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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디자이너 네 명의 영감의 샘
말쑥한 외모만큼이나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네 명이 이렇게 말한다. “제 고향은 시골이에요.” 창의성과 영감의 비옥한 텃밭이 되었을 이들의 고향 이야기가 탐난다. 국종훈·김광림·김윤수·구만재 씨는 못내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문을 연다. 추억과 풍경을 읊는 이들의 음성에는 어느덧 설렘이 묻어난다. 세월이 흘러도 바랠 줄 모르는 그 설렘은 이들의 고향인 담양, 영도, 볼음도, 남해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1 사랑하는 강아지들과 사냥을 떠나는 날, 국종훈 씨는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친다. 사진 제공 정문범.
2 국종훈 씨가 운영하는 멀티숍 세컨 호텔(02-542-2229)에 진열된 그의 소파.
3 메타세쿼이아와 함께 국종훈 씨의 감성도 훌쩍 성장했다.

소파 디자이너 국종훈 씨의 고향 담양
‘시골에서 살면 반은 시인’이라고 했다. 소파 디자이너 국종훈 씨가 나직한 음성으로 들려준 고향 담양 이야기는 구구절절이 시詩였다. 그리고 그의 시상詩像은 담양 산하와 부모님에게서 비롯되었다. “아버지는 웬만한 악기를 다 다루고, 난을 치거나 국궁, 낚시 등에 능했으며 전라도 대표 육상 선수로 활동했던 담양 최고의 ‘한량’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석양이 빨갛게 물가에 내려앉을 즈음 아버지와 함께 여울 낚시를 하거나, 꿩 사냥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손에서 손으로 전하지 않으면 결코 터득할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지요.” 그 시간이 귀한 추억으로 남은 것은 비단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넓은 어깨와 큰 손이 어린 국종훈을 든든하게 보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종훈 씨 역시 자신에게도 ‘한량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국종훈 씨의 집에 드나들던 많은 이들이 그의 ‘영혼의 스승’이었다. 대대로 양조장을 경영하던 집안이었기에, 사랑방에는 남도의 명필이나 명창 등 예술인들이 장기간 머물곤 했다. 그에게 그림 솜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도 매화와 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청곡 선생이었다. 이후 청곡 선생의 방을 드나들며 배운 붓글씨와 동양화는 훗날 국종훈 씨를 디자이너로 키운 초석이었다. “언젠가 제가 그 스승들처럼 머리가 하얗게 셀 즈음 담양으로 귀향할 겁니다. 철마다 산, 강, 호수 등에서 한량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한편, 재봉틀과 재단의 장인들과 함께 소파를 만들고 있겠지요.”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풍경은?
하나는 한여름 오후 나이가 나와 비슷한 메타세쿼이아 길에서의 한순간. 어린 나는 양조장에서 막걸리 배달하는 데 쓰는 커다란 자전거를 타며 이 길을 지나고 있었다. 뒤에서 뭔가가 나를 쫓아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돌아봤다. 굵은 소나기였다! 그 큰 자전거를 끌며 쏜살같이 도망쳤지만, 결국 소나기를 ‘빡’ 하고 맞았다. 그보다 더 어렸을 적 어느 가을날 아버지와 논 한가운데의 좁다란 논둑을 걷고 있을 때였다. 추수철에 임박했는지 볍씨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집이 작은 나의 머리 높이에서 살랑거리고 있었다. 햇살에 나락들이 반짝이던 찰나, 앞서 가는 아버지는 손끝으로 나락들을 ‘싸아’하고 스치며 걸어갔다. 바로 그때, 나락 사이로 보이는 아버지의 넓은 등과 여유로운 손가락, 그리고 유유히 지나는 걸음걸이가 뇌리에 각인되었다.

