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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X 건축의 장르를 개척하는 사람들
디자인 그룹 스트락스 어쏘시에이트는 그들이 직접 기획한 공간 브랜드로 건축을 짓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며, 하나의 공간 기획 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시간과 인력, 참여 주체의 공통된 목표 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특히 건축은 시행사부터 건설사,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시공사까지 관련된 주체와 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갑에서 을의 차례가 될수록 시간은 촉박하게 주어진다. 디초콜릿 커피, 스페인 클럽 등 상공간의 인테리어로 시작해 건축 설계로 작업 영역을 넓혀가던 스트락스 어쏘시에이트(이하 스트락스)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스스로 정립하기로 했다. 바로 공간을 직접 기획하고 설계해 짓는 것. 그렇게 탄생한 프로젝트가 주거 브랜드 어퍼하우스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누군가가 작업을 의뢰하러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기획해 사업주에게 제안하고,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주도해 하나하나 설계해 지은 뒤, 그들의 언어로 판매한다.

퍼스트 펭귄의 행동은 낯설어서 누군가는 이를 터부시하고 불편해한다. 하지만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더 빨리 시도하고 변화를 만드는 법. 잘 일하고 크리에이티브를 정당하게 인정받기 위해 택한 방식은 디자이너의 업역을 확장한 것은 물론, 건축가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까지도 앞서 보여주는 듯하다.

현재 스트락스는 설계와 감리를 담당하는 아키텍츠(A) 팀을 주축으로 시공을 담당하는 파트너스(P)와 크레이션(C), 어퍼하우스를 브랜딩하고 아카이빙하는 도큐멘타, 이렇게 네 개 팀이 함께 일하고 있다. 박광 대표는 1백50여 명의 직원이 발휘하는 집단 지성이 스트락스를 앞장서게 하는 원동력이라 말한다.


키아프 VIP라운지에서 만난 박광 대표.

박광
대표는 2009년 스트락스를 설립한 이후 기존의 건축사무소가 용역을 받아서 일하는 방식과는 달리 자신들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3년의 준비 끝에 하이엔드 주거브랜드의 시작인 어퍼하우스를 선보였다.스트락스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용자의 모든 행위를 하나하나 상상하고 준비한다. 기획과 설계, 시공, 브랜딩, 스타일링 등 공간을 이루는 큰 이야기부터 사용자의 손끝에 닿는 작은 디테일까지 모든 부분을 총괄하며, 단순히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기는 삶의 모습까지 만들어 가는 '라이프스타일 디렉터'이다. strx.kr

“저희는 모두에게는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살게 될 사람에게는 박수받을 집을 짓습니다. 마치 카운슬러처럼 취미부터 옷방 가장 깊숙한 곳까지 관찰하고 솔루션을 제안하죠.”

대표이자 디자이너로서 스트락스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저희는 디자인이나 시공 어느 한 분야에 특출한 곳은 아닙니다. 대신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해 의도한 것을 끝까지 구현해내는 힘이 있어요. 설계가 끝나면 시공사나 시행사의 수정을 거치면서 딴판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저희도 그랬고요. 하지만 지금은 처음에 그린 그림의 95% 이상은 실현됩니다.

모든 과정이라 함은 어디까지를 의미하나요?
필요한 공간을 기획해 그 조건에 맞는 부지를 찾는 것부터 설계와 시공, 그리고 완성된 공간을 브랜딩, 마케팅하는 것까지 포함해요. 쉽게 말해 개인이나 시행사가 공간을 개발하고 싶으면 저희에게만 오면 됩니다. 역으로 직접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해요. 건축가는 클라이언트의 아이디어를 공간으로 구현하는 사람인데, 저희는 그 아이디어까지 기획하는 거죠.

