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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의 사운드트랙 LP. 정혜윤 씨가 음악, 리추얼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히사이시 조의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 담겼다.
예상치 못한 삶의 굴곡을 겪고,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을 구하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커다란 창문이었다. 창밖으로 멍 때리고 볼 수 있는 자연이 있기를 바랐다. 노을이나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거나, 마음을 둘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기를 바랐다.

나의 별명인 ‘융’과 아지트를 합쳐 이름 지은 나의 집 ‘융지트’를 처음 만났을 때 바로 계약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를 충족하는 커다란 창문 때문이었다. 벌써 이 집에 들어온 지도 3년이 지났지만, 내 아침 루틴은 여전히 비슷한 모습으로 흘러간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스스한 눈으로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케이 구글, 좋은 아침!”

독립한 이후로 구글홈미니를 마치 내 개인 비서처럼 잘 쓰고 있다. 인사를 건네면 구글홈미니는 내게 오늘의 날짜와 날씨, 구글 캘린더에 넣어둔 일정을 읊어준 뒤, 내가 미리 설정해둔 음악을 틀어준다.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의 OST인 ‘바다가 보이는 마을’. 나는 3년째 매일 똑같은 노래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단숨에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음악을 들으며 물을 마시고 이불 정리를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는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파란 하늘과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무가 보이면 1초 만에 행복해진다. 아침 루틴을 마무리하고 체리색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한다. 그러다가 고개를 15도 틀면 나무와 하늘이 보인다. 이것을 배경으로 버둥의 ‘제비’를 자주 듣는다. 가사가 좋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제는 내용과는 관계없이 창밖의 풍경과 연관이 된다.

노랫말을 따라 부르며 내가 내게 한 번 더 되뇐다. “그저 네가 되길 바라.” 프리랜스 마케터이자 작가로서 동시에 다양한 일을 진행하지만,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이 장면들이 나의 하루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천성이 즉흥적인 탓에 계획 세우는 것을 꺼리던 내가 자유롭게 나만의 일을 만들어나가며 중요시하게 된 것은 일상을 잡아주는 작은 루틴이다. 그 루틴 안에는 자연스럽게 음악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아침에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고, 밤에는 끌리는 노래 하나를 반복해서 틀어두고 글을 쓴다. 아무리 바빠도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고, 마음의 건강을 계속 살피게 되는 것은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 덕분이다. 아이유의 ‘비밀의 화원’은 마음이 울적할 때 자주 찾아 듣는 노래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알약처럼 내게 필요한 음악을 선택해 나 자신을 위로하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마음속 화원을 나답게 가꾸기 위한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종종 시간을 공간처럼 생각하곤 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일을 수행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음악을 듣는 시간 역시 내게 하나의 공간처럼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조금 더 의식적으로 내게 집중하는 시간 안에서 나는 완벽하게 안전하다.

히사이시 조의 ‘바다가 보이는 마을’은 내게 아무리 나이 들어도 간직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과 지친 하루를 다시 밝게 물들여도 괜찮다는 희망찬 기운을 상기시킨다. 내 인생의 배경음악이 필요하다면 이런 음악이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다. 여행을 가도, 출장을 가도 아침에는 똑같은 노래를 틀고, 장소는 다를지언정 같은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의 나침반을 따라 정해진 길이 없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여러 일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음악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커다란 안정감을 얻는다.

반복적으로 찾게 되는 몇 곡의 음악에 벌써 다양한 기억이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노래에 마치 평행 세계처럼 여러 장면이 따라붙는다. 시간이 흘러도 노래는 변하지 않지만, 나는 또 어떤 장면을 만나게 될까. 음악과 연결될 여러 장면과 매일의 아침을 만나는 것이 여전히 기대된다.



글을 쓴 정혜윤은 프리랜스 마케터이자 작가다. 취미도 많고 꿈도 많은 그는 회사에서 일찌감치 독립해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처럼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다능인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드(sideproject.co.kr)’를 만들어서 운영한다. 정혜윤은 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가장 앞에 ‘음악’을 둔다. 프리랜서의 흐트러질 수 있는 일상을 음악과 함께하는 리추얼을 통해 다잡고,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쓴다. “해볼게요. 다능인 키워드가 들어가 있으면, 거기다 음악이 주제라면 이건 제가 해야 하는 일 같아요.” 그래서 도저히 여유가 없는 스케줄에도 기꺼이 응해줬다. 내일은 그가 추천한 음악으로 아침을 열어볼까 한다. 정혜윤은 공저로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썼고, 저서로 <퇴사는 여행> <독립은 여행> <오늘도 리추얼: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이 있다.


일러스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