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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옥 팔판동 2층 한옥 호호재
체어스온더힐 갤러리 한정현 대표의 새로운 공간, 호호재蝴蝴齋가 문을 열었다. 전통 한옥의 공식에서 벗어나 도시 풍경에 아름답게 안착한 호호재는 역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내는 한옥의 유연함을 보여준다.

작은 마당을 품은 한옥 호호재. 2층 통창을 통해 켜켜이 지붕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의 설계는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이 맡았다.
전시 <관계로그>가 한창 열리고 있는 호호재(02-747-7854)에서 만난 한정현 대표. 오른쪽 벽면의 작품은 작가 정영도의 ‘히어, 위 스탠드 포 유’.
삐뚤빼뚤 비대칭 구조의 모던한 책장. 그러나 옆을 보면 자개장 표피를 레이어링한 반전 모습이 나타난다. 자개장 문짝에서 추출한 패턴을 현대 가구의 형태로 조합해 고가구 같기도, 요즘 가구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작가 한정현의 신작 ‘언오디너리’ 시리즈다. 

그는 오랫동안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왔다. 가회동에서 체어스온더힐, 크래프트온더힐 갤러리를 운영하는 대표이자 홍익대학교에서 목조형가구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과거의 재료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 역동적이면서도 시적인 작업을 선보여온 그가 자신의 작품과 닮은 복합 문화 공간 호호재를 열었다.

“유학을 마치고 2002년에 귀국하고서, 팔판동에 와인 바 겸 디자인 사무실을 열었어요. 원래 있던 한옥을 현대적으로 고쳐서 2년 정도 운영했죠. 그러다 가회동에 갤러리 체어스온더힐을 열면서 이곳 생활을 정리했고, 이후 가게 대여섯 개가 이 자리를 거쳐갔어요. 그리고 이번에 한옥 호호재를 지으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한정현 대표가 오래 추억을 쌓아온 이곳의 설계는 건축주와 건축가로 긴 시간 연을 맺어온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이 맡았다. 설계를 의뢰하고 1년여 후 조정구 소장은 삼청동과 어울리는 깨끗하고 아담한 한옥으로 화답했다. “기존 한옥은 여러 번 용도가 바뀌다 보니 원래 모습이 거의 남지 않았어요. 고치는 대신 새로 짓기로 하고, 마당이나 채의 배치를 유지해 예전 기억을 남겼습니다.”

두 사람은 바라는 공간의 모습도 서로 비슷했다. 한정현 대표는 한옥이지만 모던함을 잃지 않기를 원했고, 조정구 소장은 도시의 변화에 대응해 진화하는 한옥을 꾸준히 작업해온 것.


폭 4.2m의 넓은 칸을 확보하고 대형 시스템 창호를 설치해 마당이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 끝이 꺾인 벤치는 한정현 대표의 작품 ‘그랜드 트위스트Grand Twist’.
왼쪽 벽면에 전시한 작품은 작가 김재용의 ‘DONUT fear to shine 2023’. 가운데 작품은 한정현 대표의 ‘언오디너리’ 시리즈. 어머니의 약소반을 이용해 사이드 테이블을 디자인했다. 오른쪽 작품은 작가 잭슨홍의 ‘로디지아 공군 기장Rhodesian Insignia’.
완성된 한옥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탓에 한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새로운 요소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일단, 작은 규모이지만 칸 하나의 크기가 커서 아담한 한옥임에도 시원시원하다. 전통 창호 대신 대형 시스템 창호를 설치한 것도 투명한 개방감에 한몫한다.

“일반적으로 한옥은 한 칸의 폭이 2.4m인데, 여기는 4.2m예요. 칸이 넓어진 만큼 지붕을 받치는 수평 부재인 도리가 휘어지지 않도록 보강해서 가운데 보가 없는 넓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을 확보한 덕분에 여러 용도로 유연하게 쓸 수 있게 됐죠.”

