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김민주 씨는 그날 ‘내가 물고기인지, 물고기가 나인지’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험을 했다. 입가에 미소가 돌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기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물고기다. 작품을 본 이들은 대체로 화폭에 시원하게 핀 연꽃에 먼저 시선이 가서 ‘연꽃 그림’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 그림의 발원은 자그마한 물고기였다. 제목도 ‘어락도漁樂圖’, 물고기가 노니는 그림이다.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이 떠오른다. 장자 자신이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이야기처럼 물아일체의 경지를 말하고자 한 것일까? “전시회를 마무리하고 <장자>를 읽어보았어요. 제가 애써 도달한 이치를 장자는 술술 풀어내셨더군요. 앞으로 좀 더 공부해볼 작정입니다. 아직은 물아일체나 무위자연의 도道를 깨닫지 못했지요. 정확히 표현하면 저는 그때 그저 물고기에 동화되고 싶었던 거죠. 언젠가 물고기가 유영하듯 유유자적 살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으니까요.” 물고기 작업을 시작한 뒤로 일에 쫓길 때마다 ‘쉬고 싶다’고 되뇌며 노트를 펴서 스케치를 했다. 그때 나온 드로잉에는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 혹은 물고기가 등장한다. 힌트는 관념이 아닌 일상에서 얻는다. 가령 길게 누워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리는 가족의 뒷모습을 닮은 자세 말이다.
김민주 씨가 그린 연꽃에는 뿌리가 없다. 연꽃은 연못에서 하느작거리며 떠다닌다. “동양화를 공부했기에 전통적인 모티프와 친숙하긴 하지만, 불가에서 말하는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이나 옛 연꽃 도상을 표현하려던 것은 아니에요. 뿌리를 알 수 없는 꽃을 화면에 한 줄기씩 흩어놓는 기분으로 그렸어요. 연못의 구도를 새롭게 창조해보는 작업을 하는 데도 연꽃은 고마운 역할을 했지요.” 연꽃뿐 아니라 호젓하게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 송나라 산수화가 종병의 와유臥遊를 연상케 하듯 누운 채 유랑하는 포즈, 기와집 등 전통 모티프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다. “제가 토대한 한국의 전통 회화 역시 저에게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제가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를 전통에서 엿보았어요.”
앞으로 ‘이상한 세상’을 더욱 다채롭게 그려볼 예정이다. 물고기뿐 아니라 각종 삼라만상이 등장할 것이다.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에요. 자기만의 시각으로 밖에서 들여다보니 기묘할 뿐, 천연덕스러운 인어人魚는 자유롭게 놀고 있는 중이니까요.” 이제 물고기의 무덤덤한 표정을 이해할 것 같다. 사람들은 그림 속의 처음 마주하는 생물을 ‘희한하네’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겠지만, 그 물고기들은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구경하는 인간들이 이상할 터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들을 별로 괘념치 않으려는 듯 ‘뭘 그렇게 봐?’ 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프로필
동양화가 김민주 씨는 올 한 해 숨가쁘게 데뷔전을 치른 신예 작가다. 올해 초 네 건의 공모전에 당선되었고 공모전을 전후해 전시회를 열 건 정도 치렀으니, 연꽃 사이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물고기가 되고 싶었을 법하다. 1982년에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올해 갤러리 라메르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5년부터 현재까지 21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 동양화가 김민주 씨 장지를 헤엄치는 물고기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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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아주 무더운 날이었어요. 졸업 전시회의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었죠. 이것도, 저것도 다 해보고 싶은 와중에 어서 작품 하나는 나와야 하지…. 그러다 어느날 호숫가에 앉아서 유유히 돌아다니는 물고기를 봤어요. 아무 생각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지요. 순간 저는 물고기가 되어 물속을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