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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시작하며 2020, 쥐를 이야기할 때
2020년 흰쥐띠 해. 국립전주박물관 천진기 관장이 동물민속학자의 눈으로 문화 속 쥐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식복食福·정보情報·다산多産의 상징이자, 예지력과 탁월한 생존력을 지닌 존재. 쥐에 대해 우리가 좀 더 알아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신사임당, ‘초충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왜 흰쥐띠 해일까
2020년은 경자庚子년으로, 흰쥐띠 해로 부른다. 왜 흰쥐띠 해인가 알려면 우주 순환 주기를 60년으로 잡아 시간을 셈하는 동아시아인의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를 이해해야한다. 십간은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 십이지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로, 동아시아인은 이 십이지와 십간을 순서대로 늘어놓은 60개 조합(육십갑자)으로 시간을 셈했다. 서양의 직선적 시간 개념이 지니지 못하는 순환의 세계관이 십간십이지에 깃들어 있다. 십간십이지로 연도를 표기할 때 2020년은 육십갑자 중 서른일곱 번째인 경자년이다. 경庚은 십간으로는 일곱 번째, 방위로는 서쪽, 오방색으로는 흰색에 해당한다. 자子는 십이지의 첫 자리이며, 방위로 정북正北을, 달로 음력 11월을, 시간으로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띠는 사람이 태어난 해인 십이지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쥐띠는 갑자甲子(靑), 병자丙子(赤), 무자戊子(黃), 경자庚子(白), 임자壬子(黑) 순으로 육십갑자를 순행한다. 이렇게 따지면 경자년은 ‘흰쥐띠’ 해가 되는 것이다.

우린 쥐를 오해하고 있다
사실 사람에게 쥐는 결코 유익한 동물이 아니다. 생김새가 얄밉고, 성질이 급하며, 행동이 경망한 데다, 좀스럽다. 진 데 마른 데 가리지 않고 나돌며, 병을 옮기고, 집념이 박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시행착오가 많다.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양식을 약탈하고 물건을 쏠아 재산을 축낸다는 점이다. 인간에 기생해 살다가 병균을 퍼뜨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동물이다. 그나마 한 가지 쓸모가 있다면 의약醫藥 분야 실험동물로서 공헌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각은 사람 입장에서 본 것일 뿐이다. 자연계의 일원으로서 쥐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그 존재 의의가 자못 크다.

‘12지상’, 고려시대, 최윤인 석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쥐에 대한 두 가지 생각
쥐에 대한 관념은 민족마다, 종교마다 다르다. 불교의 <아함경阿含經>에서는 쥐를 인간의 일생을 갉아먹는 존재로 보았는데, 특히 흰쥐를 낮, 검은쥐를 밤의 상징으로 여겼다. 유교적 왕도 정치를 이상으로 삼는 사회에서는 쥐를 간신, 수탈자에 비유하는 부정한 동물로 생각했다. 기독교에서도 쥐를 악마·사탄, 게걸스러운 탐욕자·악의 상징으로 여겼다. 일찍이 중국인도 쥐를 수탈자나 포탈자로 생각해 배척했다. 힌두교에서는 조금 다르게 쥐를 사려 깊은 동물, 예견豫見하는 동물로 해석했다. 서구 문화가 쥐를 바라보는 바는 한층 다르다. 고대 서양 에서는 쥐를 신에게 봉헌물로 바쳤으며,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호루스와 이시스에게 바쳤다. 그리스에서는 쥐를 아폴론에게 봉헌했는데, 아폴론이 의술의 신이기에 쥐를 병의 치유와 관련한 것으로 여겼다. 현대 서구 문화 속에서 쥐는 현실 속 강자와 약자의 위치를 상상 속에서 역전시키는 매개체다. 1920년대 등장한 미키마우스(가난한 애니메이터 월트 디즈니가 하숙집 천장을 오가는 쥐들을 보고 창조해낸 캐릭터로, 특유의 긍정 에너지가 특징), 슈퍼맨급 거대 쥐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20세기 폭스의 만화 <마이티 마우스>, 우둔한 고양이 톰을 골탕 먹이는 <톰과 제리>의 쥐 제리 마우스…. 서구 문화에서 쥐는 작은 몸집을 뛰어넘는 영리함과 재빠름의 상징이다. ‘쥐꼬리만 하다’ ‘쥐뿔도 없다’ ‘쥐구멍 같다’ 등 쥐와 관련한 우리의 관용어구가 대부분 아주 적은 양을 비유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서구 대중문화에서는 몸집보다 지적 능력에 집중한다. <마이티 마우스>에선 아예 거대 쥐로 승격시키기까지 한다. 이렇듯 수많은 서구 대중문화에서 쥐는 정의를 위해, 약자를 위해 투쟁한다. 음식을 탐하는 존재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위기의 식당을 구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캐릭터로 등극한 영화 <라따뚜이>(2007년 픽사 제작)의 생쥐 레미, <닌자 거북이>(1984년 피터 레어드와 케빈 이스트먼이 출판한 저예산 만화. 후에 영화와 게임 시리즈로 제작)에서 스승으로 등장하는 동양 무술 고수인 생쥐 스플린터 등도 흥미롭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이 작고 연약한 쥐가 온몸으로 표현할 때 사람들은 쾌감을 느끼고 환호한다.

