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지, 사진 제공 청송군청
청송을 둘러싸고 있는 산 계곡에는 여러 갈래의 낙동강 지류가 흐른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6년을 보냈다.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는 항아리를 이고 시냇가로 나갔다. 그리고 그 시냇물을 길어서 부엌에 있는 물독을 채우고 품앗이를 하고 해 질 무렵에야 집에 들어왔다. 일찌감치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부엌 찬장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러나 허기진 배를 채워줄 먹거리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물독을 채운 물을 마시고 허기를 잊어야 했다. 그리고 여름이면 냇가로 달려가 아이들과 어울려 물장구를 치거나 자맥질을 하며 오후를 보내곤 하였다. 그때 키 큰 아이들이 나를 깊은 곳으로 끌고 가서 뒷덜미를 눌렀다. 키 큰 아이의 횡포를 뿌리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또 거기서 많은 물을 배부르게 먹었다. 끼니 대신 마셨던 낙동강 지류의 시냇물. 그 물을 먹고 자랐어도 팔십 노인이 되기까지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지내왔다. 고향이 준 은덕이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고장 청송, 뜨거운 한여름 아침에도 스웨터를 입지 않으면 감기가 들 정도로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청정한 지역이다. 한번 이 고장에 정착을 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나갈 엄두를 못 낼 만큼 반해버리고 만다. 윤경희 군수의 배려와 노력으로 노인들이 존경받고 어린이가 자랑스러운 사회가 형성되어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빼어난 자연경관에 몰입되기 때문이다. 맑디맑은 공기가 유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청송은 서울특별시보다 더 큰 면적에 상주하는 인구는 2만 5천여 명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앞마당가로 고라니가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나 보란 듯 턱을 쳐들고 예사롭게 지나간다. 자기들 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송을 처음 찾아오는 방문객이 주소는 몰라도 택호만 알면 손쉽게 겨냥하고 온 집을 찾아갈 수 있다. 읍내에서 사방 1백여 리안쪽으로는 굴뚝에서 연기 나는 공장을 볼 수 없다. 오래전부터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기적 소리와 연기를 내뿜는 기차도 이 고을에선 볼 수 없다. 그 대신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을 드높게 가로지르는 하얀 비행운을 볼 수 있다. 청송에는 사과 재배 단지가 있기 때문에 농번기에도 농약 살포를 극도로 자제한다. 그래서 청송사과는 껍질째 먹는 과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어디에서 생산되는 과일이라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된 청송사과의 달고 사각사각한 맛을 흉내 낼 수 없다. 전국적인 가뭄이 닥쳐도 청송만은 물 부족 현상을 겪지 않는다. 냇가에 앉아서 여울의 굴곡을 비끼며 흘러가는 맑고 청아한 물소리와 등 뒤의 소나무 숲을 스쳐가는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도 청송에 마련된 특별한 감성 중의 하나다. 낙동강 지류인 청송 읍내의 용전천과 진보의 반변천은 지독한 가뭄에도 물이 마른 적이 없다. 청송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고을 전체를 원형으로 오롯이 둘러싸고 있는 산 구릉 때문이다.
험담과 괴롭힘, 그리고 고난과 골칫거리뿐인 도회를 벗어나 청송에서의 하룻밤은 잊을 수 없는 정감으로 당신을 사로잡는다. 그곳 청정 관광지에는 청송 심씨 민속마을의 고택 체험지, 주왕산 아래 조성된 민예촌, 자연휴양림의 민박 시설, 주왕산 아래의 유명 콘도미니엄 시설처럼 그냥 두어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민박 숙소가 여럿이고, 야송미술관과 청송백자전시관이나 객주문학관과 같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볼거리는 자꾸만 늘어난다. 덕천마을과 중평동 입구의 백반집, 달기약수탕과 진보 신촌마을의 닭백숙과 같은 소문난 먹거리도 많다. 그리고 이 고장의 맑은 물로 빚은 ‘아락’이란 전통주도 청송의 자랑거리다.
소설가 김주영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1971년 <휴먼기>로 등단했고 이후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화척> 등 선 굵은 작품들을 집필하며 대한민국문화예술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무수한 문학상과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현재 청송에 위치한 객주문학관은 그의 문학 세계를 담은 전시관이자 지역 예술가를 위한 창작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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