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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하고 담백한 바다의 맛 몽산포 주꾸미
최고의 음식 맛을 내는 비결은 바로 최고의 재료로 요리하는 것. 그러려면 제철에 우리 땅과 바다에서 나는 좋은 재료를 찾아야 한다. 문어도 아닌 것이 낙지도 아닌 것이, 짜리몽땅한 주꾸미는 딱 지금이 제철이다. 열 낙지 부럽지 않다는 봄 주꾸미를 찾아 몽산포에 다녀왔다.


1 요즘 제철을 맞은 몽산포 주꾸미. 위 서해안 몽산포항의 소박한 풍경. 20여 척의 고깃배가 올봄 어획량이 크게 늘어난 주꾸미 잡이에 분주하다. 새벽 바다에 나가 만선을 하고 돌아온 배들이 오후에는 포구에서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2 태안반도 근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산시장. 오랜만에 들른 재래시장에는 싱싱하고 진귀한 재료들은 물론 삶의 활력으로 가득하다. 채성태 씨는 싱싱한 재료와 시장 상인들의 조언을 캠코더에 생생하게 저장하는 중. 조개를 열심히 관찰하는 이는 배은주 씨.

이른 봄 서해안은 주꾸미가 한창이다. 서해안에서도 태안반도 몽산포항은 주꾸미의 집산지. 올해는 평년보다 주꾸미 어획량이 세 배가량 늘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는 주꾸미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밤잠을 설치다 결국 몽산포를 찾기로 했다. 서울에서 전복 요리에 관한 한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는 ‘해천’의 채성태 사장 제안에 푸드 컨설턴트 배은주 씨가 합류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서산시장. 겨울을 지내고 오랜만에 들른 재래시장은 여전히 삶의 활력으로 가득하다. 근방에서 가장 큰 서산시장은 입구에서부터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직접 키우고 들판에서 캔 봄나물로 온통 초록 세상이다.

달래도 냉이도 서울에서 보던 그것이 아니다. 색깔이 눈부시도록 곱고 예쁘다. 어떤 할머니들은 아예 쌈장을 맛있게 만들어 갖고 나와서는 지나가는 이에게 나물이며 채소를 찍어 먹어보라고 권한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에 잘됐다 싶어 참나물 한 줄기 돌돌 말아 쌈장에 찍어 입에 넣으니 풋풋한 향내가 온몸으로 퍼지며 ‘음~’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연둣빛의 애기열무, 향긋한 돌미나리, 풋마늘 등 촬영에 필요한 채소를 구입한 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번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서해가 키워낸 갖가지 해산물들이 가득했던 것. 한창 제철인 새조개와 주꾸미는 어느 점포나 시장 통로 쪽으로 가까이 두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커다란 빨간 고무통 안에 한가득 담긴 주꾸미들이 꿈틀꿈틀 서로 밟고 밟히며 고무통 바깥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은 신기하고 재미나다. 단골 가게 앞에서 친절한 주인 누님과 인사를 나눈 채성태 씨는 산 주꾸미 한 마리를 덥석 잡더니 통째로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다리를 쭉 물어뜯어서는 질겅질겅 씹어 삼킨다. 그렇게 먹어야 제 맛이라나? 예고편은 여기까지, 이제 진짜 주꾸미 세상으로 들어갈 차례다.

고추장 소스 주꾸미 꼬치구이
재료
(4인분)
주꾸미 400g(4마리), 풋마늘대 또는 대파 4대, 노란 파프리카 1개 고추장 소스 고추장·다진 파 2큰술씩, 올리고당·다진 마늘·참기름 1큰술씩, 고춧가루·간장 1작은술씩, 다진 생강 1/2작은술

만들기
1 주꾸미는 내장과 먹물주머니를 제거하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다. 머리와 다리를 가르고 다리는 4등분한다.
2 고추장 소스 재료를 고루 섞는다.
3 풋마늘대나 대파는 뿌리를 잘라내고 밑둥 부분만 4cm 길이로 자른다. 파프리카도 같은 크기로 자른다.
4 꼬치는 1인분에 주꾸미 한 마리 정도면 알맞다. 꼬치에 주꾸미 다리와 채소를 번갈아 꿰고 마지막에 머리(실은 몸통)를 꿴다.
5 ④에 고추장 소스를 발라 뜨겁게 달군 석쇠에 앞뒤로 먹음직스럽게 굽는다.





1, 4 주꾸미는 두 가지 방법으로 잡는다. 바다에 나가 그물로 잡아 올리는 방법과 소라 껍데기를 매단 밧줄을 바다 속에 3~4일 놓아두는 동안 주꾸미가 소라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면 밧줄을 끌어올려 잡는 방법. 후자의 주꾸미가 상처가 적기 때문에 값을 더 쳐준다.
2 탱탱한 질감과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꿈틀꿈틀 산 채로 먹을 것.
3 바다 바로 앞에 자리 잡은 판매장에서 샤브샤브용 알배기 주꾸미를 골라 담는 채성태 씨.

