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순 작가는 이탈리아의 폴리폼, 프랑스의 리네로제 등을 선보이며 20년간 수입 가구업계의 정상을 지켜온 디사모빌리의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의 프랑스 삶을 담은 에세이집 <파리, 혼자서>를 보고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고 싶었다
“‘나’를 주제로 한 시를 써보세요.” <행복이 가득한 집> 인문학 강좌의 과제에 30분간 아무런 문장을 쓰지 못했다. 자신을 잘 안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곧바로 의문이 생겼다. ‘대체 나는 누구이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50대 중반의 일이다. 평범한 한 사건이 누군가의 인생에 파도처럼 와닿기도 한다. 강인순 작가의 심연에 밀려온 지극한 의문이 그를 먼 이국땅, 프랑스까지 이끌었으니 말이다. 강인순 작가는 2014년 예순 살이 된 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2016년 논현동에 신축 오픈한 디사모빌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그에게서 사업가의 날카로운 모습보다는 호기심 많은 낭만 여행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대하게 풀어내다가 간간이 호방하게 웃고 진지하게 회상한다. “회사 창립자인 남편을 도와 10년 이상을 회사 경영에만 집중하는 삶이었어요.” 주말이나 휴일 없이, ‘나’에 대한 성찰은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었죠.” 앞만 보며 달려온 세월은 사업의 성공으로 보상받았지만, 그럴수록 내적 열망은 더 깊어졌다. “남편과 대화하면서 같은 한국어로 소통하지만, 참 다른 신념을 지니고 산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 우리 부부에게 각자의 안식년이 필요하다 싶었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오히려 흔쾌히 승낙한 건 남편이었어요. 어쩌면 설마 진짜 갈까,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설사 오랜 세월을 함께 버티어온 부부 사이에도 심연은 있다. 삶에 부대끼고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잃어버리는지도 모른 채 나이 들어간다. 마음속 서랍에 묵힌 무언가에 열정을 쏟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가 절뚝거리는 마음을 결의하고 지구 반대편 프랑스로 떠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셈이지만, 그의 행동이 유의미한 이유다.
버킷리스트 1번 ‘프랑스 유학’
결혼 후의 삶은 과거 대부분의 한국 여성이 그러하듯 보편적인 엄마 생활에 머물렀다. 학비 지원 없이 오롯이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며 대학을 졸업했기에 오랜 시간 빚을 갚아야 했고, 육아와 경제적 자립을 위한 치열한 생활 전장에 서 있었다. “친정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직장에 다닐 수 없었을 겁니다. 정말 열심히만 살던 시기였죠.” 수십 년이 지나고 강인순 작가가 프랑스 유학을 결심한 건 그래서 놀랍지 않다. 남편과 함께 두 아들도 묵묵하게 엄마의 결정을 따랐다. 문제는 ‘무엇을 하기 위해 떠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될까 해서 프랑스 에세크ESSEC 경영대학원을 준비했습니다. 어떤 시험인지도 모르면서 입학시험인 지맷GMAT 학원에 무작정 등록해 엄청난 벽을 느끼기도 했어요. 에세크에 간절한 마음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더군요. 정말이지 면접관 앞에서 2분 정도 말을 못했어요. 모든 과정이 무모한 시도였지만,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그는 그곳이 어디든 가장 나이 많은 도전자였다. 누군가는 시작하기도 전에 고개부터 저을 만큼 지난한 절차를 기꺼이 찾아내고 추진하는 그의 의지가 참으로 대단하다. 에세크에서 당시 머물던 호텔로 전화해 정중한 태도로 다른 학교를 제안한 것을 보더라도 말이다. 그는 다시 부유하는 마음을 붙들고 소르본 대학교 어학원에 입학해 파리에서 머물며 혼자 1년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는 유명 카페가 많은 몽파르나스와 라스파유대로가 교차하는 바뱅역 근처에 있었고,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에펠탑이 보였다. 크루아상을 곁들여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맞이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세계 각국에서 온 동기들과 교실에서 파티를 열었다.
파리 외곽 일드프랑스Ile de France 지역에서 만난 샹티이성에서.
소르본 대학교 어학원 졸업식 때.
60세 여성의 생애 첫 유학 체험기를 담은 강인순 작가의 산문집 <파리, 혼자서>.
강인순 작가와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최동열 회장.
