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미학’을 통해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강조해온 건축가 승효상이 올해로 건축사무소 오픈 30주년을 맞았다. 그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이란 가난할 줄 아는 자, 부는 있으나 절제하고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자의 미학을 뜻한다.
‘디자인비따’, 100×66cm ⓒ김종오
우리는 건축의 품에서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건축에서 나와 건축을 거친 뒤 다시 건축으로 돌아온다. 랜드마크라 불리는 건축은 이 도돌이표 같은 여정에서 소외된다. 오히려 볼품없고, 익숙하며, 그래서 그것이 건축이란 걸 자꾸만 잊게 되는 존재들이 우리 일상과는 더 맞닿아 있다. 당장 문밖만 나서면 보이는 것들, 아파트나 상가 건물, 동사무소나 파출소 같은 공공건물이 그러하다. 건축이 지니는 공공적 가치는 건축이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아파트와 상가 건물이 아름답고 동사무소나 파출소 건물이 우아했다면 과연 지금 우리 삶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공간을 다소 비워내 성찰을 담고, 이웃과 후대를 위해 층고를 약간 낮출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삶은 더 달라질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이 건네는 화두는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아니다. 사방을 살피고, 모서리를 훑으며 고개고개를 넘어간다. 마치 우리가 진리라는 것을 종종 그렇게 상상하는 것처럼. 올해는 승효상이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연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내건 그의 ‘빈자의 미학’은 이미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건축적 담론이 됐고, 그가 설계한 무수한 건축물은 세계 곳곳에서 승효상이란 존재를 알린 지 오래다. 지난 10월에는 그의 모교가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학술예술 1급 십자훈장’이 날아들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과학·경제·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쌓은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세계에 알린 아트 딜러 크리스티안 네베헤이와 치유의 음악가라 불리는 아르보 파르트, 무엇보다 20세기 미국 대중음악의 이정표인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 훈장을 받았다).
건축가 승효상의 지난 30년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전시가 곧 파라다이스 집에서 열린다. ‘불교문화원’, 50×75cm ⓒ김종오
진실은 늘 현장에 있다
지난 30년을 회고하는 건 건축가 자신에게도 중요한 과제다. 올여름 세상에 나온 건축 여행 에세이 <묵상>이 아마 그 결과물일 것이다. 그간 몇 권의 책을 집필하긴 했지만 그가 스스로 원하고, 처음부터 출간을 목적으로 쓴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 <묵상>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실제로 30주년을 맞아 연초에 ‘올해 할 일’ 몇 가지를 생각해두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출간’이었다고 한다(두 번째는 12월 12일 파라다이스 집에서 진행하는 그의 기념 전시 <승효상.ZIP: 감성의 지형>이다).
“믿건대, 힘은 진실로부터 나오며 진실은 늘 현장에 있어, 현장에 가는 일인 여행은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목도하게하여 결국 우리에게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 이 말은 항상 사실이었다.” 승효상은 이 글귀를 통해 <묵상>의 시작을 알린다. 왜 건축가로서 지난 시간을 기념하는 글을 여행기 형식으로 완성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는 글귀다. 떠나는 이유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진실은 늘 현장에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 삶을 허위로 내몰 온갖 환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준다는 것. “나 자신을 정리하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묵상>이에요. 수도원에 대해, 여행에 대해 쓰긴했지만 사실 <묵상>은 나에 대한 책입니다. 지금껏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한 책이지요. 그 책을 쓰고 나서 뭔가 발가벗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책 속의 승효상은 문화 예술 분야의 여러 사람을 이끌고 수도원 기행을 떠난다. 로마에서 파리까지 2500km에 이르는 길을 책으로 함께하는 동안 우리는 그의 과거를 듣고, 지독한 불면을 엿보며, 종교와 신앙이 승효상이라는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도 알게 된다. 그가 애초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신학자가 되었을까, 아니면 신학을 전공한 건축가가 되었을까? 삶의 길이 어떤 방향으로 갈라지든 진실에 굶주린 걸음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건축가는 건축으로 우리 삶을 바꾸는 자다.” 나는 <묵상>의 이 글귀가 오래도록 마음에 맺혔다.
“그 사람이 전에 보지 못한 걸 보게 되 면, 또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게 되면 그 자신의 삶도 달라질 거예요. 그런 건축을 하는 게 건축가의 의무고 요. 그러니까 건축가는 항상 두려워하 고, 걱정해야 해요. 선 하나도 함부로 그 으면 안 돼요. 그 선 하나로 누군가의 사 는 모습이 변하니까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승효상의 지난 30년은 진리를 구하는 여정이었다. 김수근 문하에서 15년을 보낸 뒤 처음 사무실을 열고 ‘내 건축’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 그는 자신의 건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당시만 해도 국내 건축계는 온통 지연과 학연으로 얽혀 있었고, 어떤 논쟁이나 담론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혹독한 방황의 끝자락에서 그를 구원해준 건 그 무렵 구성된 ‘4.3그룹’이란 건축가 모임. 30~40대 건축가 열네 명이 매달 한 번씩 각자 작업한 걸 들고 모여 밤새도록 토론을 벌이곤 했다. 서로 신랄하게 비평하고 논쟁하며 서로의 작업을 확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승효상의 건축은 사실 거기서 시작했다.
