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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씨킴의 제주살이 I Have a Dream: 두 번째 이야기
아라리오그룹의 수장으로, 열세 번째 전시를 연 예술가 씨킴으로, 세계 미술계의 큰손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MZ 세대까지 제주 탑동 ‘아라리오 로드’로 불러 모으는 아트 디렉터로…. 하는 일이 많아 보이긴 하지만 그의 재료는 한 가지다. 바로 예술. 그는 그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 하는’ 그는 허공보다 자신의 발밑을 믿는 현실주의자다. 지극히 ‘이 세상의 예술’을 하는 그를 나는 15년 만에 다시 만났다.


아라리오 뮤지엄 제주 탑동시네마에서 씨킴의 열두 번째 개인전 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 ‘I Have a Dream’은 마틴 루서 킹의 연설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마틴 루서 킹처럼 인류를 향한 꿈이든, 우리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위한 꿈이든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꿈이라는 씨킴의 생각을 담았다. 씨킴은 매일 새로운 꿈을 꾼다. 두번째 사진은 전시장 벽면에 씨킴이 써놓은 글귀다.
이 집에서 보는 별은 밝고 크고 수려할 것이다. 이 집에서 보는 바다 또한 넓고 깊고 수려할 것이다. ‘좌 우도, 우 성산’, 이쯤 되는 바닷가 마을에 그가 산다. 이 집에 사는 그의 어깻죽지에선 왠지 깃 펴는 소리가 날 것 같다고, 나는 멀리 허공을 수평으로 건너는 비행기를 보며 생각한다.

꼭 15년 전, 나는 제주 하도리 작업실에서 매일 열 시간씩 손톱이 닳도록 그림을 그리던 씨킴을 만났다. 그는 1백 호, 2백 호짜리 대형 캔버스에, 소형 작품에나 쓰는 콩테·파스텔을 칠하고 문지르고 또 칠하는 중이었다. 30년 가까이 비즈니스에서 성공의 탑을 쌓아 올린 사람, 2005년 <모노폴>의 ‘세계 100대 컬렉터’에 선정될 정도로 작품 수집에서도 성공의 탑을 쌓은 사람이다. 그러나 2007년 당시 그는 모든 수식을 벗고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선언한 채 지독한 셀프 트레이닝 중이었다. 그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마음을 눅신하게 눌렀다. “호랑이가 어느 날 식성에도 맞지 않는 토마토로 토스트를 구우려 합니다. 세상에 못 할 일 없다 믿고 있던 호랑이는 한없이 작아짐을 느낍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토마토 박스를 잔뜩 쌓아놓고 끈질기게 토마토를 구워봅니다.”(당시 그의 네 번째 개인전 주제도 ‘슬픈 호랑이, 구운 토마토’였다.)

15년 후 그는 여전히 개발코(재복이 들어 있다는 복코)를 찡긋거리며 고지식해 보일 정도로 고집스러운 기세로 작품에 몰두 중이었다. 아라리오갤러리 제주와 천안에서 열두 번째, 열세 번째 개인전 와 가 각각 열리고 있었고, 제주 탑동에 수년째 만들고 있다는 ‘아라리오 로드’도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그리고 15년 만에 만난 그의 이야기는 모든 끝이 하나로 묶이는 듯했다. 숫눈에 난 발자국을 한 걸음씩 되짚는 어린애처럼 나는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을 되밟아보고 싶었다. 첫발을 얼른 그의 발자국에 넣었다.


이 자리에서 회의도, 식사도, 드로잉 작업도, ‘바다멍’도 한다. 가끔 다목적이 무목적으로 변하는, 전통 건축의 마당 같은 공간이다.
저 앞으로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천하 절경의 집. 마당에 겨울 나목처럼 서 있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씨킴의 조각 작품이다.
자화상, 다른 작가가 그린 씨킴의 초상화.

Why Not?
“나는 어릴 적부터 열등감을 안고 살았어요. ‘Why Not?’ 마음속에 이런 소리가 맴돌기 시작하면 그것에 몰두해 주변 소리를 듣지 못하고, 멍하게 있고…. 핸들 잡은 것도 잊으니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대학도 삼수 끝에 후기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지식이 부족했고요. 나는 그게 재앙이고 벌인 줄 알았어요. 남들은 내 머릿속을 모르니까 ‘저거 뭐 하는 거야?’ 손가락질하고, 배신하고. 살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죠. 버려지는 물건에 동정심을 많이 느끼는 건 이런 이유 때문 같아요.” 아… 대개의 위인전은 이렇게 시작하지 않는다. 화술, 건강미가 넘치는 듯한 지금의 그에게서 그런 모습을 짐작해내기란 쉽지 않다.

