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10주년 맞은 한식당 품 서울 노영희 셰프 처음 마음 그대로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찬 것은 차게, 따뜻한 것은 따뜻하게 내는 곳.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품 서울이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년 품 서울 식탁에 오른 1백58가지 음식을 보기 좋게 엮어낸 큼직한 요리책 <품>은 그 기념비라 할 만하다. 품 서울 노영희 셰프는 비결이 아닌 원칙을 이야기했다.

남산 아래 서울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테이블에 앉은 노영희 셰프. 품격 있는 전통 반가 음식을 현대적으로 담아내는 품 서울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한다.
“처음 손님에게 돈을 받고 음식을 만든 날이 2008년 12월 22일이었어요.” ‘오늘의 한식(Korean Cuisine Now)’을 모토로 한식 파인 다이닝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연 레스토랑 품 서울이 10주년을 맞았다. KBS <요리인류> 이욱정 PD가 제작한 10주년 기념 영상에 등장하는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과 최현석·임기학 등 후배 셰프, 가수 윤상 등 품 서울을 아끼는 지인들이 입을 모아 “버텨주어 고맙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한적한 남산 중턱에 자리한, 저녁 한끼에 10만 원이 넘는 한식당을 유지해온 노영희 셰프를 향한 진심 어린 헌사였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노영희 셰프는 신선한 제철 국산 식재료를 전통 반가 음식 조리법으로 아름답게 담아내는 품 서울의 원칙을 뚝심 있게 지켜냈다.


지난 10년간 품 서울이 지켜온 가치는 무엇인가요?
초심을 잃지 않는 거였어요. 스태프들에게 재료비 이야기를 해본적이 없어요. 재료비가 걱정되면 접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품 서울에서 쓰는 식재료 중 수입산은 타이거 새우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당에서 국내산 식재료를 안 쓰면 누가 쓰겠어요? 달마다 제철 음식으로 메뉴를 바꾸는 원칙도 지켜왔지요.

처음 문을 연 때엔 한식 파인다이닝이라는 말조차 생소했습니다.
코스 형식의 한식에 거부감이 많았지요. 당시 농수산부 장관이 식사를 하다가 “음식이 왜 패션쇼 하는 것처럼 들어왔다 나갑니까?”하고 묻더군요. “두 번째 음식이 나올 때쯤 다음번에는 어떤 음식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지 않으셨어요? 그런 호기심이야말로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음식을 오롯이 즐기도록 하고 싶어 코스 형식을 택했어요.

옻칠 작가 채림의 작품을 걸어둔 품 서울 실내. 이곳에선 도예가가 만든 식기를 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요리 연구가로 일하며 방대한 그릇 컬렉션을 자랑하는 노영희 셰프는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릇 가게 ‘노영희의 그릇’을 운영한다.

제철 봄나물을 다듬는 노영희 셰프. 오픈 키친을 통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진달래, 진달래 노래 부르며
노영희 셰프가 지켜온 원칙과 가치가 한식 파인다이닝의 근간이 되었다. 고급 한식당도 늘었다. 해외 요리학교와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양식을 경험한 셰프들이 ‘모던 한식’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SK행복나눔재단의 ‘오늘’, CJ의 ‘소설 한남’, 광주요의 ‘비채나’ 등 크고 작은 기업이 시장에 진입했다. 고급 호텔의 한식당도 일제히 옷을 갈아입었다.

품 서울이 표방한 ‘오늘의 한식’에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글쎄요, 처음보단 손님이 조금 줄어든 것?(웃음) 그만큼 한식을 다루는 고급 레스토랑이 늘어났으니까요. 전체로 보면 고급 한식을 즐기는 손님도 늘었겠지요.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등 특별한 날에 양식당 대신 품 서울을 찾는 젊은 손님들을 보면 그렇게 반갑고 기특할 수가 없어요. 음식 자체는 그리 변하지 않았습니다. 품 서울은 반가 음식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식당입니다. ‘오늘’과 ‘한식’ 중에서 고르라면 저는 후자를 택하겠어요. 저처럼 한식의 전통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다음 세대가 더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새로운 건 그것을 보여주는 형식일까요?
저는 경기도 사람이에요. 심심하게 간을 하고, 여러 가지 반찬을 먹는 집에서 자랐지요. 갈수록 한식의 맛이 진해집니다. 누군가 우리식재료의 맛을 잘 살리는 반가·궁중 음식의 가치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담을 땐 여백이 있어야 해요. 음식이 접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 정도면 충분하지요.