혼자서, 파리에서 느낀 영혼의 울림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정신적 위로가 되어준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묘석을 찾고, 라스파유 대로에 있는 로댕의 발자크 동상을 마주하며 발자크의 비범한 삶을 추적하며, 비오Biot라는 작은 마을에서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를 탐닉하고 설렘을 느끼는 강인순 작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큰아들이 태어난 다음 해에 간 첫 파리 출장에서 남편과 보낸 로맨틱한 겨울과 공짜로 치른 프랑스어 자격시험 체험기, 유학원의 엄격한 선생님과 세계 각국에서 온 유별난 친구들의 이야기 등 파리에 살면서 맞닥뜨린 예측 불가한 작은 일상이 모두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학교에선 모범생 타입이었어요. 수업 후 예습과 복습하는 데 온 시간을 쏟았죠. ‘주말에 뭐 했어?’라는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고요.”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 그는 혼자서 여행하는 법을 몰랐다고 덧붙인다. 낯선 이국땅이 주는 긴장감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쉽사리 파리를 즐기지 못한 것이다. 유일한 한국 유학생 다문이를 만나 함께 근교 여행을 다니며 조금씩 프랑스의 다른 풍경이 가슴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몽생미셸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신혼 시절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딸린 전셋집에 살았는데, 그 단출한 집에 도둑이 들어 귀한 결혼 살림을 잃어버렸어요. 공허한 마음으로 남편과 새 전세방을 구하러 다니던 날, 허리우드극장에서 영화 <라스트 콘서트> 를 봤습니다. 주인공 연인이 우연히 만나 걸은 해안가 배경이 몽생미셸 수도원이었죠. 당시는 그것이 무슨 건축물인지도 모르고 마음을 빼앗겼는데, 수십 년이 지나 직접 두 눈으로 그곳을 마주한 거죠.” 그에게 ‘파리’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고귀한 자신을 향한 애틋한 애정이고, 존재에 대한 질문이며, 영혼이 살아 있음을 좇는 투명한 기도 같은 것이다. 그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보란 듯이 1년이라는 시간을 충만하게 보냈다. 주중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주말에는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그야말로 은퇴와 더불어 자유를 얻었다.
꿈을 너무 쉽게 이루면 의미가 없잖아?
강인순 작가는 독서와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삶의 주체적 모험가가 되고자 했다. 프랑스 이야기를 글로 써보기로 한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사람들이 뭘 하고 왔냐며 수없이 질문했어요. ‘아, 내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 ‘나의 멋진 경험을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걸렸다.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은 온몸으로 행하는 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글쓰기라면 어릴 때부터 문장력이 탁월하던 두 언니(강석경 소설가, 강숙인 동화 작가)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리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생각보다 그를 훨씬 강인하게 만들었다. 수시로 서점에 들러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평생교육원의 ‘에세이 쓰는 법’ 강좌에 등록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언니들에게 습작을 보여주고 따끔한 조언을 들으며 조금씩 문장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주중에는 디사모빌리 경영에 집중했지만, 주말에는 동네 도서관으로 출근해 종일 글을 쓰고 또 썼다. <파리, 혼자서>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무척 힘들었지만, 생애에서 가장 보람되고 행복하던 소중한 시간이라고 고백한다. “제 책이 누군가의 마음에 와닿아 영감을 주고 새로운 꿈을 꾸는 동기가 되길 바랍니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마음속 무지개를 발견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힘이 되면 좋겠어요. ‘저 사람도 해냈는데 나라고 못할 건 뭔가’ 하고요. 설사 그것이 목표대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다른 귀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꿈을 너무 쉽게 이루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의 기질과 세계관이 담긴 그만의 문장은 그 자체로 온전한 힘을 지닌다.
이젠 ‘나’에 관한 시를 쓸 수 있다
그가 프랑스의 문화 예술을 만끽하고 모두 불가능할 것처럼 여기던 책을 출간하며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다. “어린 시절부터 타인을 의식한 삶을 살아왔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격려하는 대신, 주위 사람과 비교하고 나 자신을 낮게 평가하며 못마땅하게 여겼죠. 지금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자기 성찰에 대한 의문을 이끌었던 ‘나’ 에 관한 시를 이제 쓸 수 있는지 묻자, 그는 자신에 찬 어조로 그렇다고 말한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 대신 꾸준히 노력하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죠. 언니들이 글 쓰는 재주를 지녔다면, 저는 어학에 탁월한 감각이 있지요.” 안식년을 끝내고 몇 년이 지난 현재, 그만의 고유한 능력을 발휘해 이탈리아어를 배울 준비를 하고 있다. “오페라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가사가 이탈리아어입니다. 이탈리아어를 배워서 원어로 오페라를 감상하고 이해하고 싶어요.” 또 다른 꿈을 말하는 그의 눈빛이 다정하게 반짝거린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것이 더 넓은 시선으로 사업을 바라보고, 남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인순 작가는 자신처럼 꼭 해외에서 유학하며 살아볼 필요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한 달이나 일주일이어도 충분할 수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온전하게 나에게 집중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실행하는 시간, 그 모든 과정이 인생의 축복이다.
작가와의 만남
강인순 작가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참여하신 분께는 강인순 작가의 단행본 <파리, 혼자서>를 드립니다.
일시 4월 24일(수) 오후 2시
장소 논현동 디사모빌리 쇼룸
참가비 1만 원
인원 10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 60세에 프랑스 유학 떠난 강인순 작가 나다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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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명성의 가구를 소개하는 디사모빌리의 경영자로, 이른바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강인순 작가. 예순 살이 된 해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온전히 홀로 ‘나다운 삶’을 고민한 그 시간은 <파리, 혼자서>로 묶였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