살아서 몸뚱이 불태우는 짓이 사업이라 했거늘, 그는 30 여 년이나 사업가로 살았다. 1978년 어머니가 빚 대신 받은 천안터미널을 그가 맡은 지 6개월 만에 매달 적자 3백만 원에서 흑자로 돌려놓으며 시작한 사업이었다. 돈이 없어 허덕일 때 수면제 30알을 들고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도 있다는 것, 천안 야우리백화점 회장 집무실에는 그 시절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매미의 꿈’을 적은 동판 ‘드림드림드림’(맴맴맴 우는 매미 소리가 그에겐 이렇게 들렸다)이 있었다는 것…. 삶의 떫고 쓴맛을 맛본 사람의 이야기이다. “나는 여태까지 부정과 긍정을 두고 선택한 적이 없어요. 긍정만 놓고 이걸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느냐를 생각했지. ‘Good’에서 더 나아갈 일, ‘Better’까지 욕심냈다간 낭패 볼 일, ‘Best’까지 욕심낼 일… 이런 걸 생각하기도 바쁜데 말이죠.” 이러한 자기 긍정도 쓴맛을 참고 삼킨 이에게 만 오는 기쁨일 터다.


15년 전 그의 곁을 지키던 차우차우 사진, 작업 재료로 사용하느라 쓰고 버리지 않은 일회용품, 책…. 복잡한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곡차곡 정리된 모습은 촬영을 위한 연출이 아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정원 일을 하고, 딱 이 자리에 앉아 전날 배달된 책을 살피고, 신문을 읽는다. 매일같이 날아오는 수많은 우편물은 오랫동안 그에게 작품의 밑그림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편물을 살피는 아침 시간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아침밥도 건너뛰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드로잉 작업에 몰두한다. 오른쪽 바닥에 그 흔적이 역력하다.
‘생명과 영혼’이라는 개념을 비즈니스에도 접목하는 씨킴이 롱 라이프 디자인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와 함께 2020년 문을 연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 ‘호텔 같은 것의’ 느낌을 주자는 나가오카 겐메이의 의견을 반영해 숍과 식당에 호텔을 더했다.
“1978년에 처음으로 남농 허건 선생하고 청전 이상범 선생의 작품을 샀어요. 왜 샀냐고? 나도 모르겠어요. 우연인지 운명인지 내 몸에 이상하게 예술이 들어 왔어요. 예술이 내 마음 밭에 씨를 뿌린 거야. 진짜 내 인생에 예술이 없었다면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물질로 성공했더라도 볼품없는 돈이었겠죠. 그때부터 병처럼 또 그림을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보는 눈이 생기고, 비행기를 1천 번도 더 타며 좋은 작품을 구하다 보니 갤러리 주인도 되고. 1999년부터 갑자기 그리지 않으면 터질 것 같아서 원을, 비가 무지개가 되는 과정을 그리다 보니 지금의 씨킴이 되고. 병인 줄 알고 있던 ‘Why Not?’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네요.”

철학적 의미의 수사가 아니다. 그에게는 예술이 생존 차원에서의 구원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예술이란 행위는 결핍을 넘어서는 도구, 세상을 향하는 자신에 대한 격려, 자기를 상승시키고자 하는 욕구 아니었을까.


모자 말고 멋을 쓰신 회장님!
개인전 에서는 아날로그 텔레비전 모니터 화면을 수동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 쓰임을 다한 사물로 완성한 설치 작품 등을 선보인다.
낡은 것을 위한 시
내가 두 번째 되밟은 그의 발자국은 ‘생명과 영혼’이다. 앞서 그의 말 속에 “버려지는 물건에 동정심을 많이 느낀다” 라는 것이 그 실마리다. “1990년대 초 어머니를 여의고 굉장히 힘들었어요. 내게는 선생님이자 모든 것인 분이니까요. 그동안 슬쩍 덮어둔 삶과 죽음, 그 근원에 대한 질문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예전의 병처럼 또 그것에 빠져 허우적대다 어느 날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데요. 나는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어떤 감정을 주는 대상이면 그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어요. 똑딱똑딱 벽시계가 멈출 때 그건 죽음이지만 다시 움직이게 하면 그건 생명이잖아요. 왜냐면 그걸 보는 사람에게 감정이 생기게 하니까. 생명은 곧 감정 인 거죠. 어떤 걸 봤을 때 따뜻한 물을 마시듯 머리가 맑아 지고 풍요로워지면 저는 그것이 영혼이라고 생각해요. 그 런 걸 느끼는 순간부터 제 컬렉션이 좋아졌어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과 영혼’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어릴 적부터 무리와 동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한 그는 쓰임을 다해 버려진 물건과 자신을 동일시해왔다. 아티스트 씨킴에게도 그 물건은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고 싶은 대상이었다. 일찍이 시멘트, 철 가루, 목재, 목공용 본드 등 건축 재료를 자신의 작업 영역으로 들여왔고, 이번 개인전 에서도 <롤링스톤> <포춘> 등 대중잡지 표지를 2백 호 커피 페인팅 연작으로 전시했다. 아라리오백화점에서 쓰다 폐기한 마네킹, 해변 으로 밀려온 고철 부스러기, 직접 모은 일회용품도 고스란히 당당한 작품 재료가 되었다.