작년과 올해 연이어 작업한 키아프 VIP 라운지 또한 스트락스에서 직접 제안한 프로젝트라고요.
키아프 라운지는 키아프가 열리는 동안 화랑협회에 등록된 VVIP가 쉬어 가는 장소예요. 국내 미술 시장은 연간 거래 규모가 1조 원에 달하는데 제반 시설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어퍼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라운지를 짓는 것을 제안했고, 작년 아트 부산과 키아프, 올해까지 3회째 작업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직접 제안하게 됐나요?
키아프에서 작가가 작품을 전시하고, 사람들은 이를 감상하고 구입하는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의 생각과 디자인을 전시하고 공유하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마케팅은 지출하는 비용이 타기팅한 이들에게 정확하게 가는 것이 중요해요. 키아프의 VVIP는 연간 3억 원 이상의 미술품을 구입합니다. 하이엔드 시장의 어떤 상품도 소비할 수 있는 타깃인 셈이죠. 그들을 위해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어퍼하우스와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어요.

어퍼하우스는 방배Ⅰ로 시작해 올해 여덟 번째인 르엘 어퍼하우스까지 선보이며 명실상부 스트락스의 대표작이 됐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어퍼하우스 방배는 다른 시공사가 골조 공사까지 마무리한 상태에서 부도가 난 후 7년째 방치된 현장이었어요.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기에 기존 아파트처럼 설계해서는 어필할 수 없었죠. 차별화 방법을 고민하다 디자이너 에디션처럼 만들기로 했습니다. 소비자가 없는 상태였기에 부지의 성격,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가상 인물을 설정하고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상하며 공간을 기획했어요. 40대 치과 의사와 두 딸이 사는 집으로 콘셉트를 정하고, 피아노를 치는 첫째 딸을 위해 방음이 되는 방을, 그림을 그리는 둘째 딸을 위해 작업실을 넣는 식으로요. 그렇게 열여덟 채의 집을 지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주변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으로 완판했습니다. 상황이 비슷한 주민들이 프로젝트를 의뢰했고, 사례가 쌓이면서 나중에는 도면만 보고도 집이 팔렸어요. 그러면서 커스터마이징을 우리의 방향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지금 스트락스에서 일하는 방식과 원칙은 모두 어퍼하우스에서 비롯된 셈이에요.

커스터마이징의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어필한 걸까요?
예전에는 역세권이나 남향처럼 선호하는 주거 공간의 정답이 뚜렷했다면, 삶의 유형이 다양해진 지금은 개인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공간을 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특정한 사람’의 유형으로 접근하되 집마다 변별력을 주어서 누군가에게 이 집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쌓아간 것이 유효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커스터마이징은 어디까지 시행하나요?
마감재를 교체하는 것부터 구조변경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굽이 23cm 이상인 하이힐만 신는 고객을 위해 하나하나 신발 높이를 재서 맞춤 신발장을 제작하기도 하고, 플로리스트의 집 겸 스튜디오로 설계하기 위해 공간을 분리하고 지하층에서 작업실로 연결되는 입구를 따로 내기도 했어요.

하나의 공동주택 프로젝트이지만 스무 채의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디자인했나요?
자동차의 출고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자동차는 소유자가 차량을 결정한 후에 바퀴나 시트 같은 세부 사항을 바꿔요. 바퀴나 시트를 교체하면 비용과 제작 기간이 추가되고요. 어퍼하우스도 지역과 지형을 고려해 유형을 설정하고 기본설계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실제 소유자가 구입 여부를 결정하고 보증금을 내면 저희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집을 설계하고,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본계약을 합니다.

결과적으로 디자이너가 주체가 된 공간은 기존 방식대로 지은 것과 비교해 무엇이 달랐나요?
아파트는 수십 년의 데이터가 쌓인 결과라 트렌드와 효율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뛰어나요. 이게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가장 효율적인 한 가지 유형만 만드니까요. 범용적인 것은 한편으로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저희는 모두에게는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살게 될 사람에게는 박수받을 집을 지어요. 마치 카운슬러나 정신과 의사처럼 취미부터 옷방 가장 깊숙한 곳까지 관찰하고 솔루션을 제안합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정해진 인물들을 위해 짓다 보니 만듦새도, 만족도도 다릅니다.





