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최초로 바닥에 구멍을 뚫고 설치한 작품 ‘무제’와 마우리치오 카텔란. 이 작품은 마치 미술계에 침입한 이방인으로서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듯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2019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 처음 등장해 12만 달러에 팔린 후, 퍼포먼스의 일부로 한 작가가 먹어버리며 큰 충격과 질문을 던진 바나나 설치 작품 ‘코미디언’(2012).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삶의 폐부를 찌르며 현실을 뒤틀다
미술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도 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의 이미지는 익숙하다. 이것이 과연 예술 작품인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무려 12만 달러에 판매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로 일컫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 언’이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히틀러와 거대한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공중에 매달린 말 그리고 구멍 난 바닥에서 머리만 내민 채 바깥을 살피는 작가 자신의 모습. 카텔란은 태양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명제를 증명하듯 기존 이미지를 재사용하고 비틀어 미술사의 주요점을 오마주하거나 미술 제도를 재고하고, 죽음과 소외 등 개인적인 동시에 인간사를 관통하는 작품을 보여준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비로소 미술계에 들어섰다는 그의 배경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변곡점이 많은 그의 인생사는 전형적인 미술가 유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정체화하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모두’ ‘우리’ ‘아홉 번째 시간’ ‘코미디언’ 등 조각, 설치, 벽화 등 주요 작품 38점을 망라하는 한국 최초의 개인전 가 리움미술관에서 7월 16일까지 열린다. 작품 설치 현장에서 만난 그는 논쟁적이며 사회의 민감한 이슈와 맞닿은 작품과는 달리 매우 쾌활한 모습이었다. 자신을 똑 닮은 조각 작품 옆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한국 최초 개인전 가 열리는 리움미술관 전경. 커다란 큐브로 나눈 구성은 상점의 쇼윈도처럼 보이고자 한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당신 자신의 이미지를 작품에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보니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로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전혀 편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숨기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거예요. 사실 저는 매우 수줍어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자가 모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아요. 이런 저의 성격이 제 이미지를 내세운 예술 작품을 만든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저를 형상화한 작품은 마치 저 대신 역할을 수행하는 스턴트맨과 같습니다.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이 전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저는 모든 작업을 통해 배우는데, 특히 잘 모르는 나라에서 제 작품을 전시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시 작품에 대한 반응은 조금씩 다르지만, 놀라운 점은 모든 위도 (latitude)상의 지역에서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관객들이 저의 전시를 매우 흥미로워하고 많이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제 인생의 여러 단계와 순간을 대표합니다. 전시회는 합창과 같아서 아무리 아름답고 특별한 작품이라도 그 하나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제작 당시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의 작품 ‘아홉 번째 시간’(1999). 전시장을 넘어 사회적 관행과 질서, 권위와 신념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당신은 작품을 통해 이 사회의 다양한 주제(때로는 논쟁적인)를 다룹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해석 또는 메시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유명하죠.
예술가에게 진정한 도전은 시간이 지나도 작품이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빠르게 소비하기 쉬운 이미지로 가득 찬 현재의 세상에서, 이제 예술가의 작품은 점점 이미지의 힘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이 아니라 영속성의 가능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효과가 있다면 그 예술 작품은 수 세기 동안 지속될 수 있겠죠. 저는 무엇보다 예술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제가 예술가에게 일상적 주제나 뉴스에 대해 논평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의 작품 이면에는 언제나 우화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앞서 말했듯 당신의 일상과 삶이 작품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는지 말해주세요.
저는 지극히 지루한 루틴을 따릅니다. 이것은 일상적으로 저를 둘러싼 명백한 현실 속에서 산만해지지 않게 해줍니다. 오늘은 전날의 복사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순조롭고 다루기 쉽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반복성은 바닥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받는 데 더 개방적이 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매우 드물지만) 무언가에 진심으로 놀랄 수 있게도 만들어주지요. 아이디어란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쁠 때 떠오르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카텔란의 이중 자화상 ‘우리’(2010). 관에 누워 있는 듯한 두 남성의 모습은 삶과 죽음, 권위에 대한 오마주와 전복을 한꺼번에 단행하는 카텔란의 태도와 겹쳐진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당신은 인스타그램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당신의 계정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가장 돋보이고, 사람들은 당신의 작품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끊임없이 올립니다. 이 시대에 소셜 미디어는 아티스트에게 어떻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까?
소셜 네트워크는 예술을 위한 양날의 검이에요. 더 많은 사람에게 예술을 널리 퍼뜨리는 데 유용하죠. 동시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온라인에서 예술을 더 많이 소비할수록 당신은 그것에 익숙해지고 직접 보는 것에 무감각해집니다.
