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이 닿는 데까지가 나의 집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건축의 역사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말 없이는 개개인의 의사를 전달하고 의미를 표현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집 짓기는 맹수와 자연재해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평안하게 거주하려는 바람과 생활 의식, 삶에 필요한 공간을 짜서 이루거나 얽어서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집은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바람과 목적이 실현된 결과이자 새로운 삶을 조직하는 바탕이다. 마당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의 차이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어 건축으로 드러나고 다시 삶으로 이어진다.
‘나의 시선이 닿는 데까지가 나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정기용 소장의 집은 백만 평이다. ‘방’은 종로구 명륜동에 세 들어 사는 서른한 평 다가구 주택이고, 정원은 성균관대 입구에 있는 명륜당(고려시대 말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유학을 가르치던 강당) 앞마당이다. 뒷산으로 오르면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과 창경궁의 후원이 맞닿는 와룡공원에 서면 서울의 아늑한 전경이 펼쳐진다. ‘방’에서 혜화동 한국방송대학 옆에 있는 기용건축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닿는다. 그래서 그의 집은 백만 평이다. 허허허,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닐까?
그는 1945년 광복이 되던 해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공예를 전공했다. 이후 미의 분배와 사회적 유용성,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사유 끝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장식미술학교 실내건축과, 파리 6대학 건축과, 파리 8대학 도시계획과를 졸업하면서 건축가가 되었다. 처음으로 의뢰를 받아 건축 일을 했던 것은 파리에 머물던 1978년. 귀국해서는 계원예술대학, 서울예전 드라마센터 레노베이션, 효자동 사랑방, 무애빌딩, 무주의 공공시설 31곳 등 건축뿐 아니라 ‘느림의 도시 순천’ ‘무주 기업도시’ 등의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더불어 춘천 자두나무집, 영월 구인헌 등 개인 주택 작업이나 지평선 중학교 기숙사 작업 등을 통해서는 흙 건축의 현대화 작업에 지속적으로 매진해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 설계와 이론을 가르쳤던 그는 올해 초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최근 작업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 주택, 정읍 기적의 도서관 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 소장님에 대해 ‘흙 건축의 대가’라고 말하곤 합니다.”
“반쯤은 맞고 반쯤은 오해입니다. 흙 건축은 정기용 건축의 한 부분이지 전체는 아니에요. 건축이라는 말도 좀 그래요. 건축을 하는 데 흙을 쓴 것이지, 흙 건축을 한 건 아니니 ‘흙 건축을 합니다’ 하는 것은 좀 과장된 것 같아요. 제가 친환경 건축, 생태 건축의 전문가도 아니거든요. 그저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올바른 건축을 하려다 보니 흙도 동원하고 때로는 나무도 동원하게 되는 것이죠. 흙으로 모든 건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다른 건축가들에 비해 흙 건축 작업을 많이 하셨지요?”
.“몇 개 더 한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정기용 건축을 규정하려는 것은 오해지요. 흙 건축이 위대한 건축이 아니라거나 그런 호칭이 싫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이 정기용의 건축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 같아 그래요. 한국에서 건축하는 사람이 흙을 주제로 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흙을 주제로 삼는 건축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니요?”
“한국 땅에 살던 선조들이 건축 소재로 쓰던 것이 나무하고 흙이거든요. 그러니 그 후손이 건축에 흙을 쓰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다만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가 흙 건축을 탐구하게 된 것은 화가 나서다.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1980년대, 흙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자료를 찾았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흙과 나무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기본 소재. 이토록 중요한 소재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목마른 이 우물 판다고, 직접 찾아다니고 공부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흙 건축에 대해 열심이세요?”
“흙과 나무에 대한 연구가 이미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는 데 놀란 거죠.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직접 배우고, 흙으로 요새 사람들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건축을 할 수 있는지 실험도 해보았지요.”
“실험하신 뒤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요?”
“담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근사하게 건축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 주택도 흙 건축이 포함되는지요?”
“전부 다 흙으로 짓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흙과 나무를 이용해서 짓습니다. 우리나라 농촌 풍경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소재를 선택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집이라는 것은 직접 사는 사람 외의 사람에게는 그저 풍경으로 보이기 때문에 풍경도 하나의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보는 것이지요.”