한옥에는 없는 요소인 현관의 등장이나 평면의 구성도 조정구 소장이 현대건축의 문법을 접목한 결과다. 본래 한옥은 손님을 접대하는 사랑방, 창고 등 사회적 성격이 강한 바깥채와 가족의 생활공간인 안채로 나뉜다. 이곳은 주거 공간이 아니어서 전통 한옥의 공간 구성을 따를 필요가 없었고, 그는 건축가 루이스 칸이 구축한 공간 구성 원리인 서브드 스페이스(지원받는 공간)와 서번트 스페이스(지원하는 공간)의 개념을 가져왔다. 집에 비유하자면 안방이나 거실 같은 주요 공간을 두고 욕실, 다용도실처럼 주요 공간을 돕는 공간을 한곳에 배치하는 원리다. 호호재에서는 안채는 사무실 겸 전시실로, 바깥채는 현관·화장실·탕비실 등 안채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바깥채는 콤팩트한 크기로 짜고 한데 모았다. 그 결과 안채 면적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1층 안쪽 방에서 바라본 대청 공간.왼쪽 작품은 한정현 대표의 ‘언오디너리’ 시리즈. 이식한 자개장의 레이어가 켜켜이 보인다.
2층에 전시한 작가 박선기의 작품 ‘조합체’. 공간에 딱 맞는 크기로 작업해 한옥과 완벽한 합을 이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이곳이 2층 한옥이라는 점이다. “처음 진입할 때는 1층 한옥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고, 가장 안쪽의 채만 2층으로 계획했어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2층의 공간감에 익숙해지게 했죠.”

2층 공간이 만들어낸 변화는 꽤나 드라마틱하다. 늘어난 면적만큼 다양한 활동을 도모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마당 너머 삼청동 풍경이 한옥 안으로 들어왔다. 본래 한옥은 닫혀 있고 내향적인 공간인데, 2층을 높이고 창을 냄으로써 주변 한옥이 보이고 동네에서 나의 위치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 한정현 대표가 가장 만족하는 공간으로 꼽는 곳이기도 하다. “삼청동에서 이런 뷰를 볼 수 있는 한옥이 드물어요. 관람객도 전시보다 공간 얘기를 더 많이 하는데, 특히 2층에서 터져요. ‘와, 살고 싶다’ 하면서요.”

조정구 소장에게 2층 한옥은 건축가로서 계속 도전하는 주제다. “한옥은 주로 1층에 맞도록 설계한 유형이라 2층으로 지으면 시원한 뷰가 나오지 않아요. 1층 지붕이 2층을 가리기 때문이죠. 그런 구조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깨끗하고 선명한 전망을 만드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호호재는 원래 1층에 있어야 할 처마 역할을 난간이 대신하고 있어요. 옆에 있는 1층 한옥의 기와지붕과도 높이를 조율했고요. 간단해 보이지만 세심한 디테일이 필요합니다. 계속 작업하면서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가려 해요.”


가운데에 전시한 작가 김영옥의 작품 ‘라이트 플레이’가 은은하게 빛난다. 오른쪽 벽면의 작품은 작가 잭슨홍의 ‘하임리히’.
바닥에 놓인 도자는 작가 이혜미의 ‘Silver moonjar’, 오른쪽 벽면 장에 전시한 작품은 ‘Silver line’. 그의 작품을 위해 벽면에 딱 맞춘 장을 짰다.
지금 이곳에서는 개관을 기념하며 전시 <관계로그>가 열리고 있다. 한정현 대표가 기획하고 그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국내 정상급 작가 6인과 함께한 전시다.

“실은 이곳이 어머니가 물려주신 공간이에요. 어머니는 늘 호기심과 열정이 넘쳤고, 아트를 사랑하며 자유롭게 사셨어요. 아티스트와도 활발히 교류했고, 제가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것도 어머니의 몫이 컸죠. 호호재는 내년이 어머니 10주기라 기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었어요. ‘나비 호’ 자를 따온 이름도 뷰티풀 버터플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은 것이고요.”

한정현 대표가 이곳의 용도를 뚜렷하게 계획하지 않았을 때부터 첫 이벤트는 전시로 정해둔 것도 아트를 사랑한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에서였다고.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열정적으로 사신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이곳 또한 전시나 클래스, 브랜드 팝업 스토어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계획이다. 나비 호 자 두 개를 붙여 지어진 호호재. 이제 나비처럼 날아가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할 일만 남았다.


건축 개요
대지 면적 97.2m²
건축면적 54.08m²
연면적 79.08m²
구조 한식 목구조
외부 마감 한식 미장, 와편, 스터코
내부 마감 한식 미장, 수성페인트, 타일
설계 구가도시건축
시공 한옥협동조합
조경 그루작



설계를 맡은 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guga_architecture)의 조정구 소장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거쳤다. 2000년 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한 이후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을 주제로 지속적인 도시 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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