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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 churchill 오로라, 벨루가 그리고 북극곰의 도시
캐나다 유일의 북극권 항구도시 처칠에선 1년 중 3백 일 이상 오로라가 뜨고, 여름엔 벨루가가, 가을엔 북극곰이 자연을 누빈다. 누군가의 버킷 리스트가 이곳에서는 그리도 쉽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는 9월 말~10월 초 그 대단한 도시에 있었다. 본격적인 베어 시즌을 맞기 전,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북극곰 영접기.

베어 시즌이 시작될 무렵 처칠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누비는 북극곰 한 마리. 
처칠과 작별하기 세 시간 전, 핸드폰 메모장에 적은 이 기사의 초고는 “세계 북극곰의 수도에서 결국 북극곰을 보지 못했다”로 시작했다. 모두에게 당연한 것을 나만 누리지 못한 듯한 박탈감에 좌절할 즈음, 출국 비행기의 운항 경로 변경이 초래한 운명 같은 세 시간은 북극곰 ‘영접’의 기회를 선물했다. 그리고 나는 곧장 옹졸한 마음이 깃든 그 문장을 가차 없이 삭제했다. 그래서 이 원고는 이렇게 시작해야 마땅하다. “세계 북극곰의 수도에서 운명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한 마리의 북극곰을 만났다!”


처칠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만난 툰드라늑대. 툰드라 버기 투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니토바주에서 4천 마리밖에 없는 툰드라늑대를 발견했다. ⓒJulie king
북극해와 연결된 허드슨만 남서쪽에 위치한 캐나다 처칠. 앞서 두 번이나 언급했지만,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7월부터 11월 사이 처칠 타운 인근 해안가로 북극곰이 모여들기 때문에 처칠은 세계 북극곰의 수도라 일컫는다. 그 이유를 수치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처칠의 인구가 약 8백 명인 반면, 이 지역에 서식하는 북극곰 수는 약 9백~1천 마리. 또한 1만 1천 명의 관광객이 베어 시즌bear season이라 부르는 10~11월에 오직 북극곰을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여름인 7~8월에는 바위가 많은 해안에서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히거나 육지를 걸어 다니는 북극곰을, 가을인 10~11월에는 바다표범과 물개 등 먹이를 사냥하며 눈 속에서 생활하는 북극곰을 만날 수 있다. 1년 중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북극곰을 자주 볼 수 있는 달은 10월과 11월로 한정되어 있고, 그렇기에 처칠 북극곰 투어는 명백한 ‘가을 여행’으로 불린다. 오늘부터 누군가 이맘때쯤 처칠에 간다고 하면 아주 멋진, 아주 특별한 가을 여행을 떠나는구나 생각하라.


이 곰에 이름을 붙이자면 이른바 ‘Our Bear’. 4박 5일 처칠 여행 끝자락에 운명처럼 만난 곰이다. 이 사진을 찍은 가이드 앨릭스에게 다른 곰 사진이 아닌 ‘우리’가 본 곰 사진을 보내줘야 한다며 장난치듯 말했다. ⓒAlex cupeiro/ Frontiers North Adventures
얼굴은 퍽 귀여워 보이긴 하나, 수컷의 경우 몸무게가 600kg 이상 되며 키가 3m가 넘는 거대한 북극곰의 무엇이 그리 매력적이어서 존재만으로도 전 세계 많은 사람의 버킷 리스트가 되었을까? 지금은 처칠 주민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할 만큼 북극곰에 호의적이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북극곰은 처칠 주민에게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였다. 예고 없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올라와 건물을 파손하는 북극곰이 그저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사실 이 터에 먼저 자리 잡은 주인은 북극곰인데 말이다).

그저 잡아두기 급급하던 북극곰과 공존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이 거대하면서도 귀여운 생명체는 처칠의 마스코트이자 도시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되었다. 나는 처칠에 머무는 4일 동안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시간도 북극곰의 표식을 보지 않은 때가 없었다. 온 마을엔 북극곰 형상을 한 표지판, 벽화, 굿즈 혹은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


북극곰 탐험을 떠나는 툰드라 버기의 뒷모습.
걸어서 관찰하는 워킹 사파리, 헬리콥터 투어 등 북극곰을 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프런티어 노스 어드벤처Frontiers North Adventures에서 운영하는 툰드라 버기Tundra Buggy에 탑승했다. 특수 차량인 툰드라 버기는 타이어가 두껍고 차체가 가벼워, 위압적인 크기에 놀란 것과 달리 승차감이 안정적이었다. 22년간 버기를 운전했다는 베테랑 운전사 밥 디베츠Bob Debets의 차에 탑승해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처칠 야생동물 보호구역(Churchill Wildlife Management Area)’을 돌았다. 처칠이 위치한 매니토바주는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북극곰 보호법을 제정할 정도로 북극곰의 개체 수 보호에 적극적이다. 따라서 북극곰 관찰 투어 또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진행한다. 보호구역 안에서 운행할 수 있는 툰드라 버기 수와 이동 거리에도 제한이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투어에선 북극곰을 보지 못했다. 북극곰이 자주 발견된다는 골든 포인트, 폴러베어 포인트, 심지어 운전사 밥이 북극곰을 56마리나 봤다는 호수 근처에서도 그 어떤 수상한 움직임도 포착하지 못했다. 고개를 창밖에 고정하고 뚫어져라 바라본 결과는 곰처럼 생긴 흰 돌만 수백 개 보았을 뿐이다. 그래도 툰드라 버기 체험만으로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북극곰은 못 봤지만 툰드라늑대와 대머리독수리가 어린 새를 물어가는 장면을 ‘직관’했다. 직접 이 버기를 운전해보는 시간도 있었는데, 나중엔 툰드라 버기 운전사 자격증까지 수여받았다.