종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글씨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풍경이 없으면 개별 건축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 개별 건축이 주인공이자 풍경이 되는 정신, 이는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미학이기도 하다.
강원도 춘천의 흙집 ‘자두나무집.’ 건축주 정상명 씨는 이 집이 자연에 은둔하는 집이기를 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
지난 5월 그는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가족부에서 수여하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여성가족부는 그가 순천·대구·서귀포·진해 어린이 도서관과 학교 등 건축물을 가족친화적인 공간으로 설계하고 건축함으로써 지역공동체 문화 조성에 기여했음을 높이 샀다. 건축 단체의 장이 아닌 개인 건축가가 국민훈장을 받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
그의 손을 거친 작업 모두가 그의 건축 철학을 보여주지만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특히 살펴볼 점이 많다. 도서관의 주인인 어린이들을 어느 한 나라의 국민이기 이전에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인’이라는 생각에서 계획한 이 작은 우주는 책을 매개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특별한 장소, 자연과 친구가 되는 공간이다. 건물이 허물어질 때에는 녹여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쇠로 내부를 지탱하게 만들고, 외부는 나무로 에워쌌다. 열람실 안에는 흙을 두어 대나무를 심고, 건물 옥상에는 물이 흐르게 하고, 천장에는 하늘을 향해 둥그렇게 열린 창을 만들었다. 도서관 밖에는 바람개비를 세움으로써 지구의 숨결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놀랍게도, 이 작은 도서관이 말 그대로 기적을 일으켰다. 어린이 도서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에서 이루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도 그러하지만 그보다는 이 작은 도서관 하나가 만들어진 뒤 순천 사람들의 삶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어린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이웃과 더불어 생활하는 공동체 문화도 되살아났다. 엄마와 아이는 물론이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도서관을 다니는 풍경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처음 건축을 공부할 때부터 총체적 관점에서 바라본 건축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제 머릿속에서 건축이 누구의 소유 대상이라거나 재산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았던 걸 보면 성숙하지 않았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정 소장님의 총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건축의 최선을 예를 들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여러 개여서 단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네요. 가장 작은 건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20만 명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트르담 사원 뒤편에 있는 기념관을 말할 수 있겠네요. 팽귀송Pinguisson이라는 프랑스 건축가의 작품이에요. 이 사람이 위대한 건축가는 아니지만 이 작품 하나만은 근사해요.”
“어떻게 생긴 건축물인가요?”
“이 기념관은 건물이 없어요. 20만 명을 애도하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어요? 사실, 만들어서도 안 되고, 만들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만들어야 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무 근사하게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건축은 사람이 체험함으로써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얘기해주는 건물이에요. 40~50평이나 될까? 아주 감동적인 곳이지만 건물이 없어서 사람들이 안 가요. 센 강 쪽으로 나 있는 계단 밑으로 내려가야 해요. 내려가면 지하에 조그만 공간이 있어요. 계단은 두 사람이 함께 내려가기에도 비좁을 정도이고, 내려가서도 한 사람씩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죽음을 기념하는 공간은 여러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리 집단적인 죽음도 개별적이거든요. 사람 하나하나의 기억이 있고 역사가 있고…. 그래서 소중하지 않겠어요? 내려가면 마당이 있고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죠. 거기에는 조그만 조형물이 있을 뿐이고 볼 게 없어요. 그런데 돌아서면 거기에 좁은 관 같은 문이 서 있어요. 폭이 70cm쯤 될까? 그 문을 따라 구석으로 들어가면 감방 같은 게 하나 있고 꺼지지 않는 불이 있어요. 진열된 것은 하나도 없어요. 텅 비어 있는 가운데 아우슈비츠 등의 강제수용소 이름들이 적혀 있지요. 그곳으로 들어가면 나오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이때 사람들은 상상을 하게 돼요. 죽음에 대한 공간, 억압에 대한 공간, 전쟁과 공포에 대한 공간 등 사람들 내면에 있는 모든 공간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자유를 환기시키는 굉장히 근사한 건축물이에요. 이것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좋은 건축은 우리 내면에 있는 것’임을 근사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건축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방문해야 되는 곳이에요.”
