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 떼가 지나는 길은 먼지가 뿌옇다.
2 사람 키보다 큰 흰개미집 앞에서 구혜경 씨와 아이들.
3 집 근처 아루샤 국립공원에서 만난 기린.
4 소 떼를 모는 키다리 마사이와 함께 벌판을 지나갔다.
“겁도 없죠. 어떻게 일곱 살, 다섯 살짜리 남매를 데리고 낯선 아프리카에 갈 생각을 했을까요. 돌아와보니 모험을 감행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죠.” 구혜경 씨는 2년 전 두 아이들과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는 동안 밤잠을 설쳤다. ‘말라리아나 체체파리가 아이들을 해치지는 않을까?’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지만, 너무 무모한 게 아닐까?’ 온갖 걱정이 몸집을 더 크게 불려서 엄습했다.
끝없는 지평선과 킬리만자로를 찾아서
구혜경 씨가 결국 아프리카행을 결정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았으면 해서다. 한국에서도 자연이 늘 우리를 반기지 않느냐고 반문했더니 그는 이렇게 답한다. “어디를 보나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하고 익숙한 지형에서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나 킬리만자로 같은 거대한 산지, 혹은 거대한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있지요. 아이들이 그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생경한 자연환경에 놓이는 것은 분명 낯선 경험일 테니까요.”
그는 대안적인 자연 친화 교육인 공동 육아를 해오고 있었다. 교실을 벗어나 매일 산책을 하고 친환경 농산물을 먹으며 왜 자연을 거스르지 말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그러던 중에 여기에서 만난 김정미 씨 가족과 아예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아프리카에 가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보다는 길고 생활이라 하기엔 다소 짧은 모험을 떠났다.
“서울에서 아프리카 케냐, 서울에서 미국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모두 열네 시간가량 걸려요. 두 곳 다 멀기는 마찬가지인데 아프리카가 더 아득하게 느껴졌지요. 아마 심정적인 거리가 더 멀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들은 우선 탄자니아보다 물자가 풍부한 이웃 나라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3주 동안 필요한 물품을 구비한 뒤 탄자니아로 건너갔다. ‘심정적으로 먼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아이들은 새집 근처의 커다란 가로수인 자카란다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곳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큰딸 세원이와 둘째 윤재는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았어요. 장난감도 없는데 뭘 하고 놀았는지 저도 잘 몰라요. 어느 날에는 큰 나무 찾아 다니면서 나뭇가지를 꺾어서 마당을 쓸기도 하고, 소 치는 아이를 흉내 내며 놀기도 하더군요.” 밖에는 차도 별로 다니지 않고, 위험한 물건도 없으니 아이들이 나가 놀아도 걱정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학교는 현지 아이들이 다니는 곳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1970~1980년대 우리나라 학교 사정과 비슷했다. 위압적인 대형 칠판이 교실 벽면을 차지하고, 콩나물 시루같이 책상과 의자가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그곳도 이제 막 교육열이 일기 시작한다는 증거였다. 아이들이 교실과 교과서로부터 자유로운 학교를 갈망했던 그는 결국 아이들을 영국인이 운영하는 학교와 마당이 넒은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 “예체능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독서를 강조한다는 점이 흡족했습니다. 한국의 학원식 수영 교육은 1년 동안 네 가지 영법을 마스터하는 식인데, 거기에선 발 담그고 물장구치는 데만 두세 달을 보낼 정도로 차근차근 가르치지요. 그 덕에 물에 들어가보지 못했던 남매가 수영 하나는 제대로 좋아하게 되었어요.” 케냐에서 셋이 말 타는 법을 배울 때도 그랬다. 승마란 그곳에서 스포츠라기보다 말의 호흡을 느끼며 동물과 교감하는 과정이었다.
1 아이들은 하마 등에서 쉬는 새들을 보며 연신 키득거렸다.
2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를 진짜로 보았다.
3 김정미 씨의 두 아들 지호·지민이와 세원·윤재 남매.
아프리카가 가르쳐준 것
서울로 돌아와 학교에 들어간 세원이는 이제 2학년이고, 윤재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탄자니아에서의 생활을 기억조차 못할 텐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구혜경 씨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들은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가까이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 숲 속의 기린을 만났고, 앙상한 뼈만 남아 뒹굴던 세렝게티의 버팔로 잔해를 만져보았고, 거대한 바오밥 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것만으로 족한 일이다. “자연에는 네모가 없어요. 모두 둥글거나 무정형이지요. 세계적인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들은 대부분이 시골 출신인데, 그들이 상상력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에요. 제 아이들이 탄자니아에서 얻은 것은 가령 시험 점수랄지 독해력의 속도 등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아이들의 가슴속에 그곳의 기억이 보일 듯 말 듯 녹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작은 씨앗이 언젠가는 제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피어나겠지요.”
세원이의 꿈은 ‘자연보호주의자’다. 구혜경 씨가 일러준 적도 없는데 스스로 그리 정했다. 사람들이 지구를 더럽히는 것이 가슴 아파 동물과 꽃나무들을 보호하고 싶단다. 윤재는 여전히 낙천적이다. 탄자니아의 집에서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이!” 혹은 “잠보!” 하며 말을 걸더니 요즘도 동네 어른들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하곤 해서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두 아이들은 때때로 엄마가 쓴 책 <아프리카 초원학교>을 펼쳐 보며 ‘아프리카가 그립다’고 한다.
남매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다음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요즘 친구들이 뚱뚱하거나 못생겼다고 놀렸다는 이유로 자살한 청소년들이 있지요. 자신을 사랑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이 학원에는 없습니다. 자연 속에 있다고 봅니다. 바위틈에서 피어난 꽃을 보며 은연중에 ‘살아 있는 존재는 모쪼록 생육하고 번성해야지’ 하는 것을 배우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게 되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힘을 기르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