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동남쪽으로 2km 떨어진 1백71번째 남극특별보호구역. 공식 명칭은 ‘나레브 스키 포인트’로 ‘펭귄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젠투펭귄 2천 쌍, 턱끈펭귄 3천 쌍이 살고 있다.
그 가 그려 책 <펭귄의 여름>에 수록한 그림. 아들레이섬 대피소 화장실 옆에 둥지를 튼 젠투펭귄 부부다. 그림 이원영(생각의힘 제공)
“여섯 번째 대륙, 1천4백만 제곱킬로미터, 암반 위에 붙박인 얼음의 돔, 가장 건조하고 가장 추우며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대륙, 수천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최후의 순백 지대”. 그래픽 노블 <남극의 여름>을 펼치면 맨 처음 나오는 설명이다. 공들여 만든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이 미지의 영역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예상외로 많지 않다. 20세기 초, 노르웨이 사람 로알 아문센과 영국 사람 로버트 팰컨 스콧이 남극점을 향해 내달린 탐험 이야기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함부로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자연환경 탓에 띄엄띄엄 언급될 수밖에 없던 지구의 여백 같은 공간. 역설적인 건, 그런 이유로 남극은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지구에서 유일하게 인류 전체의 자산으로 인정받는 곳이 됐다. 1959년 12월 1일 체결된 남극 조약에 이어, 1991년 합의된 마드리드 의정서에서 “남극 대륙은 거대한 천연자원의 보고”인 만큼, “과학적 목적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탐험과 광물 자원 개발, 특히 석유 자원의 개발을 2048년까지 금지”했기 때문이다.
펭귄 행동을 연구하는 동물행동학자 이원영 박사는 과학과 평화라는 가치가 오롯한 인류의 ‘공유 공간’ 남극을 매해 찾는다. 고교 시절 접한 제인 구달, 대학 시절 은사인 최재천 교수, 그리고 찰스 다윈을 롤 모델로 삼은 이 동물행동학자가 처음 남극에 발을 디딘 건 2014년 12월. 서울대학교에서 까치의 부모 양육 행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우연한 기회에 극지연구소에 지원한 것이 계기였다. 극지연구소의 존재도 모르던 그에게 ‘까치’처럼 날아든 행운일까. 연구 대상을 펭귄으로 정한 것 역시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박사과정을 조류 연구로 한 터라 같은 조류인 펭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의 시작은 엄혹한 남극 환경에 비하면 사실 조금 ‘헐렁’했다.
“2014년 12월 5일로 기억합니다. 파리까지 간 뒤 1박, 칠레 산티아고까지 열두 시간 비행, 거기서 ‘란’이라는 로컬 항공기로 갈아타고 최남단 푼타아레나스까지 네 시간을 더 날아갔어요. 창밖으로 안데스 만년설이 보이는데, 남극에 점점 다가가고 있구나 싶었죠. 푼타아레나스에선 칠레 공군기를 타고 다시 네 시간을 비행해야 하는데, 문제는 날씨였어요. 칠레 날씨도 중요하지만, 남극 날씨가 나쁘면 비행기가 이륙을 못 하거든요.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은 저기압이 지나는 곳으로 날씨 변화가 심해 5일 동안 대기 상태로 있다가 마침내 남극행 공군기에 몸을 실었어요. 그리고 난생처음 남극 땅을 밟게 됐습니다.”
“가끔 ‘자연스럽다’라는 게 뭘까 질문할 때가 있잖아요.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 사람이 인위적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개입하지 않는 것? 남극에서 연구자의 역할은 조심스레 관찰하는 것이지 개입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그들의 땅이구나!
비행시간만 장장 서른 시간을 넘긴 여정의 끝은 말 그대로 눈의 세상이었다. 바람은 심기가 안 좋은지 거세게 불었고, 하늘엔 펭귄을 잡아먹는 도둑갈매기가 완강하게 터를 잡고 있었다. 정작 펭귄은 보이지 않았다. 고무보트를 타고 세종기지로 이동할 때, 돌고래처럼 바다를 유영 중인 물체가 시야에 잡혔다 사라졌다. 남극에 오기 전까지 사진으로 인상착의를 익힌 젠투펭귄이었다. 책으로 익힌 펭귄은 그가 연구한 까치와 공통점이 많았다. 펭귄도 까치처럼 매년 먹이가 많고 따뜻한 시기에 맞춰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새끼가 좀 자라면 둥지를 떠나 독립하고, 부모는 이듬해 다시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번식한다.