기용건축 사무실 입구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모로 누워 있다. 그 지도에는 그가 작업한 곳들이 붉은 점으로 찍혀 있다. 지도 앞에 앉은 정 소장.“
덕수궁이나 경복궁 같은 고궁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나쁜 기억도 다시 해석해 좋은 기억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되고, 꿈을 꾸게 된다. 그의 정원인 명륜당에 가면 고요하고 풍요로운 그 무엇이 마음을 평온하게 이끌어준다. 전쟁 기념관이나 희국립묘지 등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저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흔히들 ‘과거는 미래’라고 하는 것은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기 때문은 아닐까?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건축이란 마음을 인도하는 매개이니, 진정 행복한 건축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개 건물을 완공한 다음에는 다시 가지 않지만 어린이 도서관만큼은 가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그 까닭은 무엇인가요?”
“건축가는요, 자기가 설계한 집에 가면 결점만 보여요. 잘된 건 안 보여요. 그런데 어린이 도서관에 가면 건물이 안 보이고 아이들이 보여요.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서가에서 책을 뽑아 들고 창가로 가서 열중해서 책 읽는 걸 보면, 뭐라 해야 하나… 그 순간 천지개벽하는 것 같아요.”
“천지개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 아이 스스로 교육개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교육에는 아이들의 자율성이 실종되어 있거든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즐겁기 위해 책을 읽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죠. 그리고 아주머니들에게 ‘(어린이 도서관이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행복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그곳에 가면 인간의 건축을 체험하는 다른 인간이 행복해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미술, 건축, 도시계획 등 공부를 많이 하셨는데….”
“욕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질문에 허기가 져서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을 때 전공을 바꾼 것 같아요.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다른 질문이 생겨요. 건축과를 졸업하고 도시계획과를 간 것도 마찬가지예요. ‘왜 이 땅에는 집만 지으라고 했을까? 주거지역, 공장지역 등의 결정은 누가 왜 무슨 근거로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도시계획과에서 한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지만 ‘나도 모르는 사람의 하수인이 되어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천성이 종속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나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에요.”
변화하는 한가운데 있어 행복하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건축적인 표현을 많이 듣게 된다. ‘건축은 삶을 조직한다’거나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건축가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이 그렇다. 사전을 찾아보니 조직이라는 말은 ‘짜서 만들거나 얽어서 만듦’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정 소장님 댁은 어떻게 조직되어 있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세 가지 정도 버릇이 있어요. 늘 창을 열어두고 살고 가급적이면 좀 비우고 살아요. 어느 집이든 소도구와 잡동사니를 늘어놓은 다음부터는 공간이 제한돼요. 오히려 결정되지 않은 잠재된 상태가 가장 매력적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집에 대해 얽매이지 않으려고 해요.”
“말씀을 들어보면 창을 중시하시는 것 같아요. 사람이나 집에서 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건축가들이 창에 대해 읊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창은 우리가 말하는 세계,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통로예요. 특히 건물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은 세계가 압축적으로 그 사람에게 내면화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되죠. 사람이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이에요.”
“정 소장님의 ‘방’에서 보는 창밖은 어떤 세상인가요?”
10여 년 전, 건축의 미래를 위해 건축가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서울건축학교’의 일원인 승효상(이로재 대표),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대표), 정기용 씨가 승효상 건축에 관한 비평서 <감각의 제국>(동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승효상, 조성룡, 정기용 씨.
“특별한 것이 있어요.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풍경이 있어요. 낙산도 있고, 학교 건물도 있고, 아파트도 보이고, 다가구 주택도 있어요. 주택 옥상에서 배추 키우는 아주머니도, 옥상에서 며느리에게 된장 담그는 걸 가르치는 시어머니도 보여요. 사라져가는 한옥에 마지막으로 옷을 해 입힌 수의(비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에 씌운 천막)도 보여요. 창을 통해서 내다보는 풍경은 멀리도 있고 가까이에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들은 한 번도 고정된 적이 없어요. 늘 미세한 변화를 끊임없이 생성해요. 기후 때문에도 그렇고, 사람들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꿈틀꿈틀 변화하는 서울의 한 조각이지만, 원경부터 근경까지 그 풍경에는 깊이가 있어요. 바로 그렇게 변화하는 한가운데에 내가 있어 행복해요.”