“1992년 12월 12일에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했어요. 각자 자신의 주장을 하나씩 내걸고 전시하는 게 콘셉트였죠. 당시 내가 내놓은 말이 ‘빈자의 미학’이에요. 그때 처음 ‘나는 이걸로 건축을 하겠다’고 선언한 거지요.” 이후 그는 온갖 작업을 통해 ‘빈자의 미학’을 확인하고 또 확장해나갔다. 처음 얘기했을 당시만 해도 사실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상태, 알아도 추상적으로만 아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저 막연히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신념. 그 신념에 건축 인생 전부를 건 사람이 바로 승효상이다. “비웃는 이도, 걱정해주는 이도 있었지만,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이건 정말 내게 진실이고 진리일 수 있겠다고 믿었어요. 늘 그 안에서만 놀려고 노력했고, 그 안에선 굉장히 마음이 편안했어요. 건축엔 수많은 솔루션이 존재하잖아요. 이걸 찾을까, 저걸 찾을까 늘 헤매게 되죠. 근데 그 안에만 있으면, 그것이 나를 옭아매면, 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의 말은 곧 이런 얘기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예술가는 밀실에서 작업할 수 있다. 홀로 작품에 몰두하고,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찢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은 다르다. 건축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니까. 의뢰하는 이가 있어야 하고, 설계를 돕는 동료가 있어야 하며, 현장에서 시공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 처음 설계할 때의 개념이 아무리 귀한 것이어도, 여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온전히 그 귀함을 지켜내지 못한다. 건축을 완성한 뒤 본래의 생각과 비교해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이 그가 자신의 설계를 거쳐 지은 건물을 보면 매번 ‘실패했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래서 다시는 그렇게 안 해야겠다고 결심하죠. 매번 똑같긴 하지만, 건축을 하는 이상 좀 더 나은 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 실패에 대해 보상받기 위해 다시 또 새 작업을 하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다만, 그런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에게도 지난 30년을 되짚어 유독 마음에 남는 작품은 있다. 자신만의 건축 철학이 생긴 뒤 처음으로 설계한 수졸당(미술 평론가 유홍준의 집)이다. 아무리 잘못된 부분만 눈에 들어와 괴롭더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건축. 자신이 얼마만큼 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반드시 출발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논리다.
“웰콤시티(광고대행사 웰콤의 사옥) 역시 내 건축 인생에서 작은 변곡점이라 볼 수 있어요. 이전까지 건축을 건물 단위로 생각했다면, 웰콤시티는 도시 단위로서 건축을 생각하게 해줬죠. 사실 IMF 외환 위기로 한동안 공사를 중단했는데, 이후 다시 짓기로 결정했을 땐 내가 런던에서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었어요. 런던의 여러 건축 동향, 특히 도시 문제를 많이 접하고 익힐 때였죠. 도시 건축이란 건 윤리에 관한 문제라는 걸 확인했고, 건축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건축물이 자리할 장소의 도시적 상황이 이 건축을 통해 반영되고 이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처음 설계할 당시 하나의 이어진 건물이던 웰콤시티는 그렇게 네 개의 건물로 나누어 완성했다. 빛과 바람이 건물 사이 빈 공간을 통과하는 건축. 앞마을과 뒷마을을 연결하는 매개로서 건축이 자리한 것이다. 승효상은 그것이 ‘도시윤리에 관한 문제’라고 말한다. “건축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윤리적 관계를 맺어줌으로써 존재하는 거예요. 이게 도시에 짓는 건축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그의 건축사무소에서 가까운 낙산은 서울이 한눈에 담기는 장소다.
웰콤시티는 승효상에게 도시 단위로서 건축을 생각하게 해준 중요한 작품이다. ⓒOsamu Murai
인간성의 완성은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이제 승효상의 작업은 건축설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함일 것이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2년, 다시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2년을 채우는 중이니 그가 공적 업무를 맡아온 시간도 꽤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공적 봉사의 마지막 직능이 아닌가 싶어요. 그간 느낀 한국 건축의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은 단순히 개선하는 차원이 아니라, 혁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무척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중 몇몇은 지금 법을 개정하는 단계에 있는데, 그 두세 가지 법이 성공적으로 개정되면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겁니다. 그럼 건축을 하는 후배들에게는 새로운 시기가 열리겠죠. 선진화된 건축 형태로 제도가 바뀌어나갈 테니까요.”