77번 지방도로를 따라 안면도 쪽으로 가다 몽산포항 방향으로 우회전해 내려가면 작은 포구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국내 최대의 주꾸미 집산지 몽대포구다. 방파제 입구의 태안남면수협 몽산위판장에는 오늘 아침 배에서 갓 잡아올린 숏다리 주꾸미들이 탱탱함을 자랑하고 있다. 소라 껍데기를 30cm 간격으로 밧줄에 매달아 깊은 바다 속에 던져놓으면 주꾸미가 소라 껍데기 속에 둥지를 튼다. 3~4일 후 새벽 바다에 나가 설치해놓은 밧줄을 끌어 올리면 껍데기마다 주꾸미가 한 마리씩 들어 있다. 이런 방법으로 몽산포항에서 봄에 잡힌 주꾸미는 ‘서울에서 먹었던 주꾸미는 주꾸미가 아니었어’라고 여겨질 정도로 크고 통통하다. 어획량에 따라 시세가 매일 바뀌는데, 오늘은 1kg에 1만 원, 큰 것으로 담으면 대략 여덟 마리 정도 저울에 올라간다. 올해는 예년보다 바다 수온이 높아 주꾸미가 산란을 많이 해서 어획량이 대폭 늘었다. 보통 5월 중순까지 최고 성어기인데 올해는 4월 중순이면 어느 정도 끝날 것 같다. 시장에서 보던 것과 달리 색깔이 거무스름한데, 알고 보니 주꾸미는 위장술이 있어서 주변 상황에 따라 몸의 색깔이 수시로 변한단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처럼 봄철에 주꾸미가 각광받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산란을 앞두고 몸통마다 가득 차 있는 알 때문이다.

봄 주꾸미의 제 맛을 즐기기 위해 현지에서 가장 많이 해 먹는 요리는 바로 샤브샤브. 위판장 사무실 직원의 추천으로 ‘몽산포먹거리수산식당’에 들어갔다. 먼저 조개 육수에 무, 파, 버섯, 미나리를 넣어 끓기 시작하면 살아 있는 주꾸미를 통째로 넣어(육수가 끓을 때 넣어야 먹물을 쏘지 않는다) 살짝 익힌다. 연한 자줏빛을 띠며 다리가 꽃 피듯 동그랗게 말리면 몸통과 다리를 분리해 몸통은 더 익히고 다리를 먼저 먹는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우며 쫄깃한 다리의 육질을 느끼는 동안 몸통 속의 알(정확히 말하면 난소)이 완전히 익어 탱탱해지면 꺼내서 먹는다.

푸드 컨설턴트 배은주 씨 조언 주꾸미 제대로 고르고 조리하기
1 코에 철사를 꿴 주꾸미는 죽은 수입산일 경우가 많다. 제철에 잡힌 산 주꾸미는 수조에 넣어 무게로 달아 판다.
2 알을 밴 암컷은 몸통을 눌러 쥐었을 때 연한 노란빛이 돈다. 샤브샤브에는 밥알 같은 알이 든 암컷이 좋지만 나머지 요리에는 별 상관이 없다.
3 생주꾸미 요리의 관건은 쫄깃한 질감을 살리는 것. 질겨지지 않도록 살짝 익힌다. 데침, 튀김, 구이, 무침 등 조리 시간이 짧은 요리가 알맞다.
4 몸통이 다리보다 더디 익으므로 머리와 다리를 구분해 조리할 것.
5 먹물엔 타우린 등 영양 성분이 풍부하지만 싫다면 머리를 젖혔을 때 하얀 막이 있는 부분을 눌러 살짝 튀어나오는 먹물주머니를 떼어낸다.




마침 몽산포를 찾은 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바다를 찾은 외지인에게는 흐린 바다와 하늘도 운치 있어 보인다.


1, 3 주꾸미의 야들야들한 질감을 느끼는 데는 샤브샤브가 최고. 육수를 끓여 주꾸미를 살짝 데쳐 다리 모양이 꽃처럼 되면 몸통과 다리를 분리해 다리를 먼저 먹고 몸통은 알이 완전히 익은 후 먹는다. 
2 포구에 쌓여 있는 주꾸미 잡이용 소라 껍데기.

4 식욕을 자극하는 매콤한 주꾸미볶음. 
5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라며 산 주꾸미를 그대로 입으로. 