“제가 도착한 12월은 남극의 여름이에요. 척박하다고 알려진 남극에도 여름이면 풀도 돋고, 꽃 피는 식물인 현화 식물도 볼 수 있습니다. 이때가 펭귄의 번식기인데, 남극하면 떠올리는 추상 이미지인 펭귄을 처음 접촉한 것도 펭귄마을이라 불리는 번식지에서였어요. 펭귄마을에는 5천쌍, 그러니까 1만 마리에 새끼까지 합하면 잠실야구장을 꽉 채울 정도의 펭귄이 사는데, 우리를 놀라게 한 건 펭귄이 내뿜는 지독한 분변 냄새였어요. 그다음엔 우엥우엥 소리가 들렸고요. 마지막으로 기대하던 녀석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게 됐어요. 처음 연구를 위해 포획한 녀석은 50cm 정도 되는 젠투펭귄이었는데 힘도 세고, 날개로 때리는 것도 매서워서 귀여운 이미지와는 다르구나 싶었죠. 결코 뽀로로 같은 펭귄은 아니었어요.”
이원영 박사가 연구지로 삼은 펭귄마을의 개체 수는 남극의 번식지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편이다. 많은 곳은 20만쌍까지 몰려들어 지평선까지 펭귄으로 바글댄다. 남극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가 펭귄임을 증명하는 인증샷이랄까. 그렇게 펭귄과 첫 대면 후 머릿속에 문장 하나가 새겨졌다. ‘여기는 그들의 땅이구나!’ 동물행동학자로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대목이 바로 이와 맥이 닿아 있다. “동물을 연구하면서 옆에서 바라보는 것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건 분명 차이가 있어요. 동등한 입장에서 봐야 합니다. 눈높이가 맞을 때 보이는 게 있거든요. 그들이 사는 자연에 들어가면 저는 손님이고, 그들이 주인이잖아요.”
그가 그린 ‘펭귄 응가’. 강한 압력으로 분변을 발사한다. 그림 이원영(생각의힘 제공)
사실 펭귄이라는 이름은 없다
그의 책 <펭귄의 여름>에는 201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남극에서 연구한 펭귄의 이야기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로 꼼꼼히 적혀 있다. 책 속에는 그가 어떤 정서적 배경과 연구자로서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짐작하게 하는 삽화가 여럿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관찰 중이던 펭귄의 사체를 도둑갈매기가 쪼아 먹는 걸 지켜보는 장면이고, 또 다른 하나가 위치 기록계를 달고 바다에 나간 A02라는 펭귄이 돌아오지 않자 이물질(몸에 부착한 연구용 장비)이 펭귄의 행동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자책하는 장면이다. “가끔 ‘자연스럽다’라는 게 뭘까 질문할 때가 있잖아요.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 사람이 인위적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개입하지 않는 것? 남극에서 연구자의 역할은 조심스레 관찰하는 것이지 개입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펭귄이 죽으면 포식자인 도둑갈매기가 등장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마음은 도둑갈매기를 떼어놓고 싶지만 지켜보는 게 맞습니다. A02의 경우는, 수컷이 돌아오지 않음으로 해서 암컷과 새끼가 죽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아팠던 거예요. 펭귄은 양육을 동등하게 나눠서 하거든요. 한 마리가 바다에 가면 남은 한 마리가 새끼를 품어야 하는데, A02가 돌아오지 못했으니 밸런스가 깨진 거죠. 몸에 달아놓은 장비 때문이었을까 싶어 지금도 미안해요.”
덧붙여 그의 ‘남극일기’에는 여전히 논쟁을 부를 내용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개체에 이름 붙이기’가 그것이다. 롤 모델인 제인 구달이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인 것 처럼, 그 역시 자신이 연구하는 펭귄에게 세종, 남극, 여름, 겨울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제인 구달이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일 때만 해도 꽤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연구 대상에게 이름을 붙이면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객관적 연구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대상과 밀접해지면 경계심을 풀 수 있으니 관찰이 용이하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제인 구달이 그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가 침팬지가 도구를 쓴다는 것인데, 한 인류학자는 “인류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연구”라고 했을 정도다. “‘개체에 이름 붙이기’는 연구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 같은 거라고 봐요.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에도 이름을 붙이잖아요. 사실 펭귄이라는 이름은 없거든요. 젠투펭귄도 하나의 개체가 아닌 추상 관념인 거고요. 동물을 연구하려면 하나의 개체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해요.”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펭귄 몸에 부착한 GPS와 가속도계, 비디오카메라 등을 회수하려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일주일 넘게 펭귄을 기다려야 한다. 장비 수거 과정에서 펭귄에게 얻어맞거나 분변을 뒤집 어쓰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우리가 펭귄을, 자연을 대하는 법
