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뉴스는 행복하게, 슬픈 뉴스는 슬프게
인터뷰는 우리 화물선 골든로즈호가 중국 해역에서 침몰한 다음 날 진행되었다. 그는 일요일 뉴스 시간에 강한 어조로 중국 정부와 우리 측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혼이 나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은 그의 단호한 어조 때문이었을까.
“행복한 뉴스는 행복하게 하고 아픈 뉴스는 아프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어제 같이 화물선이 침몰한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제가 그 사람의 가족이 돼야 하는 거죠. 그 사람의 가족이 되면 ‘아, 슬프다’고만 하는 게 아니라 중국 사람의 늑장 대응과 중국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분노할 것 아니에요. 그리고 ‘사고를 낸 나쁜 놈이야 그렇다지만 빨리 대응했더라면 구명보트에 매달려서라도 살 수 있었잖아’ 하는 의문이 들지요. 그냥 ‘사고 났다’는 것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골든로즈호에 대한 멘트를 들으니 무섭게 느껴지던걸요.(웃음)”
“솔직히 마음도 아팠지만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클로징 멘트도 그런 쪽으로 썼어요. 망망대해에서 치고 도망가면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냐고요. 자동차 사고는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다 구해주거나 전화로 신고라도 해줄 수 있지만, 바다에는 자기밖에 없는데…. 뉴스 멘트를 그보다 훨씬 세게 하고 싶었어요.
인간에 대한 도리부터 시작해서 얘기를 하려다가 참고, 그나마 수위 조절해서 얘기한 겁니다.(웃음)”그는 지난 3월 복직한 이후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취재를 하고, 주말 저녁에는 뉴스를 진행한다. 보통 기자들은 2~3분짜리 뉴스를 3주에 하나씩 완성하는데 그는 4분짜리를 매주 만든다. 뉴스의 소재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시간양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듯 보인다. 그는 금요일에 밤을 새고 토요일 뉴스를 진행하는 때도 있다.“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뭔가요?”“취재죠.(웃음) 기사 아이템. 아이한테 미안하죠.(웃음)”
“기사 아이템은 어떻게 찾나요?”“요즘에는 <뉴스데스크>의 ‘앵커 리포트’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제보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아니면 신문기사를 보면서 ‘이것은 심층적으로 취재하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찾아요. 요즘에는 인물 포커스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데, 한화 김승연 회장 구속되기 전에 한 번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예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김승연 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까닭은요?”“있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해주면 우리도 있는 그대로의 시각으로 기사를 보도하고 싶어서였죠.”뉴스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미국의 유명한 여자 앵커 바바라 월터스에 대해 들려주었다. 예전에 소송에 휘말렸던 마이클 잭슨이 ‘바바라 월터스 하고만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어떠한 일로 만난 취재원이든 상대를 항상 애정으로 대하고, 상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만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한다.“객관적이라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세요?”“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에 서서 보는 것, 아니면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는 곳에서 바라보는 것. 그러면 양쪽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으니까 객관적으로 될 수 있겠지요. 사람들이 ‘나쁜 놈이야’라고 손가락질한다고 해서 그렇게 기사를 쓰면 그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얘기죠.”
1997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 김주하 씨는 뉴스 앵커로 활동하다 2004년 기자 사내 공모를 통해 기자로 전직했다. 앵커는 전 분야를 두루 알 수 있고, 기자는 자기 기사만큼은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곰처럼 우직한 여자
초등학생 때 그의 성격은 지금 같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때에는 남자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여자 친구들 하고만 놀았다. 남자 아이와는 얘기를 하지 않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 누가 장난으로 툭 치면 ‘아, 왜 그래?’ 하고 마는 편이었다. 내성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뀐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다.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다.“언제쯤 외향적인 성격이 드러났나요?”“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게 있어요. 항상 연말이면 친구들이 ‘주하, 네가 이런 성격인 줄 몰랐어. 이런 아이인 줄 알았다면 먼저 친해졌을걸’ 하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생각한 것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대학 때는 4년 내내 같은 친구들하고 지내니까, 학기 초마다 친구들에게 나를 알리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서 진짜 편하더라고요.(웃음)”“외향적으로 된 것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을까요?”
