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지에 자리 잡아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대한다원 제2다원.
2 연둣빛의 첫 찻잎은 그냥 먹어도 맛있다. 요리에 이용할 생잎을 따는 이는 배은주 씨.
3 한가로운 전원풍의 녹차 브런치. 녹차 스콘과 녹차 무스, 채소볶음을 곁들인 달걀흰자 스크램블로 차렸다.
4 녹차와 레몬을 끓여 시럽과 젤라틴을 넣고 마멀레이드를 만든다. 냉장고에 두고 빵이나 스콘에 곁들인다.
봄바람에 맛이 있다면 녹차 맛일 거다. 처음에는 오는 줄도 모르게 은근하게 다가와서는 마음을 살살 흔들어놓더니, 그다음엔 기다려지게 만드는 것이 닮은꼴이다. 은근하게 쓰고, 떫고, 단, 그리고 마지막 방울의 감칠맛을 알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 맛에 반하고 나서부터는 4월이 되면 첫 찻잎을 따기도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싱싱한 찻잎을 찾아 떠나기로 한 국내 최대의 차 재배지 보성은 채성태 씨의 외가가 있어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봇재를 넘어 율포로 향하는 길에서 가파른 능선에 기대 굽이치는 차밭을 만날 수 있다. 다향각에서 내려다보면 봇재 차밭의 단정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천면에서 895번 지방도를 타고 웅치 방향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대한다원 제2다원이 나온다. 산을 깎아 차밭을 만든 게 아니고 경사가 완만한 땅에 자리 잡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한적하고 평화롭다.
1 녹차를 넣어 푹 삶은 돼지고기 찜. 매실액을 넣은 드레싱으로 버무린 생녹차 샐러드와 곁들이면 궁합이 잘 맞는다.
2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녹차 두부 라비올리. 반죽에 가루 녹차를 넣어 반죽하고, 치즈 대신 두부와 닭고기를 소로 사용해 맛이 담백하다. 한 끼 점심 식사로 손색이 없다.
3 식사 중 혹은 식후에 마시는 쌉싸래한 녹차 한 잔은 입 안 가득 오월의 향기를 남긴다.
곡우 전에 찾아간 보성 차밭에서는 때마침 올봄 첫 찻잎 수확이 한창이었다. 곡우 전후해서 수확한 첫 찻잎으로 만든 차(우전차 혹은 첫물차라고 부른다)는 맛이 부드럽고 향이 좋아 최상품으로 친다. 참새의 부리와 혀 모양으로 세 가닥 삐죽이 올라온 여린 찻잎을 엄지손톱과 검지로 눌러 따면 된다. 챙 넓은 모자를 쓴 할머니들의 바구니마다 연둣빛 새잎이 쌓여간다. 연둣빛 녹차가 하도 예뻐서 가까이 다가가니 할머니 한 분이 한번 먹어보라고 권하신다.
“꼭지 빠지면 안 되지라. 위에 새순만 잘 따야지. 길면 따고 길면 또 따고 그러요. 이거 먹으믄 이뻐지는디, 남의 밭이닝께 따갖구 나가믄 안 되지만 여그 밭에서야 암만 먹어도 뭐라 안 하니께 뱃속에 많이 담아 갖구 가믄 되제. 상춧잎사귀에다 돼지고기 놓고 이 새순을 얹어갖고 같이 싸 먹으면 얼매나 맛있는디. 여그서는 녹차로 장아찌도 담고, 된장도 담고, 또 가루로 만들어서 요리에다가도 이용허고, 이렇게 저렇게 음식으로다 많이 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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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가닥으로 올라온 첫 잎은 부드럽고 향이 좋아 최상품으로 친다.
2 곡우 며칠 전, 보성 차밭에는 첫 잎 따는 작업이 한창이다.
나무에서 금방 따낸 싱싱한 찻잎은 처음에는 쌉싸래한 맛 때문에 제 맛을 알기 힘들지만 씹어 먹으면 먹을수록 풋풋하고 그윽한 향에 매료돼 손이 자꾸만 간다. 채성태 씨의 표현을 빌리면 “서울 가서 생각날 것 같은 맛”. 실제로 차의 효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녹차를 마시는 것보다 먹는 것이 더 이롭다. 중국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찻잎을 씹으면 해독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차를 ‘먹는’ 음식으로 이용해왔다고 한다.