생전에 참회하지 않은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의 작품 ‘그’(2001). 금기시하는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질문하고, 토론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작을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아메리카’와 ‘코미디언’에 이어 삼위일체를 완성하고 싶어 준비하고 있지만, 지금은 더 자세한 내용을 공유할 수는 없겠네요. 이 외에 또 다른 프로젝트도 계획 중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고아원을 설립하고 싶어요.
당신의 최후 목표는 무엇입니까? 일생에 한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습니까?
몇 년 전에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 을 그만둔 이후로,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습니다. 이제 이를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 로비에 설치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무라카미 다카시.
자전적 캐릭터 ‘도브DOB’와 더불어 무라카미를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 ‘무라카미 플라워’가 설치된 전시관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현대인의 불안과 기형적인 동시대 문명을 다루다
일본 만화에서 영감을 받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은 카텔란의 바나나만큼이나 대중에게 익숙하다. 특히 2002년 루이 비통과 협업, 이후로도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은 그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부산 시립미술관의 ‘이우환과 그 친구들’ 네 번째 시리즈로 3월 12일까지 개최하는 <무라카미좀비>는 전시를 보려면 한 시간 이상을 대기해야 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이다.
일본 대중문화, 특히 만화가 지닌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의 미학을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와 이에 기인한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하는 좀비(그가 좀비처럼 내장을 드러낸 설치 작품도 포함되었다)를 타이틀로 활용한 점은 미술계의 높은 장벽을 허물기에 충분해 보인다.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며 스타일리스트와 전속 사진가까지 대동한 모습에서 마치 연예인처럼 MZ 세대에게 동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타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동일본 대지진부터 인간의 공포와 두려움, 고뇌와 욕망, 팬데믹 그리고 동시대 AI 미술까지 깊고도 진지했다.
위기적 상황에 처한 세계에서 생존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과 강박을 상징하는 좀비를 전시 제목 <무라카미좀비>로 설정했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동일본 대지진은 당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TV를 보는데, 아이에게 어떤 분이 “엄마가 별이 됐다”라고 설명하는 장면을 봤다. ‘아, 이것은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이구나’라고 느꼈다. 전쟁이나 질병을 거치며 인간은 죽음을 경험한다. 하지만 자연재해는 명확한 원인도 원한을 풀 상대도 없이 인간에게 크나큰 충격과 상처를 준다. 이럴 때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는 것이 종교의 핵심이구나, 어떤 이야기가 중요하겠구나 깨달은 것이다. 지진을 겪고 두 점의 작품을 만들었다. 5백 명의 신이 등장하는 100m가량의 대형 작품 ‘500나한도’와 90분짜리 장편영화 <메메메의 해파리>다. 영화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 마사시가 시골 마을로 이사 와서 겪는 모험담을 담은 SF 판타지물이다. 결국 나도 스토리가 있는 예술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3년 전 시작된 팬데믹은 또 다른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그렇다. 종교도 이제 기능하지 못하게 됐다고 생 각했다. 스토리도 만들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빠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때 아이들을 보니 학교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게임하고 놀더라.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상이 그 아이들에게 열린 것을 보았다. 지금 이 세계는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 두 가지 리얼리티가 공존한다. 그렇다면 가상현실에서도 어떤 것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무라카미 플라워’ 작품으로 NFT 아트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일본 전통 회화 속 요괴의 이미지를 차용해 만든 조각 작품 ‘용의 머리 – 골드’(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지금은 인공지능이 예술 작품도 그리는 시대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미술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했다. 그러니 얼마나 그림을 많이 그리고 연습을 했겠는가. 그렇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 돌이켜보니 그림을 잘 그려내는 기능과 기술은 큰 의미가 없다. 키워드만 입력하면 기가 막히게 그림을 그려주는 요즘 AI 기술이 있으니 더욱 그렇게 됐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콘셉트가 있는가’다. 사람들은 내가 NFT 아트도 하니 예술의 미래에 대해 묻곤한다. 하지만 난 오래된 인간이다. 오래된 인간인 내게 미래를 묻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난 지금 예술을 할 뿐이다.
이번 전시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존경하는 이우환 선생님의 초대는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전시 제안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이번에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과 함께 전시한 ‘원상’ 시리즈는 단숨에 그린 동그라미라는 점에서 캔버스 위에 선 혹은 점이라는 최소한의 표현을 추구하는 그의 작품과 형식적으로 유사하기도 하다. 동시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시를 찾 는다고 생각한다. 나의 전시를 보고 마치 스포츠의 한 종목을 이해하듯 그렇게 흥미롭게 봐주면 좋을 것 같다.
- 문제적 작가 2인이 던지는 질문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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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작가, 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두 예술가의 전시가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이들은 금기시되는 대상 혹은 서브컬처를 소재로 사회적 통념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 세계를 펼치며,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작품을 선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일 큰 화제와 인기를 끌고 있는 전시를 작가가 직접 설명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