아플 때나 속이 허할 때면 생각나는 음식은?
정읍이 고향인 어머니는 요리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을 만큼 손맛이 훌륭하다. 그 소문은 익히 자자했으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재학 때까지 매년 소풍을 가는 날이면 어머니가 전교 선생님들의 밥을 싸서 짐꾼을 시켜 딸려 보내셨다. 단출한 도시락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차린 잔칫상이었다. 어머니의 음식 중 특히 김치 맛이 예술이다. 지금도 뭔가를 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를 먹는다. 스님들이 즐긴다는 고수를 어릴 적부터 텃밭에 길러 먹었다. 어머니만의 양념에 무쳐서 생으로 먹는데, 요즘도 어머니가 고수와 양념장을 따로 포장해서 부쳐주신다. 민물 게장은 어머니가 직접 섬진강에 가서 자그만 참게를 사다가 간장에 넣어 만드셨다. 여기서 우러나오는 간장은 바다 게장의 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당신의 작품에서 고향의 이미지를 찾으면?
남도의 산은 어머니의 젖처럼 두루뭉술하다. 그래서 내가 만든 소파의 큰 테두리는 직선으로 이루어졌지만, 마무리는 늘 두루뭉술한 곡선으로 한다. 사막 사진이 프린트된 쿠션이 놓인 큰 소파도 사막의 둥그래한 모래언덕 사진을 보았을 때 편안함을 느껴 구상하게 된 작품이다. 마치 장맛은 세월이 갈수록 더 깊어지듯,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멋이 나는 소파를 디자인한다.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맛을 상상하면서 소파를 디자인한다.

고향에서 영감을 얻어 훗날 해보고 싶은 작업은?
언젠가 담양의 대나무를 활용한 작품을 디자인하고 싶다. 그것이 무르익을 시점이 올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대나무는 어릴 때부터 죽 보고 자랐기 때문에 분명히 내 안에서 영감의 싹이 올라올 것을 알고 있다.

1 이 봄, 추천 여행지 담양댐에 햇살이 내리쬘 때 정말 아름답다. 여건이 된다면 한적하게 낚시를 해보자. 시간이 되면 메타세쿼이아보다 1백 년 이상 오래된 상수리나무 숲인 관방제에 들러보라. 청쾌한 산림욕을 경험할 수 있다. 둑길을 따라 열리는 담양의 5일장에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순창, 남원 등지의 장돌뱅이가 모여 동물, 대나무 제품, 생선 등 갖가지 품목을 판매한다.
2 고향 갈 때마다 사오는 특산물 어머니가 해주신 밑반찬을 가져오는 것 외에 특별히 구입하는 품목은 없다.
3 알아두면 유용한 팁 메타세쿼이아 길은 시내에서 관방제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 여기서부터 가로수 길이 4km 정도 이어지는데, 마지막 1km가량 남은 지점부터는 자동차는 갈 수 없고(우회 도로가 있다) 걸어서만 갈 수 있다. 이 지점이 가장 아름다우니, 천천히 걸어서 산책해보길.



1 부산 광안리 근처 용호동.

영도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광림 씨의 고향
영도 앞바다에는 묘한 정취가 있다. “바닷가에 서면 등 뒤로는 어촌이자 산촌 마을인 영도가 자리하고, 눈앞에는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는 부산이 보였습니다.” ‘디자인 이공이’(02-2057-8202)의 소장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광림 씨가 중학교 때까지 살던 영도는 부산에서 약 2백m 떨어진 곳으로 시골과 도시 풍경이 공존하는 섬이었다. 섬치고는 육지와 가까워 상당히 도시화되긴 했지만, 소년 김광림에게 영도는 부산과는 확실히 다른 구석이 많은 지역이었다. “아마도 영도에 살면 늘 내다보는 풍경이 육지에서 보는 풍경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섬에는 산이 있고, 그 산의 정상에 오르면 섬을 사면으로 둘러싼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지요. 멀리 부산 앞 해운대나 자갈치 시장은 물론이고,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눈에 보입니다.” 그는 어릴 적 유난히 관망하기를 즐겼다. 그래서인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그가 유치원 때부터 늘 스케치북에 담던 것이 바로 집의 평면도였단다. 훗날 살고 싶은 집의 전체를 관망해보면 ‘ㄷ’자 모양의 평면도가 나오는데, 가운데에는 늘 정원이 자리했다. “영도와 부산을 잇는 영도 다리 옆에 크고 수려한 부산대교가 생겼어도 명절 때 부산을 갈 때마다 일부러 좁고 낡은 영도 다리를 찾아서 건너지요. 어릴 적 섬 아이들과 헤엄쳐서 영도 다리 아래에서 노닐던 그 천진난만한 나날을 되뇌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2 영도의 해안도로.
3 멀리 광안대교가 보이는 광안리 해변.
4 자갈치 시장 앞 영도로 가는 선착장에서.
5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광림 씨.

