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유승민, 신용섭, 박종선 작가.
목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 듀오 ‘스튜디오 신유’는 디자인하우스가 발굴한 신예다. 지난해 말,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영 앰배서더로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렸고, 지난 6월부터 4주간 장충동 모이소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스웨덴에서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귀국한 지 반년이 지날 무렵, 그동안 스케치해둔 아카이브 중 하나를 선택해 출품한 결과였다. “생각보다 빨리 전시를 하게 돼 약간 어리둥절해요”라고 말하는 신용섭 작가는 2012년 군대 전역 후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그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단다. “라면만 먹으면서 어렵게 살아도 되니까 이건 계속하자는 다짐을 했어요.” 그래도 고향 친구 유승민의 합류 덕분에 서로 의지하고 조금씩 더 단단해져가는 스튜디오 신유. “불안정한 생활에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각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뚝심 있게 해나가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될 거라고 믿으면서요.” 유승민 작가의 말이다.
이들이 존경하는 선배로 박종선 작가를 꼽은 건 당연한 듯여겨졌다. 박종선 작가야말로 10여 년의 무명 생활 끝에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희망의 아이콘이니까. “1997년에 시작해서 2005년에 접으려고 했어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가 컸죠. 뉴질랜드에 가서 목수를 하려는 마음을 먹고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났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행하면서 ‘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어요. 그리고 돌아와 개인전을 했고, 그게 잘돼서 기적처럼 생활의 바윗돌이 굴러가기 시작 했죠.” 2005년 당시는 가구를 전시한다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다. 하지만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온 작업 철학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하며,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과 플로리다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 속 부잣집의 가구를 만든 작가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어쩌면 박종선 작가는 직원에게 실무를 맡긴 채 디렉팅만 하며 더 큰 돈을 버는 상업적 삶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나 박종선 작가는 물질적 욕망에 흔들리기보다 원주에 남아 작업자의 역할을 그대로 해내고 있다. “지금도 매일 흔들리죠. 하지만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잖아요. 자신이 더 가치를 두는 일에 진심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후배 작가가 지목해준 고마움에 화답하는 마음으로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와주었다.
일상 속 환기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힘의 근원이 된다
유승민(이하 유) 유럽 여행에서 긍정적 자극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박종선(이하 박) 서른일곱에 내 일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해외에 나갔다 오자 하고 한 달을 아무 계획 없이 다녔어요. 아무래도 끌리는 건 건축이나 디자인 쪽이라 박물관과 갤러리를 주야장천 돌았죠. 그런데 대가들의 작업을 직접 눈으로 맞닥뜨리니 희한하게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나도 해볼 만하겠다’‘해보자’ 하는 마음. 안개처럼 막연하던 것이 걷히고 지향점이 뚜렷해졌달까요.”
신용섭(이하 신) 그러고 보니 저도 스웨덴에서 머물며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주문 가구를 업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스톡홀름이나 밀라노 가구 전시를 보면서 힘을 얻고 작품 활동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그 처음이 바로 이번 전시였고요.
박 아무래도 보고 듣는 간접경험보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직접 확인하는 게 중요해요. 또 여행의 궁극적 목적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 아닐까요? 호수에서 카누만 타도 현실과 완전 동떨어지는 상태가 되니까 저절로 환기가 돼요. 사실은 일상 속에서도 명상이나 묵상을 통해 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지요.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린 거예요.
박종선 디자이너는 액자공방을 운영하다가 문화재청의 전통공예건축학교를 다니며 조선 목가구의 제작 비결을 익혔다. 2005년 <나무에게 말을 걸다> 전시가 전환점이 되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국내는 물론 해외 아트 페어에서도 주목하는 세계적 작가로 성장했다. 한국적 수려한 미와 절제미를 지닌 스타일이 독보적. 사진 속 수 납장 ‘Shelf’는 2014년 작품으로 화이트 오크, 월넛,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평생 연마해야 할 숙제! 좋은 사람이 좋은 가구를 만든다
신 처음 가구 공장에서 일할 때 내가 만든 화장대를 소중하게 들고 가는 고객의 모습을 보고 ‘좋은 가구’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때는 튼튼하고 오래가는 게 좋은 가구라고 생각했죠. 시간이 지나 아이네 클라이네 목공방에서 일하는 동안 가구를 납품하러 가면서 사람들이 거주하는 환경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겠다고 여겨 실내디자인을 공부했고요. 좋은 가구에 대한 탐구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기술에 대한 연마도 갈 길이 멀고요.