매번 펭귄을 둘러싼 다양한 드라마가 쓰이는 것을 그는 벌써 다섯 차례나 경험했다. 사람들은 동물행동학자 혹은 자연 관찰자의 삶이 팍팍한 도시의 삶보다 여유 있어 보인다거나,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1백 퍼센트 잘못된 셈법이다. 이원영 박사는 자신의 남극행에 ‘여행’이라는 단어가 붙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남극 여행 어땠어?’라는 상대의 질문은 ‘일은 어땠어?’ ‘연구는 어땠어?’ 로 곧장 정정한다. 그에게 남극은 즐기고 힐링하는 공간이 아니라 일상이 연장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남극 스케줄은 주 52시간 노동제라는 시대 정신을 완벽하게 거스르기 일쑤다. 6개월 동안 호기심과 질문과 거기에 맞게 촘촘하게 계획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려면 아침 7시에 기상해 저녁 늦게까지 매달려도 모자랄 지경이니까. 주 1백 시간을 매달려도 연구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까 전전반측하는 일이 다반사니까. 그런데도 그의 남극행은 매번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남극행에는 지난번 보지 못한 개체들과 새로운 데이터들이 유의미하게 쌓이고 해석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는 “동물행동학이 어려운 건 예측이 어렵다는 점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라는 행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최근의 지구 상황은 그런 매력적 연구 활동이 녹록지 않다는 걸 눈앞에서 시위하는 중이다. 얼마 전 북극에서 그가 목격한 건 빙하의 잦은 붕괴였다. 그때 깨달은 건 이런 거였다. 쾅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면 이미 빙하가 무너진 후인데,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 역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늦은 게 아닐까 하는 자각. 지난해 관찰 지역에서 빙하가 20m 사라졌는데, 5년이면 100m가 사라지는 셈이다. 기후 연구자들은 2030년이면 북극에 얼음이 사라질 거라고 전망한다. 얼음 위에 꽂혀 있는 북극점 표시가 바다 위 부표로 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북극은 바다 얼음이라 두께가 얇아 빨리 녹습니다. 반면 남극은 커다란 땅이 뭉쳐 있어 좀 더 견디겠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이 없다고 볼 순 없죠. 누군가 펭귄 없는 남극을 상상할 수 있냐고 물으면 답을 못 할 것 같아요. 펭귄은 남극에서 개체 수가 가장 많은 동물이잖아요. 그런 펭귄이 사라지면 남극 생태계는 끝나는 거죠. 그리고 남극에서 변화가 시작되면 그건 지구에 재앙이 온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펭귄이 사는 나라에서 그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조류학자 챈들러 로빈스가 하와이에서 만난 레이산알바트로스를 46년이 지나 기적적으로 재회한 뒤 위즈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찰한 사례가 그 답이다. 챈들러가 처음 레이산알바트로스를 만났을 때의 나이가 지금 이원영 박사의 나이인 38세였다. 기분 좋은 우연일까? 펭귄 연구자의 지구력이 꽤 강한 걸 감안하면 그가 챈들러처럼 나이 들어도 현장 연구자로 남는 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려면 우리 역시 남극 펭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그가 들려주는 ‘우리가 펭귄을 대하는 법’을 경청하고 볼 일이다.
“일반적으로 펭귄을 접하는 방법은 하나, 동물원뿐입니다. 하지만 동물원에 가둬놓는 건 펭귄 행동 연구자가 아니어도 반대해야 합니다. 펭귄과 돌고래 등 해양 동물은 가둬놓고 키우는 게 아닙니다. 펭귄에게 귀엽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사실 추위에 적응하기 위한 체형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운이 없는 펭귄이 포획되고 동물원에 팔려와 갇힌 채 번식되고 소비되는 모습을 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지요. 정말 펭귄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가두고 소비하는 대신 다른 대안을 고민하는 건 어떨까요? 최근엔 홀로그램을 통해 동물을 보여주는 방식도 있는데, 그런 대안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안겨준다는 동물원에서 우리에 갇힌 채 정형 행동을 하는 동물을 보는 건 슬픈 일입니다. 얼마 전 쇼핑몰에 체험 동물원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형 마트의 펫 숍은 어떤가요? 동물 소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끝이라 생각합니다. 남극에 서 연구 활동을 할 때 가끔씩 SNS에 펭귄을 촬영한 영상을 올립니다. 동물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펭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작은 성의입니다. 그들을 사람의 공간에 가두고 전시하는 건 폭력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렇듯, 사람과 동물도 서로를 지켜주고 상대의 공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펭귄 행동 연구자 이원영 남극이 펭귄을 잃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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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가 전한 뉴스에 따르면, 지구 면적의 10%, 그러니까 미국 땅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곳에서 산업화 이전보다 온도가 섭씨 2℃ 올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섭씨 2℃는 전 지구적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정해놓은 기온 상승 한계점이다. 북극, 중동, 유럽, 아시아 북부, 북미 북부가 차례로 호명됐고, 한국은 1.5℃ 오른 지역에 속했다. 퍼뜩 남극과 펭귄의 안부가 궁금했다. 극지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면서 펭귄 행동 연구자인 이원영 박사를 만난 건, 그가 극지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매해 겨울이면 남극, 여름이면 북극을 찾아 성실한 연구자의 삶을 사는 그에게 펭귄 연구자로서 삶과 극지의 근황, 그 속에서 알게 된 ‘자연스러움’에 대해 물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