눈 감으면 떠오를 만큼 아름다운 고향 풍경은?
첫째는 바다. 단지 망망대해만 펼쳐진 그런 풍경이 아니다. 산과 나무, 멀리 도심의 건물들, 혹은 항구에 정박하려고 때를 기다리는 선박들이 어우러진 바다가 그리움을 부른다. 이는 산 중턱에 있던 고향집의 내 방 창문을 열었을 때 보이던 바다의 풍경과 같은데,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설렌다. 둘째는 부산 남포동과 광복동 사이에 걸쳐 있는 국제시장.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으로,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전문 상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두서 없이 진열된 잡다한 상품들을 골라보던 아련한 추억이 서려 있다. 셋째는 내가 살았던 동네. 산 주위를 나선형 모양으로 빙 둘러 길을 낸 삼복 도로 근처에 아기자기하게 집들이 들어섰다. 우리 집이 가장 꼭대기에 있어서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교와 집 사이에 있는 친구들의 집을 하나씩 다 들르곤 했다. 매번 컴컴해져서 집에 들어가면 엄마의 꾸지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플 때나 속이 허할 때마다 생각나는 음식은?
자갈치 시장 포장마차에서 파는 꼼장어. 산 채로 껍질만 벗겨서 숯불에 굽는건데 고등학교 때부터 즐겨 먹었다. 서울에선 어디에서도 이 맛을 찾을 수가 없다. 국제시장 옆 부평시장에서 파는 따끈한 어묵도 별미였다. 어머니가 어묵 사 오라고 심부름을 보내시곤 했는데, 1천 원어치에 20~30장 정도 들어 있었다. 야들야들하고 고소한 맛에 못 이겨, 집에 가는 길에 반 쯤은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광복동의 아주 오래 되고 명성이 자자한 B&C 제과점에서 파는 ‘사라다 빵’에도 추억이 담겨 있다. 줄 서서 표를 받고 기다려야 살 수 있었던 커다란 그 빵은 입에 넣으면 특유의 달콤함이 배어 나왔다. 광안리의 포장마차인 ‘다리집’에서 먹는 매운 쌀떡볶이와 갓 튀긴 통통한 오징어 튀김도 꿀맛이다. 이곳에 앉아서 떡볶이를 먹으면 포장마차 천막 아래로 밖에서 지나가는 여고생들의 통통한 다리가 보인다고 하여 다리집이라 불린다. 얼마 전에도 문득 너무 먹고 싶어서 마침 서울에 올라온다던 고향 친구로부터 공수해서 먹은 적도 있다.

당신의 작품에서 고향의 이미지를 찾는다면?
그리 확연히 두드러지는 것 같지 않다. 나는 주로 도회적인 스타일의 디자인을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염두에 두는 키워드가 바로 자연. 큰 창을 내는 식으로 공간과 자연이 소통하도록 한다.

고향에서 영감을 얻어 훗날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배를 한 척 직접 설계해서 만들고 싶다. 어느 날 <도무스> 잡지에서 수백억 원 하는 보트의 설계도를 보고 눈을 떼지 못했던 적이 있다. 여객선처럼 거대하지 않되, 5~6명 친구들이 모여서 파티도 할 수 있도록 응접실과 객실이 있는 배를 만들 것이다. 훗날 흰 바지에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홀로 그 배를 몰고 나갈 터이다. 그렇게 바다 한가운데에서 유유자적하며 ‘바다 위 별장 생활’을 즐기고 싶다.

1 이 봄, 추천 여행지 영도 끝자락에 있는 만인 태종대를 가볼 것. 오륙도를 돌아서 태종대로 돌아오는 배를 타고 기암 절벽을 찬찬히 감상해 보라. 태종대는 반은 군사 지역이고 반은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지역이라 부산 일대에서 비교적 자연 경관이 오롯이 보존된 곳이다. 계절감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 봄가을보다는 겨울철에 보는 태종대 바다가 더 멋지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것.

