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꾼 시간 개념
시간, 감정, 고통은 주변의 사회 환경과 문화·언어에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19와 같은 커다란 사회적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맞닥뜨리지 않은 새로운 시간 개념을 가져온다. 코로나19 발생 전후로 ‘집’과 연관해 소셜 빅데이터에서 가장 많이 증가한 키워드 중 하나는 ‘(하루)종일’이다. 반면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단위는 하락한다. 학교도, 학원도, 교회도, 회사도, 모임도, 행사도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2~3시간의 분절된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이라는 긴 시간, 발목 잡힌 시간이 주어졌다. 마치 주 52시간 제도를 도입하면서 직장인에게 퇴근 후 저녁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코로나19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이 시간은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아이와 어떻게 놀지? 남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동네를 어떻게 활용할지? 사람들은 답답하고 지루한,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찾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배우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멀리 훌쩍 떠나는 여행, 특별한 모임과 새로운 관계 형성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관계, 자기가 속한 장소, 자기에게 주어진 자원을 십분 활용하는 방법을 새롭게 익힌다. 레시피,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재료인 달걀 레시피가 뜨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지루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나가는 사람들, 이것이 코로나19가 바꾼 새로운 시간 개념의 함의다.
코로나19가 이끌어낸 새로운 합의
온라인 장보기, e러닝, 재택근무, 화상회의 시스템은 코로나19 때문에 만든 서비스가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대면으로 제공하던 서비스가 점차 온라인 비대면 서비스로 옮겨가면서 이미 기존 서비스를 위협하고 있었다. 코로나19 발생을 전후해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이 서비스를 사용해야 할 강제적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마켓컬리나 쿠팡 같은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마트나 동네 슈퍼에 가서 직접 물건을 보고 고르는 것이 습관처럼 익숙했을 뿐이다. 회사도 재택근무를 위한 클라우드 서비스와 화상회의 시스템은 일찍부터 갖추고 있었다. 그동안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은 이유는 부장님이 직 원들 얼굴 보고 직접 말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개인의 습관이나 선호보다 우선하는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원래 쓰던 사람, 알지만 안 쓰던 사람, 써보았지만 원래 하던 것으로 돌아간 사람, 알지도 못했고 써보지도 못한 사람을 모두 온라인 서비스 이용 영역 안으로 불러들였다. 모두 함께 경험하고 나니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도출되었다. ‘나도 할 수 있네’ ‘써보니 괜찮네’ ‘더 편하네’ ‘이런 점만 개선하면 더 좋겠네’ ‘이런 서비스 중에서는 이 브랜드가 제일 낫네’ 식으로 서비스 이용 여부를 훌쩍 뛰어넘어 이용을 전제로 한 서비스 선택 기준까지 진일보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2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국내 클라이언트와 화상회의를 해본 적이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주변의 모든 사람이 ‘화상회의는 줌zoom이 제일 낫다’는 데 동의한다. 기술의 발전은 천재 과학자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합의에 의해서 촉발된다. 이를테면 자율 주행은 기술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기계가 운전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번 합의하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사람들의 습관으로 자리 잡는 것도 쉬운 일이다. 다시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은행에서 ATM으로, 컴퓨터에서 휴대폰으로, 은행 플랫폼에서 메신저 플랫폼으로 은행 업무를 보게 된 것처럼 온라인 서비스 이용에 모두가 합의하게 되었고, 코로나19 는 그 합의의 시점을 예정보다 앞당겼다.