“터닝 포인트라고 얘기할 만큼 심하게 변하지는 않았는데요.(웃음) 그냥 초등학교 때는 남자는 나랑 다른 애라고 생각했고, 선을 그었어요. 아마 남자 형제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신문을 만들었다. 원래는 방송반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날짜를 놓쳐 시험을 보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신문반 활동을 권유했고, 이를 계기로 신문반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그의 인생 계획에 없었던 기자라는 직업이 생겨난 것은 신문반 활동 덕분이다.뉴스가 좋고 앵커가 좋아서 MBC에 입사한 그는 처음에는 고전이 심했다. 입사 동기들은 모두 정규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는데, 그만 1년 이상 정기 프로그램을 맡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전전하며 자잘한 일들을 하며 지냈다. 지방 출장도 많았다. 고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시청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도 회사는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어느 날 MBC 사보에 신입 아나운서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실렸는데 ‘김주하’만 없는 일이 생겼다. 회사에서는 그가 있는지도 몰랐던 것일까? 그의 마음은 많이 서운했다. 그렇다고 뭐라 할 말도 없었다.“입사 첫 해가 10년 직장 생활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나요?”
“아니에요.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처음 기자와 앵커를 병행했을 때예요. 저녁 뉴스 마치고 밤 11시에 퇴근하고, 다음 날 아침 5시까지 경찰서에 갔었죠. 그래서 몇 달 하다가는 쓰러졌어요. 그런데 회사에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회사에서는 경찰 기자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진정한 기자 수업을 받는 거라 끝까지 우겨서 하다 생긴 일이라 (쓰러졌다는) 말은 하지도 못했죠.(웃음)”“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경찰서에 출입하겠다고 우겼는지요?”“기자 수업을 안 받고 대충 한다면 앵커와 기자를 겸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자 이름만 달 바에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어요.”
“독한 데가 있나 봐요?”“가끔 독하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곰 같다고도 얘기해요.”그는 스물여덟 살에 앵커석에 앉게 된다. MBC 아침뉴스 <뉴스 투데이>의 여자 앵커였다. 첫 번째 정규 프로그램으로 다가온 것이 그토록 원하던 뉴스였던 것. 신입 아나운서를 앵커로 임명하던 당시 풍속으로는 ‘나이 많은 28세 여자 앵커’는 파격적이었다. 이런 경우를 보면 방황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앵커가 되니 무엇이 좋던가요?”“사실, 저는 뉴스가 좋고 앵커가 좋아서 MBC에 입사했어요. 그러니 꿈을 이뤘겠죠. 앵커가 돼서 너무 좋았던 것은 신문 보는 것이 제 일이 된 점이었어요. 그 전에는 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리포트 진행하기에도 급급한 때였는데도 신문을 들고 다니면서 열심히 봤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서 2박3일 일정으로 출장을 다녀오면 그만큼의 신문을 몰아서 봤어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참 행복했어요. 아침 뉴스 앵커에게는 가판 신문을 집으로 보내주는데, 집으로 신문 8개가 배달되었어요.(웃음)”“소박하시네요.(웃음)”“그게 정말 좋았어요. 아버지랑 신문 가지고 서로 보려고 다투고.(웃음)”
“기본적으로 뉴스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네요?”“그랬나 봐요.(웃음) 아침 뉴스 하면서 ‘앵커 출동’이라는 걸 했어요. 두 명의 앵커가 번갈아가면서 5분짜리 뉴스를 만들었는데 고생이 많았죠.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이 밤 10시에 퇴근하고, 어떤 날은 편집하다가 새벽 3시에 분장하고 바로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힘든데도 취재 자체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때 취재의 맛을 조금 알았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취재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어떤 면이 그리 좋았나요?”“취재한 뉴스가 방송되면 (사람들이) 그 기사에 대해서 물어볼 데는 저밖에 없잖아요. 저만 알고 있는 거니까요. 내 것, 내 기사, 이런 맛이 있었어요.”“그 전에 방송할 때에는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예. 그냥 나는 (방송 프로그램의) 일원이라고 생각을 했지, 내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그렇게 바쁜데도 얼굴은 행복해 보이네요.”“(웃음) 글쎄요. 생방송할 때에는 피가 말라요. 특히 속보 들어오면 더 그렇죠. 그런데 끝나고 나면 엔도르핀이 솟는 기분이 나거든요. 바로 그런 기분 때문에 이렇게 바쁜 일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대통령부터 촌로까지, 일하면서 많은 분을 만날 텐데요. 가장 인상이 깊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정말로 대통령부터 촌부까지 다 만났는데 가장 감동받았던
