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저씨 테레비에 나오는 가수라는데/ 추리닝 입고/ 쓰레빠 끌고/ 라면 봉지 덜렁이며 걸어간다/ 가수가 저러고 다니냐?/ 희한타 희한해’ _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중 ‘가수’
이 숲은 몇 겹의 색깔을 지니고 있을까. 겹친 운명처럼 몸을 엉큰 나뭇가지들, 묵은 낙엽, 누군가 쉬어 가던 그루터기, 칡넝쿨…. 구도랄 것도 없이 흩어져 있는데도 보태거나 빼거나 위치를 바꾸면 안 될 것처럼 조화롭다. 완벽한 평화의 얼굴이다. 어쩌면… 이 숲처럼 인생도 나에 의해, 당신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군가 가져다놓은 것들이 내 안에서 조화를 이룰 뿐인지도. 예순다섯 살을 맞은 그가 동시집을 냈다고 했다. 데뷔하고 얼마 안 된 스물네 살 언저리(1978년)에 동요집을 서너 권이나 낸 그가, ‘산할아버지’ ‘개구쟁이’처럼 늘 영롱한 동심을 담아 부르던 그가 이제야 동시집을 냈다고 했다. 미세먼지 포비아가 실제 미세먼지보다 더 매캐한 날들 가운데, 동시집 들고 그를 만난 날의 하늘은, 기적인 양 푸르렀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_‘청춘’ 중
1977년에 데뷔했으니, 40년 넘게 그의 노래는 우리를 어루만지고 달랬다. ‘◦◦◦ 대통령은…’이란 뉴스가 헤드라인을 채우던 이상한 공화국 시절에도, 한강 다리와 백화점이 주저앉던 시절에도, 온화한 가면을 쓴 대통령 세 명이 ‘사회 발전’을 되뇌던 시절에도, ‘롤라장’ 대신 벽돌만한 크기의 ‘핸드폰’이 유흥거리가 되던 시절에도 그의 노래와 노랫말은 늘 청춘 곁에 있었다. 우린 산울림의 ‘독백’으로 사춘기를 버텼고, ‘회상’을 부르며 사랑을 보냈고, ‘청춘’을 부르며 미처 떠나지도 않은 청춘을 슬퍼했다. 유행 지난 LP바에서 ‘아니 벌써’에 주변머리 흔들며 비로소 떠난 청춘을 그리워했다. 산울림의 노래는 늘 청춘의 편이었다. “청춘을 거추장스러워할 정도로 우리 삼형제가 청춘에 있었으니까요. 어떤 가사를 쓰든 팬들은 우리 노래에서 반발과 저항의 조각을 줄줄이 찾아냈어요. 청춘은 늘 무언가 거부하기 마련이니까.”
‘아니 벌써’ ‘청춘’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안녕’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불꽃놀이’ ‘가지 마오’…. 폭발성과 서정성을 정복한 유일한 가수로 기록되는 ‘산울림’의 노래 (음악 평론가 임진모의 평)는 말 그대로 ‘청춘의 대공습’이었다. 록, 발라드, 프로그레시브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 노래들은 밝고 호쾌한 반면, 우울과 실의, 비관도 넘실댔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김창완이 “마치 구충제 먹고 난 뒤의 기분 같은 어지러움”이라고 말한 그것이 산울림의 노래에 있었다. 어지럼증·도피증·우울증, 바로 누구나 품은 ‘청춘의 훈장’이 노래에서 즙처럼 스며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김창완의 ‘노랫말’이 있었다. 세상을 향한 그의 혀는 뼈가 없어도 단단했다. 일상을 들여다보는 친숙한 시선인가 하면, 세상을 비트는 무서운 은유가 구어체 언어에 실렸다. 청춘들은 그 노랫말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떨었다. 어쩌면 그의 노랫말과 우리 사이에는 계곡양 끝을 이어주는 밧줄 같은 게 놓여 있지 않았을까. 이쪽에서 파르르 떨면 저쪽에서 잡은 손도 파르르 떠는 것 같은. 이런 노랫말 앞에서 어떻게 떨지 않을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중). 이런 노래 제목 앞에서는….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사실 제가 산울림 때부터 말개 보이는 노랫말을, 동요를 많이 쓴 건 순수성의 발로가 아니었어요. 제 마음을 다스리는 한 방식이었단 거지. 내가 해결 못 하는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것들로부터 피하고 싶을 때 노랫말을 썼어요.” 그 뒷이야기엔 금실 좋지 않은 부모, 무서운 아버지, 녹록지 않은 집안 사정 같은, 우리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가족사가 있다. 위기 상황이 되면 숨어들고, 버릇처럼 공상에 빠지고,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그러다 폭발과 서정이라는 청춘의 반격 무기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노래를 만들고 노래하면서 그 나약함을 훌훌 털어버리는 그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이야기. 매 시절, 사람들은 그 노랫말에서 스스로 ‘자신만의 은유’를 찾아냈고, 이는 불과 몇 년밖에 활동하지 않았으나 40년 넘는 유통기간을 지닌 산울림 노래의 생명력이 됐다. 아이유가 그와 함께 다시 부른 ‘너의 의미’나 김필이 부른 ‘청춘’은 요즘 10대에게도 유효하다.