2 고향 갈 때마다 사오는 특산물 가끔 부산 토종 주류인 ‘시원 소주’를 사올 때가 있다. 시원 소주 맛을 아는 부산 사람들은 이것만 마신다. 낙동강 하구에서 나는 재첩으로 만든 재첩국을 공수해서 냉동 보관하기도 한다. 요즘도 큰 통에 넣고 다니며 판매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살 수 있고, 직접 가서 먹을 때는 낙동강 하구의 ‘하단’이나 ‘을숙도’ 부근의 재첩국 식당에 가곤 한다.

3 알아두면 유용한 팁 회를 먹고 싶다면 해운대를 가지 말고 영도 태종대로 향하라. 이곳에서 싱싱한 회를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전경을 보고 싶다면 해운대 달맞이 고개의 ‘언덕 위의 집(051-743-2212)’으로 향하라. 해변은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살짝 비켜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드라마틱한데, 여기서 보이는 전경이 그러하다. 너른 백사장과 동백섬의 소나무가 펼쳐진 해변이 낭만적이다.


1, 2 볼음도는 외지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섬이다. 볼음도 석양 사진을 구할 수 없어 가장 흡사하다는 강화도 낙조 사진으로 대신한다.

김윤수 씨에게는 두 얼굴의 석양이 자리한다.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을 떠나 서울에서 형제들과 살면서 만나던 석양. 오후 5~6시 즈음 해질녘만 되면 부모님과 고향집 생각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쓸쓸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석양이 지는 시간이 싫고, 그 시각부터는 밖에 돌아다니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다. 다른 하나는 고향인 강화도 서도면 볼음도에서 맞이하는 석양. 하늘과 그에 맞닿은 바다를 시시각각 물들이는 석양은 푹 안기고 싶을 만큼 안온하다.

“고향 볼음도에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있고, 돌이 있고, 그리고 바다가 있습니다. 긴 모래사장을 덮던 바닷물이 휘돌아 나가면 광활한 갯벌이 눈앞에 펼쳐졌지요. 이렇게 다양한 얼굴의 자연 환경을 보고 만지고 느끼며 자랐던 것이 내 생활을 더욱 폭넓게 해주었습니다. 디자인을 할 때 특히 실감할 수 있지요.” 볼음도에는 총 면적이 섬보다 4~5배 크고 저어새나 도요새 등 20여 가지 새가 서식하는 천혜의 갯벌이 있다. 김윤수 씨는 이 갯벌을 수십 가지 색깔로 기억한다. 철마다, 시간대마다, 그리고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갯벌은 늘 다른 풍경이었다. 갯벌뿐 아니라 나무나 바다, 하늘 등 다른 곳도 마찬가지. 그러니 ‘갯벌’ 하면 정지된 사진을 떠올리는 도시 사람들보다 감수성의 폭이 넓을 것이다.
“제게 고향이 있기 때문에 추억이 있고 그리움이 있으며 먼 훗날 나의 둥지를 구체적으로 그리게 됩니다. 언젠가 고향집 근처에 가마를 올리고 도조 작품을 빚고 싶은데, 내게 고향이 있기에 이러한 꿈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눈 감으면 떠오를 만큼 아름다운 고향 풍경은?
첫째는 바다. 바다라고 해도 파도가 거셀 때, 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할 때, 혹은 갯벌이 드러날 때 등 무수한 풍경이 떠오르기 때문에 어떤 모습의 바다가 특히 아름답다고 꼽을 수 없다. 둘째는 바닷물에 떠내려온 것을 이곳에 심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8백 년 된 은행나무. 천연기념물이다. 내게는 산과 나무가 묶일 수 없는 완전히 별개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데 바로 이 나무 때문이다. 가지에 싹이 움트고, 잎이 무성해지며, 낙엽이 지는 매 순간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기억된다. 이 은행나무는 아주 작은 산에서 자라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이 산보다 나무가 더 큰 것 같다.

3 본디자인 (02-544-8486)의 소장 김윤수 씨.
4 김윤수 씨는 계곡에 와있는 듯 청량한 느낌의 레스토랑 타니를 디자인했다.