“맛있게 먹는 데도 방법이 있어요. 살짝만 익혀서 양념장 없이 씹으면서 질감을 느끼세요. 다리를 먼저 먹은 후에는 몸통을 꺼내 위쪽부터 가위로 3등분합니다. 밥알 뭉친 것 같은 알, 먹통 달린 내장, 그리고 목. 먹을 때도 순서대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톡 터지는 고소하고 담백한 밥알 같은 알과 약간 짭쪼름하면서도 묘한 바다 냄새가 느껴지는 먹통과 내장이야말로 주꾸미의 진미를 느낄 수 있는 부위. 처음엔 모양과 색깔 때문에 꺼리는 사람이 많지만 몇 번 먹다 보면 야들야들한 다리 맛보다 역시 몸통이 별미임을 알게 된다(우리 일행 모두가 그랬다). 주꾸미와 함께 나오는 소라, 대합, 가리비, 맛조개 등을 모두 익혀 먹고 나면 주꾸미 먹물 때문에 국물이 까맣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까만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끓이면 그 맛이 먹물 파스타 저리 가라다. 주꾸미(특히 먹물)에 많이 들어 있는 타우린 성분은 스태미나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 특공대의 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주꾸미 달인 즙을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몇 년 전부터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랙 푸드의 대표적인 식품이기도 하다. 제철에 우리 땅에서 나는 것만큼 건강한 먹을거리는 없다. 봄철 서해의 맛있는 선물 주꾸미, 4월 최고의 미각 여행 테마다.

1 이탤리언식 주꾸미 샐러드
재료(4인분)
주꾸미 400g(4마리), 빨강·노랑 파프리카 1개씩, 돌미나리·애기열무 50g씩, 적꽃상추·흰꽃상추 20g씩, 발사믹 식초 50cc 드레싱 올리브오일 3큰술, 다진 양파·화이트 발사믹 식초 1큰술씩, 이탤리언 허브 1작은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주꾸미는 내장과 먹물주머니를 제거하고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다. 머리와 다리를 분리하고 다리 쪽은 2~3등분해 물기를 제거한다. 뜨거운 팬에 살짝 지진다.
2 파프리카는 3mm 두께로 채 썰고 나머지 재료는 한입 크기로 준비한다.
3 드레싱 재료를 섞는다.
4 발사믹 식초 50cc를 중불에서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졸여 발사믹 리덕션을 만든다.
5 채소를 드레싱에 버무려 큰 그릇에 담고 구운 주꾸미를 올린 다음 발사믹 리덕션을 뿌려 낸다.

2 중화풍 어향 주꾸미
재료(4인분)
주꾸미 400g(4마리), 다진 대파 2큰술씩,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생강 1/2큰술, 청피망·홍피망 1/2개씩, 셀러리 10cm, 죽순 1개, 표고버섯 4장, 식용유 적당량 튀김옷 녹말가루 1/2컵, 달걀흰자 1개 분량, 얼음물 60cc 어향 소스 청주·두반장·굴소스·식초·설탕 1큰술씩, 고추기름·간장 1작은술씩, 식용유·후춧가루 약간씩, 물녹말 2큰술

만들기
1 주꾸미는 내장과 먹물주머니를 제거하고 머리와 다리를 가른 다음 물기를 닦는다.
2 채소는 모두 사각형으로 잘게 썬다.
3 기름을 170℃로 올리고 튀김옷 재료를 젓가락으로 살살 섞어 주꾸미에 얇게 입힌 다음 바삭하게 튀겨 기름기를 뺀다.
4 프라이팬을 센 불에 달궈 식용유를 두른 후 다진 대파와 마늘, 생강을 볶아 기름에 향을 낸다. ②의 채소를 넣어 살짝 볶은 다음 물녹말을 제외한 어향 소스 재료를 넣고 끓인다.
5 ④에 물녹말을 넣어 농도를 맞추고 ③을 넣어 버무린다.

서울 이태원에서 전복 요리 전문점 ‘해천’(02-790-2464)을 운영하는 채성태 씨는 우리 땅과 바다 곳곳에서 나는 진귀한 재료를 찾아 전국을 이 잡듯이 돌아다니는 집념의 사나이입니다. 한번 만나고 나면 누구라도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될 정도로 천부적인 친화력 또한 매력이지요. 이번 호부터 시작되는 ‘제철 재료’ 칼럼은 그의 생생한 경험을 지도 삼아 산지를 찾아갈 예정이며, 푸드 컨설턴트 배은주 씨의 색다른 요리도 함께 제안합니다. <식객>의 ‘진수’와 ‘성찬’에 버금가는 완벽한 찰떡궁합을 많이 기대해주세요.

* 몽산포먹거리수산식당(041-672-2462)에 주문하면 자연산 주꾸미를 다음 날 택배로 편하게 받으실 수 있습니다. 싱싱한 서해 주꾸미로 온가족이 함께 제철 별미를느껴보세요.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