분은 동대문시장에서 사입 받는 분이었어요. 사입이 뭐냐면 전국에서 온 옷가게 상인들이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사 간 뒤 바꿔야 할 경우가 생기잖아요. 그러면 따로따로 교환하러 올 수 없으니까, 한 명한테 교환을 맡겨요. 이 일을 사입이라고 하는데 밤새 힘들게 일을 해요. 그분이 옷 한 벌 교환해주고 받는 수수료는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에요. ‘이것밖에 못 버나’ 하는 말을 할 법한데도 그분은 ‘힘들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러셔요. 그래서 제가 ‘꿈이 뭐예요?’ 라고 물어봤어요. 와이프랑 내내 같이 있는 거래요. 이분이 밤에 일하며 돌아다니느라고 아내와 지내지 못한 게 한인 거예요. 아마 저라면 돈벼락을 맡게 해달라든지 했을 텐데…. 그런데 그분은 ‘다 필요 없고 와이프랑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 바람이 정말 간절했어요. 그 한마디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어요.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행복이란 자기만족
그는 결혼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서도 일하는 여자의 입장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 강필구 씨와 결혼할 때에는 ‘결혼 전과 후의 삶이 달라지는 게 싫다. 똑같이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강필구 씨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결혼 뒤에도 그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똑같이 새벽 5시까지 경찰서로 출근하고, 밤 11시에 퇴근했다. 하지만 출산은 달랐다.“아기를 낳으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나요?”“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애가 울고 있으면 못 나가죠. 그리고 갓난아이는 앉혀놓을 수도 없잖아요. 그때 알았어요. (결혼 전처럼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특히 여자에게는.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아기가 아무것도 못하니까요.”“출산 뒤 내적으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마음이 많이 약해졌어요. 옛날에는 아기에 관한 사건이나 사고를 보면 ‘아이 저런 나쁜 놈들’ 그러고 말았는데 이제는 막 눈물이 나요. (사건이나 사고를 당한) 부모의 마음이 되는 거예요. 외적으로는 배가 많이 나온 게 달라진 점이죠.(웃음)”
최근 그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닮고 싶은 언론인’으로 꼽혔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9시 뉴스 앵커라는 자리가 만들어준 것이죠.” 미래의 그는 9시 뉴스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뽑힐 것 같다.
“안 나온 것 같은데요.”“배를 커버하는 옷을 입어요.(웃음) 배는 안 돌아와요.”“예전에 사려 깊고 존경심이 느껴지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씀하셨지요?”“제가 원하는 이상형은 제가 저도 모르게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겠다고 우긴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래 네 말이 맞아’ 하며 인정해주는 거예요. 저는 상대가 제 방향이 틀렸다며 같이 우기면 오기로 더 우기는 성격이거든요. 그러니까 저를 비틀기보다는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 그게 맞구나’ 하고 깨닫게 해주는 사람을 존경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남편이 그런 분인가요?”“그런 줄 알았는데(웃음) 살다 보니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그는 자신에 대해 ‘노력형’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완벽주의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덜렁대는 성격이라 빠뜨리는 게 많다고 한다.“일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지요?”“거창한 얘기를 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웃음) 이게 그냥 저의 성격이고 일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살아가는 데) 무슨 철학을 갖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제 성격이 맡은 것을 잘해야 되고, 대충 하는 것은 싫어하는 거죠. 그래서 가족도 피해를 보지만요.(웃음)”
“욕심이 많은가요?”“포기하는 것도 많아요.”“어떻게 하면 빠뜨린 것을 잘 메울 수 있나요?”“사실은 두 배로 힘들어요. 한 번에 잘하는 게 훨씬 낫지요. 그래서 남편한테도 제가 바쁜 이유는 빠뜨린 걸 채워 넣느라고 그런 것 같다는 얘기를 해요. 처음부터 재능이 많았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하고요.”“자신이 직접 몸으로 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예, 아주. 아들도 많은 경험을 하도록 시켜보고 싶어요.”“직접 경험하면 무엇이 좋은가요?”“상상하는 것하고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은 달라요. (뉴스를 취재하거나 보도할 때) 묻어나는 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 점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수록 확실히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꿈꾸는 것은 나이 든 제 눈빛과 얼굴에서 그런 게 우러나오는 것이에요.”“어떤 언론인이 되고 싶은가요?”“제가 뉴스에서 하는 말을 사람들이 믿어주는 것이죠. 사람들이 뉴스를 듣고 ‘말도 안 돼’ 하면서도 ‘김주하 얘기니까 맞을 거야’ 하는 반응을 받아내는 것이에요.”
