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민 씨의 최근 작품에는 나무가 자주 등장한다. 나무는 자연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싹이 움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가 하면 잎을 떨어뜨린 뒤 얕은 호흡으로 겨울을 견뎌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과 동물도 자연과 같은 생명력으로 충만한 상태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그 생명력을 추적하다 보니 나무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생명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동어 반복 같지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기운”이라고 답한다.
좀 모호하다면 자연스러운 기운이 넘치는 그의 화폭 속으로 들어가보자. 나무가 우거진 숲의 어느 한쪽에 하늘을 나는 기이한 새가,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가, 그리고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이 있다. 각 요소의 자유분방한 동세만큼이나 눈길이 가는 것은 색이다. 원색의 향연이다. “요즘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색이 자연의 색이에요. 자연의 색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자연의 색을 구현하려다 보니 원색을 찾게 되었어요.”

1 키아프 전시회에 출품된 자신의 작품 ‘해바라기(내 어머니의 자장가)’(2006) 옆에 선 화가 박정민 씨.
2 ‘깊은 숲 속’(2006)
3 ‘언덕에서(사랑은 긴 기다림)’(2006)
박정민 씨에게 그림이란 ‘색의 예술’이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 색이 주는 느낌을 즐기려고 해요.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형태를 구상할 때도 그 색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형태를 택해 그립니다. 그러니까 형태란 색과 색이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실루엣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의 그림에서 나무나 사람, 동물 등의 형태가 단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색과 색이 맞물릴 때의 아름다운 어울림을 추구하기 때문에 형태가 자세하거나 복잡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색이란 제 작품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요. 그래서 색을 쓰는 감각에 따라 제 작품이 계속 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좀 더 자유로워지면 궁극적으로 언젠가는 형태가 사라질 것 같아요. 그러면 최대한 단순화된 형태 안에서 색이 좀 더 자유롭게 춤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박정민 씨의 작품이 어딘가 낯익다면, <행복> 2004년 8월호의 표지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그때보다 자연을 모티프로 한 작품에 더욱 천착하기는 하지만, 인물상을 보면 박정민 씨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내 작품의 영원한 테마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할까? “그럼요. 사랑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절대적인 사랑이 있다고 믿어요. 제 힘으로 어떻게 되지 않는 사랑, 의식하지 않아도 한없이 깊고 넓어지며 거부할 수 없는 사랑 말이지요.” 그의 가슴속 절대적인 사랑은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났을까? 여기, 만물이 약동하는 울창한 숲 속에 한몸이 된 연인이 있다. 그러니 박정민 씨에게 사랑은 자연의 생명력과 같이 자연스러운 기운이라는 뜻도 될 것이다.
프로필
1961년에 태어난 화가 박정민 씨는 동국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유화 및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그리는 아크릴화에는 따뜻한 힘이 느껴진다. 모자母子, 집 안 풍경, 숲 속 나무와 동물 등 일상과 자연을 바라보는 화가의 애정 어린 시선도 읽을 수 있다. 1993년 관훈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작년 아트사이드에서의 전시까지 개인전을 여섯 번 더 열었고, 20여 차례 단체전에 참여했다. 1999년에는 가나아트갤러리의 후원으로 파리 아틀리에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