몸이 아플 때나 속이 허할 때마다 생각나는 음식은?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손두부. 아무리 두부 잘한다는 식당을 가보아도 그 맛을 내지 못한다. 우리 가족이 내려가면 어머니가 때 맞춰서 두부를 해놓으신다. 단지 어머니의 음식이어서라기보다, 동네에서도 엄마의 손맛이 특히 좋으셨다. 두부에는 반드시 새우젓과 간수를 섞은 특별한 양념을 곁들여 먹는다. 고향 외에 어디서도 맛본 적이 없는 양념이다. 쌉싸래하고 시원한 순무 김치도 기억난다. 볼음도 안에는 음식점이 없어서, 이러한 음식을 맛볼 곳이 없다. 강화도 음식과 조금 비슷하긴 하다. 숭어와 농어 회를 먹으면 좋겠다.

당신의 작품에서 고향의 이미지를 찾는다면?
콕집어 말하기 쉽지는 않지만, 아마도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매번 새로운 작품 구상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내 작업을 내추럴하고 편안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추럴하다는 말은 거북하지 않으며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뜻한다. 그 자연스러움은 고정되지 않고 물 흐르듯 변화한다. 가령 실내에 나무 한 그루를 놓는다고 하면 조명, 색감, 크기 등을 달리하며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다. 그것이 흐드러진 잎을 달고 있는 나무일 수도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일 수도 있으며, 어머니가 밥을 하기 위해 아궁이에 넣던 장작일 수도 있으니까.

고향에서 영감을 얻어 훗날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볼음도는 아직 민박 시설도 제대로 없을 만큼 관광지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 무분별하게 개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될 바에는 내가 훗날 그곳에 조그만 리조트를 만들어 고향의 고유 정취를 보존하고 싶다. 크고 번잡스럽지 않고, 아담하고 한적하며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는 특별한 정체성을 지닌 리조트 말이다.

1 이 봄, 추천 여행지  볼음도의 봄은 슬며시 온다. 저녁 무렵 바다에 서보라. 봄 기운과 서늘한 저녁 기운이 교차되어 묘한 바다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볼음도에서 나온 뒤에는 해안도로를 타고 강화도를 한 바퀴 돌아보자. 강화도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 방향으로 꺾어 도로를 타면 해수욕장 등을 거치게 된다. 가다가 포구에서 꽃게를 사서 번개탄에 구워 먹으면, 그 바다를 잊기가 어려울 것이다.
2 고향 갈 때마다 사 오는 특산물 사 오는 것은 없고, 어머니가 싸주시는 순무 김치. 강화도 특산물 매장에 가면 살 수 있다.
3 알아두면 유용한 팁 볼음도는 이곳을 드나드는 배가 하루에 단 두 편밖에 없을 만큼 작고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 타고 1시간쯤 들어가면 닿는다.



1 다리 아래로 미역 따는 배가 지난다.

남해 건축가 구만재 씨의 고향
남해는 우리나라 섬 중에서 산악 비율이 가장 높다. 섬 안에 아기자기한 산이 여럿 있으며, 산 밑에 띄엄띄엄 마을이 있다. 그리고 사면에 바다가 둘러져 있다. “어릴 적, 숲과 그 사이의 하늘을 바라보며 산을 타다가, 정상에 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가 한눈에 보이곤 했습니다.” 고향이 남해인 건축가 구만재 씨는 산과 바다를 종횡무진 누비며 자랐다. “머루랑 으름을 따러 산에 오르거나 조개나 석화를 잡으러 바다를 헤매다 집에 들어오면 밤 9시도 안 되어 잠들곤 했지요.” 이런 곳에서 자랐으니, 구만재 씨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색은 추상적인 ‘보라색’이 아닌 ‘8월의 머루’나 ‘4월의 보리밭’ 같은 색이다.

고등학교 때 고향을 떠나 진주로 유학을 가고, 대학생 때부터 서울에 살는데, 언제라도 남해에 가서 동네 친구네 집의 문을 두드리면 이 같은 대화가 오간다. “왔어?” “응, 바다 갈까?” 두 사내는 소주 한 병과 오징어를 사서 방파제에 걸터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온단다. “고향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 경관이 수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그리운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가면 늘 나를 반겨주는 친구가 있지요. 그리고 어머니가 있습니다.”