‘잊혀질 것 같지 않던 기쁜 일들도/ 가슴속에 맺혀 있던 슬픈 일들도/ 모두 다 강물에 떠내려간 잎사귀처럼 가고/ 백일홍 핀 꽃밭에서 들리는 건/ 어린아이들 피아노 소리/ 사라지는 건 사라지도록/ 잊혀지는 건 잊혀지도록/ 언제나 피고 지는 꽃들 사이를/ 걸을 수만 있다면’_‘백일홍’ 중
살면서 굶주림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메마름을 두려워한다면 그가 누구든 시인일 것이다. 그는 곡을 끼적이던 열댓 살 시절부터 이미 시인이었다. 그를 단지 ‘배우’로 아는 Z 세대를 위해 잠시 풀어놓는 시인의 역사는 이러하다. 대학 1학년 때 5천 원짜리 통기타로 처음 잡아본 ‘감동의 D 코드’, 둘째 김창훈이 튕기던 1천5백 원짜리 기타와 막내 김창익이 ‘전화번호부 드럼’으로 시작한 형제 취미 밴드, 1977년 김창완이 은행 입사 시험날 시험장 대신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가 녹음한 산울림 1집,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발표한 다섯 장의 앨범, 얼척없는 검열을 통과하며 세운 ‘1집만 40만 장’이라는 기록, 그럼에도 잠정 해체할 때까지 없다시피 하던 수입, 김창훈·김창익의 제대 후 1982년 9월 잠정 해체, 각각 미국과 캐나다로 건너가 생업을 꾸린 김창훈과 김창익, 2007년 지게차 사고로 막내 김창익을 하늘로 보내고 “내 청춘을 잃었다”던 김창완, 그렇게 앓다 이듬해 ‘산울림’에 종언을 고하며 만든 ‘김창완 밴드’, 김창완 밴드의 11년째 순항과 20년 넘게 출근한 아침 라디오 방송….
시인의 역사 매 순간, 그는 썼다. 동요든, 노랫말이든, 방송 오프닝 멘트든. 심지어 ‘남자 이영애’라는 말이 나올 만큼 CF계를 섭렵할 때도, 그만의 ‘어벙한’ 연기로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할 때도. 20년째 매일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스튜디오 소파에서 오프닝 멘트를 쓰는 그를 두고, 그 프로그램의 이재욱 PD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매일 아침 숙취를 내몰면서 시와 다름없는 방송 원고를 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모습이 겹쳐진다. 노벨 문학상 가즈아!” 굶주림 대신 메마름을 두려워하는 천생 시인, 김창완에게 ‘쓰는 삶’이란 무얼까. 이제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 대신 그리워할 뿐인 우리에게 그의 노랫말, 그의 동시, 그의 수필, 그의 라디오 오프닝 멘트는 과연 시일까, 삶일까.
‘저기 별이 빛나지/ 그걸 내가 보잖아/ 틀림없이 저기 어디 우리 집이 있는데/ 내가 주소를 안 적어 왔어/ 근데 궁금한 게…… 언젠간 돌아갈 것 아니야/ 그럼 어떻게 인사를 하지?/ “다녀왔습니다.”라고 해야 되나?/ 아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래야 되나?/ 말없이 그냥 껴안으면 될까?’_<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중 ‘별’
쉰 넘어서야 진짜 동심을 발견했다는 그는 예순다섯 살에 첫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을 냈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쓰는 짬짬이 지인들에게 문자로 보내던 손바닥만 한 글이 입소문 나면서 이미 2013년 ‘할아버지 불알’ ‘어떻게 참을까’로 동시 전문지에 등단한 터였다. 올봄에는 ‘칸 만들기’로 동시마중 작품상도 받았다. 그의 동시는 지극히 보드라웠고, 맵싸했다.
“어린 김창완, 어른 김창완, 가수 김창완이 보이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쓴 동시를 감상하는 방법은 그냥 즐기기, 주석과 해석 없이, 마음껏 즐기는 것.” 출판사의 책 소개 문구처럼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은 그저 마음껏 즐기면 되는 시다. ‘방이봉방방’은 김창완이 만든 방귀의 의성어.