김인관, ‘어해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청장 만봉스님, ‘쥐’, 현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경주 전 민애왕릉 십이지신상 중 쥐, 통일신라시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고도의 전략과 빠른 몸놀림으로 톰을 골탕 먹이는 <톰과 제리>의 제리

미식가 쥐의 요리사 도전기를 다룬 영화 <라따뚜이>의 주인공 레미
한해를 시작하며 동아시아, 특히 우리 역사 속에서 쥐는 다양한 문화적 표상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재물·다산·풍요를 상징하며, 미래를 예시하는 영물이었다.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고상식(창고형) 가형토기家形土器에는 쥐와 고양이가 장식되었다. 고양이가 곡식 창고에 올라오는 쥐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예나 지금이나 곡식 창고나 뒤주의 주인은 쥐였다. 통일신라 이후 쥐는 십이지의 하나로 능묘, 탑상塔像, 불구佛具, 생활용품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상자 속 쥐의 수를 알아맞히기는 힘들다. 고구려의 유명한 점쟁이 추남과 조선의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 쥐의 수를 맞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암컷 쥐의 배 속 새끼 수까지 정확히 맞혔다. 쥐는 생태적으로 언제나 임신이 가능해 거의 늘상 새끼를 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산 뒤 몇 시간만 지나면 교미할 수 있고, 보통 1년에 5회 정도, 한배에 7~1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연간 5회 10마리씩 낳는다고 가정하면 2년 뒤 1천만 마리로 불어난다. 쥐가 다산의 상징으로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들에서 수박이나 무를 갉아 먹는 쥐를 많이 그렸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수박과 쥐 그림)’가 대표적이다. 수박의 빨간 속살과 씨앗을 먹는 쥐 한 쌍, 나비 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수박은 씨가 많다. 씨가 많다 는 것은 말 그대로 다산과 풍요를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한 쌍의 쥐는 부부 사랑과 다 산 , 풍요 기원을 뜻한다. 조선 중기 화가 김인관의 ‘어해도’에는 무를 갉아 먹으러 슬금슬금 다가오는 쥐가 그려져 있다. 무는 <시경詩經> 제1편 국풍 곡풍國風谷風을 봐도 알 수 있듯 예부터 부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했다. 아래위를 다 먹을 수 있기 때문(뿌리만 먹고 잎새는 맛없다고 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인이 나이 들어 얼굴 시든 것만 생각하고, 고생한 일이나 그 미덕까지 잊어버려 딴 여자에게 다시 장가가면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쥐와 무가 함께 등장하는 ‘어해도’는 그야말로 부부애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제9 혜공왕 5년조에 보면, “치악현에서 8천여 마리나 됨 직한 쥐 떼가 이동하는 이변이 있고, 그해 눈이 내리지 않는다”라는 글이 있다. 쥐는 자연의 이변이나 닥쳐올 위험을 예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쥐가 배에서 내리면 폭풍우가 온다”는 속담이나 “쥐가 없는 배는 타지 않는다”는 속담도 쥐의 이런 신통한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함경도 지방의 ‘창세가創世歌’에도 생쥐 이야기가 등장한다. 세상이 생길 때 미륵은 물과 불을 알지 못해 날곡식을 먹었다. 그때 물과 불의 근원을 미륵에게 알려준 대가로 생쥐가 세상의 뒤주를 차지하게 됐다고 한다. 옛 이야기 ‘황금 구슬’에서는 쥐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노부부가 나쁜 노파에게 속아 황금 구슬을 도둑맞자 개와 고양이가 나쁜 노파 집에 가서 대왕쥐를 잡았다. 집 안 사정을 꿰뚫는 쥐에게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우리 조상들은 쥐가 돌아다니며 정보를 체득하는 정보체라고 여긴 것이다. 쥐야말로 정보화 시대의 안성맞춤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글을 쓴 천진기는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전공했고,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을 거쳐 국립전주박물관 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열두 띠 이야기>, <한국동물민속론>,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등의 책을 썼습니다.

글 천진기(국립전주박물관 관장) | 구성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