이곳에서 사는 7~8년 동안 그는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새벽 아침, 늦은 밤, 시시때때로 똑같은 각도에서 바라본 풍경을 카메라로 수백 번 찍었다고 한다.
“건축 일을 하면 좋은 점이 무엇인가요?”
“여러 종류의 사람과 여러 종류의 세상을 만날 수 있어요. 땅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고, 기계도 만나고, 시대도 만나고, 기술도 만나고.”
“지금까지 만난 건축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무서운 건축주가 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건물 설계를 의뢰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돈을 지불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돈만 주는 사람이고, 당신은 그 돈으로 설계를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설계를 할 수 없어서 당신에게 맡기는 것이므로 이것은 나의 작품이 아니라 당신의 작품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분은 아마 소설가여서 작가 정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를 가장 잘 부리는 방법은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임을요.”
“행복한 세상은 어떤 세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어렸을 때였던 것 같아요. 제일 좋은 세상은 앞으로 올 세상이 아닌 것 같아요.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제일 근사하고 행복한 세상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그냥 즐겁게 살고 싶은데…. 사는 것의 기적을 느끼면서 그걸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러려면 마음을 비우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고, 이런 것이 지속되면 좋겠어요.”
그는 지금도 그렇게 보이지만 참 맹렬하게도 살았던 것 같다. ‘참 좋았던 것 같아’라고 기억하는 50대 시절에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썼다. 저녁 10시에 퇴근해 집에서 또 다른 일을 하다 새벽 4시쯤 잠들었다. 약속 시간을 3분 단위로 쪼개 하루에 여섯 번의 미팅을 하던 때도 있었다.
얼마 전 그는 깊은 병을 알았다. 병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해 슬기롭게 대처했던 그는 발병에 대해 '육신과 정신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다'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해설자처럼 담담하게 말한다. 그러나 '매일 매일이 기적이고 바람 불고 구름이 지나가고 비 내리는게 우주 쇼'라는 그의 말을 들으며, 하하하,웃을 수만은 없었으니...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건축의 역사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말 없이는 개개인의 의사를 전달하고 의미를 표현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집 짓기는 맹수와 자연재해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평안하게 거주하려는 바람과 생활 의식, 삶에 필요한 공간을 짜서 이루거나 얽어서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집은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바람과 목적이 실현된 결과이자 새로운 삶을 조직하는 바탕이다. 마당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의 차이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어 건축으로 드러나고 다시 삶으로 이어진다.
‘나의 시선이 닿는 데까지가 나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정기용 소장의 집은 백만 평이다. ‘방’은 종로구 명륜동에 세 들어 사는 서른한 평 다가구 주택이고, 정원은 성균관대 입구에 있는 명륜당(고려시대 말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유학을 가르치던 강당) 앞마당이다. 뒷산으로 오르면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과 창경궁의 후원이 맞닿는 와룡공원에 서면 서울의 아늑한 전경이 펼쳐진다. ‘방’에서 혜화동 한국방송대학 옆에 있는 기용건축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닿는다. 그래서 그의 집은 백만 평이다. 허허허,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닐까?
그는 1945년 광복이 되던 해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공예를 전공했다. 이후 미의 분배와 사회적 유용성,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사유 끝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장식미술학교 실내건축과, 파리 6대학 건축과, 파리 8대학 도시계획과를 졸업하면서 건축가가 되었다. 처음으로 의뢰를 받아 건축 일을 했던 것은 파리에 머물던 1978년. 귀국해서는 계원예술대학, 서울예전 드라마센터 레노베이션, 효자동 사랑방, 무애빌딩, 무주의 공공시설 31곳 등 건축뿐 아니라 ‘느림의 도시 순천’ ‘무주 기업도시’ 등의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더불어 춘천 자두나무집, 영월 구인헌 등 개인 주택 작업이나 지평선 중학교 기숙사 작업 등을 통해서는 흙 건축의 현대화 작업에 지속적으로 매진해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 설계와 이론을 가르쳤던 그는 올해 초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최근 작업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 주택, 정읍 기적의 도서관 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 소장님에 대해 ‘흙 건축의 대가’라고 말하곤 합니다.”