2 죽방림을 배경으로 선 무인 등대. 3 금문교를 닮은 남해대교는 포토 스폿 중 하나.
4 일출 무렵 남해의 동쪽 해안가.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풍경은?
첫째는 천연 방조림인 해송과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닷가. 눈이 부시다. 해수욕을 하다가 벌겋게 그을릴 즈음 해송 그늘에서 쉴 수 있는데, 이때 파도 음성이 잔잔히 깔린 솔바람 소리를 들어볼 것. 둘째는 금산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성주해수욕장. 지금껏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바다 원경을 본 적이 없다. 셋째는 주택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 전경. 1970~80년대 한창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는데, 색이 알록달록해서 지금 봐도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다.

아플 때나 속이 허할 때면 생각나는 음식은?
죽방림 멸치 조림. 죽방림은 물살의 세기 차를 이용해 원시적인 고기잡이를 하는 곳인데, 여기에 멸치가 잘 걸려든다. 그물로 잡을 때와 달리, 이곳에서 멸치를 잡으면 비늘이 살아 있어서 최고로 친다. 남해 사람들은 제철인 봄에 잡은 멸치를 쪄서 말린 뒤 여기에 된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무와 함께 자박자박하게 조려 먹는다. 보글보글 지진 멸치 조림을 상추나 배추 등 푸성귀에 얹어서 먹으면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봄철 입맛을 돋운다. 싱싱해서 비리지도 않고, 산란기라 살이 달다. 물살이 센 바닷가인 ‘지족’ 부근에 죽방림이 있고, 이 근처에 멸치 조림을 내는 음식점이 있다.

5 너른 창이 마주 설치된 건물에서 안과 밖의 소통을 중시하는 구만재 씨의 철학이 엿보인다.
6 르 씨지엠(02-583-7024)의 소장 건축가 구만재 씨.

당신의 작품에서 고향의 이미지를 찾는다면?
안과 밖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중시한다는 점. 그래서 어떤 공간에서든 창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창밖에 자연 경관이 아닌 건물 숲이 펼쳐지더라도, 벽으로 막는 것보다는 창으로 열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고향에서 영감을 얻어 훗날 해보고 싶은 작업은? 남해의 돌담이 참 아름답다. 인위적으로 반듯하게 맞춰 쌓은 것이 아니라, 무심히 툭툭 얹은 듯 자연스럽다. 언젠가 그렇게 편안해 보이는 돌담을 쌓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1 이 봄, 추천 여행지 4월에는 뭐니 뭐니 해도 벚꽃을 봐야 한다. 남해는 섬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인다. 특히 해안도로 어디를 가도 ‘벚꽃터널’을 지날 수 있으니 창문을 열고 달려볼 것을 권한다.
2 고향 갈 때마다 사 오는 특산물 전복. 남해에서는 종자를 바다에 뿌려두고 거둬들이는 식의 생태적 의미의 양식을 한다. 사실 이모님께서 전복을 판매하셔서(서목수산, 055-862-5870), 전화만 하면 택배로 부쳐주시기 때문에 잊을 만하면 싱싱한 전복을 먹게 된다. 그리고 11월경 유자를 산다. 남해의 유자나무는 대부분 20년 넘은 건강한 수종이며, 유자에 농약을 치지 않아 울퉁불퉁하고 얼룩덜룩하지만 향이 정말 진하다. 타 지역 사람들은 유자로 차를 만드는 것이 전부인데, 남해 사람들은 유자청을 만들어 각종 요리에 활용한다. 가령 구운 생선을 찍어 먹는 간장에 유자청을 섞는 식이다. 정말 향긋하다. 겨울철 출출할 때는 가래떡을 구워서 유자청을 찍어 먹기도 한다.
3 알아두면 유용한 팁 전어를 가장 맛있게 굽는 방법을 공개한다. 남해에서는 마른 콩대에 불을 지펴 전어를 굽는다. 콩대는 연탄불보다 센 불이 크게 올랐다가 내려가기 때문에 생선의 육즙과 풍미는 그대로 보관하고 잡냄새를 제거한다.

나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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