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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 법 길에서 영감을 발견하는 자연 관찰 기록
혹시 멋진 작업실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펼쳐진 저들의 호기심과 추진력에 가슴이 설레지는 않았나? 그렇다면 자연과 책, 음악을 도구로 영감을 얻는 세 사람의 글을 읽고 실천해보자.

이다 작가가 가을날 산책하며 수집한 풍경. 버스 정류장의 흰독말풀, 학교 담장 옆 은행나무, 전신주 아래에서 주운 까치 깃털.
내가 사는 곳은 은평구의 오래된 빌라다. 가장 가까운 전철역까지 가는 길엔 높이가 비슷비슷한 빌라와 상가들이 빼곡하고, 길은 온통 보도블록과 아스팔트로 메워졌다. 이런 곳에서도 자연을 관찰할 수 있을까? 자연 관찰 일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의심스러웠다. 지리산 같은 곳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서울 밖으로라도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막상 자연 관찰을 시작해보니 자연은 어디에나 있었다. 오히려 볼 것이 너무 많아 매번 멈춰 서야 할 정도였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자연은 시작된다. 빌라 옆 작은 화단에 키가 크고 껍질이 얼룩덜룩 벗겨진 나무가 보인다. 잎은 마치 발가락이 세 개인 오리발처럼 생겼다. 도심에 많이 심는 중국단풍나무다. 그 옆에는 홀로 솟아 있는 시든 해바라기가 있다. 여름에 꽃이 너무 커져 고개가 꺾이자, 이웃 주민이 지지대를 만들어 묶어놓았다. 자연 관찰을 하다 보면 사람의 손길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도시의 틈새를 비집고 자라난 풀 한 포기, 작은 나무 한 그루에 애틋함을 느끼는 이들의 마음이 정겹고 사랑스럽다.

버스 정류장 옆에는 내 어깨높이만 한 풀이 있다. 크고 예쁜 하얀 꽃을 매달고 있는데, 위에서 아래를 향한 꽃이 마치 무용수의 하늘거리는 치마 같다. 이 식물이 무엇인지 아는 데는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사실 어떤 식물이든 구글 렌즈나 모야모 같은 앱을 이용하면 금방 알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검색하지 않는 것이 내 나름의 자연 관찰 규칙이다. 인터넷을 이용해 쉽게 알게 된 것은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다(그리고 재미도 없다).

궁금증이 숙성될 때까지 오래도록 관찰하고, 식물도감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식물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식물도감이라고 해서 모든 식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출판사가 다른 도감을 몇 권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흰 꽃의 식물은 그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한 달 뒤, 우연히 빌려서 본 <잡초 도감>에서 이름을 발견했다. 흰독말풀이었다. 궁금하던 식물을, 시간을 들여 알게 되면 절대 잊지 않는다. 마치 게임의 중요한 퀘스트를 완료한 것 같은 재미와 성취감은 덤이다.

초등학교 담장을 이웃한 길에는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다. 그중 절반이 암나무라 가을이 되면 악취를 풍기는 열매가 사방에 널려 있다. 코를 틀어막고 징검다리 건너듯 깡충거리며 걷는 길이지만 여름에는 풍취가 남다르다. 7월이면 푸르고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동그란 초록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다. 누렇게 익기 전에는 냄새도 나지 않고 딱딱하다. 은행나무는 태어나서 지금껏 지겹게 보았는데도 관찰하기 시작하면 아직도 새롭게 알아갈 것이 있다.



어느 날은 전신주 아래에서 깃털을 주웠다. 전체적으로 까만데 푸른빛이 도는 것으로 보아 까치의 깃털이다. 가지고 다니는 지퍼백에 얼른 깃털을 넣고 손을 소독한다. 집에 돌아가면 깃털을 비누로 씻은 다음 수건 위에 두고 잘 말려 스크랩북에 넣는다. 이렇게 모은 깃털이 1백여 개다. 깃털을 보면서 그 새의 모습을 떠올린다. 깃털 하나는 하찮아 보이지만, 이 역시 하늘을 날던 깃털이다. 깃털을 가지면 활공의 경험을 약간이나마 소유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본 것을 자연 관찰 일기에 기록한다. 날짜와 요일, 시간, 장소를 쓰고 날씨와 기온도 적어 넣는다. 오늘 본 것을 간단하게 그림으로 그린다. 그림은 훌륭하지 않아도 된다. 글도 다듬지 않은 거친 상태여도 괜찮다. 오늘 본 자연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기록을 모아서 펴낸 책이 <이다의 자연관찰일기>다. 책이 나온 후에도 계속 자연 관찰 일기를 쓰고 있다. 속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 자연을 보고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나를 둘러싼 자연의 변화를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위대한 창작자다. 자연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나뭇잎 하나하나도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 자연이 창조한 창작물을 보는 것은 더없이 영감을 얻는 일이며, 그 자체로 창조적인 일이다. 시큰둥하기 쉬운 일상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창문 밖을 보자. 우리와 가장 가까운 자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다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자연과 일상, 여행을 그림과 글로 기록하고 사람들과 나눈다. 코로나19로 인해 운영하던 스튜디오를 닫고 은평구 언덕 위 빌라로 이사한 뒤 자연 관찰 일기를 쓰기 시작해 지난 6월, 1년의 기록을 모아 책 <이다의 자연관찰일기>를 펴냈다. 평범한 일상도 일기로 기록하면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그는 여전히 매일 산책하며 자연 속에서 일상의 영감을 수집한다. 저서로 <이다의 허접질> <무삭제판 이다 플레이> <걸스 토크> <기억나니? 세기말 키드 1999>가 있으며, 손으로 그린 여행 노트 <내 손으로, 발리> <내 손으로, 교토> <내 손으로, 치앙마이> <이다의 작게 걷기> 등이 있다.

구성 김혜원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