“행복이란 뭘까요?”“쉽게 말하면 자기만족이에요. 내가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만족하지 않으면 불행한 거고, 가진 게 몇 개 없어도 거기서 만족하면 행복한 거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불행이라고 생각해요.(웃음)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많은 걸 알면서도 ‘그래도 나는 만족해요’라고 한다면 진짜 행복한 거겠지요.”“지금 행복하신가요?”“예. 지금 행복한데, 일을 조금 덜 했으면 좋겠어요.(웃음)”그의 취재 수첩을 열어보니 2주간 해야 할 일들이 한 바닥을 채우고 있다. 아들 준서 군의 돌을 비롯한 집안 대소사, 곧 출간하게 될 에세이 작업도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일을 모두 직접 하기보다는 전문 영역의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라지만 시간 부족은 어쩔 수 없다. 주 7회 노동을 하면서도 얼굴에서 밝은 기운이 도는 이 부인의 비결은 아마도 ‘만족’과 ‘노력’, 이 두 가지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인터뷰는 우리 화물선 골든로즈호가 중국 해역에서 침몰한 다음 날 진행되었다. 그는 일요일 뉴스 시간에 강한 어조로 중국 정부와 우리 측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혼이 나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은 그의 단호한 어조 때문이었을까.
“행복한 뉴스는 행복하게 하고 아픈 뉴스는 아프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어제 같이 화물선이 침몰한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제가 그 사람의 가족이 돼야 하는 거죠. 그 사람의 가족이 되면 ‘아, 슬프다’고만 하는 게 아니라 중국 사람의 늑장 대응과 중국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분노할 것 아니에요. 그리고 ‘사고를 낸 나쁜 놈이야 그렇다지만 빨리 대응했더라면 구명보트에 매달려서라도 살 수 있었잖아’ 하는 의문이 들지요. 그냥 ‘사고 났다’는 것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골든로즈호에 대한 멘트를 들으니 무섭게 느껴지던걸요.(웃음)”
“솔직히 마음도 아팠지만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클로징 멘트도 그런 쪽으로 썼어요. 망망대해에서 치고 도망가면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냐고요. 자동차 사고는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다 구해주거나 전화로 신고라도 해줄 수 있지만, 바다에는 자기밖에 없는데…. 뉴스 멘트를 그보다 훨씬 세게 하고 싶었어요.