품 서울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정갈하고 현대적인 담음새입니다.
오른손잡이에게는 턱이 있는 그릇에 음식을 담을 때 정가운데보다 왼쪽으로 치우쳐서 담아야 젓가락을 사용해서 먹기에 편하지요. 왼손을 쓰는 손님에게는 반대로 담고요. 먹는 사람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품 서울의 메뉴 중 지난 10년을 대표하는 요리는 무엇일까요?
시그너처 메뉴라면 채끝등심구이입니다. 어느 분이 여기서 채끝 등심을 쓰니까 갑자기 이 부위를 쓰는 레스토랑이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모양이 일정해서 먹기에도, 보기에도 좋은 부위입니다. 여름엔 민어, 가을엔 송이와 능이, 겨울엔 전복 등 계절을 대표하는 식재료로 만든 요리가 메뉴에 오릅니다. 4월이 되면 꼭 진달래화전을 내고요. 진달래는 통영부터 시작해 지리산으로 올라오며 피지요. 온갖 곳에 전화를 돌려 진달래, 진달래 노래를 부릅니다. 식용 진달래가 갈수록 구하기 어려워지거든요. 그래도 어떻게든 구해서 꼭 맛보여드리고 싶어요. 맛보다 한 편의 시詩 같은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수삼 인절미와 국수, 품 서울 10주년을 기념하는 요리책 <품>.

봄을 알리는 진달래 화전.

품 서울을 대표하는 메뉴, 간장 소스 채끝등심구이. 노영희 셰프는 일단 조리법대로 음식을 만든 후, 보완할 점을 메모해 자신의 레시피를 완성해나가라고 조언한다.

조금 특별한 집밥의 교과서

노영희 셰프는 품 서울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요리책 <품>을 펴냈다. 품 서울 식탁에 오르는 1백58가지 음식의 사진과 요리법을 계절별로 분류해 맛깔나게 담은 책. “봄은 낮은 곳에서부터 온다. 들에서 시작해 야산으로, 깊은 산으로 옮아간다. 그래서 가장 먼저 봄맛을 전하는 봄나물은 들에서 난 것이다.” 노영희 셰프의 시심詩心이 음식을 담는 그릇 밖으로 나와 활자가 되었다. 영어를 병기해 외국 손님에게 선물하기도 제격이다.

한정판 1천 권의 표지엔 오래된 놋숟가락이 붙어 있습니다.
한식을 대표하는 오브제를 고민하다가 숟가락을 떠올렸지요. 이런 형태의 숟가락을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저 어릴 때만해도 놋수저와 유기그릇을 썼습니다. 연탄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산화탄소 때문에 유기가 새카맣게 변하니 어느새 사라져버렸지요. 책 디자인을 시작하기도 전에 놋숟가락 1천 개를 사두었습니다. 책꽂이에 꽂을 수가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테이블에 올려두기만 해도 좋은데 무슨 걱정이야.(웃음)

철마다 새로 음식 사진을 찍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2011년부터 준비해왔습니다. 사실 품 서울 5주년 기념으로 내려했는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미뤄두었다가 부랴부랴 다시 시작했지요. 감사하게도 오뚜기재단에서 제작비를 대주었습니다.

이 책이 어떻게 활용되기를 바라나요?
책에 실린 음식을 매일 해 먹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가족이 모여서 식사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밥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관심과 사랑, 행복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특별한 집밥의 교과서로 쓰면 좋겠습니다.

노영희 셰프에게 품 서울의 다음 10년에 대해 묻자 ‘진짜 오래가는 레스토랑’이 되었으면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우연히 찾아간 식당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지인이 그에게 새로운 한식 레스토랑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했다.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찬 음식은 차게, 따뜻한 음식은 따뜻하게 내는 곳”이라는 또렷한 생각이 품 서울의 10년이 되었고, 한식 파인다이닝의 근간을 세웠다. 그리고 노영희 셰프의 처음 마음은 지금까지 조금도 변화가 없다.


스튜디오 탐방
노영희 씨의 작업 공간 '철든 부엌'에 독자를 초대합니다. 잡지 기자로 시작해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스타 셰프로 일해온 그와 함께 티타임을 즐기며, 30년간 모아온 그릇들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행복> 구선숙 편집장이 함께합니다.

일시 3월 12일(화) 오후 3시
장소 강남구 삼성동 스튜디오 참가비 1만 원
인원 12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글 정규영 기자 | 사진 옥건민 | 문의 품 서울(02-777-9007)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