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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가 걸어갈 미래의 지형도를 엿보다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공예. 공예를 단순히 아름답고 쓸모 있는 물건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그 단순한 인식을 바꿔줄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인간과 자연의 공진화로 만들어진 다양한 공예품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며, 동시대 공예가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수준 높은 전시를 통해 보여준다.

다카하시 하루키의 ‘복류수의 정원’. 넝쿨과 풀꽃 모두 도자기로 만들었다.
이종국 작가는 닥종이뿐 아니라 쓸모없이 버려지는 자연물을 재료로 삼아 공예품을 만든다.
삶과 죽음의 순환, 찰나의 아름다움을 크고 상징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황란 작가의 작품.
지난 9월 1일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라는 주제로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의 막이 올랐다. 공예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고, 공예의 가치를 확장해온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올해 ‘인간과 자연과 공예의 관계항’에 주목한다. 팬데믹 이후 전 지구적 환경 위기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요즘, 자연의 사물을 이용해 인간을 위한 다양한 기물을 제작해온 공예 역시 반성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동시대 공예가 지닌 다양한 양상을 전세계 57개국 3백여 명 작가의 2천여 점 작품을 통해 펼쳐 보인다. 자연의 천연 재료와 장인의 오래된 기술이 결합된 순수한 형태의 전통 공예인 ‘생명사랑의 공예’부터 플라스틱 시대가 만든 디스토피아를 극복하려는 인류의 노력인 ‘바이오플라스틱 공예’, 공예와 디지털이 만나는 ‘디지털 공예’, 이러한 모든 공예를 순환시키는 ‘업사이클링 공예’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본전시를 관람하면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제시하는 새로운 공예론이 무엇인지 몸소 이해할 수 있다.


서로재의 ‘우리 서로 다리가 되어’. 나성숙 교수를 중심으로 옻칠에 대한 열정으로 총 열일곱 명의 작가가 뭉쳐 완성한 작품이다.
따뜻한 흙빛 테라코타로 유기적 기형의 도자를 조각하는 김명진 작가의 최신작.
스페인의 공예를 만날 수 있는 초대국가전. 로에베의 가죽 장인으로 활동하는 이도이아 쿠에스타Idoia Cuesta의 작품.
작품의 주재료인 팽나무를 골라 청주 현장에서 직접 작업한 유르겐 베이 등 80% 이상의 작가가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에 더욱 특별한 이번 전시. 본전시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전시로는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을 추천한다. 오늘날 공예의 지형을 넓혀줄 국내외 신진 공예 작가들이 앞다퉈 참여한 이 전시는 본전시와는 다른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 이번 비엔날레를 총괄한 강재영 예술감독과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 대상 수상자인 고혜정 금속 작가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청주공예비엔날레 속 공예의 매력을 한층 깊이 느껴보길 바란다.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총감독한 강재영 예술감독.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
강재영

지난 청주공예비엔날레와 비교했을 때 올해 특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팬데믹 이후 일상으로 돌아온 환경 속에서 열리는 만큼 이번 비엔날레는 관객과 소통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본전시, 초대국가전, 국제공모전뿐만 아니라 담배 공장이 문화 제조창이 된 아카이브전, 창작 공방 레지던시 작가의 특별전 등을 통해 전 세계 공예의 현주소와 지역의 공예 콘텐츠를 보여주고, ‘어린이비엔날레’, 체험·마켓·공연이 펼쳐지는 ‘열린비엔날레’까지 축제형 비엔날레로 구성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청주현장에서 작업을 한 작가와 보낸 시간이 기억에 남는데, 그중 다카하시 하루키의 ‘복류수伏流水의 정원’ 설치 과정이 인상 깊었다. 백자로 만든 가는 나뭇가지와 꽃송이를 일일이 꽃꽂이하며 붙이고, 수천 개의 낚싯줄로 거는 작업이었다. 보름 넘게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피, 땀, 눈물로 하나의 정원을 완성했다. 서양 작가들도 “blood, sweat, tears!”라고 하더라. 작가, 큐레이터, 테크니션 등 모두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전시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돌아보면 아주 멋진 추억으로 남는 것 같다.

전시의 총감독으로서 관람객이 어떤 자세로 작품을 감상하길 바라나?
공예 작품은 실물을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하다. 금속, 유리, 도자, 섬유 등 그 재료의 물성과 공예가의 솜씨가 결합되었기에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촉각적 공감각을 동원해서 살펴봐야 한다. 아주 작은 오브제 속에 새긴 문양부터 작품의 텍스처, 재료 그리고 오브제를 만드는 기술과 제작 과정을 이해하고, 그 속에 숨은 이야기까지 눈으로 만지듯이 찬찬히 살피며 감상하길 바란다.


대상작 ‘The Wishes’ 옆에 선 고혜정 작가.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 대상 수상자
고혜정 작가

이번 수상작 ‘The Wishes’는 어떤 작품인가?
3천여 개 이상의 민들레 갓털 모양 금속 유닛을 용접으로 접합해 비정형적인 항아리 형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사실 ‘희망이 담긴 항아리’였다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내게 희망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인데,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은 요즘이기에 무엇보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형태적으로는 고향이 제주도이다 보니 항아리를 생각했을 때 제주 오름이 먼저 떠올라, 그 모양을 상상하며 항아리를 제작했다.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이 작품이 각자 소원을 비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도록 하기 위해 비정형적 형태로 만들었다.

특히 민들레 갓털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은 이유는?
어느 봄날 민들레 갓털 하나가 몸에 붙어서 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더니, 멀리서 봤을 때보다 매우 입체적이고 아름답더라. 그리고 민들레가 생명력이 무척 강하지 않나. 많고 멀리 퍼지는 민들레 갓털처럼 더 다양한 방면으로, 더 멀리 작품 활동을 펼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첫 개인전을 연 2007년부터 지금까지 이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금속공예 작품임에도 차갑기보다 편안하고 따뜻한 매력이 느껴진다.
금속은 활용법에 따라 시적이면서도 온화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 점이 내겐 매우 매력적이라 평소 작업할 때에도 은을 많이 사용한다(이번 수상작은 은이 아닌 은 도금이다). 먹색 하나로도 작품의 농담을 다르게 표현하는 수묵화처럼, 은도 한 가지 색인 것 같지만 광의 유무와 선의 굵기에 따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다.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3천 개 이상의 작은 금속 유닛을 정교하게 이어 붙이는 일은 오랜 시간에 걸쳐 굉장히 세밀하고 치밀하게 작업해야만 가능하다. 공감과 감동을 넘어선 ‘감탄’을 만들어내는 것이 공예가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의 세밀함과 치밀함이 감탄을 자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기간 2023년 10월 15일까지.
장소 문화제조창 및 청주시 일원
문의 043-219-1818, @craftbiennale_2023


취재 협조 청주공예비엔날레조직위원회

글 오송현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