허드슨만 앞 처칠의 사진 스폿이자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이눅슈크Inuksuk 위로 오로라가 떴다.
이 투어에서 북극곰을 볼 최상의 기회는 놓쳤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드라이브’라 명명하며 쉬지 않고 처칠 주변을 돌아다녔고, 북극곰의 뒤꽁무니를 포착하려 애썼다. 그리고 국제 북극곰 보호 단체(Polar Bears International), 마을로 온 북극곰을 포획해두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북극곰 수용소(Polar Bear Holding Facility), 처칠 북구 연구 센터(Churchill Northern Studies Centre) 등 관련 시설을 탐방하며 북극곰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물론 변명의 여지없이 즐거웠으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루 같은 북극곰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갈망은 북극곰 인형, 티 코스터, 티셔츠, 키링, 피겨, 팔찌, 메모지까지 각종 북극곰 굿즈의 구입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더 사야 널 볼 수 있는 거니!


북극곰 수용소라고도 일컫는 폴러 베어 홀딩 퍼실러티. 마을까지 온 북극곰을 이 시설에 잡아 뒀다가 추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건물 옆엔 베어 트랩Bear Trap도 놓여 있다.
처칠을 떠나는 마지막 날, 길람을 거쳐 위니펙으로 가야 할 출국 비행편이 위니펙 직항으로 변경되면서 세 시간의 여유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세 시간을 북극곰을 마주할 마지막 기회에 쏟아부었다. 처칠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진입한 버스. 우리의 가이드 제이슨 랜섬Jason Ransom은 몰던 차를 멈춰 망원경을 바라보길 반복했다. 네 번째쯤 정차했을까, 그는 ‘폴러 베어Polar Bear’라는 이름 넉 자를 자신 있게 외쳤다. 북극곰이 돌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주시하는 등 며칠간 북극곰의 습성을 공부하며 그들을 스토킹하는 기분이었는데, 마침내 북극곰을 발견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바닷가 인근에서 내내 누워 있다가 3초 정도 빼꼼 고개를 들던 북극곰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시간, 우리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인내심 충만한 사진작가가 된 것 같았다. 마치 움직일 것처럼 다리를 스트레칭하고 바다 쪽을 쳐다보더니 다시금 누워버리던 북극곰. 이런 모습을 베어 요가bear yoga라고 한단다. 지금 지구상의 북아메리카에서 이 곰을 보고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라는 말에 흥분한 것도 잠시, 한자리에 정차한 우리를 보고 다른 차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북극곰의 냄새를 맡은 것이리라. 제이슨은 같은 곰을 보려고 여러 차가 서 있는 모습을 전형적인 “Tundra Traffic Jam”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제 진짜 베어 시즌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고.


국제 북극곰 보호 단체인 폴러 베어스 인터내셔널에서 북극곰의 모든 것을 연구하는 연구원들. 북극곰이 물개를 잡아먹는 모습을 시연 중이다.
4박 5일간 우리의 처칠 가이드를 맡았던 프런티어 노스 어드벤처의 제이슨과 앨릭스 쿠페이로Alex Cupeiro는 처칠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북극곰이 아닌 ‘자연경관’을 뽑았다. 북극 해양, 북극 툰드라, 해양림(arctic marine, arctic tundra and boreal forest)까지 세 가지 다른 생물 군계를 보유한 처칠. 북극곰을 보지 못한 시점에서, 그럼에도 내가 처칠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자연 때문이었다. 이 정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지구의 단면을 봤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심정이었다. 10월 초의 공기는 적당히 차고 너무나 맑아서 처칠은 가만히 눈 감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하나 더 덧붙이자면 나는 이틀 밤 연속으로 오로라를 직관했다. 오로라 아래 국보급 자연 속에서 북극곰과 벨루가(흰색 돌고래)가 떠도는 도시. 아,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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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북극곰을 만날 수 있는 베어 시즌이라면 2~3월은 오로라, 6~7월은 야생화, 7~8월은 벨루가가 처칠의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봄·여름·가을·겨울 모두가 지루할 틈 없는 처칠의 사계절.



초여름, Wild Flower
파이어위드Fireweed 꽃밭 사이로 뒹굴거리는 북극곰을 구경할 수 있는 계절. 눈이 아닌 꽃밭에 몸을 누인 곰 모습과 탁 트인 들판을 가득 메운 분홍빛·보랏빛 물결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60~100cm 이상 자라는 파이어위드. 처칠 주민들은 종종 이 파이어위드로 젤리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여름, Beluga Whale
북극해 지방에서만 서식하는 벨루가. 얼음이 녹은 후 처칠강의 비교적 따뜻한 해역으로 이동해 서식하는데, 이때 벨루가 떼가 처칠 앞바다 가까운 데에서 목격되곤 한다. 이 시즌엔 벨루가와 같이 수영하며 상호작용할 수 있는 투어를 많이 진행한다. 가장 인기 있는 건 벨루가 카약과 패들보트. 스노클링도 인기가 좋다.



겨울, Northern Lights and Dog Sledding
처칠의 선주민(원주민) 데이브 데일리Dave Daley 가족이 운영하는 와퍼스크 어드벤처Wapusk Adventures. 여기선 데이브의 개들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설원 풍경을 감상하며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처칠은 오로라가 잘 보이는 세계 3대 장소 중 하나. 특히 밤이 길고 추운 1월부터 3월이 오로라를 보기 가장 좋은 시기다. 티피 혹은 툰드라 버기 안에서도 즐길 수 있는 화려한 오로라 투어가 준비되어 있다.


사진 및 취재 협조 캐나다관광청, Travel Manitoba

글 오송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