“반쯤은 맞고 반쯤은 오해입니다. 흙 건축은 정기용 건축의 한 부분이지 전체는 아니에요. 건축이라는 말도 좀 그래요. 건축을 하는 데 흙을 쓴 것이지, 흙 건축을 한 건 아니니 ‘흙 건축을 합니다’ 하는 것은 좀 과장된 것 같아요. 제가 친환경 건축, 생태 건축의 전문가도 아니거든요. 그저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올바른 건축을 하려다 보니 흙도 동원하고 때로는 나무도 동원하게 되는 것이죠. 흙으로 모든 건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다른 건축가들에 비해 흙 건축 작업을 많이 하셨지요?”
.“몇 개 더 한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정기용 건축을 규정하려는 것은 오해지요. 흙 건축이 위대한 건축이 아니라거나 그런 호칭이 싫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이 정기용의 건축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 같아 그래요. 한국에서 건축하는 사람이 흙을 주제로 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흙을 주제로 삼는 건축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니요?”
“한국 땅에 살던 선조들이 건축 소재로 쓰던 것이 나무하고 흙이거든요. 그러니 그 후손이 건축에 흙을 쓰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다만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가 흙 건축을 탐구하게 된 것은 화가 나서다.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1980년대, 흙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자료를 찾았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흙과 나무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기본 소재. 이토록 중요한 소재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목마른 이 우물 판다고, 직접 찾아다니고 공부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흙 건축에 대해 열심이세요?”
“흙과 나무에 대한 연구가 이미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는 데 놀란 거죠.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직접 배우고, 흙으로 요새 사람들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건축을 할 수 있는지 실험도 해보았지요.”
“실험하신 뒤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요?”
“담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근사하게 건축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 주택도 흙 건축이 포함되는지요?”
“전부 다 흙으로 짓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흙과 나무를 이용해서 짓습니다. 우리나라 농촌 풍경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소재를 선택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집이라는 것은 직접 사는 사람 외의 사람에게는 그저 풍경으로 보이기 때문에 풍경도 하나의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보는 것이지요.”
종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글씨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풍경이 없으면 개별 건축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 개별 건축이 주인공이자 풍경이 되는 정신, 이는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미학이기도 하다.
강원도 춘천의 흙집 ‘자두나무집.’ 건축주 정상명 씨는 이 집이 자연에 은둔하는 집이기를 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
지난 5월 그는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가족부에서 수여하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여성가족부는 그가 순천·대구·서귀포·진해 어린이 도서관과 학교 등 건축물을 가족친화적인 공간으로 설계하고 건축함으로써 지역공동체 문화 조성에 기여했음을 높이 샀다. 건축 단체의 장이 아닌 개인 건축가가 국민훈장을 받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
그의 손을 거친 작업 모두가 그의 건축 철학을 보여주지만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특히 살펴볼 점이 많다. 도서관의 주인인 어린이들을 어느 한 나라의 국민이기 이전에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인’이라는 생각에서 계획한 이 작은 우주는 책을 매개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특별한 장소, 자연과 친구가 되는 공간이다. 건물이 허물어질 때에는 녹여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쇠로 내부를 지탱하게 만들고, 외부는 나무로 에워쌌다. 열람실 안에는 흙을 두어 대나무를 심고, 건물 옥상에는 물이 흐르게 하고, 천장에는 하늘을 향해 둥그렇게 열린 창을 만들었다. 도서관 밖에는 바람개비를 세움으로써 지구의 숨결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놀랍게도, 이 작은 도서관이 말 그대로 기적을 일으켰다. 어린이 도서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에서 이루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도 그러하지만 그보다는 이 작은 도서관 하나가 만들어진 뒤 순천 사람들의 삶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어린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이웃과 더불어 생활하는 공동체 문화도 되살아났다. 엄마와 아이는 물론이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도서관을 다니는 풍경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처음 건축을 공부할 때부터 총체적 관점에서 바라본 건축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제 머릿속에서 건축이 누구의 소유 대상이라거나 재산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았던 걸 보면 성숙하지 않았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정 소장님의 총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건축의 최선을 예를 들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여러 개여서 단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네요. 가장 작은 건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20만 명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트르담 사원 뒤편에 있는 기념관을 말할 수 있겠네요. 팽귀송Pinguisson이라는 프랑스 건축가의 작품이에요. 이 사람이 위대한 건축가는 아니지만 이 작품 하나만은 근사해요.”
