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당의 새 보금자리는 에리어플러스와 뷰로 드 끌로디아의 문지윤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목가구는 모두 맞춤 제작한 것.
모시와 화조도 양단 목베개를 비치한 공간. 위쪽에는 호두나무 다반 2종을 두었다.
“호호당은 인생의 순환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1년 24절기를 통해 계절의 흐름을 짚어가고, 삶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소중한 순간을 준비합니다.”
한국의 색이 담긴 생활용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호호당. 최근 청담동에 새로운 둥지를 틀며 2막을 알린 호호당의 당찬 포부가 웰컴 드링크에 꽂힌 종이 위에서도 발했다. 어느덧 브랜드를 시작한 지 10년을 훌쩍 넘긴 호호당은 지금까지 ‘좋은 일만 있으라고’라는 모토 아래 보자기, 한복, 일상용품 등을 차근차근 공들여 만들어왔다. 그럼에도 양정은 대표는 종종 “호호당은 정확히 뭘 하는 곳이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단다. 양정은 대표는 이제 그 물음에 새로운 호호당의 공간으로 답한다.
청운동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청담동으로 쇼룸을 옮긴 이유 중 하나엔 이 통창 뷰가 포함된다. 청운동처럼 고즈넉한 매력을 발산하는 소나무 풍경에 매료되어 바로 계약을 결정했다.
호호당의 슬로건이 그려진 목함과 보자기 포장.
호호당의 새 공간은 ‘삶’과 ‘계절’을 아우른다. 인생과 1년의 시간표를 모두 담았다고 할까? 지금껏 삶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제품과 절기에 맞는 제품을 자신만의 속도로 채워왔다면, 청담점은 호호당의 결실을 한 번에 보여주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나고 자라 죽을 때까지 마주하는 중요한 날, 즉 일생 의례를 준비하는 날마다 많은 이가 호호당을 찾아왔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가며 누리는 즐거움을 가장 온전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상용품을 만드는 곳이 호호당이기 때문. 양정은 대표는 그 모든 제품과 이야기를 공간에 담았고, 그 덕에 이곳에선 문을 열고 들어서서 나갈 때까지 그립고 사랑하는 여러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공간은 인생의 한 부분 한 부분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간 순서대로 구성했다. 금줄, 배냇저고리 등 출산과 관련한 용품이 놓인 입구부터 시작해 기러기와 보자기 등 혼례를 위한 용품이 놓인 중앙 부분 등 시계 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쇼룸을 돌아 나오면 인생이 느껴질 터. 삶과 계절이라는 두 가지 큰 축을 주제로 삼아 쇼핑하러 온 일반 매장이 아닌, 미술관에 온 것처럼 고객들이 인생을 충분히 음미하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문인 오종잠의 ‘중추가연中秋家宴’이란 시에 나오는 “대팽두부과가채大烹豆腐瓜茄菜,고회형처아녀손高會荊妻兒女孫”이라는 시구로, 추사 김정희가 생애 마지막 해인 1856년에 쓴 대련을 서예가 소헌 정도준 선생이 옮겨 적었다.
배꼽 목함, 제비부리댕기, 본견 오곡 주머니, 화조도 양단 목베개 등을 색깔별로 모아두었다.
혼례의 가장 중요한 예물이던 옻칠 기러기와 기러기 보.
입구 한쪽, 양정은 대표는 이곳으로 이사 오며 추사 김정희가 생애 마지막 해에 쓴 두 폭의 예서 대련을 달았다. ‘대팽고회大烹高會’. 서예가 소헌 정도준 선생에게 부탁한 이 대련은 ‘훌륭한 요리는 두부와 오이와 생강과 나물이고,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과 손주와의 만남이다’를 의미한다. 가족과 지내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이상적인 경지라는 뜻. 이 글귀를 보고 양정은 대표의 머릿속엔 그간 호호당을 방문한 반가운 얼굴들이 스쳐갔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아이를, 배우자를, 부모를, 친구를, 반려동물을 떠올리는 그 얼굴 안에 인생의 행복이 모두 들어 있었구나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새 공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호호당의 메시지다. 양정은 대표는 ‘대팽고회’를 새로운 호호당의 얼굴에 매달며 한국인으로서 일상 의례를 지키며 사는 삶의 가치를 나누길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양한 보자기 선물 포장 앞에 앉은 양정은 대표. 호호당의 모든 선물은 보자기로 포장한다.