인간에 대한 도리부터 시작해서 얘기를 하려다가 참고, 그나마 수위 조절해서 얘기한 겁니다.(웃음)”그는 지난 3월 복직한 이후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취재를 하고, 주말 저녁에는 뉴스를 진행한다. 보통 기자들은 2~3분짜리 뉴스를 3주에 하나씩 완성하는데 그는 4분짜리를 매주 만든다. 뉴스의 소재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시간양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듯 보인다. 그는 금요일에 밤을 새고 토요일 뉴스를 진행하는 때도 있다.“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뭔가요?”“취재죠.(웃음) 기사 아이템. 아이한테 미안하죠.(웃음)”
“기사 아이템은 어떻게 찾나요?”“요즘에는 <뉴스데스크>의 ‘앵커 리포트’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제보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아니면 신문기사를 보면서 ‘이것은 심층적으로 취재하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찾아요. 요즘에는 인물 포커스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데, 한화 김승연 회장 구속되기 전에 한 번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예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김승연 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까닭은요?”“있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해주면 우리도 있는 그대로의 시각으로 기사를 보도하고 싶어서였죠.”뉴스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미국의 유명한 여자 앵커 바바라 월터스에 대해 들려주었다. 예전에 소송에 휘말렸던 마이클 잭슨이 ‘바바라 월터스 하고만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어떠한 일로 만난 취재원이든 상대를 항상 애정으로 대하고, 상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만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한다.“객관적이라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세요?”“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에 서서 보는 것, 아니면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는 곳에서 바라보는 것. 그러면 양쪽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으니까 객관적으로 될 수 있겠지요. 사람들이 ‘나쁜 놈이야’라고 손가락질한다고 해서 그렇게 기사를 쓰면 그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얘기죠.”
1997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 김주하 씨는 뉴스 앵커로 활동하다 2004년 기자 사내 공모를 통해 기자로 전직했다. 앵커는 전 분야를 두루 알 수 있고, 기자는 자기 기사만큼은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곰처럼 우직한 여자
초등학생 때 그의 성격은 지금 같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때에는 남자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여자 친구들 하고만 놀았다. 남자 아이와는 얘기를 하지 않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 누가 장난으로 툭 치면 ‘아, 왜 그래?’ 하고 마는 편이었다. 내성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뀐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다.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다.“언제쯤 외향적인 성격이 드러났나요?”“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게 있어요. 항상 연말이면 친구들이 ‘주하, 네가 이런 성격인 줄 몰랐어. 이런 아이인 줄 알았다면 먼저 친해졌을걸’ 하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생각한 것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대학 때는 4년 내내 같은 친구들하고 지내니까, 학기 초마다 친구들에게 나를 알리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서 진짜 편하더라고요.(웃음)”“외향적으로 된 것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을까요?”
“터닝 포인트라고 얘기할 만큼 심하게 변하지는 않았는데요.(웃음) 그냥 초등학교 때는 남자는 나랑 다른 애라고 생각했고, 선을 그었어요. 아마 남자 형제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그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신문을 만들었다. 원래는 방송반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날짜를 놓쳐 시험을 보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신문반 활동을 권유했고, 이를 계기로 신문반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그의 인생 계획에 없었던 기자라는 직업이 생겨난 것은 신문반 활동 덕분이다.뉴스가 좋고 앵커가 좋아서 MBC에 입사한 그는 처음에는 고전이 심했다. 입사 동기들은 모두 정규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는데, 그만 1년 이상 정기 프로그램을 맡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전전하며 자잘한 일들을 하며 지냈다. 지방 출장도 많았다. 고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시청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도 회사는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어느 날 MBC 사보에 신입 아나운서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실렸는데 ‘김주하’만 없는 일이 생겼다. 회사에서는 그가 있는지도 몰랐던 것일까? 그의 마음은 많이 서운했다. 그렇다고 뭐라 할 말도 없었다.“입사 첫 해가 10년 직장 생활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나요?”
“아니에요.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처음 기자와 앵커를 병행했을 때예요. 저녁 뉴스 마치고 밤 11시에 퇴근하고, 다음 날 아침 5시까지 경찰서에 갔었죠. 그래서 몇 달 하다가는 쓰러졌어요. 그런데 회사에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회사에서는 경찰 기자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진정한 기자 수업을 받는 거라 끝까지 우겨서 하다 생긴 일이라 (쓰러졌다는) 말은 하지도 못했죠.(웃음)”“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경찰서에 출입하겠다고 우겼는지요?”“기자 수업을 안 받고 대충 한다면 앵커와 기자를 겸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자 이름만 달 바에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어요.”