박 너무 멀리 보지 마세요. 오늘내일만 생각하고 재미있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 곳에 도달해 있을 테니까요. 가구가 지녀야 할 보편적 가치를 찾는 건 그저 평생의 숙제라고 여기면 돼요.
유 좋은 가구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건 끝없는 과정이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좋은 가구를 만드는 기본을 갖추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만드느냐가 결국 좋은 가구를 완성하는 밑거름이요,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든 좋은 가구라고 생각하는 걸 만들 텐데,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그 사람의 바탕에서 비롯되니까요.
박 네, 이야기 잘 꺼내셨어요. 저 역시 작업자의 스타일이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드는 거잖아요. 삶이 좀 더 우아해지기 위한 기물, 아름다움, 품격…. 결국은 품격에 대해 고민해봐야 해요.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품격인지. 그래서 인문적 사유가 필요하고요. 의식 자체가 격에 다가가 있어야 그게 결과물에 묻어나는 것 아닐까요.
신 정말 좋은 가구를 만들고 싶은데, 오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이 먼저 돼야겠네요. 그 부분을 탐구해보겠습니다. 하하.
스튜디오 신유의 유승민ㆍ신용섭 디자이너는 제대 후 가구 공장에서 기술을 익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경험을 쌓았다. 최근 모이소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디자인을 번역하다>를 개최해 동서양의 건축술인 기둥ㆍ보 구조에서 착안한 ‘린 테 이블’을 선보였다.
상판 끝에 기다란 언덕을 만들어 포인트를 준 소파 테이블.
마주 앉은 이와의 거리를 가깝게 해주는 다이닝 테이블 세트 ‘Closer’.
오로지 나의 선택! 세월에 따라 늙을 것인가, 성숙할 것인가
신&유 선생님의 원주 작업실에 가보고 싶어요.
박 오세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찾아오는 분이 많아서 일주일 중 2~3일의 반나절 정도는 손님을 위해 쓰고 있지요. 주변에서는 기를 빼앗기지 않냐고 묻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기를 받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탤런트가 있기에 가급적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신 아… 저는 그렇게 잦은 손님맞이는 쉽지 않은 일처럼 여겨져요.
박 저도 그 나이 때는 못 했어요. 다 시기가 있죠. 젊을 때는 바위를 굴러가게 할 응축된 힘을 몰아갈 시기이고, 적어도 생활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사람을 품고, 세상을 따뜻하게 볼 필요가 있죠. 그래야 따뜻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우주에 유기적으로 소속된 한 조각으로서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저의 요즘 화두는 늙는다는 것과 성숙해간다는 거예요. 주변을 보면 늙는 분이 있고 성숙해지는 분이 있잖아요. 전 성숙해지고 싶어요.
유 저의 화두는 작업적으로 성과나 달성도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일상의 작은 것부터 노력해요. 자기 전에 운동을 한다든지, 책을 더 읽는다든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런 소소한 습관이 모여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점점 더 나아짐으로써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래서 나와 주변의 행복이 커졌으면 좋겠어요.
신 선생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박 5~6년 전부터의 고민은 이 일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다는 거예요. 이러면 안 되는데, 어쩌면 다른 시그널이 있나? 그렇게 늘 열려 있어요. 내가 관심 갖는 다른 영역, 건축과 가구 사이에 무엇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가르칠 수 도 있고. 어쨌든 설정된 꿈은 없어요. 다시 작업을 열정적으로 하게 될 수도 있겠죠. 다만 어떤 시그널이 오는가에 집중하기 위해 현재에 깨어 있으려고 해요. 그리고 무엇을 하되 바람이나 억지 없이 그냥 하지요.
- 목가구 작가 박종선&스튜디오 신유 확신의 길을 묵묵히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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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고 다듬고 이어서 하나의 가구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한 몰입의 시간이다. 이러한 작업을 수년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일종의 수련과도 같은 일이리라. 이 쉽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한 스튜디오 신유의 신용섭&유승민 작가와 먼저 출발해 견고한 터를 구축한 박종선 작가가 만났다. 나무가 수분을 머금어 팽창하는 계절의 어느 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