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原始는 시원始原이다
내게 아프리카 미술은 거대한 블랙홀이었다. 그 강렬함에 이끌려 서른 중반을 넘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향한 건 새천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러니 아프리카를 헤매고 다닌 것도 벌써 8년째다. 아무 대책도 없이 저지른 일 때문에 인생이 오리무중에 빠져들었으나, 아프리카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서도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서른 중반 이후 행복한 기억의 대부분이 아프리카에 닿아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아프리카 출장을 준비하는 내게 솔깃한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에서 원시 부족 미술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시가 열린다는 것이다. 한달음에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장이 개관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이고 보면 그 규모 면에서 어지간한 열정과 준비 없이는 불가능한 전시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개인 컬렉션으로 열리는 전시가 어련할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는 나의 이런 기우를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훌륭했다. 컬렉터의 열정은 물론 주최 측의 체계적인 준비와 노력이 여실히 묻어났다.
“하바리 가니?(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 전시장 입구에서 공연에 열중하는 두 마사이 청년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동을 주조하고 상아를 조각하는 아프리카 미술 장르를 탄생시킨 베닌의 ‘황동주조 인물 두상’ 을 비롯해 전시는 아프리카 부족들의 전통 미술에 집중되었는데 중요하게 취급되는 부족들의 미술품들을 망라했다. 무엇보다 원시미술을 ‘Primitive Art’가 아닌 ‘Origin Art’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 전시에 대해 신뢰를 갖게 했다.
나는 제3세계의 전통 미술이나 부족 미술을 얘기하면서 흔히 사용하는 원시 미술Primitive Art이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19세기의 인류학자들이 당시의 유럽을 사회 진화의 종착점으로 여겨 그 대척점에 있는 문화를 규정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동양 미술을 비롯해 그리스·로마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모든 지역 미술을 원시 미술로 정의해야 하는 명백한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거니와, 마땅히 어떤 지역의 전통 미술이나 부족 미술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원시原始를 뒤집으면 시원始原이 되지만, 좀 더 인문학적인 의미를 띠는 것처럼 ‘Origin Art’는 모호한 원시 미술의 개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개념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원시 부족의 전통 미술품을 처음 대할 때 당혹감을 느낀다. 이제까지 우리가 미술이라고 여겨온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 무엇이 시선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미술에 어느 정도 익숙하거나,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라면 당혹스럽기보다는 신비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신비감도 우리에게 익숙한 아름다움과 근본적으로 다른 그 무엇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전통 미술은 한 민족이 오랜 시절 누려온 문화의 반영이므로 그 문화를 이해하기 전까지 ‘그 무엇’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 눈앞에 송예족의 선조 조각상이나 도곤족의 남녀 조각상 등이 놓여 있다 치자.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들이 모두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조각들이 하나같이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조각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 또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그것들이 모두 일반적인 인체 비례에서 벗어나 가분수에 짧은 다리이며, 무릎이 구부정하게 굽어 있는 등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의 조각상들이 뚫어지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건, 바로 고단한 현실적 삶의 공간을 넘어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신의 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의 반영이며, 신이나 조상의 거룩한 손길이 조각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성스러움은 삐딱하지 않고 항상 정면으로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상의 영험함이 깃들어 있는 조각들이 왜 하나같이 어설픈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조각들이 유아기의 인체 비례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조상 숭배의 주된 목적이 종족의 번성과 풍요를 비는 데 있음과 무관하지 않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한없이 맑은 영혼과 깨끗한 몸을 갖고 있으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성스러운 존재이므로 조상의 영혼이 머물기에 가장 적당한 존재다. 다시 말하면 신생아는 조상과 매우 가까운 존재이며, 신생아는 조상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 작품들에는 이러한 기호와 상징들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켜 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실마리가 존재한다. 그 실마리를 찾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하게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면서 우리는 비로소 아프리카라는 비밀스러운 문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에 들어서는 순간 영혼들이 숨 쉬는 검은 대륙을 만날 수 있으며, 종교와 예술의 원형들이 삶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보이고, 온갖 짐승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1 인도 캘커타의 ‘인도 악사 조각’.
2 아프리카 미술의 백미로 꼽히는 베냉Benin의 ‘청동주조인물 두상’.
3 자바 문화의 핵심인 ‘족자카르타의 토템 조각’. 인간의 형상이 엉켜 있는 나무 기둥으로 5m 이상이다.
4 가봉 푸누 부족의 가면.
5 콩고 바울레 부족의 ‘자이르 선조 조각상’.
6 보보 부족의 ‘태양 가면’.
7 파푸아뉴기니의 ‘선조 조각 가면’.
8 마사이 부족의 ‘테이블 북’과 타이의 그림 ‘테일 보트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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