“독한 데가 있나 봐요?”“가끔 독하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곰 같다고도 얘기해요.”그는 스물여덟 살에 앵커석에 앉게 된다. MBC 아침뉴스 <뉴스 투데이>의 여자 앵커였다. 첫 번째 정규 프로그램으로 다가온 것이 그토록 원하던 뉴스였던 것. 신입 아나운서를 앵커로 임명하던 당시 풍속으로는 ‘나이 많은 28세 여자 앵커’는 파격적이었다. 이런 경우를 보면 방황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앵커가 되니 무엇이 좋던가요?”“사실, 저는 뉴스가 좋고 앵커가 좋아서 MBC에 입사했어요. 그러니 꿈을 이뤘겠죠. 앵커가 돼서 너무 좋았던 것은 신문 보는 것이 제 일이 된 점이었어요. 그 전에는 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리포트 진행하기에도 급급한 때였는데도 신문을 들고 다니면서 열심히 봤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서 2박3일 일정으로 출장을 다녀오면 그만큼의 신문을 몰아서 봤어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참 행복했어요. 아침 뉴스 앵커에게는 가판 신문을 집으로 보내주는데, 집으로 신문 8개가 배달되었어요.(웃음)”“소박하시네요.(웃음)”“그게 정말 좋았어요. 아버지랑 신문 가지고 서로 보려고 다투고.(웃음)”
“기본적으로 뉴스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네요?”“그랬나 봐요.(웃음) 아침 뉴스 하면서 ‘앵커 출동’이라는 걸 했어요. 두 명의 앵커가 번갈아가면서 5분짜리 뉴스를 만들었는데 고생이 많았죠.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이 밤 10시에 퇴근하고, 어떤 날은 편집하다가 새벽 3시에 분장하고 바로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힘든데도 취재 자체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때 취재의 맛을 조금 알았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취재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어떤 면이 그리 좋았나요?”“취재한 뉴스가 방송되면 (사람들이) 그 기사에 대해서 물어볼 데는 저밖에 없잖아요. 저만 알고 있는 거니까요. 내 것, 내 기사, 이런 맛이 있었어요.”“그 전에 방송할 때에는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예. 그냥 나는 (방송 프로그램의) 일원이라고 생각을 했지, 내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그렇게 바쁜데도 얼굴은 행복해 보이네요.”“(웃음) 글쎄요. 생방송할 때에는 피가 말라요. 특히 속보 들어오면 더 그렇죠. 그런데 끝나고 나면 엔도르핀이 솟는 기분이 나거든요. 바로 그런 기분 때문에 이렇게 바쁜 일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대통령부터 촌로까지, 일하면서 많은 분을 만날 텐데요. 가장 인상이 깊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정말로 대통령부터 촌부까지 다 만났는데 가장 감동받았던
분은 동대문시장에서 사입 받는 분이었어요. 사입이 뭐냐면 전국에서 온 옷가게 상인들이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사 간 뒤 바꿔야 할 경우가 생기잖아요. 그러면 따로따로 교환하러 올 수 없으니까, 한 명한테 교환을 맡겨요. 이 일을 사입이라고 하는데 밤새 힘들게 일을 해요. 그분이 옷 한 벌 교환해주고 받는 수수료는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에요. ‘이것밖에 못 버나’ 하는 말을 할 법한데도 그분은 ‘힘들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러셔요. 그래서 제가 ‘꿈이 뭐예요?’ 라고 물어봤어요. 와이프랑 내내 같이 있는 거래요. 이분이 밤에 일하며 돌아다니느라고 아내와 지내지 못한 게 한인 거예요. 아마 저라면 돈벼락을 맡게 해달라든지 했을 텐데…. 그런데 그분은 ‘다 필요 없고 와이프랑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 바람이 정말 간절했어요. 그 한마디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어요.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행복이란 자기만족
그는 결혼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서도 일하는 여자의 입장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 강필구 씨와 결혼할 때에는 ‘결혼 전과 후의 삶이 달라지는 게 싫다. 똑같이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강필구 씨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결혼 뒤에도 그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똑같이 새벽 5시까지 경찰서로 출근하고, 밤 11시에 퇴근했다. 하지만 출산은 달랐다.“아기를 낳으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나요?”“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애가 울고 있으면 못 나가죠. 그리고 갓난아이는 앉혀놓을 수도 없잖아요. 그때 알았어요. (결혼 전처럼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특히 여자에게는.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아기가 아무것도 못하니까요.”“출산 뒤 내적으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마음이 많이 약해졌어요. 옛날에는 아기에 관한 사건이나 사고를 보면 ‘아이 저런 나쁜 놈들’ 그러고 말았는데 이제는 막 눈물이 나요. (사건이나 사고를 당한) 부모의 마음이 되는 거예요. 외적으로는 배가 많이 나온 게 달라진 점이죠.(웃음)”
최근 그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닮고 싶은 언론인’으로 꼽혔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9시 뉴스 앵커라는 자리가 만들어준 것이죠.” 미래의 그는 9시 뉴스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뽑힐 것 같다.