“어떻게 생긴 건축물인가요?”
“이 기념관은 건물이 없어요. 20만 명을 애도하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어요? 사실, 만들어서도 안 되고, 만들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만들어야 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무 근사하게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건축은 사람이 체험함으로써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얘기해주는 건물이에요. 40~50평이나 될까? 아주 감동적인 곳이지만 건물이 없어서 사람들이 안 가요. 센 강 쪽으로 나 있는 계단 밑으로 내려가야 해요. 내려가면 지하에 조그만 공간이 있어요. 계단은 두 사람이 함께 내려가기에도 비좁을 정도이고, 내려가서도 한 사람씩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죽음을 기념하는 공간은 여러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리 집단적인 죽음도 개별적이거든요. 사람 하나하나의 기억이 있고 역사가 있고…. 그래서 소중하지 않겠어요? 내려가면 마당이 있고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죠. 거기에는 조그만 조형물이 있을 뿐이고 볼 게 없어요. 그런데 돌아서면 거기에 좁은 관 같은 문이 서 있어요. 폭이 70cm쯤 될까? 그 문을 따라 구석으로 들어가면 감방 같은 게 하나 있고 꺼지지 않는 불이 있어요. 진열된 것은 하나도 없어요. 텅 비어 있는 가운데 아우슈비츠 등의 강제수용소 이름들이 적혀 있지요. 그곳으로 들어가면 나오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이때 사람들은 상상을 하게 돼요. 죽음에 대한 공간, 억압에 대한 공간, 전쟁과 공포에 대한 공간 등 사람들 내면에 있는 모든 공간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자유를 환기시키는 굉장히 근사한 건축물이에요. 이것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좋은 건축은 우리 내면에 있는 것’임을 근사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건축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방문해야 되는 곳이에요.”
기용건축 사무실 입구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모로 누워 있다. 그 지도에는 그가 작업한 곳들이 붉은 점으로 찍혀 있다. 지도 앞에 앉은 정 소장.“
덕수궁이나 경복궁 같은 고궁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나쁜 기억도 다시 해석해 좋은 기억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되고, 꿈을 꾸게 된다. 그의 정원인 명륜당에 가면 고요하고 풍요로운 그 무엇이 마음을 평온하게 이끌어준다. 전쟁 기념관이나 희국립묘지 등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저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흔히들 ‘과거는 미래’라고 하는 것은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기 때문은 아닐까?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건축이란 마음을 인도하는 매개이니, 진정 행복한 건축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개 건물을 완공한 다음에는 다시 가지 않지만 어린이 도서관만큼은 가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그 까닭은 무엇인가요?”
“건축가는요, 자기가 설계한 집에 가면 결점만 보여요. 잘된 건 안 보여요. 그런데 어린이 도서관에 가면 건물이 안 보이고 아이들이 보여요.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서가에서 책을 뽑아 들고 창가로 가서 열중해서 책 읽는 걸 보면, 뭐라 해야 하나… 그 순간 천지개벽하는 것 같아요.”
“천지개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 아이 스스로 교육개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교육에는 아이들의 자율성이 실종되어 있거든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즐겁기 위해 책을 읽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죠. 그리고 아주머니들에게 ‘(어린이 도서관이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행복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그곳에 가면 인간의 건축을 체험하는 다른 인간이 행복해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미술, 건축, 도시계획 등 공부를 많이 하셨는데….”
“욕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질문에 허기가 져서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을 때 전공을 바꾼 것 같아요.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다른 질문이 생겨요. 건축과를 졸업하고 도시계획과를 간 것도 마찬가지예요. ‘왜 이 땅에는 집만 지으라고 했을까? 주거지역, 공장지역 등의 결정은 누가 왜 무슨 근거로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도시계획과에서 한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지만 ‘나도 모르는 사람의 하수인이 되어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천성이 종속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나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에요.”