프라이탁 백팩, 코오롱 시리즈와 협업해 우편물과 잡지 위에 드로잉한 작품을 프린트한 티셔츠. 회장님의 여름 복장이다.

1990년대 탑동 중흥기를 함께하던 동문모텔, 2005년까 지 젊은이들의 아지트이던 탑동시네마처럼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공간을 2014년 아라리오뮤지엄으로 재생한 것도 생명과 영혼에 연루되어 있다. 그걸 살려서 탑동에 다시 생 명을 주고픈 것이다. ‘롱 라이프 디자인’을 핵심으로 작업 하는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와 뜻을 함께하며 디앤디 파트먼트를 아라리오 로드의 한 축으로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매에 나왔으나 유찰된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공간 사옥을 시세보다 30% 비싼 금액을 주고라도 구입해 첫 아라리오뮤지엄으로 만들고 그 건축의 오랜 시간을 살려두려 한 것도 이 이야기로 통한다. ‘스토리와 스토리가 합쳐져서 히스토리가 된다’는 것을 믿는 이의 행보다. 지금 그는 아라리오 로드의 끄트머리, 문 닫은 채 방치돼 있던 ‘해수사우나’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에 몰두 중이다.

언젠가 나는 ‘예술은 전달된다기보다 감염된다’라는 무릎을 칠 만한 표현을 들었다. 예술은 감염되어 함께 앓아야만 하는 것, 그럼으로써 치유력을 지니는 것이란 말일 게다. 자신의 작품에, 역사적 공간에, 도시의 골목에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고자 하는 그는 우리도 예술에 감염되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지금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에서 만날 수 있다.
9월호 표지 작품 ‘Untitled, 2017’과 연결되는 회화. ‘Untitled, 2017’(26), cement and acrylic on canvas, 320×244cm.
신데렐라 하우스의 씨킴
저 멀리, 허공을 수평으로 건너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성산의 집. 본래 이 집은 하루에 1만 원을 받던 게스트하우스였다. “들어가니 포로수용소 같더라”는 이 집에 왜 사람들이 드나드는지 살피니 그 앞바다가 천하 절경이었다. 이민 간 집주인과 대리인인 그 조카에게 7년 동안 구애를 했다. 수중에 넣은 후 건축가 대신 ‘집 짓는 이’라는 말이 마침맞은 이와 뼈대만 남기고 집을 뜯어고쳤다. 그리고 마당 한쪽, 잘생긴 나목이라 착각할 나무 형상의 조각도, 함선의 바위 닻처럼 생긴 조각도 제자리를 잡아주었다.

이 집에는 목적이 잘 안 보이는 공간이 여럿이다. 밥 먹는 부엌도, 그림 그리는 작업실도, ‘바다멍’ 하는 참선방도 되는 공간이 그렇다. 하긴 우리 옛집 마당이 그러했다. 깨도 털고, 잔치와 제사도 치르고, 벌렁 누워 별바라기도 하는, 목적이 정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또 이 집은 동선이 꽤 길다. 대청을 오르고, 마당을 가로질러야 하며, 뒷간 갈 때 조차 신을 신고 벗어야 하던 옛집처럼 말이다. 문도 몇 없다. 동선을 한껏 줄여놓았지만 문 하나만 닫으면 완벽히 ‘먼 집’이 되는 요즘 집과 좀 다르다. 어쩌면 옛날 집처럼 동선이 길어서 사유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전통 건축을 연구한 적도 없는 그가 지은 집이다.

그는 이 집에 ‘신데렐라 하우스’라는 이름도 붙였다. 들르는 이들이 유리 구두 신은 신데렐라처럼 비상하는 집, 새 모습으로 변해가는 집이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서다. 이 집에서 그는 아침 5시면 일어나 잡지나 신문 위에 드로잉 작업을 한다. 그를 혼내는 유일한 사람, 그가 ‘내 마음의 보석 상자’라고 부르는 정신적 도반인 아내의 “사람이 말야, 전시를 좀 뜸을 들여서 해야지” 같은 지청구도 들어가며 말이다. 사업적인 것은 아들(아라리오 제주 김지완 대표)과 (주)아라리오 대표에게 맡기고,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미술관 일, 새로운 작가를 찾는 일이다.