총괄건축가로서 서울시의 무수한 건축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실질적 경험을 쌓았다면, 그걸 정책적·제도적으로 좀 더 보장하고 변환시키는 것이 지금의 역할일 터. 이를테면 공공 건축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라든가 인허가 제도, 현재 구상 중인 3기 신도시 프로젝트의 주요 쟁점이 그의 대결상대다. 물론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 그동안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과 싸우는 일이 직함만큼 고상한 일은 아니다. 때론 악다구니도 써야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시달리는 일도 예사다. 그럼에도 매번 걸음부터 떼고 보는 건 이 일이 국내 건축의 저변을 다지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우리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해나 아렌트라는 독일 철학자가 인간성의 완성은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자기 자신을 온전히 광장에 투여함으로써 얻는 거라고. 이 말을 오래전 책에서 읽은 게 죄예요. 다행히 시기가 잘 맞아 변화에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으니 조금은 보람되기도 합니다.” 내년 4월이면 승효상의 이 외롭고 고단한 싸움도 일단락된다. 그는 위원장 임기가 끝나면 건축가로서 본래의 역할에 복귀해 열심히 건축을 설계하는 게 목표다. “다행히 세상의 많은 건축 걸작을 보면 그 건축을 완공했을 때 건축가의 나이가 60~70대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지금이 내가 가장 왕성하게 작업할 수 있는 시기죠. 어쩌면 이 모든 과정도 내 건축을 다시 설계하기 위한 과정일지 모르겠어요. 이런 훈련을 거치면서 남이 못 하는 경험을 하면 내 건축의 완성도가 더 높지 않을까요? 어쨌든 나는 건축이 지녀야할 최대 가치가 공공적 가치라 믿는 사람이니까요.”
그의 목표는 결국 <묵상>의 앞선 구절과 같다. 건축으로 우리 삶을 바꾸는 것. 타인의 삶으로 건축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 그가 꿈꾸는 건축이란 당연히 ‘타인의 삶을 진실하고 선하며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건축’이다. 세계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매일 해가 떴다 지고, 달이 떴다 진다. 이 대가 없는 자연의 선물을 느끼는 자가 있는 반면, 전혀 느끼지 못하는 자도 있다. 승효상에 따르면, 그건 자신이 사는 방식이 그걸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는 방식은 건축을 통해 바꿀 수 있어요. 해가 지는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 수도 있고, 별이 뜬 밤하늘을 그토록 감격스럽게 쳐다보게 만들 수도 있죠. 그 사람이 전에 보지 못한 걸 보게 되면, 또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면 그 자신의 삶도 달라질 거예요. 그런 건 축을 하는 게 건축가의 의무고요. 그러니까 건축가는 항상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해요. 선 하나도 함부로 그으면 안돼요. 그 선 하나로 누군가의 사는 모습이 변하니까요.”
그가 20년 동안 즐겼다는 검도에는 페인트 모션이 없다. 페인트 모션을 쓰는 순간 상대에게 얻어맞기 때문이다. 대신 항상 정자세로 있다가 상대가 조금 흔들린다 싶을 때 공격한다. 그에게도, 그의 건축에도 마찬가지로 페인트 모션이 없다. 항상 기꺼이 다가서고 스트레이트하게 본질로 향하는 건축. 그의 지난 30년이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리라. <묵상>의 마지막 글귀는 이러하다. “여름밤의 바람이 부드럽게 밀려왔다. 그리고 지난 열흘이 바람결에 하나씩 다가오더니 허물어진 몸 위로 천천히 지나갔다. 평화인가? 문득 질문 하나가 다시 가슴을 세차게 후비고 들어왔다. 빌라도의 오래된 물음이었다. …진리가 무엇이냐.” 그의 진리를, 우리는 그의 건축으로 마주할 차례다.
건축가 승효상과 전시 투어
파라다이스 집에서 열리는 건축가 승효상의 전시 <승효상.ZIP: 감성의 지형>에 초대합니다. 건축가가 직접 건축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전시 투어도 함께 진행합니다.
일시 2020년 1월 14일(화) 오후 2시
장소 서울시 중구 동호로 268-8 파라다이스 집
참가비 2만 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10명
신청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신청하세요.
- 건축가 승효상 건축가는 건축으로 우리 삶을 바꾸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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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기념할 만한 해다. 그의 모교가 있는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명예 훈장을 받은 해이고, 자신의 생을 담아낸 에세이를 발간한 해이며, ‘빈자의 미학’이란 화두로 자신만의 건축을 시작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 그 끝자락에서 60대 건축가의 회고를 들으러 간 나에게 그는 무수한 물음으로 답했다.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건축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