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이 빚어낸 예술, 주왕산국립공원
수억 년의 비경을 간직한 명산, ‘작은 금강산’이라고도 부르는 주왕산은 가히 청송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인구 2만 5천명이 사는 청송에 한 해 5백만 명이 넘는 여행객이 찾아오는 건 열의 아홉은 주왕산 때문이다. 장엄한 백두대간 줄기가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오다 경상북도 귀퉁이에 살짝 똬리를 틀고 앉았는데, 주변으로 이렇다 할 산지가 없어 그 자태가 한결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을철이면 단풍 명소로도 손꼽히지만, 사실 주왕산의 가장 화려한 꽃은 일곱 개의 응회암 봉우리가 모인 기암 단애. 응회암 생성 당시 수직 방향으로 발달한 절리에 침식작용이 이루어진 결과인데, 이 기기묘묘한 바위 절벽 덕분에 주왕산국립공원 일대가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부쩍 몸값이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아홉 번 이상 일어난 화산 폭발은 청송을 선캄브리아기, 쥐라기, 백악기, 신생대까지 모두 품은 지질학의 성지로 만들었다. 그중 주왕산 인근에 밀집한 것이 바로 뜨거운 화산재가 쌓이고 엉겨 붙어 생성된 응회암 덩어리다. 오늘날 국립공원을 누비는 동선은 무척 다양하지만, 초행길이라면 우선 주왕계곡 지질탐방로인 주왕동천길을 권한다. 들머리인 대전사에서 출발해 세 개의 폭포를 찍고 돌아오는 왕복 9km가량의 트레킹 코스로,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잘 정비된 덕분에 산책 삼아 가볍게 오가기 좋다. 특히 기암, 망월대, 학소대, 급수대, 촛대봉, 시루봉 등 풍채 좋고 잘생긴 암봉이며 기암 단애가 밀집해 있어 부담스러운 산행 없이도 누구나 쉽게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이른 아침이면 병풍처럼 사방을 감싼 기암괴석 사이로 솜털 같은 운무가 넘실대고, 산의 속살을 파고들수록 아찔한 절벽 모서리가 세월을 삼킨 채 바짝 날을 세운다. 걷다 보면 길 사이로 크고 작은 암석 덩어리가 많은데, 강도가 약한 응회암이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드문드문 갈라지거나 부서져 내린 탓이다. 주왕계곡 지질탐방로를 빠져나왔다고 국립공원 지질 탐험이 끝난 건 아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한 주산지와 올해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린 청송 얼음골을 포함해 총 스물네 곳의 유네스코 지질 명소 중 상당수가 이곳 주왕산국립공원에 포진해 있다. 온몸의 감각을 한껏 열어젖힌 채 하나하나 명소를 섭렵하다 보면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정이 해발 720m의 야트막한 산 주위를 온통 채운다. 화산이 만들어내고 시간이 조각한 그 예술 작품들 앞에서는 인간의 어떤 수식도 무용해진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3대 자연환경 보전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지질학적 중요성은 물론 생태학적·고고학적·역사적·문화적 가치까지 지닌 특정 지역을 보전하고, 교육과 관광을 통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만들었죠. 세계적으로 1백 47개소, 국내엔 3개소가 자리하는데, 그중 청송은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에요. 총 스물네 곳의 지질 명소가 청송 곳곳에 분포해 있습니다.
