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생산자와 매개자, 향유자 개념이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루프는 공간의 제약이나 한계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미술, 예술계뿐 아니라 국제 현대미술계의 대안을 찾으려 모색합니다.”(디렉터 서진석 씨)
1999년 상수동에서 출발해 서교동 지하에 머물렀던 대안 공간 루프가 최근 홍대 앞에 번듯한 내 집을 마련했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자그마한 건물이지만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회색의 외관이 깔끔하다.
대안 공간이 이렇게 좋은 건물에 있으면 안주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만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사물이건 사람이건 처한 환경에 따라 존재 조건이 달라지는 법. 지하실 시대의 루프가 국내 미술계와 예술계의 대안을 찾았다면, 빌딩 시대의 루프는 국제 미술계와 예술계, 특히 아시아 문화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한다. 루프의 새로운 목적은 ‘(과거의) 공간의 제약과 한계에서 벗어난 대안 찾기, 즉 국제 현대미술계의 대안’을 찾는 것이다. 루프의 요즘 고민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이 아시아 미술계에서 어떻게 미학적으로 정립될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 그리고 아시아 미술과 우리나라 미술이 지속적이고 유기적이며 파워풀하게 연계될 수 있는 유통 플랫폼platform을 구축하는 것. 더 나아가 단일화되는 국제화의 흐름에 대항할 수 있는 아시아의 대안적 미술 문화를 생각하고 정립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대안 공간이라고 해서 만날 이렇게 머리 아픈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데뷔시키는 데도 열중한다. 정연두, 함경아, 김기라, 이중근, 강영민씨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계의 ‘젊은 피’를 발굴한 곳이 루프. 앞으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작가들을 발굴, 그들의 작품을 그룹전 형식으로 일 년에 두 번에 걸쳐 소개할 계획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국제 디지털 사진전 ‘비트맵Bitmap’이 3월 14일 막을 내리면, 세계 20여 개국의 작가들이 참가하는 영상 작품전 ‘무브 온 아시아Move on Asia’가 열린다.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준비하는 전시회는 ‘동양적 은유Oriental Metaphor’전. 현대미술에서 동양적 사유와 기법을 적극적으로 접목하거나 차용한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 4개국의 작업을 모아 한국(8월), 중국(9월), 일본(10월), 미국(올 하반기)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유익하고 흥미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루프 2, 3층에 자리한‘플랫폼 L’은 예술과 대중을 연결하는 살롱 같은 곳으로 와인과 커피를 판매한다. 전시회가 없는 달의 보름에는 아무라도 파티 기획자가 될 수 있는 ‘보름달 파티Full Moon Party’가 열린다. 음력 14일 밤, 한번 들러보시길.
문의 02-3141-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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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인사동의 아담한 가옥을 개조해 개관한 목인 갤러리(대표 김의광)를 소개하려면 이름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나무 사람’이라는 뜻의 목인木人은 묘지에 부장하거나 상여를 장식하는 것으로 쓰였던 나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각품이다. 죽은 이의 영혼이 외롭지 않도록 하기 위해 쓰였을 것 같은데, 목인 갤러리의 ‘목인’이 바로 그 조각품을 말한다. 왜 갤러리 이름이 목인일까? 김의광 대표의 취미가 목인 수집이라서 그렇단다. 태평양에서 근무하다 장원산업의 회장을 지낸 김의광 씨는 유명한 목인 수집가. 30여 년 동안 모은 조각품이 우리나라 것만 3천5백여 점. 중국, 인도, 네팔 등에서 수집한 것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왜 박물관이 아니고 갤러리지?
“전통 박물관을 먼저 개관하려고 준비를 하다 보니 좀 정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현대미술은 전시 기간도 짧고 회전도 빠릅니다. 자연스럽게 갤러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현대 작가 중에 전통에 관심 있는 작가들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전통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않고 전통성을 소재로 한 비디오, 영상, 설치 등의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갤러리를 열게 되었습니다.”(학예실장 박준헌 씨)
송수남, 이왈종, 김병종, 이호신, 김선두, 문봉선 씨 등 중견 작가 6명의 작품을 소개한 개관전 ‘전통으로부터의 사유’에 이어 유물 프로젝트를 작업하는 배종헌 씨, 설치와 퍼포먼스를 한 문재선 씨 등 여러 젊은 작가들이 목인 갤러리를 거쳐 갔다. 올해 중점을 두고 준비하는 것은 오는 9월의 개관 1주년 기념 전시회. 전통 유물에서 모티프를 얻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계획이다.
갤러리(1층) 위층에 꾸며지는 목인 박물관은 오는 3월 22일 개관한다. 김의광 대표가 평생 동안 꿈꾸었다는 이 박물관은 인사동 초유의 전통 박물관이라고. 김의광 대표가 수집한 목인이 모두 전시된다. 염라대왕의 명부를 들고 서 있는 무서운 도깨비, 호적을 들고 있는 여인, 족두리를 쓰고 혼례를 올리는 신부와 신랑, 대금 부는 선비 등. 개관 기념전 ‘목인의 세상(가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고 귀한 목인 조각품과 만나게 될 것이다.
문의 02-755-5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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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최근 폐막한 영상 작가 이용백 씨의 작품전. 아래 왼쪽 대안 공간 루프의 성공적인 자리매김은 서진석 디렉터 없이는 이룰 수 없었다. 아래 오른쪽 전시장에서 올려다본 하늘. 사진 양재준 기자
2. 위 목인 갤러리에 이어 3월 22일 개관하는 목인 박물관은 인사동에서 개관하는 제1호 박물관. 국내 목인만 3천5백여 점 보유하고 있다. 아래 목인 갤러리 내부 전경. 사진 제공 목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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