“안 나온 것 같은데요.”“배를 커버하는 옷을 입어요.(웃음) 배는 안 돌아와요.”“예전에 사려 깊고 존경심이 느껴지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씀하셨지요?”“제가 원하는 이상형은 제가 저도 모르게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겠다고 우긴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래 네 말이 맞아’ 하며 인정해주는 거예요. 저는 상대가 제 방향이 틀렸다며 같이 우기면 오기로 더 우기는 성격이거든요. 그러니까 저를 비틀기보다는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 그게 맞구나’ 하고 깨닫게 해주는 사람을 존경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남편이 그런 분인가요?”“그런 줄 알았는데(웃음) 살다 보니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그는 자신에 대해 ‘노력형’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완벽주의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덜렁대는 성격이라 빠뜨리는 게 많다고 한다.“일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지요?”“거창한 얘기를 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웃음) 이게 그냥 저의 성격이고 일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살아가는 데) 무슨 철학을 갖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제 성격이 맡은 것을 잘해야 되고, 대충 하는 것은 싫어하는 거죠. 그래서 가족도 피해를 보지만요.(웃음)”
“욕심이 많은가요?”“포기하는 것도 많아요.”“어떻게 하면 빠뜨린 것을 잘 메울 수 있나요?”“사실은 두 배로 힘들어요. 한 번에 잘하는 게 훨씬 낫지요. 그래서 남편한테도 제가 바쁜 이유는 빠뜨린 걸 채워 넣느라고 그런 것 같다는 얘기를 해요. 처음부터 재능이 많았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하고요.”“자신이 직접 몸으로 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예, 아주. 아들도 많은 경험을 하도록 시켜보고 싶어요.”“직접 경험하면 무엇이 좋은가요?”“상상하는 것하고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은 달라요. (뉴스를 취재하거나 보도할 때) 묻어나는 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 점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수록 확실히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꿈꾸는 것은 나이 든 제 눈빛과 얼굴에서 그런 게 우러나오는 것이에요.”“어떤 언론인이 되고 싶은가요?”“제가 뉴스에서 하는 말을 사람들이 믿어주는 것이죠. 사람들이 뉴스를 듣고 ‘말도 안 돼’ 하면서도 ‘김주하 얘기니까 맞을 거야’ 하는 반응을 받아내는 것이에요.”
“행복이란 뭘까요?”“쉽게 말하면 자기만족이에요. 내가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만족하지 않으면 불행한 거고, 가진 게 몇 개 없어도 거기서 만족하면 행복한 거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불행이라고 생각해요.(웃음)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많은 걸 알면서도 ‘그래도 나는 만족해요’라고 한다면 진짜 행복한 거겠지요.”“지금 행복하신가요?”“예. 지금 행복한데, 일을 조금 덜 했으면 좋겠어요.(웃음)”그의 취재 수첩을 열어보니 2주간 해야 할 일들이 한 바닥을 채우고 있다. 아들 준서 군의 돌을 비롯한 집안 대소사, 곧 출간하게 될 에세이 작업도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일을 모두 직접 하기보다는 전문 영역의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라지만 시간 부족은 어쩔 수 없다. 주 7회 노동을 하면서도 얼굴에서 밝은 기운이 도는 이 부인의 비결은 아마도 ‘만족’과 ‘노력’, 이 두 가지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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