‘꽃에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긴 대롱을 꽃받침에까지 밀어 넣었다./ 재채기가 날 법도 한데/ 어떻게 참을까?/ 그래서 꽃잎이 흔들렸나/ 재채기 참느라고.’(‘어떻게 참을까?’) 누군가는 이 동시를 읽고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햇빛 좀 치워달라는 것 같다”고 했다. ‘‘개미’에 관한 긴 글을 썼다/ 지웠다/ 제목 ‘개미’만 남기고’(‘개미’). 누군가는 이시에서 불가의 ‘공空’ 사상을 집어냈다. “노안이 오니 가까운 것도, 먼 곳도 안 보여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얼핏 했어요. 나는 가까이 있는 내 현재도 잘 모르고, 멀리 있던 과거도 모르고 있구나. 어린 시절이야말로 먼 것도, 가까운 것도 잘 보고, 눈이 항상 밝았는데 이게 탁해졌구나. 그래서 아침마다 눈곱 떼는 것처럼 동시를 썼어요. 내가 어른이 되면서 스스로 만든 은유를 벗으려 했지. 내가 보던 식으로 세상 보는 걸 포기하고, 하나씩 벗어가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예순 번 넘게 봄꽃을 봤지만, 어느 꽃도 내가 처음 본 꽃이지 예순 번째 꽃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매일 마시는 술도 첫 술처럼 마시지.” 깨지는가 안 깨지는가 보려고 머리로 통유리를 들이받는 초등학교 2학년 사내아이처럼 새로운 눈으로 보니, 세상은 한편 신비하고, 한편 살맛 나고, 한편 진지했다. 그는 그걸 동시라는 부드러운 혀로 털어놓았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은/ 내가 처음 보았던 것이다/ 내가 지금 보는 산은/ 내가 처음 보았던 산이고/ 내가 지금 듣는 빗소리는/ 내가 처음 들었던 빗소리다/ … / 내게서 사라진 그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잃어버린 것들이다’_<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중 ‘내가 지금 보는 것’
‘늙은 가수가 걸어간다/ 남루한 히트곡을 입고/ 새옷을 입자니 몸이 불편하고/ 벗어 버리자니 날이 춥다’_<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중 ‘늙은 가수’
“내 꿈?… 훌륭한 가수 되는 거. 데뷔할 때 어르신들이 ‘저게 노래냐?’ 했어요. 데뷔하고도 10년 동안 가수라는 얘기를 못 했지. 그런데 너무 오래 가수로 살아왔잖아. ‘어쩌다 가수가 됐습니다’란 말을 40년 넘게 하고 다녔으니 그 말빚이라도 갚게 마음 다해 불러보려고요. 훌륭한 가수는 마음을 다해서 부르는 가수야. 40년 밥 지은 엄마도 어떤 날은 질고, 어떤 날은 되직한 것처럼 40년 노래한 나도 어떤 날은 마음 다해 부른 것 같고, 어떤 날은 흉내만 낸 것 같으니까. 그리고 나, 멋진 히트곡을 갖고 싶고, 목숨 걸고 김창완 밴드 음악하고 싶어. 죽을 때까지. 난 음악이 진짜 좋아. 뭐 다른 건 하거나 말거나….” 이 말에 그의 수필집 <이제야 보이네>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삶은 고달프지만 아직 더 먹을 나이가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라. 비록 임종일지라도.’ 마지막으로 그도 예순다섯에야 알아챈 ‘동심’이, 아니 ‘인생’이 대체 무어냐 물으니 그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야 할 이야기를 했다.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물고기가 난에서 발생해서 2분할, 4분할을 거치고, 내벽·외벽이 생기고, 눈하고 아가미가 생기고… 이걸 다 찍었는데, 딱 보고 내가 한동안 꽂혀 있던 종이접기를 포기했잖아요. 그거야말로 신들의 종이접기더라고. 꼬깃꼬깃 세포를 분할하고, 함몰시켰다가, 만들었다가… 그런 기적, 그런 감격 앞에서 더 할 말이 있나. 그게 바로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인데.” 인터뷰가 끝이 났다. 나는 그와 함께 머물던 서리풀공원의 반그늘을 툭툭 털고 일어나, 숨이 조금씩 가빠지게 봄 산을 넘고 싶어졌다. 그의 노랫말 한 구절 외며.
‘더 늦기 전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모든 눈물이 다 기쁨이고/ 이별이 다 만남이지/ …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지/ 그냥 날 기억해줘/ 내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고 싶지 않아/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_‘시간’ 중
“근데… 행복한테 너무 큰 걸 기대하지 말아요. 행복이 뭐 별거예요? 행복에 관해서 사람들이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이 말은… 결국 지금 자기 행복을 과소평가하는 거라는 말이지.”_2019년 6월, <행복이 가득한 집>과 나눈 김창완의 행복론
- 동시집 <무지개가 귄 방이봉방방> 펴낸 가수 김창완 꾸미고 싶지 않아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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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딱 살아온 삶만큼만 쓰는 법이다. 글이고 무엇이고 간에 모든 것이 삶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동요로, 노랫말로, 라디오 오프닝 멘트로, 수필로, 단편소설로 이미 열혈 독자를 거느린 가수 김창완이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을 펴냈다. 그 안에 예순다섯 해 만에 글로 쓴 ‘동심’이 들어 있다 했다. 찬찬히 읽으니 그의 삶이, 우리 삶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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