‘Untitled, 2017’(32), cement and acrylic on canvas, 320×244cm.
“요새는 아침 5시 반이나 6시쯤 해가 쫙 떠요. 그걸 보고 있으면 뭔가 풍운의 뜻을 가득 품는 것 같아서 그렇게 좋아요. 막 새로운 희망, 굉장한 희망 말이에요. 이곳에서 뭘 하냐면… 그전에 먼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거는 에너지를 잘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죠. 나는 힘을 낭비하지 않거든. 문자 같은 것도 안 해요. 그 게이트에 들어가면 또 다른게 생겨. 복잡해지지.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즐겨야지 문자 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나는 전시를 보거나 옥션에 가는게 아니면 여행도 안 좋아해. 목적 없이 낯선 곳에 가면 발작 비슷한 게 생겨요. 차를 타면 자야 해 무조건. 아니면 생각하거나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걸 지시하거나. 내 머릿속 생각과 에너지를 잘 보관하는게 중요해요. 이 집에서 나는 그런 걸 해요.”

씨킴은 2014년부터 탑동 살리기에 나섰다. 1990년대 제주 최고의 번화가였지만 남쪽 신도시로 중심이 이동하며 지금은 구도심이 된 탑동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다. 최근 그는 ‘해수사우나’ 공간을 되살리는 데 몰두 중이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의 레노베이션을 맡은 나가사카 조와 생각을 모으고 있다. 지금은 의류 브랜드의 팝업 전시가 열리고 있다.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 마네킹, 문, 폐목재 등 모두 버려진 생명에 씨킴이 그만의 영혼을 불어넣었다.
어린아이 그림 같은 예술을 꿈꾸며
15년 전 “어린애 같은 그림, 매일의 구체적 삶이 배어 있는 어른의 그림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그. 그 꿈은 지금도 여일하다. 주저 없다는 점에서 대가와 아이는 닮았 다. 억압도 금기도 모르는 아이의 태생적 자유, 구도 끝에 대가가 다다른 걸림 없음. 씨킴은 그런 예술을 꿈꾼다. “어린아이는 분명히 사과의 생김을 알고 먹어보기도 했는 데, 전혀 다른 걸 그려낸단 말이에요. 그 머릿속에서 사과 이상의 뭔가가 상상되는 거거든. 그런데 나는 아직 그 연결이 안 돼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진짜 너무 답답하지.” 바꿔 말한다. 어쩌면 그가 이루고자 하는 필생의 역작은 자기 자신일 터다. 그는 자신이 지닌 생각과 마음이 그림과, 사진과, 설치와, 조각과 똑같은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어린아이처럼. 그가 예술을 캔버스에만 두지 못하고 삶 속으로, 와글대는 저자로 확장시키는 이유도 그것일 터다.

<행복> 9월호 표지 작품 ‘Untitled, 2017’도 이 이야기와 고구마 줄기처럼 엮인다. 어릴 적 회현동에서 자란 그는 여름이면 남산에서 매미를 잡고, 겨울이면 남산 비탈길에서 썰매를 탔다. 비가 그친 후 남산에는 큰 무지개가 자주 떴는데, 그 색감을 보면 마음이 벅차올랐다. “내가 1999년부터 그림을 그리지만, 왜 그리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다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 문장, 내 주변의 사건, 형상이 내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남산 숲속의 시간도 그런 것이죠. 아직까지 어린아이 같은 감정을 그림에 못 그려내고 있는데, 이렇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순간적으로 툭툭 나오는 게 있어요.” 가로 3m가 넘는 표지 작품은 바탕을 시멘트로 칠하고, 시멘트와 혼합되는 특수 안료를 큰 붓으로 뭉개듯 칠한 그림이다. 나는 그가 예술을 찾기 위해 헤맨 구도의 반경이 어느 정도 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오래, 치열하게, 먼 길을 돌아왔을 것은 자명하다. 내가 그에게서 새의 깃 펴는 소리를 듣는 것은 그저 환청이었을까. 오늘도 열심히 날갯짓하며 헤매는 중이며, 열심히 돌아오고 있는 중 아니었을까. ‘새들의 집’ 하늘과 ‘물고기의 집’ 바다가 수평으로 맞닿은 그 성산 집으로 말이다.


표지 작가와의 만남
개인전 〈Overcome Such Feelings〉를 씨킴이 직접 도슨트합니다.

일시 10월 11일(화) 오전 11시
장소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참가비 1만 원
인원 10명
신청 http://www.designhouse.co.kr/event/event_detail/646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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