올해 첫물차가 아직 안 나왔으니 지금이야말로 차를 ‘마시기’보다는 요리해 ‘먹을’ 적기다. 한데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생찻잎은 값이 하도 비싸서 차밭 현지에 가야만 맛볼 수 있어 아쉽다. 하지만 녹차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생잎 대신 녹차 우려내고 남은 찻잎을 활용하거나 요리용으로 나온 가루 녹차를 이용하면 된다. 보성율포녹차밭에서 녹차음식체험장을 운영하는 윤미정 씨는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권하면서 녹차를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향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차로 마셔야 합니다. 좋은 향을 느끼려면 꼭 뚜껑을 닫아놓아야 해요. 찻잎을 60~70℃ 정도의 온도로 우려 마시면 수용성 성분인 카테킨, 아미노산, 카페인, 수용성 비타민, 무기질 등이 약 50%만 녹고 나머지 50%와 지용성 물질은 우러 나오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차 찌꺼기에 그대로 남아 있지요. 그래서 차는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식구들이 우려 마시고 남은 녹차를 물기를 꼭 짠 뒤 냉동실에 모아놓으세요. 비빔밥에 올려도 좋고, 부침개 위에 솔솔 뿌려도 맛있지요. 달걀 프라이할 때 넣어도 좋아요. 다 귀찮다면 가루 녹차를 이용하면 요리하기가 한결 쉽지요.”
차밭에서 새잎을 넉넉히 따온 배은주 씨는 녹차를 이용해 브런치와 녹차 두부 라비올리, 저녁 주 요리로 알맞은 녹차 돼지고기 찜을 제안한다. 브런치는 녹차 스무디와 녹차 스콘, 찻물을 우리고 난 녹차를 채소와 볶아 달걀흰자 스크램블로 메뉴를 구성했다. 칼슘과 단백질, 비타민이 풍부한 녹차 스무디는 아이들 간식으로도 적당하고, 달걀흰자만을 이용한 스크램블은 콜레스테롤 제로의 건강식이다. 녹차 스콘에는 가루 녹차를 넣은 부드러운 생크림이나, 녹차에 상큼한 레몬 맛이 어우러진 녹차 레몬 마멀레이드를 곁들이면 맛이 훨씬 풍부하다.
3 녹차 요리 전문점 ‘뜨락’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해물 녹차 수제비.
4 녹차 먹여 키운 보성녹돈은 생녹차를 곁들여 먹어야 제 맛이다.
5 가루 녹차를 넣어 부친 녹차 해물전.
6 녹차 냉면은 녹차 특유의 신맛이 있기 때문에 식초는 조금만 넣어 먹어야 더 맛있다.
“녹차 두부 라비올리는 흔한 녹차 수제비나 녹차 국수를 응용해 만든 이탈리아식 녹차 만두예요. 만두 소도 치즈를 사용하지 않고 두부와 닭고기를 넣어 우리 식으로 담백하게 만들었어요. 녹차는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죠. 녹차를 넣고 돼지고기를 삶으면 누린내가 나지 않고, 녹차의 베타카로틴이나 비타민 E는 기름과 함께 섭취하면 체내 흡수율이 훨씬 높아지지요.” 푸드 컨설턴트 배은주 씨의 설명이다.
바람이 따사로운 5월, 향기로운 봄을 맛보러 떠나고 싶다면 보성 차밭으로 향해보자. 여유로운 차밭 산책 후 맛깔스러운 녹차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회천면 율포리에 있는 ‘뜨락’(061-853-8992)이 제격이다. 녹차를 먹인 보성녹돈을 비롯해 이선자 사장이 일본인 교수에게 전수받은 ‘해물 맛 죽이지 않는’ 녹차 수제비와 녹차 냉면 등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굴과 바지락을 가득 넣고 끓인 녹차 수제비는 반드시 이 집 깻잎장아찌와 같이 먹어봐야 한다. 이선자 사장의 친절한 설명과 넉넉한 인심은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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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녹차 백배 응용하기
녹차+고기 녹차는 고기 특유의 잡내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 고기를 녹차와 함께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침착하는 것을 예방해주고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아 비만도 피할 수 있다. 구운 고기에 가루 녹차를 뿌리거나 녹차를 함께 싸 먹거나, 튀김옷에 녹차를 섞는 것도 좋은 방법.
녹차+생선 녹차를 잘게 부셔 생선에 뿌리거나 우리고 남은 녹차로 생선을 씻으면, 항균 작용을 해 식중독을 예방할 수 있다. 전 부칠 때 밀가루에 가루 녹차를 섞거나 녹차를 다져 넣으면 생선 비린내를 없앨 수 있고, 조림할 때 넣으면 등 푸른 생선의 DHA가 산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녹차+채소 무말랭이 무칠 때 녹차를 넣거나 샐러드 드레싱 만들 때 가루 녹차를 넣는다. 녹차의 쌉싸래한 맛과 씹는 질감은 각종 채소와 두루 어울리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 서울 이태원에서 전복 요리 전문점 ‘해천’(02-790-2464)을 운영하는 채성태 씨는 우리 땅과 바다 곳곳에서 나는 진귀한 재료를 찾아 전국을 이 잡듯이 돌아다니는 집념의 사나이입니다. 한번 만나고 나면 누구라도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될 정도로 천부적인 친화력 또한 매력이지요. ‘제철 재료’ 칼럼은 그의 생생한 경험을 지도 삼아 찾아간 산지에서 푸드 컨설턴트 배은주 씨의 색다른 요리도 제안합니다. <식객>의 ‘진수’와 ‘성찬’에 버금가는 찰떡궁합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