변화하는 한가운데 있어 행복하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건축적인 표현을 많이 듣게 된다. ‘건축은 삶을 조직한다’거나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건축가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이 그렇다. 사전을 찾아보니 조직이라는 말은 ‘짜서 만들거나 얽어서 만듦’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정 소장님 댁은 어떻게 조직되어 있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세 가지 정도 버릇이 있어요. 늘 창을 열어두고 살고 가급적이면 좀 비우고 살아요. 어느 집이든 소도구와 잡동사니를 늘어놓은 다음부터는 공간이 제한돼요. 오히려 결정되지 않은 잠재된 상태가 가장 매력적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집에 대해 얽매이지 않으려고 해요.”
“말씀을 들어보면 창을 중시하시는 것 같아요. 사람이나 집에서 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건축가들이 창에 대해 읊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창은 우리가 말하는 세계,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통로예요. 특히 건물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은 세계가 압축적으로 그 사람에게 내면화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되죠. 사람이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이에요.”
“정 소장님의 ‘방’에서 보는 창밖은 어떤 세상인가요?”
10여 년 전, 건축의 미래를 위해 건축가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서울건축학교’의 일원인 승효상(이로재 대표),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대표), 정기용 씨가 승효상 건축에 관한 비평서 <감각의 제국>(동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승효상, 조성룡, 정기용 씨.
“특별한 것이 있어요.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풍경이 있어요. 낙산도 있고, 학교 건물도 있고, 아파트도 보이고, 다가구 주택도 있어요. 주택 옥상에서 배추 키우는 아주머니도, 옥상에서 며느리에게 된장 담그는 걸 가르치는 시어머니도 보여요. 사라져가는 한옥에 마지막으로 옷을 해 입힌 수의(비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에 씌운 천막)도 보여요. 창을 통해서 내다보는 풍경은 멀리도 있고 가까이에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들은 한 번도 고정된 적이 없어요. 늘 미세한 변화를 끊임없이 생성해요. 기후 때문에도 그렇고, 사람들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꿈틀꿈틀 변화하는 서울의 한 조각이지만, 원경부터 근경까지 그 풍경에는 깊이가 있어요. 바로 그렇게 변화하는 한가운데에 내가 있어 행복해요.”
이곳에서 사는 7~8년 동안 그는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새벽 아침, 늦은 밤, 시시때때로 똑같은 각도에서 바라본 풍경을 카메라로 수백 번 찍었다고 한다.
“건축 일을 하면 좋은 점이 무엇인가요?”
“여러 종류의 사람과 여러 종류의 세상을 만날 수 있어요. 땅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고, 기계도 만나고, 시대도 만나고, 기술도 만나고.”
“지금까지 만난 건축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무서운 건축주가 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건물 설계를 의뢰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돈을 지불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돈만 주는 사람이고, 당신은 그 돈으로 설계를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설계를 할 수 없어서 당신에게 맡기는 것이므로 이것은 나의 작품이 아니라 당신의 작품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분은 아마 소설가여서 작가 정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를 가장 잘 부리는 방법은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임을요.”
“행복한 세상은 어떤 세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어렸을 때였던 것 같아요. 제일 좋은 세상은 앞으로 올 세상이 아닌 것 같아요.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제일 근사하고 행복한 세상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그냥 즐겁게 살고 싶은데…. 사는 것의 기적을 느끼면서 그걸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러려면 마음을 비우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고, 이런 것이 지속되면 좋겠어요.”
그는 지금도 그렇게 보이지만 참 맹렬하게도 살았던 것 같다. ‘참 좋았던 것 같아’라고 기억하는 50대 시절에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썼다. 저녁 10시에 퇴근해 집에서 또 다른 일을 하다 새벽 4시쯤 잠들었다. 약속 시간을 3분 단위로 쪼개 하루에 여섯 번의 미팅을 하던 때도 있었다.
얼마 전 그는 깊은 병을 알았다. 병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해 슬기롭게 대처했던 그는 발병에 대해 '육신과 정신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다'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해설자처럼 담담하게 말한다. 그러나 '매일 매일이 기적이고 바람 불고 구름이 지나가고 비 내리는게 우주 쇼'라는 그의 말을 들으며, 하하하,웃을 수만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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