코로나19가 가속화한 트렌드
생활변화관측소에서 발간한 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혼자만의 시공간’이다. 혼자 살든 여럿이 같이 살든 사람은 자기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원하며, 자기만의 콘텐츠를 혼자서 즐기고 만족해한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주요 주제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집 밖의 경험’이다. 눈높이가 높아진 소비자는 외부에서 경험한 높은 수준의 것을 자신의 집에서 구현하고자 인테리어 제품과 전문 가전제품을 집으로 들인다. 카페에서 접한 디자이너 체어와 펜던트 조명등, 호텔에서 경험한 침구와 러그, 리조트에서 배운 라탄 소재 소품과 열대식물, 독립 서점과 갤러리의 매거진 랙과 액자들이 그렇게 차례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홈 트레이닝(홈트), 홈 에스테틱, 홈 노래방, 홈 미팅 등 ‘홈 OO’ 단어가 증가하면서 전문 서비스를 집에서 즐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트렌드의 흐름에 반전을 가져오지 않았다. 2020년 우리는 원래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내 가족처럼 가까운 지인끼리 똘똘 뭉치고, 유튜브 같은 온라인 콘텐츠에 몰입했다. 이 흐름이 더욱 강화되었을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취향의 언어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마케터라면 같은 제품이라도 감성템이 아니라 필수템으로, 여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더불어 소비자가 새로운 합의점에 도달했고, 본능적으로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나가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주어진 긴 시간을 새로운 서비스로 윤택하게 채워가고자 하는 이 시대에 당신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새롭게 제안할 것인가?
코로나19를 대하는 목소리
● 온라인에 눈뜨다
“요즘 재택근무하며 아이랑 집에 있는 워킹맘인데… 뉴스에서 제 모습이랑 똑같은 워킹맘 소식이 나와서 웃펐어요.ㅠㅠ 화상 미팅하는 데 애가 껴들고 난리ㅠㅠ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마트도 못 가고 처음으로 마켓컬리에 주문해봤어요. 이런 계기로 전지현이 광고하는 마켓컬리를 이용해보게 될 줄이야.”
“이번 코로나19로 (1)서면으로만 하던 업무를 온라인으로 바꿔버렸고 (2)오프라인 강의만 있던 학교에 온라인 강의를 도입했다. 임시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특히 온라인 강의 유형 수업도 개설해주고….”
● 새롭게 발견한 일상
“주말 동안 아이 자전거 구해와서 보조 바퀴 조립해주고 아파트를 돌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에 되찾은 일상.”
“코로나19 덕분에 냉털하고 있어요. 사재기는 커녕 파먹기하고 있어요. 앞으로 사재기는 이제 그만. 집에서 집콕하고 있으니 계속 창고 정리, 싱크대 정리하면서… 다시 살림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 좋네요.”
“코로나19로 뒤숭숭한 요즘, 입학일이 연기된 아이와 함께 집에서 복닥복닥 지내는 시간들. 같이 그리고 각자 도자기 놀이 시간을 갖기로 하고 작업을 합니다. 봄이 왔으니 다시 꽃접시를 만들어봅니다.”
● 공유의 자세
“코로나19 때문에 계속 집에 있는데, 아이랑 같이 놀이하는 것도 점차 바닥나기 시작해서 아이랑 다양한 놀이를 하고 있어요. 모래 놀이 박스로 자동차 만들기, 손바닥 발바닥 찍기, 코인 티슈 놀이, 슬라임 해주고, 오늘은 화산 폭발 놀이 하고, 씻기 전에 화장실에서 버블해줬어요.”
“저는 요즘 매 끼니 달걀을 쓰는 요리를 하게 되네요. 김밥 싸서 남으면 달걀전을 하고… 아침에도 주로 달걀 요리… 스크램블드에그, 달걀 프라이, 토스트, 점심·저녁은 달걀볶음밥,
달걀말이, 또는 생선… 달걀이라도 있으면 일단 길티한 마음이 줄어들어요.”
“요즘 매끼 해 먹는 게 전쟁 같은데, 진짜 도저히 밥 못 차릴 것 같은 극한 상황에 대왕 간편 레시피 공유해요~~ 다른 맘님들도 완전 쉽고 간편한 메뉴 공유 좀 해주세요 ㅠㅠ”
생활변화관측소는 10년 동안 소셜 빅데이터를 관측해온 다음소프트의 노하우로 약 1.2억 건의 소셜 미디어 문서를 모니터링합니다. 자연어 처리를 통해 1천 개 이상 키워드의 변화, 등락, 추세 등을 감지합니다. 매월 중요한 관측 일곱 개를 선별해 이를 바탕으로 관측지를 발행하고, 관측담을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