없더라고요. 그럼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창업을 고민하던 차에 제로플레이스를 본 분이 프로젝트를 의뢰하면서 건축사무소를 먼저 시작하게 된 거죠. 그 프로젝트가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표님이 의뢰한 제주 스테이 토리 코티지였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지금의 정체성이 비교적 초반부터 형성된 것이네요. 스테이 프로젝트의 어떤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나요?
박중현 주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간은 머무는 시간이 길어야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스테이는 적어도 하루 동안 머무릅니다. 그래서 단순히 공간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대마다 투숙객의 세세한 경험까지 조율하면서 디자인하고, 냉난방 설비 같은 운영도 디테일하게 컨트롤해야 해요. 거기에 적절한 콘텐츠와 브랜딩까지 어우러져야 하나의 분위기가 오롯이 완성됩니다. 매력인 동시에 디자이너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지점이에요.
스테이와 집을 설계할 때 달라지는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노경록 수납이 굉장히 중요한 주택과 달리 스테이는 관리자를 위한 수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철저히 줄여요. 최대한 공간이 드러나도록 합니다. 또 하나는 재료의 유지관리예요. 스테이는 매일 투숙객이 이용하는 곳이고 관리하는 주체가 있지만, 주택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주택은 유지관리에 유리한 재료를 쓰게 됩니다. 또 거의 모두가 남향을 선호하는 주택과 달리 스테이는 북향도 꽤 매력이 있어요. 차분히 안으로 집중하는 분위기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최근에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나요?
박중현 지금까지는 개인 건축주와 많이 작업했는데 요즘은 공공기관이나 기업과도 일하고 있어요. 예전에 남원시와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인연이 이어져 옛 요정이던 곳을 스테이로 리뉴얼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사오라는 라이프스타일 케어 브랜드와는 한남동에 쇼룸과 본사를 설계하는 일로 시작했다가 제주와 서촌에 브랜드 스테이까지 작업하고 있고요. 기업과 공공의 영역에서도 저희의 성격을 보여줄 기회가 될텐데, 기대와 걱정이 모두 됩니다.(웃음)
― 기사의 전문은 <행복> 7월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