키아프 VIP라운지(2023)
스트락스가 기획부터 디자인, 운영까지 디렉팅하는 공간 프로젝트. 올해는 마리아주를 테마로,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들어설 예정인 르엘 어퍼하우스의 콘셉트인 수목원에 맞춰 디자인했다. 녹음의 향기, 새소리 등으로 공감각적 공간을 구현해 어퍼하우스에서 살면서 누리게 될 소소한 행복을 보여주었다. 내년부터는 전 세계 대표 건축가를 선정해 그들의 파빌리언을 설치하는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처럼 좋은 디자이너를 찾아 그들이 라운지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기획할 예정이다. 이곳 또한 키아프에 방문할 또다른 이유이자 건축가, 디자이너를 위한 등용문이 되는 것이 목표다.



카스카디아 골프 앤 리조트(2024 예정)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45만 평의 부지에 클럽하우스와 숙박 시설을 비롯해 하이엔드 골프 리조트를 짓는 프로젝트. 곳곳에 잠깐 멈춰 사색하는 전이 공간을 두고 오가는 이들이 천천히 여유 있게 머물도록 계획했다. 빛과 소리를 조절해 구현한 공간감이 인상적이다. 사진은 카스카디아 홀로, 높은 층고에 천창을 더해 쏟아지는 빛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홀을 관통하며 빛을 따라 오르는 경험은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을 안내하는 듯하다.




어퍼하우스 청담(2017)
어퍼하우스는 디자이너가 ‘기획’한 공동 주거 공간이자 이제는 하이엔드 주거에서 필수 요소가 된 커스터마이징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스트락스의 대표 프로젝트다(삼성전자가 비스포크라는 단어를 선보인 2019년보다 훨씬 전인 2012년 어퍼하우스 방배가 완공됐다). 그중에서도 네 번째 시리즈인 어퍼하우스 청담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갤러리 등 청담동의 다양한 신에서 모티프를 얻어 설계한 럭셔리 하우스다. 옷걸이 하나까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세심하게 디자인한 열여덟 세대의 집을 통해 커스터마이징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샘플 하우스(위)에서는 건축부터 가구, 벽에 걸린 작품까지 직접 계획해 공간의 모든 부분을 디렉팅하는 스트락스의 면모를 드러낸다. 커뮤널 키친과 짐 사이에 위치한 라운지 공간(아래)은 아트피스로 채운 회랑 콘셉트로 설계해 두 곳을 잇는 전이 공간이자 갤러리 역할을 한다.



스트락스 사옥(2019)
논현동에 위치한 스트락스의 사옥. 스트락스의 아이덴티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단순히 업무 공간을 넘어서 구성원이 영감을 받고 성장하는 R&D 센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디자인했다. 디자이너의 일은 현재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 미래에 지어질 공간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이기에 지금 당장 시각적인 결과물을 보여주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오피스를 방문한 클라이언트가 스트락스의 디자인과 취향을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도록 두 개 층에는 업무 공간 대신 넓은 라이브러리와 주방을 조성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양 끝에 멀리 배치한 것. 언뜻 불편해 보이지만, 오르내리는 동선을 길게 함으로써 일하는 도중에도 공간을 거닐며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게 된다. 사진은 스트락스가 추구하는 공간을 구현한 주방과 그에 연결된 브리지 가든.




애서튼 어퍼하우스(2024 예정)
예술품을 수집하는 사람의 세컨드 하우스가 콘셉트인 어퍼하우스의 일곱 번째 시리즈.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의 전망 좋은 부지에 취향이 남다른 열두 명을 위한 서로 다른 열두 채의 집을 짓는다. 콘셉트에 맞춰 1백20평으로 넓은 집이지만 방의 개수를 줄이고 대신 작품을 설치할 벽을 충분히 마련했다. 사진은 패밀리 타입 펜트하우스의 렌더링 이미지. 루프톱 가든(위)은 열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해운대의 바다 전망과 달맞이언덕의 하늘을 모두 담아낸다. 다이닝룸(아래)은 미니멀한 갤러리를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폭 7m의 드넓은 창을 통해 해운대 풍광이 예술 작품처럼 스며든다.


사진 스트락스 어쏘시에이트 제공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