호호당 양정은 대표
나만의 방식과 속도로 전통을 지켜가는 일
호호당은 한국 전통이 지닌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요?
겉으로 보이는 전통 디자인의 아름다움보다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아요. 하얗고 작은 배냇저고리는 참 귀엽고 예쁘죠. 그런데 배냇저고리엔 오로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옛날엔 아이들이 쉽게 병에 걸리고 한 살이 되기도 전에 숨을 거두기도 했으니, 정말 이 아이가 살아야 한다는 부모의 간절한 기도가 옷 한 벌에 담겨 있던 거죠. 호호당도 결국은 물건 자체를 만든다기보다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그 이야기를 물건 형태로 전달하는 것 같아요. 그게 호호당만이 지닌 힘이라고도 생각하고요.
그동안 호호당이라는 브랜드는 전통을 어떻게 재해석해왔나요?
호호당은 옛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일상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디자인해요. 결국 물건이란 것은 일상으로 파고들어서 사용되어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통 기법을 우직하게 연마하고 지켜가는 장인과 호호당의 역할은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는 옛 한국 부모의 마음이 담긴 배냇저고리를 만들지만, 그 당시처럼 거칠거칠하고 투박한 원단을 사용하지는 않아요. 옛날에 있었던 물건 그대로 똑같이 따라 만들 때 오히려 어떤 메시지는 흐려지기도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지금 삶의 모습과 너무 다를 때 만든 것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삶의 방식에 조금 맞춰서 그때 그 생활양식과 전통 가치를 담는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어요.
호호당의 합격 엿 선물 세트. 책가도 민화가 그려진 오동나무 목함에 가평의 명물인 가평잣엿을 담았다.
호호당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요?
호호당에 좋은 일이란 명확해요. 출산, 백일, 결혼, 입학, 졸업, 명절…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순간이 좋은 일이자 좋은 날이에요. 저는 늘 그 순간에 행복했거든요. 사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어요. 결혼도 출산도 잘 준비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순간엔 후회가 많았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상례에 대해선 그걸 준비한다거나 떠올린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닫혀 있어요. 제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죽음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잖아요. 슬프거나 우울할 수 있는 순간도 충분히 아름답고 좋은 날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가짐의 문제인 것이죠. 그리고 호호당은 그런 순간까지도 다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브랜드잖아요. 그래서 이전부터 유골함, 토우 등 상례와 제례에 맞는 품목을 갖춰가고 있어요.
앞으로 호호당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시나요?
일생 의례의 순서 속에 있는 것을 진짜 공들여서 하나하나 완전체로 채워가고 싶어요. 요새는 자개 아이템이 유행이니까 자개로 한국적인 걸 풀어본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호호당만의 시간표대로 일생 의례의 생활용품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살면서 좋은 일 혹은 슬픈 일, 힘든 일 등 거쳐가야 하는 일이 있을 때 호호당에 방문하면 마음 깊이 생각나는 사람을 다 챙길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이 되길 꿈꿔요.
호호당 양정은 대표가 추천하는 새해 선물 리스트
1 2024 절기 달력. 계절이 느껴지는 그달의 한시가 한지에 적혀 있다. 매일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다가도 한시, 한지, 매듭을 통해 숨 고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2 색동 복주머니 공기 세트. 쓰고 남은 양단으로 만든 귀여운 복주머니 공기로, 안에는 작은 구슬이 들어 있다.
3 국화 매듭 용돈보. 아스라이 비치는 깨끗한 노방 용돈보로, 행운을 뜻하는 국화 매듭은 팔찌로도 사용할 수 있다.
4 조각보 윷놀이 세트. 명절만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때가 또 있을까. 윷놀이는 이런 순간을 위한 최고의 보드게임이라고 생각한다.
5 양단과 누비 보자기 오너먼트. 보자기를 뜻하는 한자 복 자가 복福과 발음이 같아 보자기 자체로 길상물 역할을 한다. 작게 묶은 보자기에 매듭이 달린 오너먼트가 1년 내내 ‘복’을 전하는 작은 오브제가 되어줄 것.
<호호당>
주소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72길 17 2층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월·화요일 휴무)
문의 02-704-0430, @hohodang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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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태도에 진심이고,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충분히 즐기는 사람은 깊은 마음을 담아 일생 의례를 준비하기 마련. 호호당은 그러한 태도를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생활양식’이라 표현한다. 한국의 색이 담긴 일상 의례용품을 만드는 호호당이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