추천하는 탐방로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질탐방로 중 주왕계곡 지질탐방로가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기암 단애에서 주방천 페퍼라이트, 연화굴, 급수대 주상절리, 용추 협곡을 차례로 지나 용연폭포까지 이어지는 왕복 두세 시간짜리 산책 코스죠. 만약 본격적 등반을 원한다면 주왕산의 일곱 등산 코스 중 일정에 맞는 동선을 선택해보세요. 네 시간짜리부터 열 시간짜리까지 선택의 폭이 넓은데, 그중에서도 정상으로 향하는 네 시간짜리 주봉 코스가 대표적입니다. 정상이라 해도 해발고도가 낮아 등반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추천하는 여행 시즌
눈꽃이 피어나는 한겨울도 좋지만, 아무래도 여행객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죠. 주왕산 기암절벽 사이로 단풍잎이 붉게 물들면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예쁘거든요. 실제로 단풍 시즌만 되면 인파가 너무 몰려 탐방로에서 줄을 서는 듯 걸어야 할 정도예요. 연간 1백30만여 명의 주왕산 탐방객 중 11월 한 달에만 40만 명이 몰려드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막 새순이 돋아나는 초봄의 주왕산을 가장 좋아해요. 날씨도 딱 적당하고, 싱그러운 연둣빛이 산행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줍니다. _홍영숙(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해설사)
#2 돌 속에 피어나는 꽃
거칠거칠한 암석 표면에 꽃이 피어난다. 어떤 돌엔 국화가 만개하고, 어떤 돌엔 매화 꽃잎이 처연히 흩날린다. 그 형태며 색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해 실제 꽃잎을 말려 돌 속에 박아놓은 것만 같다. 청송의 자연이 선물한 또 하나의 예술 작품, 꽃돌에 대한 이야기다. 지질학적으로 꽃돌은 화산암 중 구과상 유문암에 속하는 암석이다. 화산 분출 당시 규산 성분을 다량 포함한 마그마가 지표 근처에서 급격히 얼면서 독특한 꽃 모양을 이룬 것. 사실 청송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이름을 올린 데는 이 꽃돌의 역할이 무척 컸다. 꽃돌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희소해 1백여 곳에서만 나는 데다 이토록 꽃무늬가 크고 화려하며 종류가 많은 지역은 사실상 청송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꽃 모양이 다양한 건 마그마의 냉각 속도가 암석마다 달라서인데, 수석과 달리 그 무늬를 찾아내 암석을 갈고닦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 꽃돌 연마에 수십 년을 바쳐온 배영기 청송화문석연합회 상임이사에 따르면, 청송 꽃돌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다. 이후 지역 특산물로 명성을 얻지만, 난개발로 인해 지금은 원석이 거의 고갈된 상태란다. 대신 여행객이 들러볼 만한 체험 공간은 괴정리의 꽃돌채굴체험장과 민예촌 초입의 청송군수석꽃돌박물관. 평소 수석에 관심 없는 이라도 충분히 흥미로울 만큼 아름다운 ‘돌 속의 꽃’이 그득하다.
#3 푸른 소나무의 고장
푸를 청靑에 소나무 송松, 이토록 명료한 이미지를 품은 지명이 또 있을까 싶다. 청송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한 폭의 수묵담채화처럼 농담이 짙고 푸른 소나무 군락이 연상되니 말이다. 물론 지명의 유래에 대한 해석은 그리 간단하지 않지만(조선 세조 때 통합한 군현인 청보靑寶와 송생松生에서 한 글자씩 따온 지명이다), 실제로 청송군 전체 면적의 83%가 임야인 데다 푸른 소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그러니 청송을 여행하다 보면 짙은 소나무 군락과 마주하는 게 예삿일. 다만 청신한 소나무 고장의 운치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목계솔밭이나 중평솔밭을 둘러볼 것을 권한다. 그중 목계솔밭은 청송군 소재지에서 진보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31호 선상에 위치한 솔밭이다. 높이 15~20m에 달하는 소나무 2백여 그루가 대략 3천 평 규모의 밭을 이루는데, 교통이 편리하고 캠핑용 덱과 테이블이 널찍하게 마련돼 있어 야영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햇볕이 반짝거리며 솔잎 사이로 부서지는 한낮도 좋지만, 이른 아침 진한 솔향기를 맡으며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 소나무 숲의 흑백 풍광 속을 거니는 기분도 특별하다. 목계솔밭보다 소나무 수는 적지만 중평리의 평산 신씨 집성촌락 초입에 위치한 중평솔밭 역시 현지인이 추천하는 야영장이다. 30여 동의 텐트 설치가 가능한 3천 평 규모의 너른 땅에 수령 2백 년이 훌쩍 넘는 우직한 소나무 80여 그루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가까이에 맑은 강이 흘러 가족과 함께 낚시나 물놀이를 즐기기 좋고, 평산신씨판사공파종택과 서벽고택, 사남고택 등 인근 마을의 유서 깊은 고택들을 산책하듯 돌아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고아한 정취로 가득한 아름드리 노송 사이를 느릿느릿 걷다 보면 매일같이 미세먼지와 씨름하던 도시에서의 삶이 잠시나마 까마득해진다.
■ 관련 기사
- 청송 구경
- 그곳에 가면 옛날 산소로 숨을 쉰다
- 청송 구경 #1~3
- 청송 구경 #4~6
- 청송 구경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